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복권 당첨자의 이세계 임무

5화

객실에 갇힌 지 몇 시간이 흘렀다. 창밖은 어느새 짙은 어둠으로 물들어 있었다. 나는 침상에 누운 채 천장을 응시했다. 몸은 피곤했지만 정신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천장의 나무 결이 어두운 방 안에서도 희미하게 보였다. 낡은 목조 건물 특유의 냄새가 코끝에 감돌았다. (이 세계에 온 지 하루도 안 됐는데.) 온갖 일이 한꺼번에 몰아쳤다. 복권, 전생, 임무, 구출, 그리고 이 감금까지. 하루 안에 벌어진 일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나는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니 오히려 머릿속이 더 선명해졌다. 문득 현대에서의 마지막 밤이 떠올랐다. 혼자 병원 복도에 앉아 있던 그날. 형광등이 유난히 하얗게 빛나던 복도였다. 의사가 나와서 고개를 저었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순간의 정적이 지금도 귓가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주변 사람들이 위로한다며 건넨 말들도, 그때는 아무런 의미로 다가오지 않았다. 그 뒤로 나는 늘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믿었다.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일도, 관계도, 심지어 아플 때조차 혼자였다. 그게 편하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그렇게 믿고 살아왔다. (그런데 오늘은... 소이가 없었으면 어떻게 됐을까.) 그 생각을 하자 가슴이 묘하게 저렸다. 한서아를 구하러 갔던 그 순간, 소이가 없었다면 나는 분명 다른 선택을 했을 것이다. 무모하게 뛰어들었거나, 아니면 겁에 질려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지도. 의지하는 게 나쁜 게 아니라는 걸, 이 세계에서 처음 배운 것 같았다. 낯설고 이상한 감정이었다. 누군가의 존재가 이렇게 든든하게 느껴지는 것도. [천명 시스템] 남은 임무 시간: 0시간 0분. 임무 완료 상태 유지 중입니다. 창에 뜬 문구를 보며 나는 옅게 웃었다. "완료라니, 다행이네." 혼잣말이 좁은 방 안에 낮게 울렸다. 하지만 웃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갇혀 있는 처지가 곧 다시 무겁게 다가왔다. 나는 몸을 일으켜 방 안을 둘러보았다. 작은 창 하나, 낡은 침상, 그리고 문 하나. 도망칠 곳도 딱히 없어 보이는 좁은 공간이었다. 벽에 걸린 등불이 흔들릴 때마다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줄어들었다. 똑똑. 낮은 노크 소리가 들렸다. 심장이 순간적으로 덜컹 뛰었다. 나는 몸을 일으켰다. "누구세요?" 대답은 없었다. 숨죽인 정적만이 문 너머에서 이어졌다. 문 앞의 그림자가 잠시 서 있다가, 이내 멀어지는 발소리가 들렸다. (뭐지... 그냥 보초 교대인가.)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이 계속 서늘했다. 무언가가 지나간 자리에 남은 냉기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손끝으로 옥패각을 매만졌다. 표면이 서늘하게 손끝에 닿았다. 이 물건이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이 문득 스쳤다. 잠시 후, 창밖에서 두 사람의 낮은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였다.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는 소리 사이로, 사람의 목소리가 섞여 들어왔다. 귀를 기울이자 그중 하나는 익숙한 목소리였다. 최호. 한서아를 구할 때는 마주치지 않았지만, 소이가 지나가듯 언급했던 이름이었다. 강도현 두령의 부하라고 했다. 그때 소이는 그 이름을 말하며 살짝 얼굴을 찡그렸던 것 같았다. 썩 좋게 여기지 않는 듯한 표정이었다. "저 방에 있는 놈, 정말 그냥 넘길 겁니까?" "두령님 지시가 있을 때까지는 기다려." "하지만 그놈이 계속 남아 있으면..." 대화가 거기서 뚝 끊겼다. 나는 창가로 조심스레 다가갔다. 발소리를 내지 않으려 애쓰며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달빛 아래 두 그림자가 서 있었다. 하나는 체격이 크고 다부졌다. 어깨가 넓고 목이 두꺼운, 한눈에도 무예로 다져진 몸이었다. 다른 하나는 조금 더 마른 체형이었지만 자세만큼은 흐트러짐이 없었다. (저게 최호인가.)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순간 그와 눈이 마주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나는 재빨리 몸을 뒤로 뺐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등이 벽에 닿는 소리조차 크게 느껴졌다. 혹시 들킨 건 아닐까, 그 짧은 순간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밖의 발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정적이 다시 방 안을 채웠다. 나는 벽에 등을 기댄 채 숨을 몰아쉬었다. 숨소리가 방 안의 침묵을 깨는 유일한 소리였다. (강도현이 나를... 눈여겨보고 있다는 건가.)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뭔가 심상치 않은 흐름이 시작되고 있다는 감각만은 뚜렷했다. 한서아를 구한 것으로 끝난 줄 알았던 일이, 어쩌면 다른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단순히 은혜를 갚는 자리가 아니라, 이 산채 안에서 나라는 존재가 이미 어떤 무게를 가지게 된 건지도 몰랐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나는 천천히 다시 침상으로 돌아왔다. 앉으려는데 다리가 살짝 후들거렸다. 긴장이 몸에 그대로 쌓여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다시 침상에 앉아 옥패각을 내려다봤다. 표면이 옅게 진동하는 것이 느껴졌다. 마치 무언가가 그 안에서 깨어나려는 것처럼. 손바닥에 닿는 그 미세한 떨림이, 이상하게도 심장 박동과 겹쳐지는 듯했다. [천명 시스템] ... 문구는 뜨는 듯하다가, 다시 지워졌다. 마치 시스템조차 뭔가를 망설이는 것 같은 이상한 침묵이었다. 이전까지는 늘 명확한 문구로 상황을 알려주던 시스템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침묵은, 오히려 더 불안하게 다가왔다. (뭘 말하려다가... 멈춘 거지.) 나는 다시 한번 옥패각을 손끝으로 눌러보았다.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저 처음과 같은 서늘한 감촉만이 손끝에 남았다. 나는 그 화면을 오래도록 응시했다. 혹시나 다시 문구가 떠오르지 않을까, 기대와 불안이 뒤섞인 채로. 하지만 화면은 끝내 다시 켜지지 않았다. 방문 밖에서 발소리가 다시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번에는 하나가 아니라, 여럿의 발소리였다. 규칙적이면서도 무게감 있는 발걸음이었다. 단순한 순찰이나 보초 교대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발소리는 점점 더 뚜렷해졌고, 그 사이로 낮게 오가는 말소리도 섞여 들려왔다. 정확히 무슨 말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분위기만으로도 심상치 않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뭔가, 시작되려나 보다.) 나는 숨을 죽이고 문을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발소리가 문 바로 앞에서 멈춰 섰다. 그리고 짧은 정적이 흘렀다. 숨소리마저 죽이며 나는 그 순간을 기다렸다. 문고리가 서서히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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