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저잣거리의 소란이 등 뒤로 멀어졌다.
사람들의 웅성거림과 좌판 주인들의 외침이 점차 희미해지고, 대신 취란의 숨소리만이 가까이서 들려왔다.
취란은 나를 붙잡듯 손을 뻗었지만, 곧 멈추었다.
손끝이 허공에서 잠시 머물다가 힘없이 떨어졌다.
"도련님, 그 원환을 지금 저에게 돌려주십시오."
그녀의 목소리에는 다급함이 배어 있었다.
평소의 그녀답지 않은 떨림이었다.
"이건 이미 내가 산 물건이오."
나는 손 안의 원환을 꼭 쥐었다.
차가운 감각은 여전히 손끝에 남아 있었지만, 두렵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상하게 익숙했다.
마치 오래전에 잃어버렸던 무언가를 되찾은 듯한 느낌.
손바닥에 닿는 냉기가 점점 옅어지며, 대신 은은한 온기가 퍼지는 것도 같았다.
"그것은 단순한 장신구가 아닙니다."
그녀가 낮게 말했다.
주변을 살피는 눈초리가 예사롭지 않았다.
"부인께서 남기신 것에는… 사연이 있습니다."
"어떤 사연이오?"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입술을 몇 번 달싹였지만, 끝내 말을 삼켰다.
대신 주변을 살피며 나를 저택 방향으로 이끌었다.
걷는 동안 그녀의 어깨가 몇 번이나 흠칫거렸다.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사람의 몸짓이었다.
골목을 하나 돌 때마다 그녀는 뒤를 돌아보았고, 그때마다 나는 그녀의 시선을 따라 뒤편을 살폈다.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불안은 조금도 가라앉지 않았다.
저택 후문에 도착했을 때, 우문 할아범이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평소처럼 웃음기 어린 얼굴이 아니었다.
눈가에 깊게 잡힌 주름이 오늘따라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도련님. 그것을 보여주시겠습니까."
그의 목소리는 평소와 달랐다.
장난기 어린 노인의 어조가 아니라, 무언가를 확인하려는 자의 어조였다.
취란이 그의 곁으로 다가가 무언가 귓속말을 건넸다.
할아범의 눈이 순간 커졌다가 다시 가늘어졌다.
나는 원환을 내밀었다.
손바닥 위에서 원환이 은은하게 흔들리는 듯했다.
우문 할아범은 눈을 가늘게 뜨고 한동안 그것을 바라보았다.
그의 손가락이 원환의 표면을 스치듯 지나갔지만, 직접 만지지는 않았다.
"…백환(白環)."
그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부인께서 지니셨던 물건이 맞군."
목소리에 옛 기억을 더듬는 듯한 떨림이 섞여 있었다.
"이게 뭔지 아십니까?"
"자세히는 모릅니다. 다만…"
그는 말을 멈추고 나를 응시했다.
그 눈빛이 오늘따라 깊고 무거웠다.
"이것이 반응했다는 것은, 도련님의 몸속에 흐르는 무언가가 그것을 알아본 것입니다."
취란이 옆에서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표정에서 무언가를 감추고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더 캐물을 틈도 없이, 우문 할아범은 원환을 다시 내 손에 쥐여 주며 자리를 떠났다.
그날 하루 종일, 그의 뒷모습이 유독 무거워 보였다는 것이 마음에 남았다.
그날 밤, 저택 안에서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하녀들 사이에서, 무사들 사이에서.
둘째 도련님이 백색 원환을 손에 넣고 손끝에서 빛을 뿜었다는 이야기였다.
누군가는 그 빛이 대낮처럼 밝았다고 했고, 누군가는 그것이 서늘한 한기를 동반했다고 했다.
소문은 저마다 다른 색으로 부풀어 갔다.
"백환동자(白環童子)."
누군가가 그렇게 불렀다.
소문은 순식간에 저택 전체로 퍼져 나갔다.
복도를 지날 때마다 하녀들의 시선이 은근히 나를 따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 시선 속에는 두려움과 호기심이 뒤섞여 있었다.
나는 그 별칭이 낯설고도 이상하게 무겁게 느껴졌다.
아버지에게 이 소식이 전해졌는지는 알 수 없었다.
적어도 그날은, 그가 나를 부르지 않았다.
잠자리에 누워서도, 손끝에 남은 냉기의 감각이 자꾸 되살아나 쉽게 잠들지 못했다.
다음 날 저녁.
하늘이 이상하게 붉게 물들었다.
구름 사이로 보이는 빛깔이 마치 핏빛처럼 진했다.
평소라면 그저 저녁놀이라 여겼겠지만, 오늘은 그 색이 이상하게 불길하게 느껴졌다.
"오늘이 칠월 초칠일이다."
우문 할아범이 낮게 말했다.
그의 눈빛이 여느 때와 달리 날카로웠다.
평소의 여유로움은 어디에도 없었다.
"칠월 초칠일이 무슨 날입니까?"
"황수가 오는 날이다."
그가 말을 뱉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 시선을 따라 나도 고개를 들었다.
그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은 아니었다.
어릴 적부터 어른들이 낮은 목소리로 주고받는 말 속에서 여러 번 들었다.
십팔 년마다 동남지역의 성 하나를 골라 덮치는 재앙.
금빛으로 빛나는, 인간의 것이라 부를 수 없는 무언가.
그 이름이 나올 때마다 어른들의 목소리는 낮아졌고, 아이들은 조용히 자리를 피하곤 했었다.
올해가 인현성의 차례라는 것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마주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막연한 소문 속의 재앙이, 오늘 이 순간 실체를 드러내려 하고 있었다.
성벽 위에서 종소리가 울렸다.
다급하고 불규칙한 타종.
그 소리는 저택 안까지 선명하게 파고들었다.
하녀들이 비명을 삼키며 방 안으로 뛰어드는 소리, 무사들이 갑주를 챙기며 내는 쇳소리가 뒤섞였다.
"성벽으로."
아버지의 목소리가 저택 마당을 가르며 울렸다.
갑주를 갖춰 입은 그의 모습은, 평소의 무심함과는 다른 서늘한 기운을 두르고 있었다.
그 뒷모습을 보는 순간, 나는 처음으로 아버지라는 사람의 무게를 실감했다.
나는 우문 할아범의 손에 이끌려 저택 뒤편 별채로 향했다.
그의 손아귀는 생각보다 힘이 세서, 나는 거의 끌려가듯 걸어야 했다.
하지만 별채 창문 너머로, 성벽 방향의 하늘이 보였다.
나는 그 창가에서 발을 멈췄다.
금빛.
하늘을 가득 메운 금빛 안개.
그 안에서 무언가 거대한 형체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안개는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렸고, 그 속에서 형체가 조금씩 윤곽을 갖춰갔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숨이 턱 막혔다.
손안의 원환이 순간 차갑게 조여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인간의 형상과 비슷하면서도, 명확히 다른 궤를 지녔다.
네댓 명의 어른을 합친 듯한 크기.
온몸이 금빛 광채로 뒤덮여 있었고,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텅 빈 어둠만 있었다.
그 어둠 속에서 무엇을 보고 있는지조차 짐작할 수 없었다.
"저것이… 황수."
나는 그 이름을 처음으로 실감했다.
목소리가 떨려 나온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성벽 위, 무사들의 함성과 병장기 소리가 뒤섞였다.
누군가의 비명이 짧게 끊겼다.
그리고 그 소란 속에서, 아버지의 형체가 성벽 위로 뛰어올랐다.
검을 뽑아 든 그의 자세는, 지금껏 내가 보아온 어떤 수련의 모습과도 달랐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고요하고, 동시에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 같은 긴장이 감돌았다.
다음 순간.
번쩍.
하늘을 가르는 빛줄기가 성벽에서 뻗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