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잿더미 위의 어린 검

1화

청하촌의 새벽은 언제나 짙은 안개로 시작되었다. 산자락을 타고 내려온 냉기가 초가지붕을 덮고, 마당의 우물가에는 살얼음이 얇게 얼어붙어 있었다. 그 살얼음 위로 새벽 별빛이 부서지듯 반사되었고, 멀리서 산비둘기 우는 소리가 안개 속을 뚫고 희미하게 들려왔다. 강도윤은 그 새벽 공기 속에서 눈을 떴다. 여섯 살이라는 나이에 비해 지나치게 맑은 눈동자였고, 또 지나치게 차분한 숨소리였다. 그는 이불을 걷어내는 대신, 잠시 천장을 바라보며 오늘 하루의 무게를 가늠했다. 방문 밖에서는 이미 어머니 백소연이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소리가 들려왔고, 그 소리는 언제나처럼 규칙적이었다. 탁, 탁, 장작을 쪼개는 소리와 그 뒤를 잇는 부싯돌의 마찰음, 그리고 불씨가 살아나며 나는 낮은 타닥거림까지, 도윤은 그 소리의 순서를 이미 외우고 있었다. 그 익숙한 리듬이 오늘은 어딘가 다르게 들렸다. 마치 이 소리를 듣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예감이라도 스치듯, 도윤은 그 소리를 들으며 오늘이 특별한 날임을 새삼 깨달았다. 오늘은 경도로 떠나는 날이었다. 강씨세가의 영력 각성식은 여섯 해에 한 번, 방계 자손들까지 모두 불러들여 치러지는 행사였다. 도윤은 이번 각성식에 참여할 자격을 얻은 막내였고,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청하촌 전체가 며칠 전부터 어수선했다. 하지만 그 어수선함 속에는,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씁쓸한 시선들이 섞여 있었다. '폐인의 아들이 무슨 각성을 한단 말인가.' 마을 노인들의 수군거림이 담벼락 너머로 새어 나오는 것을, 도윤은 이미 몇 번이고 들은 바 있었다. 며칠 전 우물가에서 물을 긷던 노파들이 그를 보고 갑자기 말을 멈추던 순간도, 그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가 지나갈 때까지 시선을 피했고, 그가 멀어진 후에야 다시 낮은 목소리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그 침묵과 재개되는 속삭임 사이의 간극을, 여섯 살 아이는 이미 정확히 읽어내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 강태산은 한때 대선제국 전역에 이름을 떨쳤던 천재 무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방 안에 틀어박혀 한쪽 다리를 절며, 오른손조차 제대로 쥐지 못하는 폐인이었다. 15년 전 흑염교를 추격하던 중 입은 상처가 원인이라 했으나, 그 자세한 내막을 아는 이는 청하촌에 아무도 없었다. 강태산 본인도 그 일에 대해서는 입을 굳게 닫았고, 그 침묵이 오히려 온갖 소문을 낳는 씨앗이 되었다. 어떤 이는 그가 흑염교의 비술에 당해 저주를 받았다 했고, 또 어떤 이는 그가 동료를 배신한 죄로 하늘의 벌을 받은 것이라 수군거렸다. 진실이 무엇이든, 그 소문들은 매번 살을 붙이며 부풀어 올랐고, 그 부풀어 오른 소문의 그림자는 언제나 도윤과 도현의 등 뒤를 따라다녔다. 도윤은 마당으로 나가 아버지의 방문 앞에 섰다. 문틈으로 스며드는 희미한 촛불 빛이 아버지의 실루엣을 비추고 있었다. 강태산은 침상 옆에 앉아, 낡은 목검 한 자루를 손질하고 있었다. 세월의 손길을 이기지 못해 나뭇결이 갈라진 그 목검은, 그가 한때 진짜 검을 쥐었던 손이 지금은 이런 것밖에 만질 수 없다는 사실을 조용히 증언하고 있었다. 목검을 쥔 그의 오른손은 미세하게 떨렸고, 손질을 위해 헝겊으로 나뭇결을 문지르는 동작조차 예전 같지 않게 굼떴다. 그럼에도 그는 그 동작을 멈추지 않았다. 마치 그것이 그가 유일하게 지킬 수 있는 의식(儀式)이라도 되는 것처럼. "도윤이구나." 강태산이 문틈으로 아들의 기척을 느끼고 낮게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병색이 짙게 배어 있었으나, 그 안에 서린 정기(精氣)만은 결코 죽지 않은 것 같았다. "오늘이구나, 경도로 가는 날이." "네, 아버지." 도윤이 문을 열고 들어서며 답했다. 방 안은 좁고 어두웠으나, 벽 한쪽에 걸린 낡은 갑옷 조각—강태산이 유일하게 간직한 과거의 유품—만은 은은한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그 갑옷 조각에는 알 수 없는 문양이 희미하게 새겨져 있었는데, 도윤은 그것을 볼 때마다 궁금증이 일었으나 한 번도 아버지에게 물은 적이 없었다. 어쩐지 그 물음을 던지는 순간, 무언가가 돌이킬 수 없이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강태산은 목검을 내려놓고 아들의 얼굴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여섯 살배기 아이의 얼굴이라기엔 지나치게 침착한, 그러면서도 어딘가 서글픈 눈빛이었다. '이 아이는 나를 닮았다. 다만 나보다 더 멀리 볼 뿐이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손을 뻗어 도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손길은 서툴렀다. 예전처럼 손가락을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해, 쓰다듬는 동작조차 뻣뻣하게 끊어졌다. 그러나 도윤은 그 서툰 손길 속에서 아버지가 담아낼 수 있는 최대한의 애정을 느꼈다. "경도에 가면, 너를 멸시하는 자들이 있을 것이다." 강태산이 담담히 말을 이었다. "내가 폐인이 된 것을 두고, 너를 손가락질하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하나 잊지 마라. 그들의 손가락이 너를 가리킬 때, 너는 그들의 눈을 피하지 말아야 한다." "피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도윤이 조용히 물었다. 강태산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스쳤다. 그것은 웃음이라기보다는, 오래된 상처를 회상하는 자의 쓸쓸한 표정이었다. "피하는 순간, 그들의 손가락질이 곧 너의 진실이 되어버린다. 사람은 남이 정해준 것을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스스로를 그 틀 안에 가두게 되는 법이다." 그는 잠시 숨을 고른 뒤 덧붙였다. "나는 그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너는 나보다 먼저 깨닫기를 바란다." 도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린 나이였으나, 그 말의 무게를 헤아릴 만큼의 사려는 이미 갖추고 있었다. 그가 태어날 때 하늘에서 벼락이 내리치고 짧은 순간 천지가 뒤흔들렸다는 이야기를, 그는 어머니로부터 여러 번 전해 들은 바 있었다. 그 천변(天變)의 의미를 스스로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으나, 자신이 남들과는 다른 길을 걸을 운명임을 어렴풋이 예감하고 있었다. 그 예감은 두려움보다는 차라리 담담한 확신에 가까웠다. 부엌에서 밥상을 준비하던 백소연이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녀의 얼굴에는 옅은 피로가 배어 있었으나, 그 안에 담긴 강인함은 조금도 흐려지지 않았다. 그녀의 손등에는 새벽부터 물을 긷고 불을 지핀 흔적이 붉게 배어 있었고, 이마에는 옅은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 피로를 조금도 드러내지 않으려는 듯, 목소리에 애써 밝은 기운을 담았다. "도윤아, 밥 먹자. 형아도 기다리고 있어." 강태산은 아내를 향해 짧게 시선을 던졌다. 그 시선 속에는 말로 다 하지 못한 감사와 미안함이 뒤섞여 있었다. 백소연은 그 시선을 알아차렸으나, 굳이 그것을 언급하지 않았다. 오랜 세월 함께한 부부 사이에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것들이 있었다. 마당으로 나가니, 형 강도현이 이미 짐을 챙겨 나와 있었다. 열한 살의 소년은 아직 앳된 얼굴이었으나, 허리에 찬 검 한 자루—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용아검(龍牙劍)—만큼은 제법 어울리는 태가 있었다. 도현은 짐 보따리를 몇 번이나 다시 묶었다 풀었다 하며, 무언가 빠뜨린 것이 없는지 연신 확인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어쩐지 소풍이라도 앞둔 아이처럼 들떠 보였다. 도현은 동생을 보자마자 환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도윤아, 드디어 경도에 간다! 형이 다 알려줄게. 강씨세가는 진짜 크대. 우리 청하촌보다 백 배는 더 크다더라!" 도현의 목소리에는 흥분이 가득했다. 그는 아직 세상의 그늘을 모르는, 순진한 열한 살 소년이었다. "그리고 말이야, 각성식에서 영력을 얻으면 검에 기운을 실을 수 있대! 나도 이번에 형님들한테 물어봤는데, 진짜 대단하다더라. 도윤이 너도 분명 대단한 걸 얻을 거야." 도윤은 형의 그런 순수함을 부러워하지도, 경멸하지도 않았다. 다만 그 순수함을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조용히 형의 손을 잡았다. "형, 조심해야 해. 경도는 청하촌이 아니야." "뭐가 걱정이야, 도윤아. 내가 형인데." 도현이 가슴을 두드리며 큰소리를 쳤으나, 그 목소리에는 어딘가 스스로도 확신하지 못하는 떨림이 섞여 있었다. 도현은 동생의 말에 잠시 눈을 깜빡였다. 여섯 살 어린 동생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늘 이렇듯 나이에 걸맞지 않았기에, 그는 매번 신기하면서도 묘하게 안심이 되는 기분을 느꼈다. "역시 도윤이는 똑똑해." 그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으나, 그 웃음 뒤편에는 알 수 없는 불안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는 그 불안의 정체를 알지 못했으나, 동생의 차분한 눈빛을 볼 때마다 자신이 무언가 놓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침 밥상은 조용했다. 강태산은 방 안에서 죽 한 그릇을 겨우 넘겼고, 백소연은 그 옆에서 남편의 수발을 들었다. 숟가락을 쥐는 것조차 힘겨워하는 남편의 손을 그녀는 익숙하게 받쳐주었고, 그 동작에는 오랜 세월 반복된 습관의 흔적이 배어 있었다. 도윤은 그 모습을 지켜보며,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버지는 왜 이렇게 되셨을까. 흑염교 추격이라는 말 뒤에는, 분명 더 깊은 사연이 숨어 있을 것이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죽 그릇에 남은 김이 서서히 식어가는 것을, 그는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도현은 그 조용한 분위기를 눈치채지 못한 듯, 연신 밥그릇을 비우며 경도에서 무엇을 먹게 될지, 어떤 옷을 입게 될지에 대해 떠들어댔다. 그 천진한 수다가 오히려 방 안의 무거운 공기를 조금이나마 덜어내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백소연은 그런 큰아들의 모습을 보며 옅은 웃음을 지었다. 마을 어귀에 마차가 도착한 것은 해가 완전히 떠오른 뒤였다. 강씨세가에서 보낸 마부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짐을 실었고, 그의 시선은 두 형제를 잠시 훑고 지나갔을 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방계의 자손들을 실어 나르는 일이 그에게는 그저 반복되는 업무일 뿐이었으리라. 백소연은 두 아들의 옷매무새를 마지막으로 다듬어주며 눈물을 참았다. 그녀의 손끝이 도현의 옷깃을 정리하다가, 도윤의 저고리 깃을 여며주는 순간 잠시 멈추었다. 그 짧은 정지 속에 그녀가 삼키고 있는 말들이 얼마나 많은지, 도윤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도현아, 도윤이 잘 챙겨야 한다. 그리고 도윤아, 형 말 잘 들어." 그녀의 목소리는 애써 담담했으나, 마지막 음절에서 옅게 떨렸다. "네, 어머니." 두 형제가 동시에 답했다. 강태산은 방문 앞에 나와 마차에 오르는 두 아들을 바라보았다. 절뚝이는 다리로 힘겹게 몸을 세운 그의 모습은, 한때 강호를 호령했던 무인의 잔영이라기엔 너무나 초라했다. 그가 문틀을 짚은 손에는 힘줄이 불끈 솟아 있었고, 그것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힘겹게 몸을 지탱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눈빛만은 조금도 흐려지지 않았다. "도윤아." 그가 마지막으로 아들을 불렀다. "각성식에서 네가 무엇을 얻든, 그것이 너의 전부가 되지 않도록 하여라. 진짜 힘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그 말을 남기고 강태산은 잠시 눈을 감았다. 그의 뇌리에는 15년 전, 자신이 아직 두 다리로 온전히 설 수 있었던 시절의 어느 장면이 스쳐 지나갔으나,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그 기억은 여전히 그의 안에서 봉인된 채 숨죽이고 있었다. 도윤은 그 말을 가슴 깊이 새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차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고, 청하촌의 초가지붕들이 뒤로 멀어져갔다. 그는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점점 작아지는 아버지의 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안개가 다시 짙어지며 아버지의 실루엣을 서서히 삼켜가는 광경은, 마치 세월이 그를 조금씩 지워가는 것과 닮아 있었다. 그 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도윤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마차 안, 도현은 벌써 잠에 빠져들었으나, 도윤은 쉬이 잠들지 못했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낯선 풍경—처음 보는 넓은 들판과 멀리 이어진 산맥, 이따금 지나치는 낡은 객잔의 지붕들—을 바라보며, 그는 생각했다. '경도에 도착하면, 나는 무엇을 마주하게 될까. 아버지를 폐인으로 만든 진실은 어디에 숨겨져 있을까.' 그 물음은 답을 얻지 못한 채, 마차의 덜컹거림과 함께 산등성이를 넘어갔다. 마차가 흔들릴 때마다 도현의 어깨가 도윤의 쪽으로 기울었고, 도윤은 그 무게를 가만히 받아주며 형의 잠든 얼굴을 바라보았다. 순진하기 짝이 없는 그 얼굴 위로, 앞으로 마주하게 될 강씨세가의 냉랭한 시선들이 겹쳐지는 것을, 도윤은 이미 예감하고 있었다. 그 예감은 불길함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각오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렇게, 강도윤의 첫 여정이 조용히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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