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나는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지만,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발밑의 흙이 축축했다.
밤이슬이 내린 모양이었다.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달빛이 걸음마다 흔들렸다.
[천명 시스템] 목표 인물의 대략적인 위치를 옥패각에 표시했습니다.
손목의 문양이 옅게 빛나며 방향을 가리켰다.
푸르스름한 빛이 손목을 타고 흐르다가, 한 방향으로 가늘게 늘어졌다.
"이런 것도 되는구나..."
나는 반쯤 안도하며 그 방향을 따라 걸었다.
심장은 여전히 빠르게 뛰고 있었지만, 적어도 방향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숨통이 트였다.
숲을 벗어나자 넓은 길이 나왔다.
흙길 양옆으로 낮은 돌담이 이어졌고, 저 멀리 커다란 저택의 지붕이 보였다.
기와의 곡선이 낯설었지만, 어딘가 위엄이 느껴지는 건축이었다.
지붕 끝에 매달린 풍경이 바람에 흔들려 낮은 소리를 냈다.
(저기가... 한서아가 있던 곳인가.)
나는 걸음을 서둘렀다.
길을 걷는 동안에도 손목의 빛은 저택 쪽을 향해 점점 더 선명해졌다.
그것이 나에게는 유일한 확신이었다.
그런데 저택 근처, 담벼락과 나무 사이 그늘진 자리에서 뭔가가 움직였다.
나는 걸음을 멈췄다.
숨을 죽이고 그늘을 살폈다.
검은 옷을 입은 두 사람이 낮게 몸을 숙인 채 담을 넘고 있었다.
동작이 지나치게 조심스러웠다.
일하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아니었다.
(저건... 뭔가 잘못됐어.)
나는 몸을 담벼락 옆 나무 뒤로 숨겼다.
나무껍질이 손바닥에 거칠게 닿았다.
그 감촉조차 지금은 낯설게 느껴졌다.
두 사람 중 하나가 어깨에 커다란 자루 같은 것을 메고 있었다.
그 안에서 희미하게 사람 형체가 비쳤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숨이 턱 막혔다.
자루의 윤곽선이 사람의 어깨와 무릎처럼 굽어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그 자루가 미세하게 뒤척였다.
(사람이야. 확실해.)
그 순간, 저택 안쪽에서 다급한 목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아가씨가 안 계십니다!"
"방을 다 뒤져도 없습니다!"
비명 같은 외침이 이어졌다.
대문이 벌컥 열리고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등불이 흔들리며 마당을 어지럽게 밝혔다.
횃불 몇 개가 이리저리 움직이며 마당 구석구석을 훑었다.
누군가는 문 앞에서 발을 동동 굴렀고, 누군가는 담장 위로 등을 들어 올려 안쪽을 살폈다.
어수선한 발소리와 겹쳐지는 목소리들이 밤공기를 뒤흔들었다.
나는 그늘 속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며 확신했다.
(저 자루 안에 있는 사람이... 한서아일지도 몰라.)
손끝이 저절로 떨렸다.
호흡을 가라앉히려 애썼지만 쉽지 않았다.
[천명 시스템] 목표와의 거리가 가까워졌습니다.
[천명 시스템] 지금 놓치면, 추적이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그때 그 검은 옷의 둘이 방향을 틀어 숲 쪽으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소리 없이, 그러나 확실하게 멀어지고 있었다.
발끝이 땅에 닿는 소리조차 거의 나지 않았다.
훈련된 움직임이었다.
평범한 도적 떼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생각할 시간이 없어.)
나는 몸을 낮추고 그들을 따라 움직였다.
발밑의 마른 가지가 밟히지 않게 조심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손끝이 차가워졌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한 걸음, 한 걸음.
숨을 짧게 끊어가며 나아갔다.
저택에서 들려오던 소란이 점점 멀어지고, 대신 숲의 정적이 나를 감쌌다.
숲으로 들어서자 어둠이 한층 짙어졌다.
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달빛이 조각조각 흩어져 있었다.
평온해야 할 숲의 정취가, 이제는 서늘한 위협으로 바뀌어 있었다.
벌레 소리마저 뚝 끊긴 것처럼 조용했다.
나뭇가지 사이로 부는 바람이 평소보다 낮게 울렸다.
그 소리마저 어딘가 삐걱거리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숲의 공기 자체가 낯설게 어긋나 있는 것 같았다.
그때였다.
앞서가던 검은 옷 하나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그가 고개를 돌려 내가 있던 방향을 응시했다.
나는 그대로 나무 뒤에 얼어붙었다.
(들켰나...)
숨조차 쉬지 못했다.
심장 소리가 귓속에서 울렸다.
그 소리가 너무 커서, 상대에게도 들릴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짧은 정적이 흘렀다.
남자는 다시 등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나는 그제야 참았던 숨을 조심스레 내뱉었다.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하지만 안심할 틈은 없었다.
[천명 시스템] 경고: 대상자의 생체 신호가 불안정합니다.
그 문구를 본 순간, 나는 더는 망설이지 않기로 했다.
자루 안의 사람이 정말 위험할 수도 있었다.
(불안정하다는 게... 어느 정도인 거지.)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답을 구할 시간은 없었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그들의 뒤를 바짝 따라붙었다.
좁은 오솔길이 끝나고 작은 공터가 나타났다.
공터 주변으로 낮은 잡초가 무성했고, 가운데쯤에 커다란 바위 하나가 놓여 있었다.
두 남자가 자루를 바닥에 내려놓고 서로 뭔가를 주고받고 있었다.
"염이, 여기서 잠깐 쉬었다 가자."
"형, 빨리 움직여야 해. 곧 추격이 붙을 텐데."
목소리에는 피곤함과 초조함이 섞여 있었다.
숨소리도 거칠었다.
꽤 먼 거리를 쉬지 않고 걸어온 듯했다.
염삼, 염이.
두 사람의 이름이 그렇게 오갔다.
나는 나무 뒤에서 그들의 대화를 놓치지 않으려 귀를 기울였다.
바위 뒤에 몸을 바짝 붙인 채, 최대한 숨을 낮게 눌렀다.
"위에서 시킨 대로 넘기기만 하면 우린 돈 받는 거야."
"그러니까 빨리 하자고, 형."
(위에서 시켰다고?)
배후가 있다는 뜻이었다.
단순한 납치가 아니라, 누군가의 지시로 움직이는 조직적인 일이라는 의미였다.
나는 자루가 조금씩 흔들리는 걸 보았다.
안에서 낮은 숨소리가 들리는 듯도 했다.
그 숨소리에 나는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는 걸 느꼈다.
자루 안의 존재가 살아 있다는 증거였다.
동시에, 그 숨이 점점 옅어지는 것 같다는 불안이 스쳤다.
"근데 이거, 안에서 계속 움직이는데... 괜찮은 거야?"
"입에 뭘 물려놨으니 괜찮아. 오래는 못 가겠지만, 넘길 때까지만 버티면 돼."
그 말에 나는 손끝이 저릿할 정도로 힘을 주었다.
(버티면 된다니. 사람 목숨을 그런 식으로...)
분노와 조급함이 동시에 차올랐다.
더는 기다릴 수 없었다.
나는 발끝에 힘을 주고 자세를 낮췄다.
손바닥에 땀이 배어들었다.
숨을 짧게, 짧게 끊어 마셨다.
근육이 팽팽하게 당겨지는 감각이 느껴졌다.
머릿속에서는 오직 한 가지 생각만이 맴돌았다.
(가자.)
나는 숨을 참고, 나무 뒤에서 몸을 튕겨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