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외문 제자들의 훈련장은 늘 소란스러웠다.
검을 부딪치는 소리와 서로를 격려하는 목소리가 뒤섞여 공기를 채우고 있었다.
흙바닥은 오래도록 밟혀 단단하게 굳어 있었고, 그 위로 땀 냄새와 쇳내가 눅눅하게 배어 있었다.
이도현은 그 가장자리에 조용히 서서 상황을 살폈다.
누구도 그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눈길을 주더라도 오래 두지 않았다.
'폐물 공자'라는 별명이 이곳까지 퍼진 지 오래였다. 무혼이 끊긴 자, 재능이 바닥을 친 자. 사람들은 그를 그렇게 불렀다.
이도현은 그 시선들을 굳이 피하지 않았다. 피할 필요가 없었다. 아버지는 늘 말했다.
'남의 평가에 흔들리는 자는, 제 발로 서지 못하는 자다.' 그 말을 되새기며, 그는 훈련장의 흐름을 눈으로 좇았다.
"저기, 폐물 공자님 아니십니까?" 누군가 다가와 물었다.
한소은이었다. 마족사냥팀의 리더로, 무사 제8중의 경지에 오른 외문 제자였다.
청순한 인상이었지만, 눈빛만은 단단했다. 검을 쥔 손에 박인 굳은살이, 그녀가 그 경지까지 오기 위해 흘린 시간을 짐작케 했다.
"안녕하세요." 이도현이 짧게 답했다.
존댓말과 단정한 태도, 그것은 궁지에 몰려도 흐트러지지 않으려는 그만의 방식이었다.
한소은은 잠시 그를 살피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소문과는 좀 다르시네요. 정신이 이상해졌다던데...."
"소문은 대체로 진실과 다르죠." 이도현이 담담하게 답했다.
그 말투에 한소은은 작게 웃었다.
웃음이라기보다는, 예상 밖의 대답에 대한 짧은 반응이었다.
"마음에 드는 대답이네요. 여긴 왜 오셨어요? 여긴 폐물 공자님이 올 곳이 아닌데."
"몇 가지 알아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서창호와 서창기, 두 분에 대해서요."
한소은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방금까지의 여유가 사라지고, 눈빛이 날카롭게 그를 훑었다.
"...그 이름을 왜 물으시는 거죠?" 그녀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훈련장의 소음이 그대로였지만, 두 사람 사이의 공기만큼은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
이도현은 솔직하게 말했다.
선지목 일행에게 절벽에서 떨어졌던 그날, 근처에서 서창호 무리를 봤다는 목격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그것을 어렵게 캐낸 소문으로 확인한 참이었다. 며칠에 걸쳐 하급 무사들의 입을 하나씩 뒤진 결과였다.
아무도 먼저 나서서 말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술 한 병, 은자 몇 냥으로 대신했다.
값을 치르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정보라는 것을,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한소은은 주변을 살피고 목소리를 낮췄다.
검을 맞대던 제자들 몇이 슬쩍 이쪽을 쳐다봤다가, 다시 제 훈련으로 돌아갔다.
"서창호는 내문 제5석입니다. 검환을 각성한 무도 제7중 고수예요. 함부로 건드릴 상대가 아니에요."
"서창기는요?"
"외문 제자입니다. 서창호와 성이 같지만, 정확한 관계는 알려지지 않았어요. 다만...." 한소은이 잠시 말을 멈췄다.
"다만 뭡니까." 이도현이 물었다.
"두 사람 다, 사람이 다치는 걸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성정이에요. 특히 서창기는 사냥 중에 팀원을 미끼로 쓴다는 소문이 있어요. 작년에 그 팀에 있던 사람 하나가, 그 사냥 이후로 다시는 훈련장에 나오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고요."
이도현의 눈빛이 순간 차가워졌다.
'절벽 사건과 무관하지 않다.' 그는 그렇게 판단했다.
선지목이 그를 밀도록 시킨 배후에, 서창호와 서창기가 있을 가능성이 커졌다.
그날 절벽 아래로 떨어지던 순간이 다시 떠올랐다. 바람 소리, 그리고 등을 밀던 손의 힘.
그 손의 주인이 선지목이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문제는 그 뒤에 누가 있었는가였다.
"...왜 그렇게까지 알아보시는 거예요?" 한소은이 물었다. 조심스러운 물음이었다.
"제게 있었던 일을 정리하고 싶어서요." 이도현이 답했다.
그 이상의 말은 하지 않았다. 아직은 모든 걸 드러낼 때가 아니었다.
'섣부른 확신은 독이 된다.' 아버지의 가르침이 또 한 번 그의 머릿속을 스쳤다.
+++
마침 훈련장을 지나던 외문 제자 둘이 다가왔다.
정하준과 장태산이었다. 둘 다 한소은과 같은 마족사냥팀이었다.
정하준은 체격이 크고 목소리가 우렁찼다. 장태산은 그보다 마른 체형이었지만, 눈빛에 얕은 비웃음이 늘 걸려 있었다.
"소은아, 사냥팀 인원이 하나 부족한데." 정하준이 말했다.
"류하가 발목을 삐끗해서 이번 주는 못 나온다고 하더라." 장태산이 덧붙였다.
그러다 이도현을 발견하고, 둘의 눈빛이 동시에 변했다.
"이번 주 혼령림 초입 순찰인데, 폐물 공자님이 같이 가시면...." 장태산이 슬쩍 웃으며 말을 흐렸다.
비웃음이 섞인 제안이었다. 진심으로 그를 팀원으로 받아들이겠다는 말이 아니었다.
"거긴 사람 하나 없어도 무사히 돌 만한 곳도 아닌데, 저런 몸으로 괜찮으시겠습니까?" 정하준이 낮게 웃으며 물었다.
두 사람의 시선에는 조롱과 함께, 은근한 기대가 섞여 있었다. 이도현이 스스로 물러나기를 바라는 기대였다.
이도현은 오히려 그 제안을 붙잡았다.
"가겠습니다." 그가 답했다.
장태산의 웃음이 어색하게 굳었다. 진짜로 승낙할 줄은 몰랐던 얼굴이었다.
정하준도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조롱으로 던진 말이 되돌아와 제 발등을 찍은 셈이었다.
"...진심이십니까?" 정하준이 되물었다.
"진심입니다." 이도현이 짧게 답했다.
한소은은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대신 위험해지면 바로 물러나세요. 혼령림 초입이라고 해도 마족이 없는 건 아니니까."
그녀의 목소리에는 걱정과 경계가 반쯤씩 섞여 있었다. 이 사람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아직 판단이 서지 않은 듯했다.
이도현은 대답 대신 짧게 고개를 숙였다.
정하준과 장태산은 서로 눈짓을 주고받더니, 별 흥미 없다는 듯 자리를 떴다.
훈련장의 소음이 다시 그 자리를 채웠다.
혼령림은 그가 죽었다가 살아 돌아온 곳이었다.
절벽에서 떨어진 몸이 마지막으로 닿았던 땅이자, 그의 삶이 완전히 뒤바뀌기 시작한 자리였다.
그리고 그 안에 서창호와 서창기의 흔적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는 직감으로 느끼고 있었다.
목격자의 증언이 사실이라면, 그 무리가 그날 그 근처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 확인할 방법이 있을지도 몰랐다.
'그곳으로 다시 들어간다. 이번엔 내 발로.' 그는 조용히 그렇게 되뇌었다.
한 번은 등이 밀려 떨어졌던 곳. 이번에는 제 발로 걸어 들어가는 곳.
그 차이가, 그에게는 작지 않았다.
복수의 실마리가, 아주 조금씩 손에 잡히기 시작했다.
하지만 혼령림이 어떤 곳인지,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살아 나온 것 자체가 요행이었던 곳.
이번에는 그 요행을 다시 기대할 수 없다는 것도, 그는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