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장로님, 벌써 후회되시죠

5화

그날 밤, 장수현과 그 사내의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잦아든 뒤로도 나는 오래도록 짚더미 위에서 눈을 뜬 채 누워 있었다. 귀뚜라미 우는 소리와 저 멀리 산등성이를 타고 내려오는 바람 소리만이 오두막의 정적을 채우고 있었는데, 그 정적 속에서 나는 자꾸만 같은 문장을 곱씹었다. '단전, 정말로 스스로 굳은 게 맞나.' 그 한마디가 마치 못처럼 가슴 어딘가에 박혀서, 빼내려 할수록 더 깊이 들어가는 것 같았다. 천장의 낡은 서까래 틈으로 별빛이 새어 들어왔고, 나는 그 희미한 빛을 눈으로 따라가며 숨을 죽였다. 손끝이 차가웠다. 아니, 차가운 것이 아니라 무언가가 빠져나간 자리처럼 텅 비어 있었다. 나는 그날 이후로 박도현이 가르쳐준 호흡을 다시 떠올려보았고, 그 호흡의 흐름이 어딘가 이상하게 뒤틀려 있었다는 사실을, 그제야 비로소 하나씩 되짚어볼 수 있었다. 숨을 들이쉴 때 배꼽 아래로 모여야 할 기운이 어째서 가슴께에서 흩어져버리는 것인지, 그 이유를 나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시작이었을 뿐, 진짜 답은 어디에도 없었다. ••• 그날 이후로 여섯 해가 흘렀다. 계절은 여덟 번 바뀌었고, 약초원의 습지는 봄마다 새로운 초록을 밀어 올렸다가 가을마다 다시 스러지기를 반복했으며, 나는 그 반복 속에서 열 살의 몸으로 열여섯의 몸이 되었다. 장수현의 주먹은 여전했지만, 나는 그 주먹을 피하는 법을 배웠고, 피할 수 없을 때는 버티는 법을 배웠다. 맞는 것도 요령이 있다는 것을, 그 여섯 해 동안 몸으로 익혔다. 턱을 당기고 어깨를 움츠려 급소를 가리는 법, 넘어질 때 최대한 등을 둥글게 말아 충격을 분산시키는 법, 그런 것들을 나는 몸으로 배웠다. 처음엔 그저 살아남기 위한 지식이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은 나에게 다른 무엇이 되어가고 있었다. 낮에는 약초를 캐고 거름을 나르고 장수현의 심부름을 했으며, 밤이면 홀로 오두막에 앉아 낮에 본 약초의 성질을 하나씩 되새겼다. 어떤 것은 쓴맛이 나고 어떤 것은 매운 향을 풍겼으며, 또 어떤 것은 겉으로는 잡초와 다를 바 없어도 뿌리를 자르면 은은한 붉은 진액이 흘러나왔다. 그 하나하나를 나는 손끝의 감각과 코끝의 후각으로 구분해냈고, 시간이 지나자 그것은 마치 몸에 새겨진 문자처럼 자연스러워졌다. 약초원에는 이름도 없는 잡초들 사이에 진귀한 것들이 섞여 자라고 있었는데, 장수현은 그것들을 캐다가 대장로에게 바치거나 몰래 내다 팔기도 했다. 그는 내게 캐는 법을 알려주면서도, 정작 그 약초가 무엇에 쓰이는지는 한 번도 설명해주지 않았다. "그냥 캐라면 캐. 폐인이 뭘 안다고."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입을 다물었지만, 속으로는 오히려 그가 모르는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다는 사실에 조용한 만족을 느꼈다. 나는 그 과정에서 자연히 약재의 성질을 눈으로 익혔고, 어느 순간부터는 냄새만으로도 그 약초가 몸의 어느 부위에 작용하는지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단전이 이미 굳었다면.' 그 생각이 처음 떠오른 건, 열세 살이 되던 해 겨울이었다. 손끝이 유난히 뜨거워, 얼어붙은 우물물에 손을 담가도 곧 다시 데워지는 내 체질을 새삼 이상하게 여기던 참이었다. 다른 아이들은 겨울이면 손이 얼어 터지기 일쑤였으나, 나는 오히려 손끝만은 늘 미지근한 온기를 품고 있었다. '단전이 아니라 다른 곳에 기를 담을 수는 없는 걸까.' 그 생각은 처음엔 그저 어린아이의 헛된 상상에 불과했지만, 나는 그것을 버리지 않았다. 버릴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 열네 살 여름, 나는 처음으로 약초원 구석에 몰래 숨겨져 있던 작은 밀실에서 이름 없는 붉은 뿌리를 발견했다. 장수현이 그것을 발견하지 못한 이유는 단순했다, 그 밀실은 오래전 폐쇄된 지하수로의 입구였고, 잡초에 덮여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습기 찬 흙냄새와 곰팡이 냄새가 뒤섞인 그 좁은 통로를 지나, 나는 손끝으로 벽을 더듬어가며 안쪽 깊숙한 곳까지 들어갔었다. 그곳에서 마주한 붉은 뿌리는 마치 핏줄을 그대로 뽑아놓은 것처럼 선명한 빛깔을 띠고 있었고, 나는 그 낯선 생김새에 잠시 망설였으나 결국 손을 뻗었다. 나는 그 뿌리를 씹어보았고, 순간 목구멍부터 배 속까지 불이 붙는 듯한 열기가 치솟았다. - 콸콸! 피가 거꾸로 솟는 듯한 감각과 함께 나는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었고, 사흘을 앓아누웠다. 장수현은 내가 병이 든 줄 알고 발로 몇 번 걷어차며 게으름을 피운다 욕했을 뿐, 그 이상의 관심은 주지 않았다. "게을러 터진 놈, 앓는 척한다고 밥을 줄까 보냐." 그 말을 들으며 나는 눈도 뜨지 못한 채 숨만 겨우 몰아쉬었다. '죽을 뻔했다.' 그러나 정신이 든 뒤, 나는 이상한 것을 깨달았다. 손끝의 열기가 예전보다 훨씬 뚜렷해졌고, 무거운 약초 자루를 들 때 팔이 예전만큼 힘겹지 않았다. 단전은 여전히 굳어 있었다. 그러나 몸의 다른 곳에서, 아주 미미하게,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그 붉은 뿌리의 이름을 나는 나중에야 알았다, 혈근초(血根草)라 불리는 것으로, 본디 축기의 초기 단계에 있는 수행자들이 조심스럽게 소량만 복용하는 극양(極陽)의 약재였다. 중품 영근을 지닌 자가 정상적인 방식으로 그것을 복용했다면 단전에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나, 나의 단전은 이미 완전히 고착되어 그 기운을 담을 그릇이 없었다. 그런데도 몸은 그 기운을 흡수했다. '단전이 아니라 몸 전체가 그릇이 될 수 있다면.' 나는 그날 이후로 매일 밤, 짚더미 위에 앉아 눈을 감고 손끝의 열기를 온몸으로 퍼뜨리는 연습을 시작했다. 처음엔 손목까지, 다음엔 팔뚝까지, 그리고 다음엔 어깨까지. 느리고, 지루하고, 대부분의 밤은 아무 성과도 없이 지나갔다. 어떤 밤은 손끝이 아려올 정도로 집중해도 열기가 손등을 넘어가지 못했고, 그런 날이면 나는 이불도 없이 그대로 짚더미에 쓰러져 잠들곤 했다. 하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멈출 이유가 없었다. ••• 열여섯이 된 지금, 나는 더 이상 예전의 왜소한 아이가 아니었다. 키는 훌쩍 자랐고, 팔다리에는 노동으로 다져진 근육이 붙었으며, 손바닥에는 두꺼운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장수현은 여전히 나를 폐인이라 부르며 걷어찼지만, 그 발길질에 예전처럼 쉽게 나뒹굴지는 않게 되었다. 오히려 몇 번은 그의 발이 내 팔뚝에 닿았을 때, 그가 먼저 얼굴을 찡그리며 뒷걸음질을 친 적도 있었다. 그는 그것을 눈치채지 못한 척했지만, 나는 그 짧은 순간의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 밤마다 나는 몰래 지하수로의 밀실로 내려가 남은 약초 조각들을 조금씩 씹으며 몸 곳곳에 열기를 흘려보내는 수련을 반복했고, 그 결과는 서서히, 그러나 분명하게 쌓여가고 있었다. 손끝만이 아니라 이제는 손바닥 전체가, 팔 전체가 은은한 열기를 품고 있었다. 가끔은 그 열기가 가슴 한복판까지 차오르는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때면 나는 숨을 길게 내뱉으며 열기를 다시 팔 끝으로 밀어내는 연습을 했다. '이것이 무엇이 되어가는지 나조차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이든, 나는 그것을 계속 밀고 나가야 했다. 복수를 위해서라도,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그날 아침, 나는 평소처럼 약초 자루를 메고 밀실을 나서다가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안개가 채 걷히지 않은 약초원 마당에, 장수현이 오두막 앞에서 낯선 사내와 함께 서 있었는데, 그 사내의 옷차림이 낯익었다. 허리에 찬 검, 그리고 정갈하게 묶은 머리. 아침 햇살이 그의 어깨 위로 비스듬히 떨어져, 검신에 반사된 빛이 눈을 찔렀다. 박도현이었다. 육 년 만에 다시 마주친 그 얼굴은 그때보다 훨씬 여유롭고 태연했으며, 나를 발견하자 입가에 그 익숙한, 능청스러운 웃음을 지어 보였다. "오랜만이구나, 서한아." 나는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손끝의 열기가 순식간에 어깨까지 치솟는 것을 느끼며, 겨우겨우 표정을 억누른 채 고개를 숙였다.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으나, 그것이 반가움 때문인지 경계심 때문인지 나조차 구분할 수 없었다. "큰사형을 뵙습니다." 장수현이 나를 향해 히죽 웃으며 말했다. "큰사형께서 특별히 널 보러 오셨다는데, 감사할 줄 알아라." 그의 목소리에는 평소와 다른 조심스러움이 섞여 있었는데, 그것이 오히려 나에게는 더 불길한 신호로 느껴졌다. 나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은 채, 박도현의 눈을 잠시 마주 보았다. 그 눈은 여전히 웃고 있었지만, 그 안에 담긴 것이 순수한 반가움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이제 알 수 있었다. 그 웃음 뒤에 무엇이 숨겨져 있는지, 나는 아직 알지 못했다. 그러나 육 년 전 그날 밤 들었던 목소리가, 다시 귓가에 되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단전, 정말로 스스로 굳은 게 맞나.' 박도현은 천천히 걸어와 내 앞에 섰다. 그의 손이 내 어깨 위에 얹혔을 때, 나는 온몸의 열기가 한순간에 얼어붙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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