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강찬의 머리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돌아갔다.
'덕구 아저씨가 여기까지 올라오면 끝이다.'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는 발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대호국 장수 시체가 발견되면, 관에 신고할 것이고, 그러면 마을 전체가 의심을 받는다.'
전쟁 중인 나라에서 적국 장수의 시체가 발견된 마을이 어떤 대접을 받는지, 강찬은 어른들의 대화에서 이미 들어 알고 있었다.
방화, 몰살, 그런 무서운 말들이 아무렇지 않게 오가던 것을.
'대선국이든 대호국이든, 전쟁이란 것이 원래 그런 것이었지. 미련한 백성들만 죽어나가는 것이었으니.'
강찬은 그 사실을, 지금의 몸이 아니라 다른 삶에서 이미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찬아!" 목소리가 더 가까워졌다.
강찬은 옥주와 영패를 재빨리 품속 깊이 숨겼다. 헛간에서 늘 쓰던 짧은 낫도 지게 옆에 던져놓았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긴장하지 마라. 지금 흔들리면 다 무너진다.'
"여기예요! 잠깐만요!"
그는 소리쳐 답하며, 동시에 사내의 시체를 내려다보았다.
죽은 사내의 얼굴은 아직도 창백했다. 눈은 감겨 있었으나 미간에는 마지막 순간의 고통이 그대로 새겨져 있었다.
'미안하오. 하지만 당신도 알 것이오. 산 사람이 죽은 사람보다 먼저인 법이오.'
'시간이 없다. 지금 결정해야 한다.'
숲 안쪽으로 조금 더 들어가면 오래된 숯가마 자리가 있었다.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 종종 나무를 태우던 곳.
강찬은 사내의 몸을 끌어 그곳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무거웠다. 아니, 죽음의 무게라는 것이 이렇게 물먹은 솜처럼 무거운 것이었나.
팔이 후들거렸다. 열세 살 소년의 몸으로는 어른 하나를 옮기는 것조차 벅찬 일이었다.
'본좌가 살아온 세월이 몇인데, 이깟 몸뚱이 하나 옮기는 것에 이리 힘이 든단 말인가.'
속으로는 그렇게 자조했지만, 몸은 여전히 열세 살짜리의 것이었다.
발이 진흙에 미끄러질 때마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는 숨을 몰아쉬며 사내를 숯가마 안으로 밀어넣었다.
그리고 남은 나무를 그 위에 쌓았다.
마른 가지, 젖은 낙엽, 부러진 장작 조각까지 손에 잡히는 대로 끌어모아 얹었다.
'미안합니다.' 강찬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마을 사람들이 다칩니다.'
불을 붙이는 손이 떨렸다. 화섭자를 꺼내 부싯돌을 그으면서도, 그의 눈은 계속 산 아래쪽을 살폈다.
열세 살 소년이 감당하기엔 지나치게 무거운 결정이었다.
'하지만 본좌가 아니면 누가 이걸 감당하겠는가.'
화악—
불길이 순식간에 번졌다.
타닥, 타닥, 나무 타는 소리가 유독 크게 귓속을 파고들었다.
강찬은 그 자리에 오래 있을 수 없었다. 연기가 너무 눈에 띄기 전에 자리를 벗어나야 했다.
그는 지게를 지고, 나뭇가지 몇 개를 대충 얹은 뒤 산을 내려갔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멈출 수 없었다.
'덕구 아저씨보다 먼저 산 아래에 도착해야 한다. 아니, 최소한 같은 방향에서 걸어와야 한다.'
"찬아, 대체 어디까지 올라간 거냐!" 덕구 아저씨가 그를 발견하고 소리쳤다.
강찬은 애써 걸음의 속도를 늦추었다. 급하게 뛰어온 것처럼 보이면 안 되었다.
"마른 가지가 능선 위쪽에 많아서요." 강찬이 애써 태연하게 웃었다.
덕구 아저씨의 코가 움찔거렸다. "뭔 냄새가 나는데. 연기 냄새 같기도 하고."
강찬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냄새를 맡을 줄이야. 이 아저씨, 사냥 다닐 적 버릇이 아직 남아 있었던가.'
"아, 저기 위에서 누가 화전을 태우나 봐요. 저도 봤어요."
둘러댄 말이었지만, 완전히 거짓은 아니었다. 지금 저 위에서 무언가 타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으니.
'거짓말도 반쪽은 진실이라야 그럴듯한 법이오.'
덕구 아저씨는 잠시 산 위쪽을 올려다보다가, 별다른 의심 없이 걸음을 옮겼다.
"어여 내려가자. 해 지면 산길이 위험하다."
강찬은 그 뒤를 따르며 겨우 숨을 골랐다.
지게 위에 얹힌 나뭇가지가 걸음마다 흔들렸다. 그 흔들림조차 지금은 감사했다. 무언가에 신경을 팔 수 있다는 것이.
산길을 내려오는 동안 덕구 아저씨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오늘 나물을 캔 이야기, 이웃집 개가 새끼를 낳았다는 이야기.
강찬은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지만, 머릿속은 온통 다른 생각으로 가득했다.
'이걸로 끝난 게 아니다.' 그는 품속의 옥주와 영패를 손으로 지그시 눌렀다. '이건 시작일 뿐이다.'
집이 보이기 시작하자 강찬은 조금 안심이 되었다. 굴뚝에서는 저녁 짓는 연기가 가늘게 올라오고 있었다.
'저 연기는 무해한 연기이니, 그것만으로도 다행이오.'
밤이 되어 집에 돌아온 강찬은,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 두 물건을 꺼내 등불 아래 자세히 살폈다.
호롱불이 가늘게 흔들렸다. 그 불빛 아래 옥주가 유난히 붉게 빛났다.
옥주의 문양은 자세히 보니 짐승의 형상과 산의 능선을 함께 새긴 것이었다. 손끝으로 문양을 따라 만져보니, 새긴 이의 정성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영패에는 '南山王'이라는 세 글자가 뚜렷하게 박혀 있었다. 글씨체가 강건하면서도 어딘가 서글픈 기운을 품고 있었다.
'남산왕이라 함은... 대호국 남쪽 변경을 다스리는 왕족이라 들었다.' 강찬은 아버지에게 배운 지식을 더듬었다. '대호국이 반으로 나뉘어 왕이 여럿이라던가...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아버지는 살아 계실 적, 화롯가에 앉아 이런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었다. 전쟁이 나기 전, 상단을 따라 대호국 국경까지 다녀온 경험이 있었던 아버지였다.
'그때는 그저 옛날이야기라 여기고 흘려들었거늘, 이제 와서 이렇게 쓰일 줄이야.'
이 옥주와 영패가 그런 왕족의 물건이라면, 결코 예사 물건이 아니었다.
그것을 대선국 사람에게 넘기지 말라는 유언까지 남긴 것을 보면, 이 물건에는 필시 어떤 비밀이 숨어 있을 터였다.
'남산왕의 물건을 지닌 자를, 대선국에서 알게 되면 어찌 될까. 아니, 대호국에서 알게 되어도 마찬가지겠지.'
강찬은 등불을 가만히 바라보며 생각을 정리했다.
'이 물건은 지금 이 순간, 이 마을에서 가장 위험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는 그것들을 낡은 헛간 마루 밑, 아버지가 쓰던 도구함 뒤편에 숨겼다.
흙을 살짝 덮고, 그 위에 낡은 삽과 괭이를 아무렇게나 던져두어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했다.
'당분간은 아무도 모르게 두어야 한다.'
방으로 돌아온 강찬은 이불을 덮고 누웠지만, 쉽사리 잠이 오지 않았다.
'낮에 그 사내는 왜 그리도 급하게 도망쳤을까. 그리고 왜, 하필 이 산자락까지 왔을까.'
의문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모든 것은 내일 다시 생각하자. 지금은 자야 한다. 자야 힘을 쓸 수 있는 법이니.'
그렇게 결심하고 잠자리에 든 강찬이었지만, 다음 날 아침 마을에 퍼진 소식은 그의 계획을 순식간에 뒤흔들었다.
"관군이 온다는구나!" 마을 어귀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대호국 장수 하나가 도망쳤다고, 이 근방을 다 훑을 거란다!"
강찬은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손에 쥐고 있던 조 이삭을 툭 떨어뜨렸다.
'벌써...?'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며 수런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누군가는 두려운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보았고, 누군가는 벌써 짐을 싸야 하는 것 아니냐며 발을 동동 굴렀다.
강찬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산 쪽을, 그리고 헛간 쪽을 번갈아 향했다.
'숯가마의 재는 아직 다 삭지 않았을 것이다. 관군이 그곳까지 뒤진다면...'
등줄기를 타고 서늘한 기운이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