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치호를 부른 전사의 이름은 여산이었다.
여산은 부족 내 예비역 도토템 전사들을 관리하는 자였다. 나이는 스무 살쯤, 팔뚝에는 이미 뼈 장식을 다섯 개나 걸고 있었다.
가슴팍에는 검은 재를 이용해 그린 문양이 있었는데, 부족 안에서 몇 번의 사냥을 성공시킨 자만이 새길 수 있는 표식이라고 나중에 들었다.
허리에는 짧은 나무 막대가 매달려 있었고, 그 끝에는 가죽끈이 묶여 있었다.
훈련장 한쪽 구석에서 치호와 내가 도구를 손질하던 참이었다.
멀리서 걸어오는 발소리가 들렸을 때, 나는 그게 여산인 줄 몰랐다.
치호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는 걸 보고서야 뭔가 잘못됐다는 걸 알았다.
"너 이 노예 새끼랑 뭐 하고 있었어?"
여산이 치호에게 물었다.
목소리부터 컸다. 훈련장 전체에 쩌렁쩌렁 울릴 정도였다.
"그냥... 도구 손질 도와주고 있었어요."
치호가 대답했다.
목소리가 잔뜩 기어들어 있었다.
"도와주는 게 아니라 노는 거잖아."
짝!
여산의 손이 치호의 뺨을 갈겼다.
치호가 옆으로 휘청거렸다.
손질하던 창끝이 바닥에 떨어지며 흙먼지가 일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몸이 굳었다.
'저 정도 힘이면 뼈가 부러질 수도 있어.'
"오늘 훈련 안 나온 이유가 뭔데."
여산이 다시 물었다.
"잊, 잊어버렸어요."
"잊어버려? 예비역이 훈련을 잊어버려?"
여산이 소리쳤다.
그러고는 허리에 찬 나무 막대를 뽑아 들었다.
짧고 단단한 막대였다. 훈련용 매질 도구라는 걸 나는 직감으로 알았다.
가죽끈이 매달린 쪽 끝은 이미 여러 번 사용된 듯 닳아 있었다.
"엎드려."
여산이 명령했다.
치호가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두 손을 흙바닥에 짚었다.
어깨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나는 내 몸이 먼저 움직이는 걸 느꼈다.
생각보다 몸이 앞섰다.
머릿속으로 뭔가 계산할 틈도 없었다.
"저... 저기요."
나는 여산 앞으로 나섰다.
"저 때문이에요. 제가... 붙잡고 있었어요."
여산이 나를 내려다보며 눈을 찌푸렸다.
키 차이가 상당했다. 나는 그의 허리춤에도 닿지 않았다.
"넌 뭐야."
"노예... 도래예요."
"그 헛소리 지껄인 놈이 너야?"
여산이 나를 알아본 모양이었다.
부족 안에서 이미 소문이 돈 것 같았다.
'도토리 얘기가 벌써 이렇게 퍼졌구나.'
나는 속으로 씁쓸하게 생각했다.
"네가 얘를 붙잡았다고?"
"네, 제가... 도구 손질하는 법을... 배우고 싶다고 했어요."
나는 최대한 태연하게 말하려 애썼다. 하지만 목소리는 이미 떨리고 있었다.
여산이 잠시 나와 치호를 번갈아 보았다.
눈빛이 위아래로 훑고 지나갔다.
마치 내가 거짓말을 하는지 재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럼 대신 맞아."
여산이 말했다.
치호가 놀란 눈으로 나를 봤다.
"도래야, 아니야, 내가..."
"됐어."
나는 치호의 말을 끊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흙바닥이 무릎에 닿는 감촉이 서늘했다.
찰싹!
첫 번째 매가 내려왔다.
등이 불에 타는 듯 아팠다.
"으윽..."
나는 소리를 삼켰다.
시야가 잠시 하얘졌다가 다시 돌아왔다.
찰싹!
두 번째 매가 내려왔다.
이번엔 어깨였다.
숨이 턱 막혔다.
이 몸은 원래도 약했다. 몇 번의 매질로도 부러질 것 같은 뼈였다.
팔뚝은 성인 남자의 손가락 두 개보다도 얇았다.
하지만 나는 이현재였다. 스물아홉 해를 살았던 어른의 정신이었다.
어른의 정신으로 아이의 몸이 감당하는 통증을 견디는 건, 생각보다 더 힘든 일이었다.
머릿속으로는 침착하자고 되뇌었지만, 몸은 이미 제멋대로 떨리고 있었다.
세 번째 매가 내려오기 전에, 여산이 손을 멈췄다.
"됐어. 이 정도면."
여산이 막대를 다시 허리에 꽂았다.
"다음엔 시간 어기지 마."
그가 치호에게 마지막으로 경고하고 자리를 떠났다.
발소리가 완전히 멀어질 때까지, 나는 그 자세로 가만히 있었다.
치호가 곧바로 내게 다가왔다.
"괜찮아? 왜 그런 거야, 왜..."
"어... 어. 괜찮아."
나는 등을 문지르며 대답했다.
실은 전혀 괜찮지 않았다. 숨을 쉴 때마다 등이 찢어지는 듯했다.
손끝으로 살짝 만져보니 벌써 부어오르는 게 느껴졌다.
"미안해. 진짜 미안해."
치호가 몇 번이나 사과했다.
목소리가 젖어 있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너 훈련 또 빠지면 진짜 큰일 날 것 같아서."
"그래도 이건..."
"됐어. 나 원래도 노예라서, 뭐 이런 거 익숙해."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하나도 익숙하지 않았다.
전생에는 이런 매질 같은 건 상상도 못 해본 삶이었다.
그저 지금은 이 몸에 맞는 표정을 짓는 것뿐이었다.
치호는 한참 동안 내 옆에 앉아 있었다.
말없이, 그저 옆을 지켜주는 식이었다.
그날 밤, 치호는 몰래 자기 몫의 음식 일부를 나눠줬다.
말린 고기 몇 조각이었다. 부족 안에서 이 정도 고기는 꽤 귀한 것이었다.
훈련생들에게 배급되는 몫도 그리 넉넉하지 않을 텐데, 그중 일부를 떼어온 것이었다.
"들켜도 몰라, 몰래 감췄으니까."
치호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주위를 한 번 살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고마워."
나는 진심으로 감사했다.
오랜만에 배가 조금이라도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고기를 씹는 동안 등의 통증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아까 그거, 도토리 얘기 있잖아."
치호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목소리를 낮추고, 주변을 한 번 더 둘러봤다.
"그거 진짜 나만 알아도 되는 거야?"
나는 잠시 생각했다.
이 아이는 나를 위해 아까 매를 나눠 맞을 뻔했다. 그리고 지금은 자기 먹을 것도 나눠주고 있었다.
'이 정도면 믿어도 될 것 같아.'
나는 그렇게 판단했다.
부족 안에서 처음으로, 나를 위해 뭔가를 내어주는 사람이었다.
"도토리 말고도... 버섯도 있어."
내가 말했다.
"어떤 버섯이 독이 있고 어떤 게 괜찮은지, 나는 구분할 수 있어."
"그걸 어떻게 알아?"
치호가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목소리에는 순수한 놀라움이 섞여 있었다.
나는 그 질문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사실을 말하면 치호가 믿을 수 있을까.
전생이라는 말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하지만 이 아이 앞에서만큼은, 조금 더 솔직해지고 싶었다.
치호의 눈은 여전히 나를 향해 있었다. 대답을 기다리는 눈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