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나는... 원래 다른 곳에서 왔어."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말을 꺼내기 전까지 수십 번을 망설였다.
'이 말을 하면 어떻게 될까.'
'치호가 나를 이상하게 보면 어떡하지.'
'하지만 언젠가는 말해야 했어.'
치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다른 부족에서 왔다는 거야? 그건 알아, 이리부족이잖아."
"아니, 그게 아니라..."
나는 말을 고르다가, 결국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이 몸은 원래 도래라는 아이 몸이야. 근데... 나는 그 아이가 아니야."
치호의 표정이 굳었다.
"뭐라는 거야, 그게."
치호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나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서 살았어. 거기서 나이는 스물아홉이었고, 어느 날 갑자기 심장이 멈춰서 죽었어."
나는 천천히, 단어를 골라가며 설명했다.
"그리고 눈을 뜨니까 이 몸이었어. 도래라는 이름으로."
치호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밤바람이 움막 사이를 지나가며 낮은 소리를 냈다.
멀리서 짐승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가 금세 사라졌다.
"그러니까... 네 몸에 다른 영혼이 들어왔다는 거야?"
치호가 마침내 물었다.
"그런 셈이야."
"그럼 원래 도래는?"
"몰라. 내가 눈을 떴을 땐 이미 이 몸에 나만 있었어."
나는 사실대로 말했다.
원래 도래의 영혼이 어떻게 됐는지는 나도 알 수 없었다.
혹시 어딘가에 남아서 나를 지켜보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낌새는 한 번도 느끼지 못했다.
그저 눈을 뜨니 이 낯선 세계, 낯선 몸이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그 버섯이랑 도토리 얘기도... 그 다른 세계에서 알던 거야?"
치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 거기서는 그런 지식들이... 흔했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책에도 나오고, 학교에서도 배우고. 다들 알 수 있었어."
"학교?"
치호가 낯선 단어를 되물었다.
"아이들이 모여서 지식을 배우는 곳이야."
나는 짧게 설명했다.
치호는 그 개념이 잘 이해되지 않는지 눈썹을 찌푸렸다.
그래도 더 캐묻지는 않았다.
여전히 믿기 힘든 표정이었지만,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았다.
"솔직히...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치호가 말했다.
"너, 처음 볼 때부터 말투도 좀 다르고. 노예인데도 뭔가... 무서워하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있었어."
"많이 무서워."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매일 무서워. 언제 죽을지 몰라서."
손끝이 살짝 떨렸다.
그 말에 치호가 잠시 나를 바라보았다.
"근데도... 그런 얘기를 나한테 왜 하는 거야?"
치호가 물었다.
나는 잠시 생각했다.
왜 이 아이에게만 이 비밀을 말하고 있는 걸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답은 간단했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해서."
내가 말했다.
"이 부족에서 나 혼자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근데 너는... 나한테 맞을 매를 대신 맞으려고 했잖아."
치호가 시선을 피했다.
"그건... 별거 아니었어."
"별거 아닌 게 아니야."
나는 힘주어 말했다.
"나한테는 그게 처음이었어. 이 세계에 와서, 누가 나를 위해 뭔가를 해준 게."
그 순간이 계속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등에 남았던 매질의 흉터보다, 그 순간의 온기가 더 선명하게 기억에 박혀 있었다.
치호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그 다른 세계는 어땠어? 여기보다 좋았어?"
나는 그 질문에 미소를 지었다.
"많이 달랐어. 공룡도 없고, 거대한 벌레도 없고."
"공룡?"
"저기 늪지대에 사는 그 큰 짐승들 말이야. 우리는 그걸 공룡이라고 불렀어."
"신기하네."
치호가 처음으로 웃었다.
작은 웃음이었지만, 나는 그 웃음이 진짜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럼 밤에도 안 무서웠겠네. 그런 짐승들이 없으니까."
치호가 조금 신이 난 듯 물었다.
"밤에도 불빛이 있었어. 여기저기서."
내가 대답했다.
"밤인데도 낮처럼 환한 곳도 있었어."
"그게 가능해?"
치호의 눈이 커졌다.
"응. 그리고 멀리 있는 사람이랑도 이야기할 수 있었어. 손바닥만 한 물건 하나로."
"거짓말."
치호가 단호하게 말했다.
"진짜야. 못 믿겠지."
나는 웃으며 말했다.
사실 나조차도 지금 그 세계가 아득한 꿈처럼 느껴졌다.
"그럼 거기서는... 배도 안 곯았어?"
치호가 다시 물었다.
그 질문에 나는 잠시 말이 없어졌다.
원래 세계에서 나는 늘 배부르게 살았다.
편의점에 가면 언제든 먹을 것이 있었고, 냉장고 안에는 항상 무언가 채워져 있었다.
하지만 그만큼 다른 것들에 시달리며 살았다.
심장병 때문에 매일 약을 먹어야 했고,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병원비를 걱정하고, 다음 달 월세를 걱정하고, 그러다 결국 심장이 멈춰서 죽었다.
"배는 안 곯았는데... 다른 게 힘들었어."
나는 짧게 대답했다.
치호는 더 묻지 않았다.
그저 내 옆에 앉아, 함께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별들이 유난히 많이 떠 있는 밤이었다.
이 원시의 하늘에는 빛 공해가 없어서, 별들이 마치 손을 뻗으면 닿을 듯 가까이 있었다.
원래 세계에서는 이렇게 많은 별을 본 적이 없었다.
도시의 불빛 아래서는 별 몇 개만 겨우 보일 뿐이었다.
"저기 저 별 무리, 우리 부족에서는 늑대 발자국이라고 불러."
치호가 손가락으로 하늘 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건 사슴의 뿔이야."
치호가 다른 쪽을 가리키며 이어 말했다.
"할아버지가 알려주셨어. 저 별들이 사냥을 나갈 때가 됐다는 걸 알려준대."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오랜만에 마음이 조금 편해지는 걸 느꼈다.
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느낀 안온함이었다.
바람이 선선하게 불었고, 풀벌레 소리가 낮게 깔렸다.
옆에 앉은 치호의 어깨가 내 어깨에 살짝 닿았다.
'이런 순간이 계속되면 좋겠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 안온함은 오래가지 못했다.
다음 날 아침, 부족 전체를 소집하는 뿔피리 소리가 울렸다.
낮고 긴 소리가 세 번 이어졌다.
사냥대가 큰 사냥감을 잡아온 모양이었다.
분배 행사가 열린다는 뜻이었고, 그건 곧 추장 고태산과 전사 반석이 직접 모습을 드러낸다는 뜻이었다.
나는 그 소식을 듣는 순간, 뱃속이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간밤의 그 작은 평온함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다시 익숙한 두려움이 목덜미를 타고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