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정찰대가 나타났다는 마을은 우리가 있는 오두막에서 채 반나절 거리도 되지 않았다.
노파의 발걸음이 문 앞에서부터 이미 심상치 않았다. 숨을 몰아쉬는 소리가 문틈으로 먼저 들어왔을 정도였으니까.
'생각보다 훨씬 빨리 좁혀 들어오고 있다.'
노파는 방 안으로 들어서기도 전에 벌써 말을 쏟아내고 있었다.
"흰 갑주를 입은 이들이 마을 여관마다 들쑤시고 다닌대. 사람들 얼굴을 하나하나 확인한다더라고."
그녀의 손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몇 명이나 왔어?" 내가 물었다.
"열 명은 넘는다고 하더라. 그리고... 그 앞장선 사람 얼굴이, 여신의 상징을 새긴 갑주를 입고 있었대."
그 말을 듣는 순간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여신의 상징. 그건 근위대장급이나 착용할 수 있는 문양이다.'
최준혁이었다.
다른 누구도 아니었다. 왕실 근위대 내에서도 그 문양을 허락받은 사람은 손에 꼽았고, 나는 그 손에 꼽히는 이름 중 하나를 이미 알고 있었다.
내 직감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인이었다. 이건 단순한 왕실의 수배가 아니었다. 흔한 병사들을 풀어 촌구석 여관을 훑는 정도가 아니라, 그가 직접, 이렇게 가까운 거리까지 쫓아온 것이었다.
도윤의 얼굴이 새파랗게 굳었다.
그는 입술을 몇 번 달싹이다가 겨우 목소리를 냈다.
"짐을 챙겨야 해." 그가 낮게 말했다.
"알아."
나는 손을 떨지 않으려 애쓰며 침구를 정리했다. 손가락 끝이 이불 자락을 잡는 순간에도 심장은 이미 다른 속도로 뛰고 있었다.
머릿속으로는 이미 다음 행선지를 계산하고 있었다.
'북쪽 산길로 가면 이틀, 서쪽 항구 마을로 가면 사흘.'
북쪽은 인적이 드물어 몸을 숨기기엔 좋지만 식량을 구하기가 어려웠다. 서쪽은 사람이 많아 눈에 띄기 쉬운 대신, 배를 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어느 쪽이든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 계속 머무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것만은 확실했다.
노파가 떠난 뒤, 오두막 안은 다시 침묵으로 가득 찼다.
나는 도윤과 마주 앉아 짐을 나눠 쌌다. 손을 놀리는 동안에도 머릿속에서는 어제 그가 던진 제안이 떠나지 않았다.
'다른 여자를 찾자는 말과, 최준혁의 추격.'
두 문제가 동시에 우리를 짓누르고 있었다. 하나는 관계의 문제였고, 다른 하나는 생존의 문제였다. 신기하게도 둘 다 미룰 수 없는 무게로 어깨를 눌러왔다.
짐을 싸는 손길이 몇 번이나 멈췄다.
도윤도 마찬가지였는지, 그가 옷가지를 가방에 넣다가 자꾸 나를 흘긋거리는 게 느껴졌다.
'말을 꺼내야 하나. 아니면 지금은 넘어가야 하나.'
결국 먼저 입을 연 건 나였다.
"도윤."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응."
그가 손을 멈췄다. 짐 싸는 걸 완전히 그만둔 채,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어제 한 말, 다시 생각해봤어."
그가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눈빛에 조심스러운 기대가 섞여 있었다.
'설마 받아들이는 건가.'
그의 표정에서 그런 생각이 그대로 읽혔다.
"당장은 아니야." 나는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한테 필요한 건, 도망칠 자금이랑 은신처야. 만약 다른 사람을 들인다면, 그 사람이 우릴 숨겨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해."
도윤의 얼굴에 놀라움이 스쳤다.
그는 내가 완전히 거절할 거라 예상했던 모양이었다. 입을 반쯤 벌린 채 몇 초간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러면..."
"실용적으로 생각하자는 거야. 감정 문제는 나중에. 지금은 생존이 먼저야."
말을 마치고 나서야 스스로도 조금 놀랐다. 이렇게까지 냉정하게 말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입 밖으로 나온 말은 이미 계산기를 두드린 결과물처럼 딱딱했다.
'그래도 틀린 말은 아니지.'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짧은 대답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안도와 실망이 동시에 느껴졌다. 안도는 관계가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는 데서 왔을 것이고, 실망은 그럼에도 지금은 아니라는 대답에서 왔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짐을 다 싸고, 도망칠 방향과 함께할 사람을 찾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어느 마을에 믿을 만한 사람이 있는지, 얼마의 자금이 필요한지, 도윤이 손가락으로 지도 위 몇 지점을 짚으며 낮은 목소리로 설명했다.
"여기, 이 마을에 예전에 신세를 진 상인이 있어. 돈만 있으면 배편을 알아봐 줄 수 있을 거야."
"믿을 만해?"
"완전히는 아니지만... 적어도 우릴 팔아넘길 사람은 아니야."
완전한 신뢰는 아니었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그 정도의 확신조차 사치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그 마을 이름을 머릿속에 새겼다.
해가 완전히 저물고, 오두막 안에 촛불 하나만 남았을 무렵이었다.
지도를 접고 짐을 마지막으로 확인하는 동안, 바깥은 완전한 어둠에 잠겨 있었다.
밖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한 필이 아니었다.
발굽 소리는 하나둘이 아니라 여러 마리가 뒤섞여 울리는 것이었고, 그 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었다.
도윤과 나는 동시에 얼어붙었다.
그의 손이 내 팔을 붙잡았다.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는 게 그대로 느껴졌다.
촛불을 끄기도 전에, 문밖에서 낮고 익숙한 목소리가 울렸다.
"이서린 공주님. 안에 계신 걸 압니다."
최준혁의 목소리였다.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몇 년을 들어온 목소리를, 어둠 속에서라도 잘못 들을 리 없었다.
나는 도윤의 손을 움켜쥐었다. 그의 손도 나만큼 차갑게 떨리고 있었다.
'벌써. 짐도 다 싸지 못했는데.'
머릿속에서 온갖 계산이 무너지고 있었다. 북쪽이든 서쪽이든, 지금 이 순간에는 아무 의미도 없는 숫자들이었다.
문 밖의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마치 우리가 도망칠 곳이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다는 듯, 그 발소리에는 조급함조차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