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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자전거 페달을 밟으면서 내가 제일 자주 하는 생각은 이거다. 오늘도 딱히 할 일이 없다. 서른 문턱을 코앞에 두고 무직으로 산다는 게 부끄러운 일이라는 건 안다. 근데 부모님이 남겨주신 다세대주택 월세만으로도 어떻게든 굴러가는 인생이라, 부끄러움도 습관이 되면 그냥 배경음악이 된다. [전도서 1:2,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전도서 쓴 사람도 백수였나 보다. 동질감 느껴서 위로되네. 나는 강민준. 무신론자고, 대학 시절엔 자칭 마르크스주의자였다. 지금은 그냥 자전거로 한강 라이딩하며 시간을 죽이는 잉여 인간이다. 종교는 아편이라던 그 말, 나는 여전히 진리라고 믿는다. 근데 오늘 이후로 그 믿음이 좀 흔들리게 될 줄은, 이때는 전혀 몰랐다. 아침에 일어나서 딱히 씻을 이유도 없이 씻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가 먹을 게 없다는 걸 확인하고 다시 닫고, 그러다 그냥 자전거를 끌고 나온 게 오늘의 전부였다. 편의점 삼각김밥 하나로 아침을 때우고 한강을 달리는 게 요즘 내 유일한 낙이다. 낙이라고 부르기도 좀 민망하지만, 뭐 어쩌겠나. 백수한테 낙이 거창할 이유는 없다. 한강 자전거도로를 달리는데 저 앞에 뭔가 이상한 게 떠 있었다. 드론인가? 요즘 방송국에서 촬영용으로 많이 띄우니까 그런가 보다 했다. 근데 그 드론이 이상하게 낡았다. 구형, 아니 구형이라는 말도 아까울 정도로 시대를 알 수 없는 금속 외형이었다. 표면에 알 수 없는 문자가 잔뜩 새겨져 있었는데, 나는 그걸 그냥 '중국산 짭'이라고 결론 내렸다. 날개도 없이 그냥 둥둥 떠 있는 게 좀 이상하긴 했지만, 요즘 기술 발전이 워낙 빠르니까 그런가보다 했다. 드론 페어링도 안 하고 저렇게 무단으로 띄우면 과태료 나올 텐데, 하는 생각까지 했다. 그만큼 나는 이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다. 드르르르르릉. 드론이 저공비행으로 내려와 내 자전거 앞을 가로막았다. "뭐야, 씨." 브레이크를 급하게 잡았고 몸이 앞으로 확 쏠렸다. 간신히 넘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짜증이 확 밀려왔다. "야, 이거 뭔데 사람 앞을 막고 그래." 드론한테 화를 내는 내가 뭔가 웃겼지만, 화는 화다. 자전거 탈 때 방해받는 거 진짜 싫어하는데, 촬영용 드론이라면 조종하는 사람이 어딘가 숨어서 낄낄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무도 없었다. 나무 뒤에도, 벤치에도, 편의점 파라솔 밑에도. 그럼 이거 자율 운행인가? 요즘 그런 것도 나오나 보네, 하고 순진하게 생각했다. 드론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번쩍! 순간 시야가 하얗게 타올랐다. [대상: 강민준. 좌표 이상 감지. 강제 이송 프로토콜을 실행합니다.] 어? 뭐지, 이 자막 같은 건. 영화관도 아닌데 왜 대괄호 텍스트가 눈앞에 뜨는 거지. 설마 몰래카메라인가. 그럼 나 지금 표정 관리해야 하는데, 하필 오늘 후줄근한 트레이닝복 입고 나왔는데 이거 방송 나가면 어떡하냐, 하는 쓸데없는 걱정이 순식간에 머릿속을 스쳤다. 그럴 리가. 그 생각을 끝맺기도 전에, 발밑의 아스팔트가 사라졌다. 쏴아아아아아─ 중력이 이상했다. 밑도 위도 없이 그냥 빨려 들어가는 느낌. 자전거는 어디로 갔는지 손에서 사라졌고, 나는 마치 세탁기 속 양말짝처럼 빙글빙글 돌았다. 아니, 양말짝이라기엔 좀 억울하다. 적어도 양말은 세탁기 안에서 이런 정신적 충격은 안 받을 테니까. 비명을 지르려 했는데 소리가 안 나왔다. 진공 속에서 소리치는 기분이랄까. 영화에서 우주인이 이런 상황 겪던데, 그거 은근 무섭다는 거 이번에 처음 알았다. 숨을 쉬려 해도 폐에 뭔가 걸린 것 같은 이상한 압박감이 느껴졌고, 눈앞은 계속 새하얗다가 까맣다가를 반복했다. 이게 죽는 건가 싶은 순간, 또 저 대괄호 텍스트가 눈치도 없이 튀어나왔다. [전이 완료율 47%...] [전이 완료율 89%...] [전이 완료율 100%. 착지를 준비하십시오.] 착지 준비라니. 뭘 어떻게 준비하라는 건데, 매뉴얼도 안 주고. 민원 넣고 싶은데 창구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다. 고객센터 콜센터 번호라도 하나 알려주면 안 되나. 이럴 때 국민신문고 같은 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몸은 계속 낙하하고 있었다. 쿵! 등이 뭔가 부드러운 것에 부딪혔다. 풀밭이었다. 다행이다, 콘크리트였으면 요단강 급행열차 탈 뻔했다. 등에 통증이 확 퍼졌지만 그래도 뼈가 부러진 것 같지는 않았다. 운동 좀 해놨어야 했나, 하는 뒤늦은 후회가 통증과 함께 밀려왔다. 눈을 떴다. 하늘이 이상했다. 달이 두 개였다. ...두 개? 그럴 리가. 혹시 렌즈에 이상이 생긴 건가 싶어서 눈을 비볐다. 다시 봐도 두 개다. 하나는 노랗고 하나는 붉었다. 크기도 서로 다르고, 뜬 위치도 애매하게 어긋나 있어서 마치 누가 하늘에 실수로 스티커를 하나 더 붙여놓은 것 같았다. "...와, 씨." 나도 모르게 육성으로 감탄이 나왔다. 이게 CG면 예산이 꽤 들어갔겠다. 아니면 내가 지금 뭘 잘못 먹어서 헛것을 보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어젯밤 편의점에서 산 삼각김밥이 좀 미심쩍긴 했는데. 주위를 둘러보니 한강도, 아파트도, 편의점도 없었다. 대신 거대한 나무들이 하늘을 가릴 정도로 우거져 있었고, 공기에서는 낯선 향이 났다. 마치 새 차 냄새와 흙냄새를 섞은 듯한, 정체를 알 수 없는 향. 바람이 불 때마다 나뭇잎들이 쏴아, 하고 흔들리는 소리가 났는데 그 소리조차 어딘가 낯설었다. 한국 나무 소리와는 미묘하게 다른, 좀 더 낮고 웅웅거리는 울림. 벌레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대신 멀리서 뭔가 짐승이 우는 듯한 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그 드론이 다시 내 앞에 둥둥 떠올랐다. 조금 전과 똑같은 낡은 외형, 그리고 여전히 무뚝뚝한 존재감. "야, 너 뭔데." 나는 반사적으로 물었다. 드론이 잠깐 정지한 듯 깜빡였다. [GYE-RR-DEUL-EO. HYEON-JAE SANG-HWANG-EUL SEOL-MYEONG-HAM.] 한글 발음의 로마자 표기. 그것도 성우 하나 안 붙인 것 같은 기계음. 뭔 소린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는데, 뭔가 위압감은 있었다. 꼭 옛날 스팸 문자에서 보던 이상한 외국어 조합 같기도 하고. "뭐라고 하는 거야." [DANG-SIN-EUN JEON-I-DOEO-SSEUM-NI-DA.] 순간 대괄호 텍스트가 한글로 다시 떴다. [당신은 청현대륙으로 전이되었습니다.] 청현...뭐? "장난하냐?"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이건 뭐 무협 웹소설 제목 같잖아. 근데 지금 상황이 딱 그 웹소설 도입부 같아서 더 어이가 없었다. 이럴 거면 최소한 무공 비급이라도 하나 던져줘야 하는 거 아닌가. 장르 클리셰라는 게 있는데. [생존 확률 낮음. 3일 이내 개체 사망 가능성 87%.] ...뭐라고요? 갑자기 존댓말이 튀어나왔다. 인간은 확실히 위협을 느끼면 예의를 차리게 되는 동물이다. 87퍼센트라니, 이거 로또 당첨보다 확률 높은 거 아닌가. 차라리 로또를 사야 했나, 하는 생각까지 스쳐 지나갔다. "저기, 잠깐만요. 저 진짜 그냥 자전거 타다가 온 거거든요? 이거 무슨 상황인지 설명을..." [설명은 불필요합니다. 생존 도구를 지급합니다.] 드론의 몸체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 빛 속에서 뭔가가 툭, 떨어졌다. 두꺼운 책 한 권이었다. 표지에는 십자가 문양이 새겨져 있었고, 그 밑에 '성경'이라는 한글 세 글자가 반짝였다. "...성경?" 나는 그 책을 집어 들며 헛웃음을 흘렸다. "저 무신론자인데요." 게다가 대학 때는 자칭 마르크스주의자였다고요, 라는 말은 삼켰다. 지금 이 상황에서 그런 정체성 어필이 무슨 소용이겠나. 드론은 대답 없이 그저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아니, 렌즈 같은 게 나를 향했으니 그게 '바라본다'는 표현에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개체의 신앙 여부는 관련 없습니다. 이것은 종교 서적이 아닙니다.] 뭐? 종교 서적이 아니라니, 그럼 표지에 십자가는 왜 박아놓은 건데. 인테리어야? 아니면 그냥 포장지 재고 처리하다가 아무거나 씌운 건가. 이 드론이 무슨 생각으로 저런 소리를 하는 건지 도무지 감이 안 잡혔다. 혼란스러운 와중에 그 책을 펼쳐볼 새도 없이, 드론이 다시 빛을 내기 시작했다. "야, 잠깐, 가지 마." 허둥지둥 손을 뻗었지만 이미 늦었다. 드론은 그대로 하늘로 솟아올랐다. 마치 처음부터 나한테 아무 관심도 없었다는 듯, 미련 없이. [행운을 빕니다.] 마지막 한마디를 남기고 드론은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남은 건 나, 두 개의 달, 낯선 나무숲, 그리고 손에 들린 두꺼운 성경 한 권이었다. 바람이 불었다. 나뭇잎이 쏴아 흔들리는 소리, 어디선가 들려오는 낮은 짐승의 울음, 그리고 붉은 달과 노란 달이 동시에 나를 내려다보는 이상한 밤. 나는 성경책을 손에 든 채로 한참을 그냥 앉아 있었다. 현실감이 아예 없었다. 자전거는 어디 갔는지, 지갑은 있는지, 휴대폰은 살아있는지조차 확인할 정신이 없었다. "...아, 이거 진짜 좆됐네."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전도서 3:1,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지금은 그냥 절망할 때였다. 근데 절망도 오래 하니까 배가 고파졌다. 평생 처음 겪는 이세계 전이 첫날부터 배꼽시계가 울리는 게 어이없어서 나는 그냥 하늘을 보고 웃어버렸다. 두 개의 달 밑에서, 성경책 하나 끌어안고 웃는 백수라니. 이거 누가 봐도 정신 나간 그림인데, 진짜 문제는 이게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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