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글자는 딱 여덟 자였다.
삼밭골 토지 구품신.
뜻을 헤아리기도 전에, 머릿속으로 무언가가 쏟아져 들어왔다.
마치 오래 잠가둔 창고 문이 한꺼번에 열린 것 같았다.
낯선 지식들이 순서 없이 밀려들었다.
진섭술, 험한 땅과 물을 건너듯 몸을 가볍게 움직이는 신통.
점병술, 사람과 짐승의 몸속 기운을 들여다보아 병과 약점을 짚어내는 신통.
부신술, 신의 기운 일부를 사물이나 짐승에 옮겨 실어 부리는 신통.
오곡풍등술, 논밭의 곡식을 재촉해 풍성히 자라게 하는 신통.
네 가지 이름과 그 쓰임새가 한꺼번에 머릿속에 새겨졌다.
이름만 새겨진 게 아니었다.
손끝을 어떻게 틀어야 하는지, 숨을 어디서 멈춰야 하는지, 심지어 눈을 어느 방향으로 두어야 기운이 새지 않는지까지.
마치 누군가 오랫동안 나를 가르쳐온 것처럼, 몸이 먼저 알고 있었다.
"...뭔 소리인지는 알겠는데."
나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이게 나한테 왜 붙습니까."
품계도 없고, 향도 없고, 제삿밥 한 그릇 받아본 적도 없는 놈한테.
대답은 없었다.
다만 연기가 서서히 옅어지며, 나는 다시 밑으로 훅 빨려 들어가는 감각을 느꼈다.
발밑이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붙잡을 것도 없이 그대로 떨어지는데, 이상하게 무섭지는 않았다.
눈을 떴을 때 나는 사당 바닥에 그대로 엎드려 있었다.
비는 어느새 잦아들었고, 천둥소리도 멀어져 있었다.
처마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만 똑, 똑, 규칙적으로 이어졌다.
몸을 일으키자 손끝이 조금 저릿했다.
손바닥을 펼쳐보니 아무 흔적도 없었다.
바늘로 찔린 자리도, 핏자국도, 아무것도.
"꿈이었나."
혼잣말을 하며 신상 쪽을 돌아보았다.
대나무 촉은 여전히 갈라진 틈새에 그대로 박혀 있었다.
꿈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나는 손끝에 조심스레 힘을 모아보았다.
부신술이라고 했던가.
기운을 손끝으로 몰아넣는 방법은 알겠는데, 그게 실제로 되는지는 다른 문제였다.
마당 한구석에 굴러다니던 조약돌 하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우웅.
돌이 아주 살짝, 손톱만큼 들썩였다.
"오."
작은 성취감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
신이 됐다는 실감보다 신기한 장난감을 얻은 기분이 먼저였다.
한 번 더 해보았다.
이번엔 조금 더 힘을 실었더니 돌이 데구르르 굴러 마당 가운데까지 밀려갔다.
"허, 이거 재밌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신상 앞으로 다가갔다.
뭉개진 코끝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려보았다.
흙과 돌로 빚어진 얼굴인데, 자꾸 보니 어딘가 서글서글한 인상이었다.
"영감님, 이제 제가 대신입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잠시 기다려보았다.
신상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당연한 일인데, 왜 서운한 기분이 드는지는 나도 몰랐다.
괜히 우쭐한 기분에 발밑의 작은 돌멩이를 하나 주워 신상 뒤편 처마 밑으로 무심코 던졌다.
별생각 없이 던진 돌이었다.
그저 손끝에 남은 힘을 어디에라도 풀고 싶었을 뿐.
딱, 소리와 함께 뭔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뒤따랐다.
낙엽 더미가 아니라, 살아있는 것이 움직이는 소리였다.
가랑잎이 부딪히는 소리와는 결이 달랐다.
무게가 있는, 숨을 쉬는 것이 움직이는 소리.
나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손끝에 남아 있던 힘도 순식간에 식었다.
처마 그늘 속에서 누런 털가죽이 꿈틀거리는 것이 보였다.
크기가 작지 않았다.
적어도 개 한 마리는 되어 보이는 덩치가, 어둠 속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