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빙의했더니 무림 최약체였다

5화

혼령림 초입은 안개가 짙었다. 발밑까지 차오른 백색의 안개가 걸음마다 흩어졌다가 다시 뭉쳤다. 나무들은 축축했고, 이끼 낀 바위마다 물기가 배어 있었다. 마족사냥팀 다섯 명이 조를 이루어 산길을 올랐다. 한소은이 앞장섰고, 정하준과 장태산이 그 뒤를, 이도현은 후미에서 걸었다. 대열의 순서는 처음부터 그렇게 정해졌다. 앞장서는 자, 중간을 지키는 자, 그리고 맨 뒤에서 걷는 자. 이도현의 위치는 특별한 의미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무리에서 가장 약한 자가 항상 그 자리에 서게 된다는 것을. 실력이 부족한 자를 후미에 두는 건, 만약의 사태가 벌어졌을 때 가장 먼저 버려도 되는 자리이기 때문이었다. "여기서부터는 하급 마족들이 종종 출몰해요. 방심하지 마세요." 한소은이 낮게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긴장감이 묻어 있었다. 실전 경험이 있는 자의 신중함이었다. 이도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주변을 살폈다. 지형이 어딘가 눈에 익었다. 그가 절벽에서 떨어져 눈을 떴던 그 골짜기와 멀지 않은 곳이었다. 나무의 배열, 바위의 각도, 심지어 안개가 고이는 방향까지도 어딘가 낯설지 않았다. '우연이 아니다.' 그는 속으로 되뇌었다. 사냥팀의 경로가 하필 그 골짜기 근처로 정해진 것부터가 이상했다. +++ 한 시간쯤 지났을 무렵, 장태산이 갈라진 길에서 걸음을 멈췄다. "저쪽에 동굴이 있는데, 마족 서식지로 알려진 곳이에요. 우회하는 게 낫겠어요." 그가 말했다. 한소은도 고개를 끄덕이며 방향을 바꾸려 했다. "맞아요. 저 동굴 근처는 이제껏 마족 사냥팀들이 함부로 접근하지 않았어요. 하급 마족이라도 무리로 뭉쳐 있으면 위험해요." 정하준이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그 시선이 이도현에게 잠시 머물렀다가 다시 앞을 향했다. '저 자식, 왜 저렇게 여유가 넘치지.' 정하준은 속으로 생각했다. 절벽에서 떨어진 걸 알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걸어 다니는 모습이 신경에 거슬렸다. 그런데 그 순간, 정하준이 갑자기 낯빛을 바꾸며 소리쳤다. "저기, 마족이다!" 숲 사이에서 붉은 눈을 가진 짐승형 마족이 튀어나왔다. 으르렁- 낮게 울리는 소리와 함께, 마족은 곧장 무리의 가장 뒤쪽, 이도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상하다.' 이도현은 순간 그 궤적을 읽었다. 마족의 움직임이 처음부터 자신만을 노리고 있었다. 다른 넷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오직 그를 향해 짐승의 본능이 곤두선 채 달려오고 있었다. '하급 마족이 무작정 아무나 노리진 않는다. 뭔가에 유도된 것이다.' 그는 그렇게 판단했다. 장태산이 재빨리 검을 뽑아 마족을 막아섰다. 스릉- 검이 뽑히는 소리가 짧게 울렸다. 퍽- 검이 마족의 옆구리를 베었지만, 완전히 제압하진 못했다. 마족은 상처를 입고도 눈을 부릅뜬 채 다시 이도현 쪽으로 몸을 틀었다. "뒤로 물러나요!" 한소은이 소리치며 달려왔다. 그녀의 검이 허공을 갈랐다. 슈칵- 이도현은 뒤로 몸을 낮추며 간격을 벌렸다. 무혼이 없는 몸이었지만, 게임에서 다져진 반응 속도만큼은 여전했다. 수백 번의 전투 속에서 몸에 새겨진 감각이, 무공 없이도 최소한의 회피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선진우가 살아 있을 때 배운 것 중 하나였다. 힘이 없어도, 눈이 살아 있으면 죽지 않는다.' 그는 그렇게 되새겼다. 마족은 결국 한소은과 장태산의 협공에 밀려 숲속으로 다시 도망쳤다. 붉은 눈이 나무 사이로 사라질 때까지, 그 시선은 끝까지 이도현을 향해 있었다. +++ 혼란이 가시고 마족을 겨우 몰아낸 순간, 숲 저편에서 서창기가 걸어 나왔다. 표정에 미소가 걸려 있었다. 지나치게 여유로운 미소였다. 한소은의 검이 아직 떨림을 멈추지 않았을 때였다. 그녀가 먼저 고개를 들어 서창기를 발견했다. "운이 좋군, 폐물." 서창기가 말했다. 그의 눈빛이 조롱과 실망을 함께 담고 있었다. 마치 살아남은 것 자체가 불쾌하다는 눈빛이었다. 한소은의 얼굴이 굳었다. "서창기, 방금 그 마족... 당신이 유도한 거예요?" 그녀가 낮게 물었다. "글쎄, 산속의 짐승이 어디로 튈지 누가 알겠나." 서창기가 시치미를 뗐다. 그러면서도 그의 시선은 계속 이도현에게 머물러 있었다. 사냥이 실패한 것에 대한 짜증이 눈가에 묻어 있었다. 장태산이 검을 든 채 서창기를 경계했다. "공자님, 이곳은 사냥팀의 임무 구역입니다. 무슨 볼일이신지요." "볼일이라... 그저 산책이지." 서창기가 웃음을 흘렸다. "저놈이 어떻게 뒈지는지, 궁금해서 말이야." 이도현은 그 말투에서 확신을 얻었다. '절벽 사건과 이 마족, 둘 다 우연이 아니다.' 그는 그렇게 결론지었다. 서창기가 이 자리에 나타난 것 자체가, 계획된 함정이었다는 증거였다. 마족이 유독 자신만을 노린 것도, 서창기가 하필 이 시점에 나타난 것도, 전부 하나의 그림 속에 짜인 조각들이었다. '절벽에서 밀어놓고도, 아직 확인이 안 됐다는 건가.' 이도현은 담담히 생각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몸으로 확인하러 온 것이었다. +++ 그리고 뒤이어, 숲 안쪽에서 또 다른 발소리가 들려왔다. 느리고 무거운 걸음이었다. 검을 든 자의 걸음이었다. 한소은이 그 발소리의 무게를 먼저 알아챘다. 그녀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 "저건..." 서창호였다. 검환을 각성한 눈빛이, 안개 속에서도 서늘하게 빛났다. 걸음마다 안개가 갈라졌다가 다시 모여드는 것이, 마치 그 자체로 하나의 기세처럼 보였다. "오랜만이군, 선진우." 서창호가 낮게 웃으며 말했다. "절벽에서 떨어졌는데도 살아 있다니, 목숨 하나는 질기구나." 정하준과 장태산은 감히 나서지 못했다. 검환의 고수, 무도 제7중의 존재감이 두 사람의 발을 그 자리에 얼어붙게 만들었다. 한소은이 그와 이도현 사이를 막아서려 했지만, 서창호의 눈빛 한 번에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무도 제7중과 무사 제8중, 그 격차는 너무나도 뚜렷했다. 겨우 한 걸음 나서려던 그녀의 다리가 그대로 굳어버렸다. "물러나라. 이건 네가 낄 자리가 아니다." 서창호가 그녀를 향해 한마디를 던졌다. 조용했지만, 명령이었다. 한소은은 이를 악물었다. 검을 쥔 손이 하얗게 변했지만, 그녀는 정말로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서지 못했다. "오늘은 확실하게 끝내야겠다." 서창호가 검을 뽑았다. 스르릉- 칼날이 뽑혀 나오는 소리가 안개를 갈랐다. 그 소리 하나에, 주변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이도현은 뒤로 물러설 곳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등 뒤로는 마족 서식지 동굴, 앞으로는 검환의 고수. 퇴로는 이미 끊겨 있었다. '뒤로 가면 마족의 서식지, 앞으로 가면 검환. 선택할 수 있는 방향이 없다.' 그는 냉정하게 상황을 정리했다. 절벽에서 떨어졌을 때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아니, 그때는 최소한 선택의 여지조차 없었다. 지금은 눈앞에서 죽음이 다가오는 걸 지켜보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 달랐다. '여기서 죽으면, 두 번째 죽음이 되겠군.' 그는 속으로 그렇게 되뇌었다. 하지만 물러설 생각은 없었다. '강자에게 굴복하지 않는 것, 그것이 내가 살아온 방식이었다.' 전생, 스승이 남긴 말이 문득 떠올랐다. 무릎을 꿇는 순간, 그 무릎은 영원히 굽어 있게 된다는 가르침이었다. 서창호의 검이 서서히 그를 향해 겨눠졌다. 검끝이 안개를 가르며 이도현의 목 앞에서 정지했다. 그 뒤로, 서창기의 비웃음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엔 절벽 밑까지 갈 필요도 없겠군." 서창기의 목소리에는 즐거움이 묻어 있었다. 마치 흥미로운 구경거리를 앞둔 듯한 태도였다. 이도현은 조용히 숨을 골랐다. 숨을 들이켜고 내쉬는 그 짧은 순간에도, 그는 주변을 살피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서창호의 검끝, 그 발의 위치, 체중이 실린 방향. 동굴 안쪽 깊은 어둠에서, 무언가 오래된 기운이 꿈틀거리는 것을 그는 아직 알지 못했다. 안개보다 더 짙은 어둠이 동굴 속에서 서서히 깨어나고 있었지만,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 자리에 아무도 없었다. 생사를 건 싸움이, 바로 그 순간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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