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검성문 하단 영지, 이른 아침.
안개가 산등성이를 타고 흘러내렸다.
새벽 공기는 아직 차가웠고, 이슬이 풀잎마다 맺혀 있었다.
산 아래 훈련장에서는 목검 부딪히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리고 있었다.
'딱, 딱, 딱.'
같은 동작을 몇백 번째 반복하는 소리였다.
그 소리는 마치 시계처럼 정확했다.
어긋남이 없었다.
이강진, 열다섯 살.
검성문 하단 영지에 들어온 지 삼 년째 되는 소년이었다.
타고난 자질은 하품(下品)이었다.
영근(靈根)이 얕고 기감(氣感)이 둔해, 같은 또래 중에서도 가장 늦게 내공을 터득한 아이였다.
남들이 삼 개월 만에 심법을 완성할 때, 이강진은 아홉 개월이 걸렸다.
남들이 반년 만에 첫 번째 초식을 익힐 때, 이강진은 일 년이 넘게 걸렸다.
하지만 이강진은 남들이 하루 백 번 휘두르는 검을 삼백 번 휘둘렀다.
그것이 그가 가진 유일한 무기였다.
새벽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훈련장으로 나왔고, 저녁에 잠들 때는 가장 늦게까지 목검을 쥐고 있었다.
손바닥에는 이미 굳은살이 몇 겹으로 쌓여 있었다.
그 굳은살 위에 다시 물집이 잡히고, 그 물집이 터지고, 또 굳은살이 앉는 과정을 삼 년째 반복하고 있었다.
'딱, 딱, 딱.'
이강진의 목검이 허공을 갈랐다.
같은 궤적, 같은 힘, 같은 속도.
그것을 정확히 재현하는 것이 지금 그의 목표였다.
기초 검로(劍路)를 완벽하게 몸에 새기는 것.
남들보다 늦더라도, 남들보다 확실하게.
"강진아, 그만 좀 해라. 팔 떨어지겠다."
조성민이 나무 그늘에 앉아 소리쳤다.
같은 마을에서 자란 소꿉친구였고, 함께 검성문에 입문한 동기였다.
조성민은 이강진과 달리 상품(上品) 자질을 지녔다.
같은 시간을 들이면 배는 빠르게 성취를 얻는 아이였다.
그의 앞에는 이미 마른 수건과 물통이 놓여 있었다.
아침 훈련을 일찍 끝내고 여유롭게 쉬고 있던 참이었다.
"넌 쉬어도 돼. 난 남들보다 세 배는 더 해야 겨우 따라가니까."
이강진이 웃으며 대답했다.
숨이 가빴지만 목소리는 밝았다.
그 웃음에는 열등감도, 원망도 없었다.
그저 자신의 처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담백함만 있었다.
"세 배씩이나 하면서 그렇게 웃는 놈은 처음 본다."
조성민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겉으로는 장난스러운 어조였다.
"웃지 않으면 어떻게 버티냐."
이강진이 목검을 다시 고쳐 잡으며 말했다.
"울면서 삼백 번 휘두르는 것보다는, 웃으면서 삼백 번 휘두르는 게 낫잖아."
조성민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겉으로는 웃었지만, 속으로는 다른 감정이 스며 있었다.
하품인 놈이 왜 저렇게 밝은가.
왜 아무도 저놈을 하품이라고 무시하지 않는가.
문파의 다른 아이들은 오히려 이강진의 성실함을 칭찬했다.
사부들 중 몇몇은 이강진을 두고 "저 근성이면 언젠가 큰 그릇이 될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그 말들이 조성민의 귀에 들어올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졌다.
특히 조민아 앞에서는.
조성민은 그 서늘함의 원인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자신은 상품 자질을 지녔음에도, 조민아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언제나 이강진이었다.
자질도, 재능도, 성취의 속도도 자신이 앞서는데, 왜.
"오라버니들, 뭐 하세요?"
조민아가 물통을 들고 다가왔다.
같은 마을 출신, 열네 살의 소녀였다.
하단 영지에서는 후배로 들어왔지만, 세 사람은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사이였다.
어릴 적부터 셈이 빠르고 눈치가 밝아, 하단 영지의 또래들 사이에서도 늘 중심이 되던 아이였다.
"강진이는 또 혼자 미친놈처럼 검 휘두르고 있었지."
조성민이 픽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 말투에는 은근한 가시가 박혀 있었다.
'미친놈'이라는 단어를 고를 때, 그는 아주 잠깐 이강진의 표정을 살폈다.
"미친놈은 좀 심하잖아."
조민아가 이강진에게 물통을 건네며 웃었다.
그 웃음이 조성민의 가슴에 작은 균열을 냈다.
아주 작은, 눈에 보이지 않는 균열이었다.
하지만 그런 균열이 벌써 삼 년째 쌓이고 있었다.
조성민은 그 균열을 애써 웃음 뒤에 숨겼다.
"고마워."
이강진이 물통을 받아 벌컥벌컥 마셨다.
목을 타고 넘어가는 물이 시원했다.
땀에 젖은 옷자락에서 김이 살짝 올라왔다.
"다음 달이면 대비(大比)잖아. 이번엔 누가 우승할지 궁금하네."
조민아가 화제를 돌렸다.
대비는 검성문 하단 영지에서 매년 열리는 비무대회였다.
하단 영지에 소속된 모든 문도들이 참가할 수 있는 자리였고, 나이와 입문 순서에 관계없이 오직 실력으로만 순위가 갈렸다.
우승자는 상단 영지로 승급할 기회를 얻는다.
상단 영지는 검성문의 핵심 제자들이 모이는 곳이었고, 그곳에서 익히는 무공과 자원은 하단 영지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차원이 달랐다.
하품 자질을 가진 자에게는 평생 한 번뿐일 기회이기도 했다.
하품으로 태어난 이상, 상단 영지로 올라가는 길은 오직 대비를 통한 우승뿐이었다.
"강진이 넌 참가할 거야?"
조민아가 물었다.
그 눈빛에는 순수한 기대와 궁금함이 담겨 있었다.
"당연하지."
이강진이 목검을 다시 고쳐 잡으며 대답했다.
그의 눈빛이 잠시 진지해졌다.
"자질이 낮다고 기회조차 없는 건 아니잖아."
이강진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단단했다.
삼 년 동안 쌓아온 확신이었다.
"작년에도 참가했다가 예선에서 떨어졌잖아."
조성민이 슬쩍 끼어들었다.
말투는 가벼웠지만, 그 안에는 미묘한 비교의 뜻이 숨어 있었다.
"올해는 다를 거야."
이강진이 담담하게 답했다.
원망도, 조급함도 없는 목소리였다.
조성민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굳었다.
그러나 그는 곧 다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래, 열심히 해봐. 응원할게."
그 말은 진심이 아니었다.
조성민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이미 다른 계획이 자라고 있었다.
하품 따위가 우승이라도 한다면, 자신은 어떻게 되는가.
자신보다 세 배는 늦게 시작해서 세 배는 더 노력해야 겨우 따라오는 저놈이, 대비에서 이긴다면.
조민아의 시선은 어디로 향할 것인가.
그 생각이 들자 조성민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는 그것을 숨기려 물통을 다시 집어 들었다.
※※※
대비 전날 밤, 조성민의 처소.
조성민은 어둠 속에서 작은 목갑을 꺼냈다.
안에는 붉은 색을 띤 단약이 하나 들어 있었다.
외숙부가 은밀히 구해다 준 것이었다.
며칠 전, 조성민은 외숙부를 찾아가 은밀히 부탁을 했었다.
"강진이를 이길 방법이 없을까요."
그렇게만 말했다.
직접적으로 해를 끼치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외숙부는 그 말속에 담긴 뜻을 정확히 읽어냈다.
"이건 몸을 보강해주는 영약이다. 대비 전에 먹으면 반나절 동안 내공이 배로 늘어난다더라."
외숙부는 그렇게 말했다.
목갑을 건네줄 때, 외숙부의 눈에는 별다른 동요가 없었다.
마치 이런 부탁이 처음이 아니라는 듯한 눈빛이었다.
하지만 조성민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것이 영약이 아니라는 것을.
유수단(流髓丹).
먹은 자의 경맥을 서서히 파괴하는 극독이었다.
증상은 즉시 나타나지 않는다.
반나절 정도의 짧은 활력 뒤에, 갑작스레 전신이 붕괴하듯 무너진다.
경맥이 뒤틀리고, 기혈이 역류하며, 최악의 경우 폐맥이 되어 평생 무공을 익힐 수 없게 된다.
그런 독을, 대비를 앞둔 상대에게 먹인다는 것은.
조성민은 목갑을 손에 쥔 채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방 안의 등불이 흔들릴 때마다 그의 얼굴에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망설임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었다.
그는 몇 번이나 목갑을 서랍에 넣었다가 다시 꺼냈다.
그때마다 이강진의 웃는 얼굴이 떠올랐다.
"넌 쉬어도 돼."라고 말하던 그 담백한 목소리도.
하지만 그 망설임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 얼굴 뒤에 조민아의 웃음이 겹쳐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이강진에게 물통을 건네며 웃던 그 얼굴.
그 웃음이 자신을 향한 적이 언제였는지, 조성민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강진이 저놈이 우승하는 꼴은... 못 본다."
그가 중얼거렸다.
그의 눈에는 이미 죄책감의 빛이 사라져 있었다.
대신 그 자리에는 차갑고 건조한 결심만이 남아 있었다.
그는 목갑을 소매 깊은 곳에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창밖으로 보이는 산등성이에는 여전히 안개가 걸려 있었다.
내일이면 대비가 시작된다.
다음 날 아침, 조성민은 이강진을 찾아갔다.
이강진은 이미 훈련장에서 몸을 풀고 있었다.
목검을 내려놓고 가볍게 관절을 돌리며 대비를 준비하는 중이었다.
"강진아, 이거 먹어. 대비 전에 먹으면 도움 된다고 하더라. 외숙부가 특별히 구해준 거야."
조성민이 목갑을 내밀며 말했다.
목소리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오히려 평소보다 더 자연스러운 웃음까지 지어 보였다.
이강진은 잠시 목갑을 바라보았다.
붉은 단약이 아침 햇살을 받아 은근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런 걸 왜 나한테 줘?"
"친구니까 그러지, 인마. 넌 자질이 낮아서 남들보다 힘든 거 다 아는데. 이거라도 도움 되라고."
조성민의 눈빛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오랜 우정 속에서 이강진은 그를 의심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삼 년 동안 함께 훈련하고,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웃었던 친구였다.
그런 친구가 자신을 해치려 할 것이라는 생각은, 이강진의 머릿속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고맙다."
이강진이 단약을 삼켰다.
목구멍을 넘어가는 감각이 조금 이상했지만, 그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오늘은 대비가 있는 날이었다.
삼 년의 노력을 증명할 유일한 기회였다.
그 생각만으로 그의 가슴은 벌써 뜨겁게 뛰고 있었다.
그 순간, 조성민의 입가에 아주 짧은 미소가 스쳤다.
아무도 보지 못한 미소였다.
그는 몸을 돌려 훈련장을 빠져나갔다.
등 뒤에서 이강진이 다시 목검을 집어 드는 소리가 들렸다.
'딱, 딱, 딱.'
평소와 다름없는 소리였다.
그 소리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조성민은 알지 못했다.
아니, 알고 싶지도 않았다.
멀리서 대비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