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도련님, 눈먼 제가 보이나요

5화

소년의 손끝에서 낮은 빛이 새어 나왔다. '스스스스.' 원력이 흐르는 소리였다. 다만 그 흐름은, 이 자리에 있는 누구도 본 적 없는 밀도를 가지고 있었다. 주변은 이미 아수라장이었다. 짓밟힌 약초와 흙바닥에 쏟아진 뿌리들, 그리고 그 위로 쓰러진 유겸의 몸. 학원생들은 숨소리조차 죽인 채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누구도 나서지 못했다. 나설 수 없었다. "천무경의 원력을..." 육명봉이 낮게 신음했다. 그의 이마에는 이미 식은땀이 배어 있었다. 원장이라는 위치에서 수십 년을 지내온 그였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느껴졌다. "저런 방식으로 쓴다니..." 그가 말을 잇지 못했다. 천무경의 원력이란, 본래 상대를 치유하거나 각성시키는 데 쓰이는 힘이었다. 그러나 지금 소년의 손끝에서 흘러나오는 그것은, 치유와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파괴를 위한 흐름. 그것도 극도로 정교하게 다듬어진, 살상용의 흐름이었다. 소년의 손이 유겸의 가슴, 원골이 자리한 지점을 정확히 짚었다. 그 손끝이 닿는 순간, 유겸의 몸이 미세하게 떨렸다. "각성했다면서 왜 다루지를 못하는지, 확인해보지요." 담담한 목소리였다. 마치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멩이 하나를 주워 들여다보는 듯한, 지극히 사무적인 어조. "...!" 유겸의 몸이 활처럼 휘었다. '파지지직!' 원력의 기운이 그의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지금까지 느껴본 어떤 통증과도 다른, 뼈 안쪽부터 갈라지는 듯한 고통이었다. 전신의 신경이 한꺼번에 불타오르는 것 같았다. 숨을 쉴 수도, 소리를 지를 수도 없을 만큼 격렬한 감각이 그를 덮쳤다. "으아아악...!" 유겸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나왔다. 그의 손톱이 흙바닥을 긁었다. 피가 나도록 손톱 아래가 벗겨졌지만, 그는 그 감각조차 느끼지 못했다. 오직 가슴 한복판에서 일어나는 파괴적인 고통만이 전부였다. "청운...!" 남궁유리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녀의 품 안에서 부축을 받고 있던 이청운은 아직 정신이 온전치 못한 채 몸을 떨고 있었다. 그의 눈동자는 초점을 잃은 채 허공을 떠돌았고, 입술은 파랗게 질려 있었다. 남궁유리는 그를 안고 있는 팔에 힘을 더 주었다.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었지만, 이청운을 놓을 수도 없었다. 발이 땅에 붙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멈춰...!" 육명봉이 다급히 소리쳤다. 그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 아이는 아무 잘못도..." "잘못이 없다고요?" 소년이 담담히 되물었다. 그의 시선이 천천히 육명봉을 향했다. 그 눈빛에는 위협도, 분노도 없었다. 그저 무심함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 아이는 나에게 안 된다는 말을 두 번이나 했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육명봉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가 무슨 말을 하든, 소년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이미 깨달은 것이다. 원장이라는 지위, 학원이라는 이름, 그 어떤 것도 이 소년 앞에서는 방패가 되어주지 못했다. 그의 손끝에서 원력이 더 짙게 흘러들었다. '우득. 우드득.' 유겸의 몸속에서 뭔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원골이었다. 결함으로 인해 겨우 형태만 유지하던 그 원골이, 지금 완전히 조각나고 있었다. 그 소리는 마치 얇은 도자기가 조금씩 깨져나가는 소리와도 같았다. 다만 그것이 인간의 몸속에서 울려 나온다는 사실이, 지켜보는 이들의 등골을 서늘하게 했다. "아학... 하학... 하아악..." 유겸의 숨이 끊어질 듯 가늘어졌다. 눈물도, 침도 흘리지 못할 만큼 온몸의 근육이 경직되어 있었다. 그의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경련했다.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숨소리는 이제 사람의 것이라기보다는, 짐승이 마지막으로 내뱉는 신음처럼 들렸다. 남궁유리는 그 광경을 차마 끝까지 지켜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소리는 막을 수 없었다. 뼈가 부서지는 소리, 신음이 끊어지는 소리가 계속해서 귓가를 파고들었다. 그녀는 이청운을 안은 팔에 얼굴을 묻으며 눈을 감았다. 그럼에도 그 소리는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주변에 서 있던 학원생 중 하나가 결국 자리에 주저앉았다. "어떻게... 어떻게 저런 짓을..." 그 중얼거림은 곧 다른 학원생의 헛구역질 소리에 섞여 사라졌다. 아무도 나서서 소년을 막지 못했다.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불쌍한 아이지요." 소년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에는 조롱도, 즐거움도 없었다. 그저 사실을 나열하는 듯한 건조함뿐이었다. "결함이 있는 원골로 태어난 것도, 앞을 보지 못하는 것도, 그리고 지금 이렇게 나에게 걸린 것도." 그가 잠시 말을 멈추고 유겸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땀과 흙으로 뒤범벅된 그 얼굴에는, 보이지 않는 눈에서조차 고통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모두 그저, 운이 없었던 것뿐입니다." 그의 손이 마지막으로 강한 힘을 밀어넣었다. '콰지직!' 무언가 완전히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그 순간, 유겸의 몸에서 일었던 모든 저항이 멈췄다. 비명도, 몸부림도 사라졌다. 그의 눈에서, 보이지도 않던 그 눈에서, 조용히 눈물이 흘러내렸다. 원골이 완전히 부서졌다. 다시는 어떤 형태로도 원력을 담을 수 없게, 뿌리부터 파괴되었다. 그것은 단순한 상처가 아니었다. 평생 그를 짓눌러온 결함이 완전히 소멸함과 동시에, 남아 있던 마지막 희망마저도 함께 사라진 것이었다. "이제 이 아이는, 평범한 인간보다도 못한 존재가 되었군요." 소년이 손을 떼며 몸을 일으켰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의 표정에는 어떤 동요도 없었다. 그는 손끝에 남은 미세한 원력의 잔여물을 툭툭 털어내듯 손을 흔들었다. 주변의 학원생들 사이에서 낮은 신음과 흐느낌이 새어 나왔다. 몇몇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고, 몇몇은 헛구역질을 참으며 뒤로 물러섰다. 누군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흐느꼈고, 또 누군가는 그 자리에서 다리에 힘이 풀려 무너지듯 앉았다. "...이런 짓을..." 남궁유리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지만, 그 이상의 말은 나오지 않았다. 신분의 격차, 힘의 격차 앞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품 안의 이청운이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몸을 떠는 것을 느끼며, 그녀는 그저 입술을 깨물었다. 육명봉은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원장이라는 지위조차, 이 압도적인 존재 앞에서는 무의미했다. 그의 두 손이 옷자락을 움켜쥔 채 떨리고 있었다. 평생을 학원을 지키며 살아온 그였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어떤 힘도, 어떤 권위도 소년 앞에서 무력하기만 했다. 소년이 흩어진 약초와 짓밟힌 바구니를 잠시 내려다보았다. 바구니는 이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짓이겨져 있었다. 그 안에 담겨 있던 약초들도 흙바닥에 흩어진 채 짓밟혀 있었다. "이제 이 잡풀 바구니에 목숨을 걸 필요도 없어졌군요." 그는 옅게 웃으며 몸을 돌렸다. 그 웃음에는 어떤 악의도 담겨 있지 않았다. 그것이 오히려 더 소름을 돋게 만들었다. "흥미로운 구경이었습니다." 그 말을 남기고, 소년은 유겸을 향해 다시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걸어갔다. 그의 발걸음은 처음부터 여기 없었던 것처럼 가벼웠다. 육명봉과 학원생들이 뒤를 따랐지만, 아무도 그를 막지 못했다. 누구도 그 뒷모습을 붙잡을 용기조차 내지 못했다. 유겸은 흙바닥에 쓰러진 채, 홀로 남았다. 온몸이 부서진 듯한 통증 속에서도, 그의 손은 여전히 짓밟힌 바구니의 손잡이를 붙들고 있었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하얗게 질릴 정도로 힘을 준 채였다. 그 바구니가, 그가 붙들 수 있는 마지막 무언가였다. "...어머니." 그가 겨우 그 한 마디를 내뱉었다.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고, 숨은 여전히 불규칙했다. 입 안에서 피맛이 느껴졌다. 어디를 깨물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의 안에서 원골이 부서진 자리, 다시는 원력이 흐르지 못할 그 폐허 속에서, 무언가 다른 것이 조용히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분노였다. 지금까지 그가 한 번도 품어본 적 없던, 뜨겁고 차가운 감정이었다. 그것은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그의 가슴 안쪽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지금까지 그를 지탱해온 것이 인내와 순응이었다면, 이제 그 자리를 대신할 무언가가 태어나고 있었다. 멀리서 걸음을 옮기던 소년의 뒷모습을, 유겸은 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 발소리는, 그의 귀에 낙인처럼 새겨졌다. 일정한 박자로 흙을 밟는 그 소리, 아무런 흔들림도 없는 그 걸음걸이. 이름도 모르는 그 발소리. 그것을 다시 듣게 되는 날, 유겸은 무엇을 하게 될까. 아직 아무도, 그 답을 알지 못했다. 바람만이 흩어진 약초 위로 조용히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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