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느낀 건 냄새였다.
낯선 목재 향, 그리고 그 아래 은은하게 깔린 풀냄새 같은 것이 코끝을 스쳤다.
나는 천천히 눈을 깜빡이며 천장을 바라봤다.
하얀 벽지, 낮은 조명, 익숙하지 않은 곳이었다.
(여긴… 어디지)
천장의 조명은 은은한 노란빛을 내뿜고 있었다.
그 빛이 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모양이 마치 물결처럼 부드러웠다.
나는 눈동자만 굴려 방 안을 살폈다.
낮은 서랍장, 창가에 걸린 얇은 커튼, 그리고 그 커튼 사이로 새어드는 옅은 빛줄기.
모든 게 조용했고, 모든 게 낯설었다.
몸을 일으키려 했는데 팔에 힘이 이상하게 잘 들어갔다.
마치 오래 앓다가 나은 사람처럼, 아니 그보다 훨씬 가벼운 느낌이었다.
손바닥을 펴서 눈앞에 대봤다.
예전엔 늘 갈라져 있던 손끝 살갗이 지금은 매끈했다.
손목을 돌려봤다.
삐걱거리지도 않았고, 통증도 없었다.
(이상하다… 분명 얼마 전까지도 여기저기 다 아팠는데)
나는 손등을 쓸어봤다.
흉터가 있어야 할 자리에 흉터가 없었다.
심장이 이상하게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일어나셨네요."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방 한쪽에서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다래가 창가에 서 있었다.
금발이 햇빛을 받아 옅게 빛났고, 표정은 여전히 잔잔했다.
나는 순간 몸이 굳었다.
그날 밤의 옥상, 그 절박했던 순간이 머릿속을 스쳤다.
바람이 옥상 난간을 훑고 지나가던 소리.
발밑으로 내려다보이던 아득한 높이.
그리고 다래의 손이 내 손목을 잡았던 그 순간.
(그게… 진짜였구나)
"저… 여기가 그 이차현실이라는 곳인가요."
"네. 정확히는 도착 직후의 임시 거주 공간이에요."
다래가 걸어와 침대 옆 협탁에 물컵을 내려놓았다.
탁.
작은 소리였는데도 방 안의 정적이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나는 그 물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투명한 유리컵 안에 담긴 물이 조명을 받아 옅게 흔들리고 있었다.
"몸에 변화가 좀 있으셨을 텐데."
"네… 손이 이상하게 멀쩡해요. 다른 곳도… 그런 것 같고."
나는 이불을 살짝 걷고 다리를 내려다봤다.
무릎에 있어야 할 흉터도 없었다.
그것도 오래전, 삼촌이 술에 취해 넘어졌을 때 나를 밀치는 바람에 생긴 흉터였는데.
"이 세계로 이송되면서 신체가 재구성되는 과정을 거쳤어요. 상처, 영양 결핍, 만성적인 손상들이 정리된 거예요."
"…전부요?"
"네. 전부요."
다래는 그 말을 아무 감정 없이 담담하게 내놓았다.
나는 그 담담함이 오히려 더 이상하게 느껴졌다.
(사람이 이런 걸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말할 수 있나)
나는 내 몸을 다시 내려다봤다.
예전보다 어깨가 넓어진 것 같았고, 무엇보다 숨을 쉴 때마다 코로 들어오는 정보량이 지나치게 많았다.
창밖에서 들어오는 바람 냄새 속에서 흙, 나무, 그리고 옅은 금속 냄새까지 구분이 됐다.
심지어 방 안에 남아 있는 다래의 옷 냄새 같은 것도 어렴풋이 느껴졌다.
비누 향과 비슷하면서도 조금 더 서늘한, 낯선 향이었다.
(이게… 원래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감각인가)
"후각이 예민해지신 것 같은데, 맞으실 거예요. 이 현실의 규칙 중 하나예요."
"규칙이요."
"이 세계는 원래 계신 곳과 물리 법칙 대부분이 비슷하지만, 신체 능력 개선이나 특정 감각 강화가 자연스럽게 허용되는 곳이에요. 자세한 건 차차 설명드릴게요."
다래는 늘 그런 식이었다.
필요한 것만 정확히, 그러나 전부를 알려주지는 않는 식으로.
나는 그 태도가 신경 쓰였지만 지금은 물을 힘도 없었다.
질문이 머릿속에 계속 쌓여만 갔다.
(왜 나를 데려왔지, 어떻게 이런 세계가 존재하지, 그리고 다래는 대체 누구지)
하지만 입 밖으로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물컵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물맛이 이상하게 달았다.
"오늘은 좀 쉬시고, 내일 오전에 신원 관련 절차를 도와드릴 분을 소개해드릴게요."
"신원이요."
"이 현실에서 살아가시려면 주민등록 같은 게 필요하니까요."
다래는 살짝 웃었는데, 그 웃음이 이상하게도 마음을 편하게 만들면서도 동시에 등줄기를 서늘하게 했다.
(친절한데… 뭔가 그 안이 안 보여)
나는 그 웃음의 온도를 가늠해보려 했지만 실패했다.
다래는 곧 몸을 돌려 방을 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조차 조용했다.
그날 오후, 나는 방을 벗어나 작은 거실을 둘러봤다.
거실은 방보다 조금 더 넓었고, 낮은 소파와 작은 탁자가 놓여 있었다.
탁자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도시는 서울과 비슷했지만 건물의 각도, 표지판의 글씨체가 조금씩 낯설었다.
간판에 적힌 상호명도 어딘가 익숙하면서 낯설었다.
"새터전공인중개법인"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저기서 그… 신원 절차를 도와준다는 사람을 만나는 건가)
나는 창문에 이마를 살짝 가까이 대고 도시를 오래 내려다봤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게 보였다.
멀리서 봐도 걸음걸이가 낯설게 느껴지는 사람은 없었다.
평범한 사람들, 평범한 거리, 평범한 오후였다.
그런데도 뭔가 미묘하게 어긋나 있는 느낌이 계속 남아 있었다.
(뭐가 이렇게 다른 거지… 분명 다 똑같아 보이는데)
거실 한쪽 벽에는 시계가 걸려 있었는데, 초침이 움직이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째깍, 째깍.
그 소리를 듣고 있자니 이상하게 마음이 가라앉았다.
저녁이 되자 다래는 잠깐 나갔다가 돌아왔고, 나는 창가에 앉아 도시의 불빛을 바라봤다.
낮과는 다른 냄새가 밤바람에 실려 왔다.
달콤한 듬직함과는 다른, 뭔가 미묘하게 쇳내가 섞인 냄새였다.
코가 저절로 찡그려졌다.
(이건… 뭐지)
나는 콧등을 문지르며 그 냄새의 근원을 찾으려 했다.
바람은 창문 틈으로 계속 들어왔고, 냄새는 옅어졌다가 다시 짙어지기를 반복했다.
마치 무언가가 도시 어딘가에서 조금씩 새어나오고 있는 것 같았다.
"신경 쓰이는 냄새가 있으세요?"
다래가 등 뒤에서 물었다.
나는 놀라서 몸을 살짝 굳혔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냥… 좀 이상한 냄새가 나서요."
"이 세계에 완전히 적응하기 전까지는 예민한 감각이 종종 낯선 신호를 잡아낼 수 있어요. 걱정하실 정도는 아니에요."
그렇게 말하는 다래의 표정에는 미묘한 그늘이 스쳤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분명히 봤다.
눈꼬리가 아주 살짝 굳었고, 입술이 미세하게 떨렸던 것 같았다.
(방금… 표정이 왜 그랬지)
나는 그 그늘의 의미를 물어보려다 그만뒀다.
(물어봐도 대답 안 해줄 것 같은데)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창밖의 밤은 여전히 조용했고, 별빛도 도시 불빛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다만 그 쇳내 나는 바람만이 이상하게 오래 콧속에 남았다.
다래는 잠시 창가에 나와 함께 서 있다가, 이내 조용히 방을 나갔다.
발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았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나는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날 밤, 나는 낯선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오랫동안 잠들지 못했다.
삼촌이 죽고 난 뒤 처음으로, 배가 고프지 않은 밤이었다.
그런데도 마음 한구석이 여전히 허전했다.
이상하게 몸은 가벼운데 마음은 무거웠다.
(이제부터 뭘 해야 하지)
나는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천장의 무늬가 어둠 속에서 흐릿하게 보였다.
그 무늬를 오래 바라보고 있으니 눈이 시려왔다.
그 물음에 대한 답은 아직 없었다.
다만 창밖에서 스치는 바람 소리가 유난히 낯설게 들렸다.
마치 무언가가 아주 멀리서, 아주 천천히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그 느낌은 눈을 감아도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어둠 속에서 더 선명해지는 것 같았다.
(그 쇳내는… 대체 어디서 나는 걸까)
나는 그 질문을 끝내 스스로 풀지 못한 채, 서서히 잠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