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강서윤 시점]
약속 시간을 세 시간 앞두고부터, 나는 이미 위장이 뒤틀리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엄마는 아침부터 내 방문을 두 번이나 두드렸다. 처음에는 입을 옷을 골라주겠다며, 두 번째는 화장은 진하지 않게 하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였다.
"너무 튀지 않게, 알았지? 이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알잖아."
알고 있었다. 모를 수가 없었다. 엄마가 이 만남을 위해 얼마나 오래 준비했는지, 얼마나 많은 전화를 돌렸는지, 나는 거실을 지나갈 때마다 들었다.
"이도현이라는 애가, 그 집 아들이 아주 반듯하게 자랐다더라. 유학도 다녀오고, 지금은 아버지 회사에서 일도 배우고 있고."
엄마는 그 이름을 말할 때마다 얼굴에 옅은 홍조가 돌았다. 마치 그 이름 하나로 우리 집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나는 그 이름을 듣는 순간부터 목구멍이 사포처럼 껄끄러워졌다. 이도현. 그 이름을 들은 게 처음이 아니었다. 열 살 때, 딱 한 번, 아주 짧게 스쳐 지나간 그 이름.
기억이 흐릴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오히려 선명했다. 마당에 서 있던 작은 남자아이, 그리고 그 아이를 향해 쏟아냈던 말들. 나는 그 기억을 억지로 밀어내며 옷장 앞에 섰다.
토요일 저녁 7시, 레스토랑의 회전문을 밀고 들어서는 순간부터 나는 이미 도망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엄마가 예약한 곳은 시내 최고급 레스토랑이었다. 은은한 조명, 낮게 흐르는 클래식, 정장을 갖춰 입은 웨이터들. 모든 것이 이 자리의 무게를 대신 말해주고 있었다. 대리석 바닥 위로 내 구두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동안, 아빠는 넥타이를 몇 번이나 다시 매만졌다. 나는 그 손짓이 아빠의 초조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걸 알았다. 아빠 역시 이 만남에 얼마나 많은 것을 걸고 있는지, 그 손끝의 떨림이 말해주고 있었다.
우리 가족이 안내받은 룸의 문이 열리자, 이미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일어섰다.
중년의 남녀, 그리고 그 옆에 서 있는 한 남자.
나는 그 순간 숨을 참았다.
키가 크고, 어깨가 넓었다. 짙은 눈썹 아래로 시선이 날카로웠고, 입가에는 웃음기가 있었지만 그 웃음이 조금도 따뜻하지 않았다. 정장을 완벽하게 갖춰 입은 그 모습에서 열 살짜리 소년의 흔적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알았다. 저 사람이 이도현이라는 걸, 첫눈에 알아버렸다. 몸이 먼저 알아챘다.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서늘함, 손끝이 저려오는 감각.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저 남자를 마주한 순간부터, 오래전에 묻어둔 무언가가 다시 땅을 뚫고 올라오는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그가 먼저 손을 내밀며 인사했다. 그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지만, 어딘가 조롱이 섞여 있는 것처럼 들렸다. 나는 그의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 손을 맞잡았다. 손바닥이 이미 차갑게 얼어 있었다.
"…강서윤입니다."
"알고 있어요."
그가 짧게 대답하며 웃었다. 그 웃음의 의미를 나는 알 수 없었다. 아니, 알고 싶지 않았다. 그 짧은 두 마디 안에 담긴 온도가, 나머지 대화 전체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자리에 앉자 어른들은 익숙한 인사와 안부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아빠와 도현의 아버지가 사업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엄마는 연신 화기애애한 웃음을 지었다. 나는 그 모든 대화가 마치 다른 세계의 일처럼 아득하게 들렸다.
"이번에 새로 짓는 물류센터 규모가 상당하다고 들었습니다."
"아, 예. 저희 쪽에서도 기대가 큽니다. 도현이가 이번 프로젝트에 실무 쪽으로 많이 참여하고 있어서요."
도현의 아버지가 자랑스럽게 아들을 소개했다. 도현은 겸손하게 고개를 숙였지만, 그 표정에는 자신감이 흘러넘쳤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완벽한 집안, 완벽한 아들, 완벽한 미래.
그리고 나는, 그 완벽한 그림 안에 억지로 끼워 넣어진 이질적인 조각처럼 느껴졌다.
내 시선은 자꾸 맞은편에 앉은 도현에게 향했다. 그는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나를 보고 있지 않은 척하고 있었다. 그 무심함이 오히려 더 신경을 곤두세웠다. 가끔 그의 시선이 아주 짧게 내 쪽을 스칠 때가 있었는데, 그 순간마다 나는 심장이 갈비뼈를 두드리는 것을 느꼈다.
"두 분, 어릴 때 알던 사이라고 들었어요."
갑자기 도현의 어머니가 화제를 돌렸다. 나는 순간 얼음물이 쏟아지는 듯한 충격을 느꼈다.
"네, 오래전에 몇 번 만난 적이 있어요."
도현이 대답했다. 그 목소리에는 여전히 여유가 있었다.
"그때 참 재밌는 일도 있었죠."
순간 나는 테이블 아래로 손을 움켜쥐었다. 제발, 제발 그 이야기는 하지 말아 달라고 마음속으로 빌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 정도로 힘을 주었지만, 그 통증조차 지금의 긴장감을 이기지 못했다.
"재밌는 일이라니? 무슨 이야기예요?"
엄마가 웃으며 물었다. 나는 그 순간 도현의 눈이 나를 향해 정확히 꽂히는 걸 느꼈다.
그 짧은 순간, 열 살 때의 그 마당이 눈앞에 펼쳐졌다. 낡은 대문, 흙 마당, 그리고 그 마당 한가운데 서 있던 작은 남자아이. 어른들이 무언가 심각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나는 그 아이의 옷차림이 우리 집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린 나는 그 생각을 그대로 입 밖으로 내뱉었다. 아무런 여과 없이. 아무런 죄책감 없이.
"별거 아니에요. 어릴 때 서윤 씨네 집에 놀러 갔다가, 서윤 씨한테 크게 혼난 적이 있어서요."
그의 말투는 부드럽고 유쾌했지만, 그 안에 숨겨진 칼끝을 나는 정확히 느낄 수 있었다.
"혼났다고요? 우리 서윤이가요?"
엄마가 놀란 척 나를 바라보았다.
"기억 안 나? 도현 군이 어릴 때 서윤이한테 뭐라고 그랬는데."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수가 없었다. 목구멍이 완전히 막혀버린 것 같았다.
"거지 같은 게 왜 우리 집에 와 있냐고 하셨죠."
도현이 정확히, 그 말을 그대로 옮겼다. 억양까지, 그 아득한 열 살 아이의 말투를 흉내 내듯,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순간 룸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아빠의 웃음이 멈췄고, 엄마의 표정이 미세하게 굳었다. 도현의 부모는 예의상 웃음을 지었지만, 그 눈빛에는 이미 오래된 상처가 스며 있었다. 도현의 어머니는 손에 쥐고 있던 냅킨을 무의식적으로 접었다가 다시 펼쳤다.
나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사라지고 싶었다.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열 살의 나에게 달려가 그 입을 막아버리고 싶었다.
"그, 그건… 제가 그때 어려서 그런 것 같은데요."
내가 겨우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형편없이 떨렸다.
"어렸을 때 실수는 다 그런 거죠."
도현이 부드럽게, 그러나 결코 부드럽지 않은 어투로 말을 이었다.
"저도 신경 안 써요. 오히려 감사하죠. 그 말 덕분에 정말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각오를 다졌으니까요. 그날 이후로 저는 남들보다 두 배, 세 배는 더 노력하면서 살아왔거든요. 지금 생각하면, 서윤 씨가 저한테 좋은 자극을 준 셈이죠."
그의 말이 칭찬처럼 들렸지만, 나는 그 안에 감춰진 냉소를 정확히 알아챘다. 그건 용서가 아니었다. 그건 오랜 시간 벼려온 원한의 표면일 뿐이었다. 말투는 감사였지만, 눈빛은 청산이었다.
나는 그 순간 온몸의 피가 얼어붙는 것 같았다.
"세상에, 서윤이가 그런 말을 했어요? 도현 군, 정말 미안해요. 어릴 때 애가 좀 철이 없어서…"
엄마가 다급하게 사과를 이어갔다. 하지만 그 사과는 나를 향한 것이 아니라, 이 자리를 무사히 넘기기 위한 것이었다. 나는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괜찮습니다, 정말로. 다 지난 일인데요."
도현이 관대하게 웃으며 손을 저었다. 그 관대함이 오히려 나를 더 조여왔다.
식사는 겉으로는 무난하게 이어졌다. 어른들은 사업과 결혼 이야기를 계속 나눴고, 나는 그저 접시 위의 음식을 억지로 삼키며 시간을 견뎠다. 스테이크는 분명 잘 익어 있었을 텐데, 내 입안에서는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도현은 대화 중간중간 나에게 말을 걸었지만, 그 모든 말이 표면적으로는 정중했고 이면으로는 날카로웠다.
"학교는 어때요? 서한고 다닌다고 들었는데."
"…네, 다니고 있어요."
"지각도 자주 한다면서요."
순간 나는 그가 어디까지 나에 대해 알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어떻게 내 지각 습관까지 알고 있는 걸까. 이 자리를 위해 나에 대해 미리 조사를 해온 걸까. 아니면, 그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나를 지켜보고 있었던 걸까.
"그런 것까지 알아요?"
"관심이 있으니까요."
그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 웃음이 처음으로 조금 진짜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진짜 같은 웃음이 오히려 더 불길했다. 관심이라는 단어가 그의 입에서 나오자, 나는 그것이 애정이 아니라 감시라는 것을 직감했다.
"어릴 때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서윤 씨는 그날 이후로 저를 완전히 잊고 지냈겠죠?"
"…네?"
"저는 그렇지 않았거든요."
그가 짧게 덧붙이고는, 다시 어른들의 대화로 시선을 돌렸다. 나는 그 말의 무게를 가늠하지 못한 채, 그저 물컵을 들어 목을 축였다.
식사가 거의 끝날 무렵, 종업원이 음료를 새로 서빙하러 들어왔다. 도현이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말했다.
그가 자리를 뜨는 사이, 어른들의 대화는 계속되었다. 나는 그 틈을 이용해 잠시 숨을 돌리려 했다. 하지만 마음이 편해지지 않았다. 도현이 자리를 비운 그 짧은 시간이, 오히려 더 불안하게 느껴졌다.
나는 테이블 위에 놓인 내 음료 잔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뭔가 이상했다.
색이 조금 다른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그냥 내 착각인 것 같기도 했다. 잔의 표면에 아주 얇은 막이 살짝 반짝이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나는 그저 신경이 곤두서 있어서 그런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룸의 조명이 워낙 은은해서 색을 제대로 구분하기 어려웠던 걸지도 모른다고, 억지로 이유를 만들어냈다.
몇 분 뒤, 도현이 돌아왔다.
그의 걸음걸이는 자리를 뜨기 전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여유롭고, 절제되어 있고, 흠잡을 데 없는 태도였다. 그는 자리에 앉으며 나를 향해 정중하게 잔을 들어 보였다.
"오늘 만나서 반가웠어요, 서윤 씨. 한 잔 하시죠."
그의 눈이 나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그 눈빛에는 앞서 보였던 조롱도, 냉소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저 담담했다. 지나치게 담담해서 오히려 부자연스러웠다.
나는 그 잔을 어떻게 거절해야 할지 몰랐다. 이 자리에서 잔을 거절한다는 것 자체가 또 다른 소란을 만들 것 같았다. 엄마의 얼굴, 아빠의 표정, 도현의 부모님이 지켜보는 시선. 그 모든 것이 나를 그 잔을 들어야만 하는 상황으로 밀어넣었다.
나는 별생각 없이 그 잔을 들어 입에 가져갔다.
달착지근하면서도 뭔가 씁쓸한 맛이 목을 타고 넘어갔다. 나는 그것이 그저 특이한 칵테일 맛이라고 생각했다. 목구멍을 넘어가는 그 액체가 유난히 뜨겁게 느껴졌지만, 그것마저도 그저 술기운이라고 넘겨버렸다.
그것이 얼마나 큰 착각이었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식사 자리가 끝나갈 무렵, 어른들은 다음 만남 날짜를 잡으며 화기애애하게 인사를 나눴다. 도현은 마지막까지 예의 바른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가 나에게 마지막으로 건넨 인사는, 이상하게도 유독 다정하게 들렸다.
"다음에 또 봐요, 서윤 씨."
그 말이 왜 그렇게 오싹하게 들렸는지, 나는 그때는 알지 못했다.
집에 돌아가는 차 안에서 나는 몸이 이상하게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처음에는 그저 긴장이 풀려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창밖으로 지나가는 가로등 불빛이 이상하게 흐릿하게 번져 보이기 시작한 것도, 그저 눈이 피곤해서 그런 거라고 넘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열감은 이상할 정도로 심해지고 있었다.
이마에서 땀이 배어나왔고, 심장이 빠르게, 그리고 불규칙하게 뛰기 시작했다. 손끝이 저려오면서, 시야가 조금씩 흔들리는 것 같았다. 엄마의 목소리가 아득하게 멀어졌다가 다시 가까워졌다.
"서윤아? 서윤아, 왜 그래? 얼굴이 왜 이렇게 빨개?"
엄마의 목소리에 놀란 기색이 섞이기 시작했다. 나는 대답하려 했지만, 입이 제대로 벌어지지 않았다. 몸 전체가 뜨거운 물속에 잠긴 것 같았다.
차창에 비친 내 얼굴이, 낯설게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