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박기수의 신체강도를 측정하던 반지가, 몇 초의 지체 끝에 결과를 내놓았다.
[대상: 박기수]
[신체강도: 14.2 (평균)]
[무도경계: 삼류 하급]
'평균이라니'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삼류 하급이라는 말도 어디서 들어본 적은 있지만, 정확히 얼마나 대단한 건지는 감이 잡히지 않았고, 그보다 더 신경 쓰이는 건 그 옆에 붙은 숫자였다. 14.2. 저 남자가 '평균'이라는 딱지를 달고 있는 수치라면, 내 신체강도 6.7은 대체 어느 바닥에 깔려 있는 숫자라는 뜻일까. 반쪼가리도 안 되는 수준이라는 건 굳이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 격차를 확인한 순간, 나는 마음속으로 씁쓸한 웃음을 흘렸다. 5년을 병상에서 썩어가며 살아온 몸뚱이가, 평균이라 불리는 인간의 절반도 못 따라간다는 게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와 동시에, 다른 계산도 함께 굴러가고 있었다. 아까 정혈을 만들어 흡수했을 때 0.089 단위로 신체강도가 올랐고, 그걸 몇 번 반복하니 0.4가 붙었다.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숫자지만, 이게 하루에 몇 번씩 반복 가능한 일이라면, 그리고 그 반복에 상한선이 없다면, 언젠가는 저 14.2라는 숫자도 우습게 넘어설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문제는 '언젠가'가 얼마나 먼 미래냐는 것뿐이었다.
"뭘 그렇게 쳐다봐, 이 자식이" 하고 박기수가 짜증스럽게 내뱉으며 다가섰다. 그 눈빛에는 익숙한 멸시가 담겨 있었는데, 5년 동안 봐온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종류의 표정이라 오히려 낯설지 않았다. 그 손이 내 어깨를 밀치려는 순간, 나는 반사적으로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내가 왜 그랬는지는 나도 잘 모른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는 게 가장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예전이었다면 어깨를 밀리고, 그대로 넘어지고, 그 위에 몇 마디 욕을 더 얻어먹는 게 순서였을 텐데, 지금은 손목을 붙잡는 것까지 몸이 알아서 처리해버렸다.
"...!" 박기수가 순간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그 표정을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속으로 웃음이 났다. 예전이었다면, 내가 이 남자의 손목을 붙잡는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오히려 붙잡히는 쪽이 나였지, 붙잡는 쪽이 나일 거라고는 5년 동안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너 이 새끼, 손 안 놔?" 하고 그가 언성을 높이며 팔을 빼려 했지만, 나는 뜻밖에도 그 힘을 버텨낼 수 있었다. 손목을 통해 전해지는 그의 발버둥이 꽤나 거셌는데도, 내 팔은 생각보다 훨씬 단단하게 버티고 있었다. 6.7이라는 수치가 정확히 어느 정도의 위력인지는 몰랐지만, 적어도 이 손목 하나를 붙잡는 데는 충분했던 모양이었다. '이게, 되네...?' 하는 생각이 스치듯 지나갔다.
박기수가 반대쪽 손으로 나를 때리려 했고, 나는 그 주먹을 피하지 못하고 정면으로 맞았다.
퍼억!
뺨이 얼얼했지만, 예상보다 통증이 크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시야가 흔들리고 이명이 울렸는데, 그것도 잠깐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을 강도였는데, 지금은 몇 걸음 밀려나는 정도로 끝났다. 발을 헛디디지도 않았고, 무릎이 꺾이지도 않았다. 그냥 뒤로 두어 걸음 밀렸을 뿐이었다.
'맞을 만한데 안 넘어졌다' 하는 생각이 들며, 나는 오히려 이 상황이 신기해서 헛웃음이 나올 뻔했다. 뺨을 한 번 손으로 쓸어봤는데, 얼얼한 느낌은 있어도 이가 흔들리거나 입 안이 터지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이 몸뚱이가 예전보다 확실히 뭔가 달라졌다는 뜻이었다. 그것도 하루 사이에.
박기수의 표정이 순식간에 당혹으로 물들었다. 주먹을 날린 쪽이 오히려 놀란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게 웃겼는데, 그는 자기가 날린 주먹의 무게를 아는 사람이었고, 그 무게에 상대가 버텨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눈치였다. "...너 뭐 먹었냐" 하고 그가 낮게 중얼거렸는데, 그 목소리에는 확실히 경계심이 섞여 있었다. 지난 5년간 저 남자의 목소리에서 저런 감정을 들어본 적이 없었기에, 나는 그 변화를 놓치지 않고 알아챘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대신 그의 손목을 놓지 않은 채로 힘을 더 줬다. 손아귀에 힘을 조금씩 밀어 넣을수록, 박기수의 얼굴이 눈에 띄게 일그러지는 게 보였다.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감각이었는데, 마치 오랫동안 잠겨 있던 문에 처음으로 열쇠가 맞아 들어가는 느낌이랄까. 박기수가 인상을 찌푸리며 신음을 흘렸다.
"놔, 이 자식아!" 하고 그가 소리쳤지만, 나는 오히려 그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며 말했다.
"다음에 또 여기 얼씬거리면, 그땐 이 정도로 안 끝난다."
내 목소리가 스스로도 낯설게 들렸다. 이런 식으로 누군가에게 경고를 던지는 건, 지난 5년 동안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이었으니까. 항상 당하기만 하던 쪽이었던 내가, 지금 이 순간만큼은 반대편에 서 있었다. 이 낡은 창고 바닥에서, 병든 몸으로 5년을 누워 지내던 내가, 저 삼류 하급 무인의 손목을 붙잡고 경고를 날리고 있다는 사실이 스스로도 믿기지 않았다.
박기수는 몇 초간 나를 노려보다가, 결국 손목을 억지로 빼내고 뒷걸음질 쳤다. 빼낼 때도 완전히 힘으로 이긴 게 아니라, 내가 놓아준 것에 가까웠는데, 그것까지 그가 알아챘는지는 모르겠다. "...이거 조공자님한테 꼭 말해야겠다" 라고 중얼거리며 창고를 빠져나갔는데, 그 말투에는 위협보다는 오히려 당황이 더 짙게 배어 있었다. 조공자, 그러니까 조현민의 이름을 방패막이처럼 꺼내드는 게, 저 남자로서는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반격이었을 것이다.
혼자 남게 되자 나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다리가 후들거렸는데, 그게 두려움 때문인지 아니면 이 낯선 흥분 때문인지 구분이 잘 안 됐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었고, 손끝이 살짝 떨렸다. 방금 벌어진 일을 되짚어보려 했지만, 머릿속이 뒤죽박죽이라 정리가 잘 안 됐다. 그냥 확실한 건 하나, 내가 살아남았다는 것. 그리고 맞고도 쓰러지지 않았다는 것.
[신체강도: 6.7]
반지가 다시 알려준 숫자를 보며, 나는 생각을 정리해봤다. 여전히 6.7이라는 숫자는 초라하기 짝이 없었지만, 방금 겪은 일을 생각하면 이 숫자가 가진 실질적인 힘을 몸으로 확인한 셈이었다. '10일 안에 저 격차를 얼마나 좁힐 수 있을까' 하는 계산이었다. 박기수의 14.2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하루에 0.4씩만 올려도 20일이 넘게 걸리는 셈이었고, 그마저도 정혈을 만드는 재료가 무한하다는 전제 하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였다. 조현민의 신체강도가 얼마인지는 아직 모르지만, 박기수보다는 확실히 높을 게 뻔했다. 외성제자라는 신분 자체가 그 증거였으니까. 그렇다면 10일이라는 시간 안에 내가 노려볼 수 있는 최선은, 조현민을 이기는 게 아니라 최소한 맞아도 죽지 않을 정도의 몸을 만드는 것일 터였다.
하지만 방금 확인한 사실 하나는 분명했다. 이 반지로 정혈을 만들어 흡수하는 이 방식이, 실제로 효과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 효과가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체감된다는 것. 이론과 실전은 다르다는 말을 이제야 제대로 이해한 기분이었다. 숫자로만 보면 0.4는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졌는데, 그 0.4가 쌓여서 만들어낸 결과가 방금의 그 손목 붙잡기이자, 주먹을 맞고도 쓰러지지 않은 몸뚱이였다.
문제는 혈액이었다. 오늘 하루 뽑아낸 피만으로도 벌써 손목이 저릿저릿했는데, 팔뚝에 남은 몇 개의 바늘 자국을 손가락으로 눌러보니 아직도 미세하게 아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이 속도로 계속 뽑아내다가는 정혈을 모으기도 전에 몸이 먼저 무너질 게 뻔했다. 정혈로 신체강도를 올리는 것도 결국 재료가 있어야 가능한 일인데, 그 재료를 내 몸에서 뽑아내는 방식이라면, 결국 언젠가는 밑천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요컨대 지금의 방식은 단기적으로는 효율적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자기 몸을 갈아먹는 방식에 가까웠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하는 생각과 함께, 나는 상자 안에 있던 의료 기록들을 다시 꺼내 살펴보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남긴 그 낡은 서류들 속에, 뭔가 실마리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종이는 오래되어 누렇게 변색되어 있었고, 몇 장은 습기 때문에 서로 들러붙어 있어서 조심스럽게 떼어내야 했다. 손끝으로 종이를 넘기는 감촉이 서걱서걱했는데, 그 소리마저도 왠지 긴장을 부추기는 것 같았다.
첫 장을 펼치자마자, 나는 예상치 못한 문구와 마주했다. '결맥체질 치료 방안 연구'라는 제목 아래, 낯익은 이름 하나가 적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