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학교 앞 술집은 금요일 밤답게 사람들로 미어터졌다. 낮은 천장에 매달린 백열등이 주황빛으로 실내를 물들였고,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사람들의 웃음소리에 절반쯤 묻혀 있었다. 나무 테이블마다 맥주잔이 부딪히는 소리, 안주 접시가 긁히는 소리, 누군가의 과장된 웃음소리가 뒤엉켜 하나의 소음 덩어리를 이루고 있었다.
윤소이와 한지아는 이미 구석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 서로의 잔에 술을 채워주고 있었다. 소이의 웃음소리가 유독 컸고, 지아는 그 옆에서 손톱을 만지작거리며 문 쪽을 힐끔거렸다. 도윤과 서준이 문을 밀고 들어서자, 소이가 먼저 손을 번쩍 들어 흔들었다.
"여기, 여기!"
두 사람이 테이블로 다가가는 짧은 순간에도, 서준의 걸음은 여느 때처럼 느긋했고 도윤의 걸음은 그보다 반 박자쯤 늦게 따라붙었다. 자리에 앉기도 전에 소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둘이 요즘 붙어 다닌다며?"
그 말에 지아가 눈을 반짝이며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테이블 위 촛불이 그녀의 얼굴 아래쪽을 밝히며 기묘한 그림자를 만들었다.
"진짜야? 사귀는 거야?"
도윤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답이랄 것도 없는 몸짓이었다. 서준은 자연스럽게 그의 옆자리에 앉으며 어깨를 슬쩍 감쌌다. 그 손이 어깨에 닿는 순간 도윤의 몸이 미세하게 굳었지만, 겉으로는 티가 나지 않았다. 이런 순간에는 늘 서준이 먼저 손을 뻗었고, 도윤은 뒤늦게 그 손의 온도를 인식하는 쪽이었다.
"진짜네, 세상에." 소이가 손뼉을 치며 웃었다. "강도윤이 연애를 다 하고."
술이 몇 잔 더 돌자 분위기는 점점 풀어졌다. 잔이 비면 누군가 다시 채웠고, 안주 접시는 어느새 반쯤 비어 있었다. 지아가 장난스럽게 도윤의 팔을 툭 치며 물었다.
"손도 잡아봐, 오빠. 진짜인지 보게."
그 말에 도윤은 잠시 망설였다. 테이블 아래 술잔의 물기가 손끝에 스며드는 감촉이 유독 선명하게 느껴졌다. 서준이 먼저 손을 내밀었으므로, 도윤은 그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손끝이 차가웠다.
지아는 그 어색한 손짓을 놓치지 않고 웃음을 터뜨렸다.
"뭐야, 그거 로봇이야? 손 잡는 게 그렇게 뻣뻣해?"
"야, 하지 마." 서준이 낮게 제지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소이도 웃음을 참지 못하고 거들었다.
"맞아, 도윤이 원래 좀 그렇잖아. 어릴 때부터 안아주려고 하면 도망갔잖아."
웃음소리가 테이블 위로 번졌다. 누군가 그 웃음에 맞장구를 치듯 잔을 부딪쳤고, 그 소리가 유리처럼 맑게 울렸다가 곧 소음 속으로 사라졌다. 악의는 없었지만, 그 웃음 하나하나가 도윤의 귓속에서는 다른 소리로 변환되고 있었다.
"진짜 연애는 할 수 있어?" 지아가 여전히 웃으며 물었다. "사귀는 척만 하는 거 아니야?"
그 말이 정확한 진실을 찌르고 지나갔다는 걸, 도윤은 얼굴이 하얗게 굳는 것으로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잔을 쥔 손끝이 가늘게 떨렸고, 테이블 아래로 시선을 떨군 채 입술을 깨물었다.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
한때 서준이 물은 적이 있었다.
"넌 왜 그렇게 사람 손을 못 잡아."
"그런 적 없어."
"지금도 그러고 있잖아."
그 사실을 깨달았더라면 달라지는 게 있었을까. 아마도 없었을 것이다. 도윤에게 타인의 손이란 늘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날아드는 것이었고, 그 온도를 가늠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굳어버리는 종류의 접촉이었다. 서준의 손만은 다르다고, 몇 번이나 스스로에게 되뇌었지만, 몸은 그 다짐을 따라주지 않았다.
*
사람들의 웃음소리, 술잔 부딪히는 소리, 음악 소리가 뒤섞여 귀를 먹먹하게 만드는 와중에도, 도윤은 그저 자신이 이 자리에서 얼마나 우스운 존재로 비치는지를 실감하고 있을 뿐이었다. 조명이 유독 얼굴 위로만 쏟아지는 것 같았다. 무대 위에 혼자 세워진 배우처럼, 대사를 잊은 채 서 있는 기분이었다.
누군가 자신의 어깨를 툭 치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긴장 풀어, 인마."
그 손이 닿는 순간 도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의자가 바닥에 끌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고, 테이블 위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 쏠렸다. 정적이 잠깐 흘렀다. 소이의 웃던 입꼬리가 어중간하게 멈췄고, 지아는 술잔을 든 채로 눈만 크게 떴다. 서준의 표정은 읽을 수 없었다. 걱정인지, 당혹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화장실 좀."
도윤은 짧게 중얼거리며 몸을 돌렸다. 발걸음이 빨랐다. 테이블 사이를 지나며 어깨가 몇 번 부딪혔지만 개의치 않았다. 등 뒤로 소이와 지아가 서로 눈짓을 주고받으며 낮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게 무슨 말인지 굳이 알고 싶지 않았다.
화장실로 이어지는 좁은 복도는 술집 안보다 한층 어두웠다. 벽에 붙은 낡은 조명 하나가 깜빡이며 복도를 비췄고, 그 빛이 도윤의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렸다가 다시 짧게 접었다. 문을 밀고 들어가 화장실 문을 닫는 순간, 바깥의 소음이 한 겹 얇아졌다.
세면대 앞에 선 도윤은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창백했다. 눈 밑에는 옅은 그늘이 내려앉아 있었고, 입술은 색을 잃은 듯 말라 있었다. 손끝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고, 그 떨림을 멈추려 몇 번이나 수도꼭지를 틀어 손을 씻었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차가운 물이 손등을 타고 흘러내렸지만, 그 감각조차 멀게 느껴졌다.
거울 속 자신에게 물었다.
이게 정말 우스운 일일까.
사귀는 척만 하는 거 아니냐는 그 말이, 왜 이렇게까지 몸을 얼어붙게 만드는 걸까.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수도꼭지를 잠그고 손끝의 물기를 닦아내는 사이, 문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누군가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