‹ 목록으로 고수인데 초보 행세 중

5화

이상하다는 말 한마디에 온몸이 굳었다. 명치의 진동이 흔들리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목소리가 이상하다니, 이 채팅창에 목소리가 어디 있다는 건지, 이것들이 글자만으로도 뭔가를 눈치챌 수 있는 건가. 씨발, 진짜. 채팅 하나에도 이렇게 심장이 내려앉아야 하나.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화면을 쥔 손에 땀이 배기 시작했다. 이 폐가 초막 안에서, 나 혼자 앉아 휴대폰처럼 생긴 정체불명의 물건 하나를 붙들고 이렇게 벌벌 떠는 꼴이라니. 누가 봤으면 정신병자라고 했을 거다. [화류] 원래 이렇다 짧게 끊어 답을 보냈다. 더 길게 썼다가는 무언가 더 드러날 것 같았다. 문장 하나하나가 발밑의 얼음처럼 느껴졌다. 한 걸음만 잘못 디디면 그대로 깨져버릴 것 같은. [몽몽이] 아 그런가 보네요 그냥 다른 사람이랑 좀 다른 느낌이라서 다행히 몽몽이는 더 파고들지 않았다. 안도의 한숨이 나오려는 것을 억누르며 나는 화면 밖으로, 다시 이 폐가 초막의 곰팡이 낀 천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심장이 아직도 빠르게 뛰고 있었다. 천장의 얼룩을 세다가 나는 문득 생각했다. 이 세계에서 몇 달을 버텼는데도 아직 이 정도로 긴장한다는 게, 스스로도 우스웠다. 그런데도 몸은 자꾸만 그 순간을 대비하듯 굳어졌다. 몇 주가 지났다. 나는 매일 밤 배꼽 아래로 숨을 밀어 넣는 그 짧은 순간을 위해 낮 시간을 견뎌냈다. 산나물을 뜯고, 우물물을 길어 마시고, 마을 아이들이 훈련하는 공터를 멀찍이서 지켜보며 그들의 호흡법을 눈에 새겼다. 저 병신, 저 재수 없는 놈, 마을 사람들의 시선은 여전히 나를 그렇게 취급했지만 이제 나는 신경 쓸 여력조차 없었다. 산나물을 뜯다가 손톱 밑이 까맣게 물들어도, 우물물을 긷다가 두레박이 손에서 미끄러져 발등을 찍어도, 나는 오직 밤을 기다렸다. 하루의 고통이 밤의 그 짧은 순간을 위한 서곡처럼 느껴졌다면 우습겠지만, 실제로 그랬다. 낮은 견디는 시간이었고 밤은 사는 시간이었다. 공터에서 아이들이 훈련하는 걸 지켜보는 것도 이제는 습관이 되었다. 나무 그늘 아래 몸을 반쯤 숨긴 채, 마치 그냥 지나가다 멈춘 것처럼 위장하며 그들의 호흡을 관찰했다. 코로 들이마시고 입으로 내뱉는 저 단순한 동작 하나에도, 자세히 보면 미묘한 리듬이 있었다. 들숨은 짧고 날숨은 길게. 아니, 저 아이는 반대로 하는데. 밤이 되면 나는 채팅군의 대화들을 흡수했다. 백우와 운룡, 적혈랑은 자신들의 수련 과정을 시시콜콜 늘어놓기를 즐겼는데, 그 안에는 호흡의 순서, 기의 흐름을 유도하는 방향, 관문을 넘을 때의 감각 같은 것들이 무심코 섞여 있었다. [백우] 셋째 관문 넘을 땐 배꼽에서 명치로 기가 확 치솟는 느낌이더라 [운룡] 나는 반대로 명치에서 배꼽으로 내려가던데 [적혈랑] 둘 다 다른 거 당연하지 근본이 다른데 [백우] 그래도 대충의 흐름은 비슷하지 않나 [운룡] 흐름은 비슷해도 방향이 다르면 결과가 다르지 나는 그 문장들을 몇 번이고 되새기며 내 몸의 감각과 대조해보았다. 그들이 말하는 것과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았지만, 큰 흐름은 비슷했다. 배꼽, 명치, 방향, 속도. 단어 하나하나를 마치 보물 지도의 표식처럼 머릿속에 새겨넣었다. 이 채팅창은 나에게 유일한 스승이었다. 정식으로 배운 적도 없고, 누군가 손을 잡고 가르쳐준 적도 없는, 그저 어깨너머로 훔쳐 듣는 것에 불과했지만, 지금 이 순간 나에겐 그것이 전부였다. 어느 날 밤, 나는 처음으로 명치의 진동을 배꼽 아래로 끌어내리는 시도를 해보았다. 백우가 말한 방향의 정반대였다. 손끝이 저려오는 감각, 무언가 뜨거운 것이 아주 미약하게 배 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숨이 턱 막혔다. 이게 뭐지. 이게 진짜 기라는 건가.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쭉 올라왔다. 손바닥이 축축하게 젖어들었다. 나는 곧바로 같은 동작을 반복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매번 같은 감각이 재현되었다. 미약하지만 분명한, 뜨거운 흐름. 재현된다. 이거 진짜 재현이 되는 거다. 손가락이 떨렸다. 이번에는 두려움이 아니라 흥분 때문이었다. 폐물이라 불리던 몸에서, 기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던 그 몸에서, 처음으로 기의 흐름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미친놈, 미친놈아. 이게 되잖아. 이게 진짜로 되잖아! 나는 그 자리에서 벌떠 일어나 좁은 초막 안을 몇 바퀴나 돌았다. 마치 로또에 당첨된 사람처럼 실성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다시 자리에 앉아, 방금의 감각을 잊지 않으려 눈을 감고 반복했다. 뜨거운 흐름, 배꼽 아래, 명치에서 시작되는 진동. [몽몽이] 화류님 뭐하세요? 요즘 잘 안 보이시길래 채팅창에 뜬 문장이 나를 다시 현실로 끌어당겼다. 나는 방금 성공한 감각을 곱씹으며 손끝의 여운을 놓지 않으려 애쓰며 답을 썼다. [화류] 조용히 수련 좀 했다 [몽몽이] 오 뭐 좀 얻으셨어요? 나는 잠시 멈췄다. 여기서 뭔가 얻었다고 말해야 할까, 아니면 감춰야 할까. 손가락이 화면 위에서 멈춘 채 몇 초간 허공을 맴돌았다. 결국 나는 짤막하게 답했다. [화류] 아직 별거 없다 허위였다. 방금 폐물의 몸으로 미약하게나마 기의 흐름을 만들어낸 것은, 절대로 별것 없는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 흥분을 이 채팅창의 누구에게도 드러낼 수는 없었다. 백우나 운룡, 적혈랑이 삼계나 이계 수준의 존재들이라면, 폐물이 기를 처음 느꼈다는 사실이 얼마나 기이하고 위험한 정보로 취급될지 짐작조차 하기 어려웠다. 거짓말은 점점 익숙해졌다. 처음엔 손끝이 떨렸는데, 이제는 태연하게 짤막한 문장 하나로 넘길 수 있게 됐다.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스스로도 헷갈렸다. [몽몽이] 겸손하시네요 저는 요즘 정체된 것 같아서 답답한데 몽몽이의 답이 이어졌다. 나는 문득 그 문장 뒤에 숨은 외로움 같은 것을 느꼈다. 백우나 운룡, 적혈랑은 자신들의 성취를 자랑하듯 늘어놓기 바빴지만, 몽몽이는 늘 자신의 부족함을 먼저 꺼내놓는 쪽이었다. [화류] 정체된 게 뭐가 문제냐 계속하면 되지 [몽몽이] 말은 쉬운데 계속하는 게 제일 어렵죠 [화류] 그건 그렇지 나는 그날 밤 처음으로 몽몽이와 조금 더 긴 대화를 나눴다. 정체된 수련, 답답한 진로, 이 세계 어딘가에서 몽몽이도 나름의 방식으로 발버둥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문장 하나하나에서, 나는 이 세계가 나에게만 잔인한 게 아니라는 걸 처음으로 느꼈다. 다들 저마다의 방식으로 벽에 부딪히고 있었다. [몽몽이] 화류님은 뭔가 신기해요 다른 사람들이랑 대화하는 느낌이랑 좀 달라서 [화류] 그런가 [몽몽이] 네 뭔가 편해요 가슴 한구석이 이상하게 뭉근해졌다. 이게 감동인지 불안인지 구분이 안 됐다.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 상대에게 편하다는 말을 듣는다는 게, 이 상황에서는 오히려 더 위험한 신호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대화가 길어질수록 위험도 커졌다. 진짜 정체를 숨긴 채 관계를 이어가는 일은, 매 순간 살얼음판을 걷는 것과 같았다. 한마디만 삐끗해도, 이 채팅창 전체가 나를 이상한 존재로 낙인찍을 것이었다. 그날 밤, 나는 명치의 진동을 유지한 채 마지막으로 짧은 호흡 수련을 한 번 더 시도했다. 낮 동안의 피로와 흥분이 뒤섞인 몸으로,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감각을 다시 확인하고 싶었다. 방금 전 느꼈던 그 뜨거운 흐름을, 자기 전에 다시 한번 새겨두고 싶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뜨거운 흐름이 배꼽 아래에 닿는 순간, 온몸이 갑자기 뻣뻣하게 굳어버리는 것이었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목구멍이 좁아지는 느낌, 가슴이 짓눌리는 느낌, 손끝부터 발끝까지 마치 얼음물에 담긴 듯 감각이 사라져갔다. 무언가 잘못됐다는 걸, 온몸의 감각이 비명을 지르듯 알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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