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치호다."
그 아이가 자기 이름을 먼저 말했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나는... 도래."
"알아. 다들 그렇게 부르더라."
치호는 나보다 한 살쯤 더 많아 보였다. 어깨가 나보다 넓었고, 팔뚝에는 사냥용 밧줄로 생긴 굳은살이 두툼하게 박여 있었다.
허리에는 작은 돌칼이 하나 매달려 있었는데, 칼자루에 짐승 뼈로 만든 손잡이가 끼워져 있었다.
"너 진짜로 새로운 먹을 걸 안다는 거야?"
치호가 물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함부로 말했다가 또 무슨 화를 입을지 몰랐다.
'말 한마디에 목숨이 걸려 있는데.'
속으로 계산했다.
"말 안 하는 거 보니까 진짜인가 보네."
치호가 픽 웃으며 말했다.
그날 이후로 치호는 매일 우물가에 나타났다.
처음엔 그냥 지나가는 척 곁눈질만 하다가, 며칠이 지나면서 물통을 대신 들어주기도 했다.
일주일 후, 나는 물통을 끄는 일 말고도 사냥대가 쓸 도구를 손질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
돌각이 다시 사냥대와 함께 떠난 덕분에 감시가 조금 느슨해진 틈이었다.
돌각이 없는 며칠은 숨 쉬는 게 한결 편했다.
도구 손질은 움막 뒤편 공터에서 했는데, 그곳에서 나는 치호와 자주 마주쳤다.
공터에는 부러진 돌촉과 낡은 밧줄이 무더기로 쌓여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하나씩 골라내며 쓸 수 있는 것과 버릴 것을 나눴다.
치호는 예비역 도토템 전사였다. 아직 정식 전사는 아니지만, 곧 시험을 치르고 정식으로 들어갈 예정이라고 했다.
"우리 부족은 도토템 전사가 되면 저기 저 나무에 뼈를 하나 건다."
치호가 자기 목에 걸린 뼈 장식을 만지며 말했다.
나는 그 나무를 슬쩍 봤다. 가지마다 허옇게 마른 뼈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셀 수 없이 많았다.
"열 개 걸면 반석 형님처럼 된다더라."
반석이라는 이름을 그때 처음 들었다.
"반석이 누군데?"
내가 물었다.
"우리 부족에서 제일 센 전사. 가슴에 불꽃 문양 새겨진 거 알아? 그거 반석 형님만 있는 거야."
치호는 반석을 존경하는 눈치였다.
눈을 빛내며 말하는 걸 보니, 언젠가 자신도 그렇게 되고 싶은 모양이었다.
나는 도구를 손질하며 그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돌촉을 갈고, 밧줄을 엮는 손이 서투르다는 걸 치호가 알아차렸다.
"넌 뭐 이렇게 손이 느려?"
치호가 물었다.
"어... 몸이 약해서."
"약하다고 손까지 느린 건 아니잖아."
치호가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그러더니 내 옆에 앉아서 밧줄 엮는 법을 다시 보여줬다.
"이렇게, 세 갈래로 나눠서 꼬는 거야. 손목 힘으로 하는 게 아니라 손가락으로."
나는 그의 손을 유심히 봤다.
손가락이 두껍고 마디마다 흉터가 있었지만, 움직임은 놀랄 만큼 정확했다.
세 갈래 줄이 그의 손끝에서 순식간에 하나로 엮여 들어갔다.
나도 따라 해봤지만, 손가락 사이로 줄이 자꾸 빠져나갔다.
"이게 아니라, 여기를 눌러야지."
치호가 내 손목을 잡고 방향을 고쳐줬다.
생각보다 정성스러운 가르침이었다.
'왜 나한테 이렇게까지 해주지.'
속으로 의아했다.
하지만 곧 알게 되었다.
치호는 부족 안에서 그리 인기 있는 아이가 아니었다. 예비역 도토템 전사라는 지위는 있었지만, 다른 아이들에 비해 사냥 실력이 부족했다.
훈련 중에도 늘 뒤처졌고, 다른 아이들이 짐승을 잡아 올 때 그는 빈손으로 돌아오는 날이 많다고 했다.
그래서 늘 혼자였고, 나처럼 밑바닥에서 시간을 보내는 걸 딱히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날 이후 사흘 동안, 나는 치호에게서 밧줄 엮는 법, 돌촉 가는 법, 부족의 규칙 몇 가지를 배웠다.
노예는 함부로 전사의 눈을 마주치면 안 된다는 것.
음식은 서열이 높은 순서대로 배급된다는 것.
추장의 움막에는 절대 허락 없이 가까이 가면 안 된다는 것.
여자는 사냥에 나갈 수 없고, 오직 채집과 손질만 맡는다는 것.
전사가 되기 전에는 이름 뒤에 아무 칭호도 붙이지 못한다는 것.
이런 것들을 하나씩 알아갈수록, 나는 이 세계가 얼마나 촘촘한 서열로 짜여 있는지 실감했다.
계급 하나, 칭호 하나가 사람의 밥그릇 크기까지 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서열 맨 아래에 내가 있었다.
'나는 서열도 없는 존재구나.'
그 생각을 하니 손끝이 저릿했다.
어느 날 오후, 치호가 갑자기 물었다.
"너 진짜 새로운 먹을 거 아는 거 맞지?"
"어... 맞아."
나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그럼 왜 아직도 안 보여줘? 추장님이 기다리고 있다던데."
"증거가... 필요해서."
"증거?"
"그냥 말로만 하면 안 믿잖아. 직접... 만들어야 돼."
치호는 팔짱을 끼고 나를 바라봤다.
"뭘 만드는데?"
나는 잠시 망설였다.
말해도 될지, 이 아이를 믿어도 될지 확신이 없었다.
돌각의 얼굴이 잠깐 떠올랐다. 저 채찍 소리, 그 웃음소리.
하지만 지금 이 부족에서 나에게 조금이라도 호의를 보이는 사람은 치호뿐이었다.
'이 기회를 놓치면 다음은 없을지도 몰라.'
"도토리 있잖아."
내가 입을 열었다.
"그거... 그냥 먹으면 배 아프잖아. 근데 물에 담가서 며칠 두면 괜찮아져."
치호의 눈이 커졌다.
"그게 진짜야?"
"어. 그리고 그거 말고도... 더 있어."
나는 거기까지 말하고 입을 다물었다.
아직 다 말할 때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패를 전부 보여주면, 나는 더 이상 쓸모없는 존재가 될지도 몰랐다.
하지만 치호는 이미 흥미를 감추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내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공터 반대편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치호! 너 이 새끼, 여기서 뭐 해!"
다른 전사의 목소리였다.
치호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다.
손에 쥐고 있던 밧줄을 슬며시 내려놓았다.
"오늘 훈련 있었는데 잊고 있었어."
치호가 낮게 중얼거렸다.
목소리에는 이미 긴장이 배어 있었다.
그 목소리의 주인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발소리가 무거웠다. 땅을 밟는 소리 하나하나가 위협적으로 들렸다.
나는 그 목소리에서 이미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다.
치호의 얼굴에 스친 두려움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그 두려움이 곧 나에게도 옮겨올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