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중개인님, 저 살 수 있는 거죠?

4화

골목은 낮에도 어두운 곳이었다. 가로등 하나가 깜빡이며 빛을 뿌렸지만, 그 빛이 닿는 자리는 손바닥만 했다. 나머지는 전부 그림자였다. 나는 그 그림자 속에 숨듯이 서서, 벽을 등지고 숨을 골랐다. 여기까지 오게 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퇴근길에 지름길이랍시고 들어선 골목이었는데, 뭔가 이상한 기운을 느낀 순간 이미 늦어 있었다. 공기가 무거워졌고, 벽돌 틈에서 스며나오는 듯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비릿하면서도 낯선, 살아있는 것의 냄새는 아니었다. (왜 하필 오늘… 이런 게 나타나는 거야) 괴물이 다시 한 걸음 다가왔다. 발밑에서 자갈이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마치 정적 속에서 모든 감각이 예민해진 것 같았다. 나는 숨을 죽이고 주변을 살폈다. 골목 끝, 가로등 불빛이 닿는 자리까지 몇 걸음이면 닿을 것 같았다. 불빛 너머로 희미하게 큰길의 소음이 들렸다. 사람들의 발소리, 차 지나가는 소리, 누군가의 웃음소리. 그 모든 것이 지금 내가 서 있는 이곳과는 다른 세계처럼 느껴졌다. (저기까지 유인하면… 사람들 눈에 띄겠지) 하지만 몸이 먼저 움직이지 않았다. 다리가 무겁게 굳어 있었다. 머릿속으로는 뛰어야 한다고 명령을 내리는데, 발은 그 명령을 듣지 않았다. 땀이 목덜미를 타고 흘러내렸다. 그 감각조차 낯설게 느껴질 정도로 온몸이 얼어 있었다. 괴물의 손톱이 허공을 가르며 다가왔다. 확.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틀었다. 어깨가 벽에 부딪혀 둔한 통증이 퍼졌다. 하지만 손톱은 옷자락을 스치는 정도로 지나갔다. 찢어진 소매 사이로 서늘한 바람이 스며들었다. (다행이다… 아니, 다음이 문제야) 괴물은 멈추지 않았다. 숨소리 같은 것이 그 몸통 어딘가에서 흘러나왔다. 그르렁거리는 소리는 아니었다. 차라리 삐걱거리는 듣기 싫은 마찰음에 가까웠다. 그 소리가 신경을 긁었다. 두 번째 공격이 이어졌다. 나는 몸을 낮춰 피했지만, 발끝이 걸려 균형이 흐트러졌다. 순간적으로 시야가 기울어졌다. 땅과 하늘의 위치가 뒤바뀌는 듯한 어지러움이 스쳤다. 쿵. 등이 담벼락에 부딪혔다. 숨이 턱 막혔다. 폐 안의 공기가 한꺼번에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눈앞이 잠깐 하얘졌다. 괴물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손을 뻗었다. 손끝의 검은 손톱이 가로등 불빛을 받아 번뜩였다. 그 순간만큼은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 같았다. 손톱 끝이 내 목덜미를 향해 다가오는 궤적이 마치 한 프레임씩 끊어서 보이는 것 같았다. (이제 진짜… 안 되겠는데)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도망칠 방향도, 피할 방법도 떠오르지 않았다. 몸은 이미 담벼락에 붙어 더 물러설 곳이 없었다. 그 짧은 순간에도 별의별 생각이 스쳤다. 가족들 얼굴, 아직 못 한 일들, 그리고 이렇게 허무하게 끝날지도 모른다는 실감 없는 두려움까지. 그 순간, 골목 입구에서 서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그 바람은 조금 전까지 느껴졌던 비릿한 냄새를 밀어내듯 스쳐 지나갔다. 동시에 낮고 조용한 목소리가 들렸다. "거기까지 하시죠." 다래였다. 그녀는 골목 입구에 서 있었는데, 표정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바람에 옷깃이 살짝 흔들렸을 뿐, 걸음걸이도 목소리도 흔들림이 없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공기가 달라졌다. 마치 공간 전체가 그녀를 중심으로 다시 배열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괴물이 움직임을 멈췄다. 손톱을 뻗은 채 그대로 정지한 모습이 마치 시간이 멈춘 사진 같았다. 나는 그 광경을 눈앞에서 보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다래가 천천히 손을 들었다. 그 동작에는 서두름이 전혀 없었다. 손끝에서 옅은 푸른빛이 스며나왔다. 그 빛은 처음엔 희미했지만, 곧 손가락 마디마디를 따라 선명해졌다. 그 빛이 닿는 순간, 괴물은 마치 실이 끊긴 인형처럼 그 자리에서 무너졌다. 소리도 없이, 아주 조용하게. 그 큰 몸이 무너지는데도 자갈 부딪히는 소리 하나 나지 않았다는 게 더 이상하게 느껴졌다. 정적이 흘렀다. 바람 한 줄기가 다시 골목을 훑고 지나갔다. 가로등 불빛이 깜빡였다. 그 짧은 명멸 사이로 나는 여전히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나는 벽에 기대 숨을 몰아쉬며 그 광경을 바라봤다. 심장이 아직도 세차게 뛰고 있었다. (방금… 뭘 한 거지) 다래는 아무렇지 않게 걸어와 내 앞에 섰다. 그녀의 발걸음 소리는 이상하게도 자갈 위에서조차 조용했다. "괜찮으세요?" "…네. 저는 괜찮은데, 저건…" 말을 잇지 못하고 나는 쓰러진 괴물의 잔해 쪽을 눈으로 가리켰다. 검은 형체는 이미 반쯤 흐릿해지고 있었다. 마치 연기처럼, 혹은 원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등급이 낮은 개체였어요. 하지만 처음 마주치기엔 위험했을 거예요." 다래는 그렇게 말하며 쓰러진 괴물의 잔해 쪽을 잠깐 바라봤다. 그 시선이 이상하게 담담해서, 나는 오히려 더 겁이 났다. 방금까지 나를 죽일 뻔했던 존재를, 그녀는 마치 지나가는 길가의 돌멩이를 보듯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걸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처리할 수 있다는 게…) 나는 다시 한번 그녀를 바라봤다. 평범한 옷차림, 평범한 얼굴, 특별히 위압적인 분위기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녀가 서 있는 것만으로 이 골목의 공기 자체가 다르게 느껴졌다. "어떻게 아셨어요, 제가 여기 있는 거." "쭉 지켜보고 있었어요." 다래의 대답은 짧고 명확했다. 그 말이 오히려 더 서늘하게 들렸다. 그녀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마치 당연한 사실을 말하듯, 감정이 실리지 않은 목소리였다.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니… 왜) 나는 그 물음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다래의 눈빛 속에 담긴 무언가가, 그 질문을 막았다. 그 눈빛은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았다. 다만 어떤 확신 같은 것이 그 안에 자리하고 있었다. 내가 감히 건드릴 수 없는 확신이었다. 침묵이 잠깐 이어졌다. 바람이 다시 골목을 훑고 지나갔다. 어디선가 벌레 우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사라졌던 일상의 소음들이 다시 스며드는 듯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쉬세요. 내일부터는 조금 더 조심하시고요." 다래는 그렇게 말하며 몸을 돌렸다. 망설임 없는 동작이었다. 그녀의 뒷모습이 골목 어둠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나는 그 자리에 서서 바라봤다. 발걸음 소리가 점점 멀어지다가, 완전히 사라졌다. 그 자리에 남은 건 나 혼자였다. 가로등은 여전히 깜빡이고 있었고, 자갈 위에는 조금 전까지 있었던 괴물의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구원자라는 게… 저런 느낌인가) 마음속에서 이상한 감정이 올라왔다. 동경과 동시에, 내 자신의 무력함이 뚜렷하게 느껴지는 감정이었다. 손끝이 아직도 떨리고 있었다. 조금 전 그 순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도망치지도, 맞서지도 못한 채 벽에 등을 붙이고 서 있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 사실이 목구멍 안쪽에서 묵직하게 걸렸다. (나도… 저 정도로 강해질 수 있을까) 그 물음에 답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오랫동안 그 골목 어귀에 서 있었다. 가로등 불빛이 몇 번이나 깜빡이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멀리서 큰길의 소음이 다시 들려왔다. 사람들의 웃음소리, 차 지나가는 소리, 평범한 일상의 조각들이었다. 하지만 그 소리들이 지금의 나에게는 이상하게 멀게만 느껴졌다. 나는 찢어진 소매를 매만지며 겨우 걸음을 옮겼다. 그날 밤, 나는 오랫동안 잠들지 못했다. 눈을 감으면 그 푸른빛과, 실이 끊긴 인형처럼 무너지던 괴물의 모습이 계속 떠올랐다. 그리고 그보다 더 선명하게 남은 건, 아무렇지 않게 돌아서던 다래의 뒷모습이었다. 그녀는 대체 무엇을 지켜보고 있었던 걸까. 그리고 왜, 하필 나를. 답을 찾지 못한 질문들이 밤새 머릿속을 떠돌았다.
♡ 좋아요 0 · 로그인 후 좋아요/별점/댓글 참여 가능

댓글 0

  •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