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독 먹었더니 고수가 됐다

3화

연무장을 가득 채웠던 환호성이 채 가라앉기도 전이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이강진은 시상대 위에서 우승 깃발을 손에 쥐고 있었다. 하품(下品) 자질로 태어난 자가, 검성문 하단 영지 전체를 뒤흔든 순간이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모든 것이 무너졌다. "강진아!" 조민아의 비명 같은 외침이 연무장을 가로질렀다. 이강진이 시상대 위에서 완전히 무너지듯 쓰러졌다. 그의 몸이 바닥에 닿는 순간, 관중석의 환호가 뚝 끊겼다. '쿵.' 무거운 침묵이 연무장 전체를 짓눌렀다. 수천 명의 시선이 한 곳으로 쏠렸다. 방금까지 손뼉을 치던 손들이, 허공에서 그대로 멈춰버렸다. "뭐, 뭐야? 우승자가 왜 저래?" "기절한 건가?" "설마... 주화입마?" 여기저기서 짧은 탄식이 튀어나왔다. 누군가는 자리에서 반쯤 일어섰다가, 다시 주저앉았다. 아무도 정확한 상황을 몰랐기에, 그 침묵은 더욱 짙어졌다. 심사관들이 급히 시상대로 몰려들었다. 그들의 걸음이 평소와 다르게 빨랐다. 그중 한 명이 무릎을 꿇고 이강진의 손목을 짚었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게 보였다. 잠시의 정적. 그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이마에 식은땀이 배어 나왔다. "...경맥이 끊어졌다." 그 한마디에, 연무장 전체가 얼어붙었다. "경맥이 끊어졌다고?" "그게 무슨 말이야, 대비 우승자가 폐인이라는 소리야?" "말도 안 돼, 방금까지 서 있었는데..." 웅성거림이 순식간에 파도처럼 퍼져나갔다. 처음에는 낮은 속삭임이었다가, 곧 커다란 소음으로 번졌다. 방금까지 우승의 함성을 지르던 관중들의 눈빛이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경외와 감탄에서, 경멸과 조롱으로. 그 전환은 놀랍도록 빨랐다. "하품 자질에 대비까지 우승하더니, 결국 몸이 못 버틴 거 아니야?" "들었어? 저 녀석 원래 자질이 하품이었다며. 억지로 무리했으니 저렇게 됐지." "애초에 하품 따위가 저 자리에 설 자격이 있었나?" "운이 좋았던 거지, 실력은 어차피 바닥이었으니까." 목소리들이 점점 커졌다. 누군가는 대놓고 팔짱을 끼며 냉소를 지었다. 조성민이 그 무리 속에서 걸어 나왔다. 그의 걸음걸이는 급하지도, 느리지도 않았다. 정확히 사람들의 시선을 끌 만한 속도였다. 그의 표정은 놀랍도록 태연했다. 아니, 태연을 가장한 슬픔이었다. "강진아...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조성민이 이강진의 몸 앞에 무릎을 꿇고 중얼거렸다. 그 목소리에는 걱정이 뚝뚝 흘렀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렇게 보였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그런 조성민에게 잠시 머물렀다가, 곧 안타까움으로 물들었다. "저 사람 봐, 그래도 친우라고 저렇게 걱정하네." "하긴, 조성민 소협은 원래 인품이 좋기로 유명하잖아." 그런 수군거림이 조성민의 귀에도 들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는 아무런 흔들림도 없었다. 하지만 조성민의 눈은, 이강진의 얼굴이 아니라 그의 손끝을 보고 있었다. 그 시선은 오래, 아주 오래 그곳에 머물렀다. 경맥이 완전히 파괴된 자의 손끝이 어떻게 변하는지, 조성민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손끝의 핏기가 서서히 빠져나가고 있었다. 푸르스름한 빛이 손톱 아래로 스며들고 있었다. 그것은 회복 불가능한 파괴의 증거였다. 조성민의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찰나였지만, 분명한 웃음이었다. 그러나 그 웃음은 순식간에 다시 슬픔의 표정 아래로 숨어버렸다. "경맥이 완전히 끊어진 건... 폐인이 됐다는 뜻입니다." 심사관 하나가 씁쓸하게 내뱉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진심 어린 안타까움이 있었다. "이 정도로 심하게 파괴됐다면, 어떤 영단으로도 회복이 불가능합니다. 천년설삼(千年雪蔘)이나 자하선단(紫霞仙丹)이라 해도... 끊어진 경맥을 다시 이을 수는 없습니다." "폐인..." 그 단어가 관중석 전체에 퍼져나갔다. 그것은 단순한 진단이 아니었다. 사형선고와 다름없는 선언이었다. 대비 우승자가, 순식간에 웃음거리가 되는 순간이었다. "하하하하! 이게 대체 무슨 꼴이야! 하품 놈이 무리해서 대비 우승 한번 해보겠다고, 몸을 아예 갈아버렸구먼!" 관중석 한쪽에서 누군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이 신호탄처럼, 여기저기서 조롱 섞인 웃음소리가 번져갔다. "쯔쯔, 자질도 없는 놈이 욕심을 부리니 저렇게 되는 거지." "우승 깃발이 아깝다, 아까워." "저럴 줄 알았지, 하품이 뭔 대비 우승이야." "그래도 한때는 대단한 것처럼 보였는데. 결국 저 꼴이네." 비웃음이 파도처럼 겹겹이 밀려들었다. 방금까지 이강진의 이름을 연호했던 입들이, 이제는 그를 조롱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같은 입에서 나온 말인데도, 그 온도는 완전히 달랐다. 조민아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서 있었다. 방금까지 강진이의 우승을 기뻐하며 소리치던 그녀였다. 목이 터질 듯 그의 이름을 외쳤던 것이, 불과 몇 분 전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표정에서 그 기쁨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대신 그 자리에는 냉담함이 스며들고 있었다. 그녀의 손이 저도 모르게 옷깃을 움켜쥐었다. "...폐인." 조민아가 낮게 중얼거렸다. 그녀의 눈빛이 흔들리다가, 곧 결심한 듯 굳어졌다. 머릿속으로 온갖 생각들이 지나갔다. 검성문 하단 영지의 유력 가문들, 그들이 그녀에게 보내는 시선들, 그리고 그녀 자신의 미래. 조민아는 검성문 하단 영지에서도 손꼽히는 미녀였다. 앞으로 창창한 앞날이 남아 있었다. 수많은 가문에서 그녀에게 혼담이 오갔고, 그중 상당수는 상당한 위치에 있는 이들이었다. 폐인이 된 자와의 인연을 이어갈 이유가, 그녀에게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있었다. 그녀의 발끝이 무의식적으로 뒤로 향했다. "조민아, 이제 너도 알았지? 강진이는... 이제 끝이야." 조성민이 조용히 그녀의 옆으로 다가와 속삭였다. 그 목소리에는 위로를 가장한 냉정한 확신이 담겨 있었다. 그의 손이 슬쩍 그녀의 어깨에 닿았다가, 다시 떨어졌다. "강진이도, 이해할 거야. 세상이 이런 거잖아. 자질 없는 놈이 무리했던 결과지." 조민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의 시선이 잠시 이강진의 얼굴을 향했다가, 다시 거두어졌다. 다만 이강진에게서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 한 걸음이, 이강진의 인생에서 가장 처참한 순간에 찍힌 마지막 낙인이었다. 관중들의 조롱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다. 누군가는 벌써 자리를 뜨며 낄낄거렸고, 누군가는 옆 사람과 수군거리며 그를 손가락질했다. 심사관들은 이강진의 상태를 확인하며 짧게 대화를 나눴지만, 그 목소리에도 이미 희망은 담겨 있지 않았다. "의당으로 옮겨야 합니다." "소용없을 텐데... 그래도 절차는 지켜야지." 의식이 흐려지는 와중에도, 이강진은 그 광경을 어렴풋이 보고 있었다. 시야가 흐릿하게 번지고, 소리가 물속에서 듣는 것처럼 멀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 흐릿함 속에서도, 그의 눈은 몇 가지 장면만은 또렷하게 붙잡고 있었다. 조성민의 걱정스러운 얼굴 뒤에 숨은 냉소. 조민아가 자신에게서 물러서는 발걸음. 관중들의 조롱과 경멸. 그 모든 것이, 마치 오랫동안 준비된 각본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있었다. '이상하다.' 이강진의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 이질감이 스쳤다. 조성민의 그 미세한 웃음. 분명 보았다고 생각했지만, 확신할 수 없었다. 어쩌면 착각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 착각이, 이상하게도 뇌리에 박혀 사라지지 않았다. "...왜." 이강진이 마지막으로 내뱉은 말이었다. 그 말에는 원망도, 분노도, 슬픔도 모두 뒤섞여 있었다. 목소리는 너무 작아서, 바로 옆에 있는 조성민조차 제대로 듣지 못했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의 의식은, 완전한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다. 시야가 완전히 닫히기 직전, 이강진은 마지막으로 하늘을 보았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이었다. 방금 전까지 그가 우승의 함성을 받으며 올려다보았던, 그 하늘과 똑같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은 조금도 변하지 않은 채 그대로였다. 오직 그의 삶만이, 이 순간 완전히 끝나 있었다. 그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목소리도 아니었고, 형체도 아니었다. 그저 존재감이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마치 그를 위해 준비되어 있었던 것처럼. 어둠은 점점 짙어졌고, 그 존재감은 점점 가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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