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독 사냥꾼 시험까지 6개월

5화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폐부가 찢어질 듯 아팠다. 녀석의 촉수 끝에서 노란 액체가 떨어졌다. 떨어지는 속도조차 느긋했다.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뜻이었다. 닿는 곳마다 콘크리트가 부글부글 녹아내렸다. 치익, 치이익. 바닥에서 올라오는 연기에서 시큰한 냄새가 났다. 코를 찌르는 산 냄새였다. 독이었다. 산성 안개, 라는 말이 머릿속에 스쳤다. 아버지가 다리를 잃은 이유가 바로 이런 것이었다. 오년 전, 아버지는 나에게 이 이야기를 딱 한 번 해줬다. 술에 취해서, 반쯤 풀린 눈으로. "그날도 딱 이런 냄새가 났다." 그때는 그냥 넋두리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아니었다. 지금 내가 같은 자리에 서 있었다. 다리는 그대로였다. 아직은. "흩어져!" 박준혁이 소리치며 창을 세웠다.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저 자신도 무서운 거다. 그럼에도 창을 놓지 않았다. 녀석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시선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눈이 있는 건지도 알 수 없었으니까. 다만 몸통 전체가 그를 향해 기울었다. 나는 그 틈에 옆으로 몸을 굴렸다. 등에서 뭔가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옷이었다. 다행히, 옷이었다. 산성 액체가 옷깃을 태우며 살갗까지 닿기 직전이었다. 뜨거운 통증이 팔뚝을 타고 번졌다. "으윽!" 비명이 절로 나왔다. 참으려 해도 참아지지 않는 통증이었다. 인두로 지지는 느낌이라는 표현이 딱 맞았다. 박준혁이 창으로 녀석의 다리를 찔렀다. 창날이 껍질에 튕겨 나갔다. 카앙, 하는 소리가 났다. 쇠와 쇠가 부딪히는 소리 같았다. 소용이 없었다. 이건 우리가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도망칠 곳도 없었다. 무너진 배관과 콘크리트 더미가 사방을 막고 있었다. *** 주머니 속, 서늘한 무게가 다시 느껴졌다. 제독 자탄. 아버지가 은밀히 건넨 마지막 물건. "쓸 데가 있을 거다." 그 말이 지금 이 순간을 위한 거였을까. 그때 아버지의 손이 떨리고 있었던 게 기억났다. 그때는 술기운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손이 떨렸다. 총이 없었다. 자탄만 있고, 발사할 무기가 없었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온몸에서 힘이 빠졌다. "이런." 욕이 절로 나왔다. 영화였다면 주인공이 이런 순간에 딱 맞는 무기를 챙겨왔을 텐데, 나는 그런 주인공이 아니었다. 그런 주인공이 있었다면 애초에 이런 폐건물 지하에 처박히지도 않았을 거다. 녀석이 다시 몸을 돌려 나를 향했다. 촉수가 채찍처럼 휘어지며 날아왔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 같았다. 착각이었다. 실제로는 눈 깜빡할 새였다. 순간, 뇌리에 어머니의 말이 스쳤다. "자탄은 던져도 된다. 충격으로 마법이 발현되는 구조야." 예전에 지나가듯 들었던 말이었다. 식탁에서였던가. 아니면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다가였나.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기억이 맞기를 바랄 뿐이었다. 틀리면 죽는다. 그 생각이 명치를 짓눌렀다. 나는 자탄을 꺼내 힘껏 던졌다. 손끝에서 자탄이 떠나는 감각이 이상하게 선명했다. 촉수와 정면으로 부딪혔다. *** 쩌 엉―. 폭발음이 아니었다. 대신 짙은 초록빛 안개가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퍽 하고 터진 게 아니라, 스며 나오듯 번졌다. 마치 물감을 물에 떨어뜨린 것처럼. 녀석의 촉수가 그 안개에 닿는 순간, 살점이 부글거리며 녹아내렸다. 지지직, 지지지직. 살이 타는 소리는 처음 들었다. 앞으로도 잊지 못할 소리였다. 녀석이 처음으로 비명 같은 소리를 냈다. 끼이이익. 귀를 찢는 소음이었다. 박준혁이 두 손으로 귀를 막았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독을 독으로 되받아친 것이었다. 제독 자탄은 상대의 독성을 역으로 폭주시키는 마법이 걸려 있었다. 그 말인즉, 저 녀석은 자기 독에 자기가 타 죽는 중이라는 거였다.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였다. 온몸이 얼어붙어 있던 머리가 그제야 다시 굴러가기 시작했다. "지금이다!" 박준혁이 창을 힘껏 내질렀다. 독에 녹아 약해진 껍질을 뚫고 창날이 깊숙이 박혔다. 퍽, 하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녀석이 몸부림치며 뒤로 넘어갔다. 쿠웅. 땅이 흔들렸다. 발밑으로 진동이 타고 올라왔다. 한참을 씨근덕거리던 몸이 서서히 멈췄다. 숨소리가 잦아들고, 촉수가 힘없이 늘어졌다. 죽었다. 확인. 숨이 그제야 터져 나왔다. 숨을 참고 있었다는 것도 그제야 알았다.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콘크리트 바닥의 냉기가 엉덩이를 통해 그대로 올라왔다. 그게 오히려 반가웠다. 살아있다는 감각이었다. 팔뚝에 남은 화상이 뒤늦게 따가워졌다. 살갗이 벌겋게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손끝으로 살짝 스치기만 해도 눈앞이 번쩍했다. 박준혁이 창을 뽑아 짚고 서서 나를 내려다봤다. 숨을 몰아쉬면서도, 그 눈빛만은 또렷했다. "방금 그거, 뭐였어." "아버지가 만든 거요." 짧게 답했다. 더 설명할 힘이 없었다. 설명하자면 오년치 이야기를 다 풀어야 했다. 그가 고개를 젓더니 픽 웃었다. "강태호. 너 진짜." 말을 끝맺지 않았다. 그 웃음 속에 안도와 놀라움이 섞여 있었다. 나는 그저 바닥에 앉아서 그를 올려다봤다. 웃을 힘도 없었다. "살았네요, 우리." 내 목소리가 낯설게 들렸다. 남의 목소리 같았다. 박준혁이 대답 대신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잡고 일어서려는데, 다리가 후들거려서 다시 주저앉을 뻔했다. "천천히." 그가 말했다.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죽은 녀석의 몸에서 여전히 초록빛 안개가 옅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살점이 녹아내린 자리에는 검은 얼룩만 남았다. 저게 사람 손이 만든 화학무기라니, 문득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새삼 궁금해졌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갇혀 있었다. 무너진 벽과 배관, 흙더미로 막힌 통로. 여기서 나갈 방법이 있는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저 무너진 배관 너머로, 또 다른 발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다각. 다각. 박준혁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하나가 아니었다. 발소리가 겹쳐서 들렸다. 최소 셋, 아니 그 이상일 수도 있었다. 방금 잡은 녀석보다 더 작은 소리였다. 그게 위안이 될 리 없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박준혁이 창을 고쳐 쥐었다. 나는 주머니를 더듬었다. 자탄은 이제 없었다. 아버지가 준 마지막 물건이었다. 다시 쓸 수 없었다. 숨을 죽였다.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 좋아요 0 · 로그인 후 좋아요/별점/댓글 참여 가능

댓글 0

  •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