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오세훈 작전 첫 단계는 파티였다.
국회의원 박래강의 후원회 명목으로 열린 자리였고, 오세훈은 그 파티의 단골손님이었다. 나는 짙은 붉은 드레스를 입고 파티장에 들어섰다. 어깨가 훤히 드러나는 디자인이라 걸음마다 신경이 곤두섰다. 옆에는 윤재민이 있었다.
"저 진짜 이런 데 처음이라..."
그가 넥타이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손가락이 매듭 사이를 자꾸 헤집었다. 그러다 결국 매듭이 삐뚤어졌다.
"티 내지 마."
"안 나요?"
"나."
"그럼 어떡해요."
"가만히 있어. 넥타이는 내가 고쳐줄 테니까."
나는 그의 넥타이를 다시 매만졌다. 손끝이 그의 목 근처를 스칠 때 그가 살짝 몸을 굳혔다. 그 반응이 우스웠다. 사람 죽이는 일에는 몸을 사리지 않으면서, 이런 데는 왜 이렇게 서투른지.
"됐다."
"고맙습니다."
그가 어색하게 웃었다. 그 웃음이 어이없을 만큼 순진했다. 이 사람은 정말로 여기 있으면 안 되는 사람 같았다. 파티장의 샹들리에 아래, 온갖 위선과 계산이 반짝이는 곳에.
오세훈은 구석 테이블에서 와인을 마시고 있었다. 내 역할은 그의 경계를 늦추는 것. 나는 다가가 자연스럽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오세훈이 나를 힐끗 보고는 시선을 거뒀다. 예상대로였다. 그는 여자에게 관심이 없었다. 이 정보는 사전 조사에도 있었지만, 직접 확인하니 왠지 김이 샜다. 준비한 미소가 갈 곳을 잃었다.
그때 윤재민이 끼어들었다.
"오세훈 님 맞으시죠? 팬입니다, 진짜."
그의 말투는 어설펐지만, 이상하게도 오세훈이 반응했다. 표정이 조금 풀렸다.
"팬이라니, 뭘 보고?"
"그, 지난번 인터뷰요. 경제 관련해서 하신 말씀. 저 그거 보고 진짜 감동받았습니다."
인터뷰라니. 나도 처음 듣는 소리였다. 저 사람이 저런 것까지 사전에 파악해왔나. 나는 옆에서 그 대화를 지켜보며 놀랐다. 이 남자, 킬러 기질은 없어도 사람 다루는 재주는 있었다. 오세훈이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대화에 흥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자네 이름이?"
"윤재민입니다."
"어디 소속이야?"
"프리랜서로 컨설팅 하고 있습니다."
거짓말이 물 흐르듯 나왔다. 나는 와인 잔을 든 채 그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이런 자리에서는 눈빛 하나, 말투 하나가 다 계산이었다. 그런데 저 남자는 그걸 본능적으로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날 밤, 계획대로 되지 않은 게 하나 있었다.
윤재민이 오세훈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오세훈의 손이 그의 팔뚝을 스쳤다. 아주 짧은 접촉이었지만, 나는 그 순간 윤재민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는 걸 봤다. 눈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떨렸고, 입가의 미소가 한 박자 늦게 따라왔다.
오세훈은 눈치채지 못한 듯 계속 말을 이었지만, 나는 놓치지 않았다.
저건 호감이 아니라 당황이었다. 갑작스러운 신체 접촉에 순간적으로 굳은 것뿐이었다.
나중에 화장실 앞에서 그를 붙잡고 물었다.
"아까 왜 그랬어."
"뭐가요."
"표정."
윤재민이 잠깐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벽 쪽 타일을 보고 있었다.
"저는... 이런 일 처음이라서요. 사람한테 접근해서, 뭔가를 얻어내고, 그리고..."
그가 말끝을 흐렸다. 그 말끝에 담긴 게 뭔지 나는 알 것 같았다. 그리고 그를 죽여야 한다는 결말까지, 그는 아직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 왜 여기 들어왔어."
"...도망칠 데가 없어서요."
짧은 대답이었지만, 그 안에 많은 게 담겨 있었다. 나는 그 순간 처음으로 그에게서 어떤 동질감을 느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사실이었다.
도망칠 데가 없다는 말. 나도 그랬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나니, 왜 하필 이 순간에 이런 걸 느끼는지 스스로가 우스워졌다.
"복도 끝에서 눈 붙이지 말고, 정신 차려. 오늘은 아직 안 끝났으니까."
"네."
파티가 끝나갈 무렵, 오세훈이 화장실에 가려고 자리를 떴다. 나는 그 틈을 타 그의 재킷 안주머니에서 휴대폰을 슬쩍 빼냈다. 복제할 시간은 삼십 초. 기기는 이미 손안에서 준비되어 있었고, 화면이 켜지는 순간 숫자가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이런 긴장감은 익숙했다. 익숙해도 매번 심장이 조여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15초, 10초, 5초. 화면에 초록색 체크 표시가 떴다.
작업을 끝내고 재킷을 제자리에 돌려놓는 순간, 뒤에서 인기척이 났다.
"뭐 하세요?"
오세훈이었다. 예상보다 빨리 돌아왔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머릿속으로 열 가지 변명이 스쳐 지나갔다. 그중 아무것도 완벽하지 않았다.
"아, 재킷이 떨어져 있어서요."
나는 태연하게 웃으며 재킷을 건넸다. 손끝은 여전히 차가웠지만 표정만은 흔들리지 않았다.
오세훈의 눈이 나를 잠시 훑었다. 의심하는 눈빛이었다. 그 시선이 재킷과 내 얼굴 사이를 몇 번이나 오갔다. 목이 바짝 말랐다.
그때 윤재민이 재빨리 끼어들었다.
"제 여자친구가 좀 오지랖이 넓어서요, 죄송합니다."
여자친구. 그 단어에 오세훈의 경계가 풀렸다. 그는 웃으며 재킷을 받아 들고 자리를 떴다. 그의 뒷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나는 숨을 참고 있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후."
숨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나는 윤재민을 돌아봤다.
"순발력은 있네."
"칭찬이죠?"
"반반."
"나머지 반은요?"
"오지랖이라는 표현, 마음에 안 들어."
그가 웃었다. 그 웃음을 보며 나는 이상한 기분에 휩싸였다. 이 사람과 손발이 맞는다는 게, 왜 이렇게 낯설게 느껴지는지. 지금까지 파트너라고는 임무 하나 끝내면 얼굴도 안 보던 사람들뿐이었는데.
파티장을 빠져나오면서도 그 낯선 기분은 가시지 않았다. 발걸음마다 드레스 자락이 스치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하지만 그 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윤재민이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모든 걸 뒤흔들었다.
차창 밖으로 가로등 불빛이 규칙적으로 지나갔다. 그 리듬에 맞춰 그가 입을 열었다.
"근데 은채 씨는요, 왜 이렇게 남자들을 무서워해요?"
그 질문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손끝이 갑자기 차가워졌다.
핸들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창밖 불빛이 흐릿하게 번졌다. 대답을 찾으려 했지만, 목 안쪽에서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이 남자는, 대체 어디까지 보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