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그날 이후로 사흘이 지났다.
등짝의 통증은 그대로였다. 밤에 자려고 누우면 등뼈 사이로 뭔가 지글지글 끓는 느낌이 났고, 아침에 일어나면 또 멀쩡해졌다. 마치 몸속에 작은 화로 하나가 들어앉아 있는 기분이었다.
병원에서는 타박상이라고만 했다.
CT며 엑스레이며 아무 이상 없다는 소리만 되풀이했다.
간호사는 내 등을 톡톡 두드리며 "여기 아파요?" 물었고, 나는 "네" 했고, 그러면 간호사는 종이에 뭔가를 적었다. 그 종이가 뭘 위한 건지는 끝까지 알 수 없었다.
의사 선생님이 마지막에 던진 한마디가 아직도 귀에 남았다.
"학생, 요즘 스트레스가 많나 보네."
거울 보는 표정으로 나를 살피던 그 눈빛이 아직도 생생했다. 뭐라 말해야 했을까. 사실 스트레스의 원인은 시험이 아니라 하늘에 갈라진 균열이랍니다, 라고 했으면 그 자리에서 정신과로 넘겨졌을 게 뻔했다.
스트레스가 많은 건 사실이었다. 다만 원인이 시험이 아니라 하늘에 갈라진 균열이라는 건 말할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도, 창밖으로 지나가는 익숙한 간판들을 보면서도, 나는 계속 그 균열을 생각했다. 붉은 빛이 뿜어져 나오던 그 틈. 그리고 그 안에서 흘러나온 이상한 열기.
집에 와서도 그 목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다시 인사드립니다. 저를 부르실 때는 그냥 '목소리'라고 하시면 됩니다.]
"이름이 없어요?"
[제 이름은… 아직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뭐 그런 대답이 다 있나. 이름이 없는 게 아니라 확신이 안 선다니. 그게 말이 되는 건가. 나도 내 이름이 뭔지 확신이 안 서는 날이 있었나 곱씹어봤는데, 없었다. 이도훈은 그냥 이도훈이었다.
"확신이 안 선다는 게 뭔 소리예요. 이름이 있으면 있는 거고 없으면 없는 거지."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다만 확실한 건, 저는 당신을 돕기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돕는다는 말을 들으니 왠지 더 의심스러워졌다. 세상에 공짜로 돕는 존재가 어디 있나. 학원 선생님도, 과외 선생님도 다 돈 받고 도와주던데.
[중요한 건 지금 당신의 몸속에서 신력이 눈을 뜨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니까 그게 뭔데요. 초능력? 마법? 아니면… 그, 헐크 같은 거예요?"
[비슷하지만 다릅니다. 원계에는 없는 힘입니다. 신계에서 건너온 힘이라고 해두겠습니다.]
"신계요? 그거 뭐, 하늘에 신들이 사는 그런 데예요?"
[정확한 표현입니다.]
정확한 표현이라니. 이런 걸 정확하다고 하면 대체 부정확한 설명은 뭐가 나오려고.
신계라는 단어가 나왔을 때, 그 궁전과 그 붉은 기둥, 피 흘리던 남자가 다시 떠올랐다. 눈을 감으면 아직도 그 장면이 선명했다. 기둥에 등을 기댄 남자, 상처에서 흘러나오던 검붉은 피, 그리고 그 눈빛. 슬픈 것도 아니고 화난 것도 아닌, 그저 견디는 눈빛.
"저번에 본 그 환상… 그거 진짜였어요?"
[그렇습니다. 태현 신존께서 겪으신 전투의 파편이 당신에게 전달된 겁니다.]
"파편이요? 그게 뭐, 기억 조각 같은 거예요?"
[비슷합니다. 다만 감정과 감각까지 포함된 조각입니다.]
그러니까 그 남자가 겪은 고통을 나도 똑같이 느꼈다는 거잖아. 등짝이 다시 욱신거렸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타이밍이 너무 절묘했다.
태현. 그 이름을 다시 들으니 가슴 한켠이 이상하게 저릿했다.
왜인지는 몰랐다. 그냥 아는 사람 같은 기분이었다.
만난 적도 없는데, 얼굴도 제대로 못 봤는데, 이름 하나만 들었을 뿐인데 왜 이런 느낌이 드는지 나도 몰랐다.
"그 사람, 태현이라는 사람, 지금 어디 있어요?"
[…그 질문에는 지금 답해드릴 수 없습니다.]
"왜요."
[아직 때가 아닙니다.]
아, 진짜. 이 목소리는 뭐 하나 물으면 늘 이런 식이다. 확신이 안 서고, 때가 아니고. 이럴 거면 대체 왜 나한테 말을 거는 건지.
그날 밤, 나는 그 이상한 질문들을 곱씹으며 잠들었다. 다음 날이 시작될 줄은 몰랐다. 등교 준비를 하면서도 어제와 다를 게 없는 하루라고 생각했다. 교복 입고, 가방 메고, 버스 정류장까지 뛰어가고. 그런 평범한 아침이었다.
다음 날 등교길, 평소와 다른 게 하나 있었다.
교문 앞에 낯선 승용차가 세워져 있었다.
검은 세단, 번호판이 없었다. 창문은 짙게 코팅되어 안이 하나도 안 보였다. 그 옆에 정장을 입은 남자 둘이 서 있었다.
딱 봐도 학생 상담 나온 선생님들은 아니었다. 넥타이 색부터가 학교 선생님들이 매는 색이 아니었다. 짙은 회색, 딱딱한 각.
주변 학생들도 다들 그 차를 힐끗거리며 지나갔다. 하지만 아무도 멈춰서지 않았다. 저런 차는 괜히 시선 주면 안 된다는 걸 다들 아는 눈치였다.
"이도훈 학생 맞습니까?"
한 명이 다가와 물었다. 목소리가 서늘했다. 마치 냉동실에서 방금 꺼낸 것처럼.
"…누구세요?"
"국가 이상현상 대응팀입니다. 며칠 전 사고 현장에서 관측된 파장에 대해 몇 가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이 사람들, 그날 그 간판 사건을 알고 있다는 거잖아.
내 심장이 갈비뼈를 두드리는 소리가 귀까지 들렸다.
[대답을 조심하십시오. 저들이 신력을 감지하는 장비를 갖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지금 이 상황에 조심하라고밖에 안 하냐. 좀 더 구체적으로 알려주면 안 되나. 뭘 어떻게 조심하라는 건지.
"저들이 든 저 검은 가방, 저것도 그 장비예요?"
[아마도 그럴 겁니다.]
아마도라니. 진짜 도움이 안 되는 목소리다.
"저는 그냥 지나가다 간판이 떨어져서 좀 놀랐을 뿐인데요."
최대한 태연하게 말했지만,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남자가 나를 위아래로 훑었다. 그 시선이 꼭 CT 기계 같았다. 뭔가를 스캔하는 것처럼, 놓치는 것 없이.
"그래요? 그럼 잠시 저희랑 같이 가주시겠습니까."
"저 지금 학교 가야 하는데요."
"오래 안 걸립니다."
오래 안 걸린다는 말은 세상에서 제일 못 믿을 말이다. 학원 선생님도, 치과 의사도, 심지어 우리 담임도 다 그랬다. 오래 안 걸린다고 하고선 한 시간씩 잡아먹었다.
다른 한 남자가 뒤에서 검은 가방을 열었다. 안에서 작은 기계가 삐이익, 하고 신호음을 냈다. 그 소리를 듣자 남자의 눈빛이 순간 날카로워졌다.
"수치가 반응합니다."
"…그게 뭔데요."
내 목소리가 조금 더 떨렸다.
"별거 아닙니다. 협조해주시면 됩니다."
별거 아니라는 말과 그 표정이 전혀 안 맞았다. 별거 아니면 저런 눈으로 안 보지.
그때였다. 골목 끝에서 바람이 훅 불었다.
먼지가 소용돌이치더니, 그 자리에 사람이 서 있었다.
키가 크고, 은은한 백색 로브를 걸친, 얼굴은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애매했다. 눈매만 이상하게 익숙했다.
바람이 걷히자 로브 자락이 천천히 내려앉았다. 그 짧은 순간, 대응팀 남자들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굳은 것도 아니고 놀란 것도 아니고, 그냥— 얼어붙어 있었다. 숨소리조차 안 들렸다.
"거기서 뭘 하고 계십니까."
낮고 담담한 목소리가 대응팀 두 사람을 향했다.
그들이 홱 몸을 돌리더니, 순식간에 얼어붙은 것처럼 굳었다.
"이, 이건…"
한 명의 손이 검은 가방 쪽으로 향하다가 멈췄다. 마치 그 손이 스스로 멈춰버린 것처럼.
[유하 신왕이시군요.]
머릿속 목소리가 다급하게 말했다. 평소엔 그렇게 느긋하게 뜸을 들이던 목소리가 이렇게 급하게 말하는 건 처음이었다.
"신왕…?"
입 밖으로 새어나간 중얼거림에 그 사람— 유하 신왕이라던— 이 나를 바라봤다.
그 시선에 마주치자 온몸이 순간 얼어붙는 느낌이 들었다. 뜨거운 것도 아니고 차가운 것도 아닌, 그냥 압도적인 무게였다.
"이도훈, 이라고 하셨습니까."
"…네."
"저희 이야기를 좀 나눠야 할 것 같습니다."
말투는 정중했다. 그런데 그 정중함이 오히려 더 무섭게 느껴졌다.
공무원도 아니면서 왜 이렇게 예의를 차리는 건데. 예의가 많을수록 더 무서운 법이다, 라는 걸 나는 그동안의 인생에서 배운 적이 있었다.
뭐야, 학교도 못 가게 만드는 게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똑같잖아.
대응팀 남자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검은 세단의 문도 열리지 않았다. 마치 시간이 그들 주변에서만 멈춘 것 같았다.
"저기, 저 지각인데요."
말하면서도 이 상황에서 지각 타령이나 하고 있는 내가 어이없었다. 하지만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태현 신존님의 마지막 선택이 학교 지각 따위로 흔들릴 거라 생각지 않습니다."
그 말이 귀에 박혔다.
마지막 선택.
등짝의 통증이 다시 욱신거렸다.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무언가 말하려는 듯 잠시 멈췄다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대답보다 더 무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