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정적이 길게 이어졌다.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시험장 전체를 채운 것은 오직 낮은 숨소리뿐이었다.
감독관의 목소리가 그 정적을 깨고 시험장 전체에 울려 퍼졌다.
"淬體八重, 원만에 근접!"
순간 사방에서 웅성거림이 터졌다.
누군가는 헛웃음을 흘렸고, 누군가는 아예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저 병약이가?"
"말도 안 돼, 8년을 앓아누워 있던 놈이잖아."
"헛것을 본 거 아니야? 진법이 오작동한 거지."
웅성임은 곧 파도처럼 번져나갔다.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를 향했다.
그 시선 하나하나가 화살촉처럼 날카로웠다.
나는 담담히 진법에서 내려섰다.
발끝이 바닥에 닿는 감촉조차 낯설게 느껴졌다.
표정을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숨을 고르며, 얼굴 근육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마음속은 오히려 차분했다.
언젠가는 드러날 일이었다.
8년을 숨겨온 것이 오늘 하루아침에 뒤집힌 셈이었지만, 이상하게도 동요는 없었다.
오히려 예상보다 조금 이른 시점이라는 사실만이 신경에 걸렸다.
조현의 얼굴이 굳었다.
방금 전까지 입가에 걸려 있던 여유로운 웃음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눈빛이 흔들렸다.
"…착오가 있는 거 아닙니까."
그가 감독관에게 소리쳤다.
목소리에 날이 서 있었다.
주먹을 쥔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감독관은 고개를 저었다.
표정 변화 하나 없었다.
"체환진은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짧고 단정한 대답이었다.
더 이상의 반박을 허락하지 않는 어조였다.
조현은 입술을 깨물었다.
아무 말도 못 한 채 나를 노려보았다.
그 눈빛 안에는 당혹감과 분노가 뒤섞여 있었다.
황민재가 앞으로 나섰다.
그가 나를 노려보았다.
"운이 좋았을 뿐이야. 실전에서는 다르지."
그가 이를 갈며 내뱉었다.
어깨가 미세하게 들썩였다.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의 말에 대꾸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했다.
그저 조용히 시험장 뒤편으로 걸어 나갔다.
등 뒤로 시선들이 따갑게 꽂혔다.
등판이 뜨거울 정도로 많은 눈길이 쏟아졌지만, 나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이곳, 이 대륙의 사람들은 신명을 섬긴다.
하늘에 아홉 명의 신이 있어 인간의 몸을 다스린다는 믿음.
그 신명의 가호를 받아 몸을 단련하는 체계가 바로 淬體(취체) 구단계였다.
일중에서 시작해 이중, 삼중을 거쳐 구중에 이르면, 그 위로는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신위(神衛)라 불렸다.
신위에 이른 자는 하늘의 반열에 반쯤 걸친 존재로 여겨졌다.
그만큼 그 경지는 아득히 멀고 아득히 높았다.
淬體八重.
같은 또래에서는 손에 꼽을 성취였다.
현 학당 안에서도 팔중에 도달한 자는 서넛에 불과했다.
조현조차 아직 원만에 이르지 못했다.
그런 그가 방금 전까지 나를 병약이라 비웃었다는 사실이, 이제는 오히려 우스꽝스러운 일이 되어버렸다.
나는 8년 전 냉천곡에서 《진룡련체결》을 얻었다.
의부님이 마련해 준 얼음 계곡 깊은 곳.
그곳은 한겨울에도 살얼음이 녹지 않는 땅이었다.
공기 자체가 뼈를 파고드는 냉기로 가득 차 있었다.
그곳에서 홀로 몸을 담그고 기운을 다스렸다.
처음에는 하루도 버티기 힘들었다.
손끝이 얼어붙고 입술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럼에도 매일같이 계곡물에 몸을 담갔다.
그렇게 몇 해가 흘렀다.
淬體八重은 진작에 넘어섰지만, 그것을 드러낼 순 없었다.
의부님의 당부 때문이었다.
"때가 되기 전에는, 절대 드러내지 마라."
낮고 단단한 목소리였다.
그 말이 늘 귓가에 맴돌았다.
왜 숨겨야 하는지 이유를 묻지 않았다.
의부님이 하는 말에는 언제나 뜻이 있었다.
하지만 오늘, 그 때가 앞당겨진 셈이었다.
체환진 앞에서 기운을 완전히 감출 방법은 없었다.
진법은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던 감독관의 말 그대로였다.
시험장 밖으로 나오자 몇몇 소년들이 나를 힐끔거렸다.
지나칠 때마다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낮게 속삭였다.
"저 녀석… 진룡소자라 불러야 하는 거 아니야?"
《진룡련체결》을 감춘 소년이라는 뜻이었다.
소문은 벌써 발이 빨랐다.
시험장을 나서기도 전에 이미 이름 하나가 붙어 있었다.
현선학원에 입학하면 淬體 구중까지 체계적인 지도를 받는다.
대륙 각지에서 모인 재목들이 그 안에서 다시 경쟁한다.
그 위 신위 경지는 오직 상위 선발전, 현선선발전을 통과한 자들만이 도전할 자격을 얻는다.
명액은 단 여덟 개.
매해 전 대륙에서 수천 명이 몰리지만, 그 중 여덟만이 진짜 문을 넘는다.
나머지는 문턱에서 좌절하고 돌아선다.
그 여덟 안에 들어야만 천원단을 얻을 자격이 주어진다.
천원단.
의부님의 내상을 고칠 유일한 영약.
대륙 어디를 뒤져도 그것을 대신할 약재는 없다고 했다.
값을 매길 수 없는 영약이라 했다.
오직 현선선발전의 여덟 자리만이 그것을 손에 넣을 길이었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가슴 한구석이 서늘하게 조여왔다.
발걸음이 절로 빨라졌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의부님의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시험장을 나서 마을 어귀에 들어섰을 때였다.
저 멀리서 누군가 다급히 뛰어오고 있었다.
치맛자락이 바람에 어지럽게 나부꼈다.
한설아였다.
치맛자락을 움켜쥔 채, 숨을 헐떡이며 달려오고 있었다.
발걸음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넘어질 듯 넘어지지 않으며 달려오는 그 모습에, 나는 순간 온몸이 굳었다.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눈물로 얼룩진 뺨이 저 멀리서도 선명하게 보였다.
"오라버니!"
그녀가 목이 멘 소리로 외쳤다.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나는 순간 걸음을 멈췄다.
등골을 타고 서늘한 예감이 스쳤다.
심장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설아가 내 앞에 다다르자 숨을 몰아쉬며 무릎을 짚었다.
어깨가 크게 들썩였다.
겨우 고개를 들어 나를 올려다보았다.
"아버지가…"
설아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말을 잇지 못하고 입술을 떨었다.
"아버지가 피를 토하셨어요. 새까만 피를…"
그 말이 귓가에 닿는 순간, 세상이 멈춘 것 같았다.
방금까지 시험장을 가득 채웠던 웅성거림도, 淬體八重이라는 결과도, 조현의 굳은 얼굴도, 모든 것이 한순간에 지워졌다.
남은 것은 오직 하나였다.
새까만 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