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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새벽 공기가 차가웠다. 이서연은 해부실 지하 계단을 내려가며 등불을 흔들었다. 계단은 좁고 축축했고, 벽을 타고 흐르는 물기가 등불 빛에 반짝였다. 청암성의 새벽은 늘 이런 식이었다. 성벽 밖에서 넘어온 귀물의 냄새가 안개처럼 낮게 깔려 있었고, 사람들은 아직 잠에서 깨지 않았다. 성문 앞 초소의 병졸들만이 창을 세워둔 채 하품을 삼키고 있을 시각이었다. 지하 해부실 문을 밀고 들어서자, 등불 냄새와는 다른 냄새가 코를 찔렀다. 방부액과 짐승 기름이 섞인 냄새였다. 이서연은 그 냄새에 이미 익숙해진 지 오래였다. "늦었구나." 백현담이 해부대 앞에 서서 등을 돌린 채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마른 나무껍질 같았다. "죄송합니다, 스승님. 학당에서 야간 순찰조에 배정되어서요." 이서연이 등불을 내려놓으며 답했다. 손끝이 아직도 찬 새벽바람에 얼어 있었다. 백현담은 예순을 넘긴 노인이었다. 감찰원 소속으로 오래 일했고, 귀물의 해부와 진화 과정을 연구한다고 알려져 있었다. 정확히 무엇을 연구하는지는 이서연도 알지 못했다. 감찰원 안에서도 그의 연구는 극비에 가까웠고, 그는 결과를 발표하는 대신 늘 혼자서 자료를 쌓아두는 쪽이었다. "이리 와서 봐라." 백현담이 해부대 위 무언가를 가리켰다. 작은 종언귀의 사체였다. 크기는 어린아이만 했고, 피부는 인간의 것과 흡사했으나 관절이 두 배로 많았다. 손가락 마디마다 여분의 관절이 하나씩 더 붙어 있어서, 손이라기보다는 거미의 다리를 연상시켰다. "이것들이 왜 인간의 형상을 흉내 내는지 아느냐." 백현담이 물었다. "먹잇감에게 경계심을 풀게 하려고요." 이서연이 즉답했다. 학당에서 배운 그대로였다. "틀렸다." 백현담이 고개를 저었다. "흉내가 아니다. 원래 인간이었던 것이 변한 형태다." "하지만... 감찰원의 공식 발표에는," 이서연이 말을 잇으려 했으나 백현담이 다시 사체를 가리켰다. "발표는 발표고, 사실은 사실이다. 이 관절을 봐라. 인간의 골격이 자라난 흔적이 있다. 처음부터 이런 형태로 태어난 게 아니다." 이서연은 그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감찰원의 공식 발표는 늘 귀물이 인간을 흉내 낸다는 쪽이었다. 원래 인간이었다는 말은 학당에서도, 성 안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 없었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성벽 밖에서 죽은 사람들 중 몇몇은 죽은 것이 아니라 변한 것일지도 몰랐다. "스승님, 그건..." 그녀가 입을 열었으나 백현담이 손을 들어 막았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그가 사체를 천으로 덮었다. "내일 다시 이야기하마."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의 이서연은 그런 것을 알 도리가 없었다. 그녀는 등불을 다시 들고 계단을 올랐다. 백현담은 여전히 해부대 앞에 서 있었고, 그 뒷모습이 유독 작아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이서연은 그 생각을 오래 붙잡지 않았다. 이서연은 청암성 정순여학당의 학생이었다. 정확히는 학당 안에서도 신분이 낮은 쪽에 속했다. 구대규수회에 속한 아홉 가문의 규수들이 학당의 실질적인 권력을 쥐고 있었고, 그녀는 그 아홉 가문에 속하지 않았다. 그녀의 부모는 십 년 전 귀물 습격으로 실종되었다. 시신조차 찾지 못했다. 감찰원은 사망으로 처리했으나, 이서연은 오랫동안 그 처리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백현담이 감찰원의 이름으로 그녀를 거두어 학당에 넣어주었으나, 그것은 동정이 아니라 실용적인 이유였다고 그는 늘 말했다. "너는 재능이 있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백현담은 그렇게 말했었다. 처음 학당 앞에서 그녀의 손을 놓아주던 날이었다. 감정을 섞지 않는 어투였으나, 이서연은 그 말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다정함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구대규수회의 규수들은 그녀를 대할 때 표면적으로는 예의를 갖췄다. 그러나 그 예의 아래에는 늘 선이 그어져 있었다. 함께 앉되 상석에는 앉지 못하고, 함께 말하되 먼저 말하지는 못했다. 시험지에 이름을 적을 때조차, 규수들은 자신의 성씨를 먼저 밝히고 이서연은 그저 이름만 적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서연은 그 말을 되뇌며 학당 복도를 걸었다. 신분이 낮은 자에게 필요한 것은 위로가 아니라 쓸모였다. 그녀는 그렇게 배웠다. 그리고 그 배움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그녀는 늘 남들보다 먼저 일어나 학당에 갔고 늘 남들보다 늦게 잠들었다. +++ 오전 수업이 끝나갈 무렵, 학당 정문 쪽에서 소란이 일었다. 감찰원의 관복을 입은 사자가 말을 타고 들어온 것이었다. 학당 안에서 감찰원 사자가 직접 오는 일은 드물었다. 보통은 서찰 하나로 용무를 전하는 것이 관례였다. 이서연은 강의실 창문 너머로 그 광경을 보았다. 사자가 학당장과 몇 마디 나누는 사이, 학당장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었다. 그는 손에 든 부채를 접었다 폈다 하며 무언가를 곱씹는 듯했다. 곧 시녀 하나가 강의실 문을 두드렸다. "이서연 학생을 찾습니다." 시녀가 말했다. 목소리가 평소보다 낮았다. 강의실 안의 시선이 일제히 이서연에게 쏠렸다. 그중 하나는 조유란이었다. 구대규수회 중에서도 서열이 높은 가문의 규수였고, 이서연을 대할 때 늘 미묘한 우월감을 드러내는 사람이었다. "무슨 일이지." 조유란이 낮게 중얼거렸으나 대답은 없었다. 옆자리의 규수가 조유란의 귀에 무언가를 속삭였고, 조유란은 부채로 입가를 가리며 웃음을 참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서연은 자리에서 일어나 복도로 나갔다. 걸음이 무거워지는 것을 스스로도 느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으나 불길한 예감이 발밑에서부터 차올랐다. 복도를 걸으며 그녀는 어제 새벽의 해부실을, 백현담의 뒷모습을 떠올렸다. 아무 근거도 없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근거가 없다고 해서 예감이 틀리는 것은 아니었다. 학당장의 집무실에 들어서자, 감찰원 사자가 그녀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감찰원 관복을 입은 사람이 신분 낮은 학생에게 먼저 고개를 숙이는 일은 흔치 않았다. "백현담 학자님의 후견인으로 지정된 이서연 학생이오?" 사자가 물었다. "그렇습니다." 이서연이 대답했다. 목소리가 담담하게 나온 것이 오히려 스스로도 놀라웠다. 사자의 표정이 잠시 흔들렸다. 말을 고르는 듯한 침묵이 지나갔다. 방 안의 학당장도 시선을 내리깐 채 아무 말이 없었다. "어제 저녁, 백현담 학자님이 임무 중 사망하셨소." 방 안의 공기가 순간 멈춘 듯했다. 이서연은 그 말을 이해하는 데 몇 초가 걸렸다. 이해했다고 생각한 순간에도, 손끝이 감각을 잃어가는 것을 느꼈다. 발밑이 마치 지하 계단의 축축한 돌바닥처럼 느껴졌다. "임무... 라시면." 그녀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성벽 북쪽 구간에서 상위 귀물 소탕에 나섰다가, 예상치 못한 반격을 받으셨다고 들었소." "북쪽 구간이라면, 스승님은 해부와 연구를 하시는 분입니다. 소탕 임무에는 나가지 않으십니다." 이서연이 저도 모르게 반박했다. 사자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시선을 바닥으로 잠시 돌렸다가 다시 그녀를 마주했다. "자세한 것은 나도 알지 못하오. 위에서 내려온 명령을 전할 뿐이오." 사자는 더 이상 구체적인 설명을 하지 않았다. 감찰원의 일은 늘 그런 식이었다. 위에서 결정한 일은 아래로 전달될 때 이미 반쪽만 남아 있었다. "시신은... 확인할 수 있습니까." 이서연이 물었다. "내일 아침, 감찰원 안치소로 오시오." 사자가 짧게 답했다. "부검은... 이루어졌습니까." 이서연이 다시 물었다. 백현담이라면 자신의 죽음조차 해부대 위에서 자료로 남기기를 바랐을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것까지는 내가 답할 수 있는 것이 아니오." 사자가 고개를 저었다. 그것으로 대화는 끝이었다. 이서연은 집무실을 나선 뒤에도 한동안 복도에 서 있었다. 학당장도, 시녀도 그녀에게 말을 걸지 못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창밖으로 사자가 말을 돌려 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말발굽 소리가 점점 멀어지다가 완전히 사라졌다. '내일 다시 이야기하마.' 어제 그가 했던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사체를 천으로 덮으며 그가 지었던 표정도, 그 뒷모습도 함께 떠올랐다. 그 약속은 이제 지켜질 수 없었다. 이서연은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으나 정작 눈시울은 마르기만 했다. 감정이 몸보다 늦게 도착하는 것 같았다. 복도 끝에서 조유란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에는 호기심과 묘한 거리감이 뒤섞여 있었다. 동정은 아니었다. 조유란은 잠시 그녀를 살피다가, 아무 말 없이 몸을 돌려 강의실 쪽으로 걸어갔다. 그 뒷모습이 이서연에게는 유독 멀게 느껴졌다. 이서연은 그 자리에 서서, 내일 아침 안치소에서 마주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짐작조차 하지 못한 채로 오랫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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