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원수님, 해독제부터 내놔요

5화

[강서윤 시점] 숨이 안 쉬어졌다. 정확히는, 숨을 쉬려고 해도 목구멍이 좁아진 것처럼 공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목이 부어오르는 감각이 있었고, 눈앞이 하얗게 번졌다. 마치 누군가 내 기도에 밧줄을 걸어 서서히 조이는 것 같았다. 처음엔 따끔거리는 정도였는데, 그게 순식간에 불덩이로 바뀌었다. 삼켰던 그 한 모금의 음료가, 몸속에서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가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의사! 의사 불러줘요!" 엄마의 비명이 병실을 가득 채웠다. 그 소리마저 물속에서 듣는 것처럼 늘어졌다. 나는 침대에서 몸을 뒤틀었다. 손끝이 저리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이제는 손 전체가, 팔 전체가 마비되는 것 같았다. 심장이 갈비뼈를 두드리다가 갑자기 멈춰버릴 것 같은 그 이상한 리듬이, 두려움보다 먼저 몸을 지배했다. 발끝부터 감각이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이대로 사라지는 걸까, 하는 생각이 스치는 순간에도 어처구니없이 냉정한 부분이 남아 있었다. 왜 하필 지금, 왜 하필 이 병실에서. 간호사가 뛰어들어왔고, 의사가 뒤따라 들어왔다. 발소리가 겹치고 겹쳐서 마치 여러 사람이 동시에 뛰어드는 것처럼 들렸다. 산소 마스크가 얼굴에 씌워지고, 누군가 내 팔을 붙잡고 혈압을 재는 소리가 들렸다. 차가운 플라스틱이 코와 입을 덮는 순간, 그 이질감마저 고맙게 느껴졌다. 모든 게 물속에서 벌어지는 일처럼 느껴졌다. 소리는 늘어지고, 빛은 흐려지고, 시간은 자기 마음대로 흘러갔다. 형광등이 유난히 눈을 찌르는 것 같았고, 사람들의 얼굴은 흐릿한 윤곽으로만 남았다. "급성 알레르기 반응입니다. 기도가 좁아지고 있어요." 의사의 목소리가 아득하게 들렸다. 그 뒤로 이어지는 지시들, 수치를 부르는 소리, 산소 포화도를 확인하라는 말들이 뒤섞여 하나의 소음으로 뭉쳐졌다. 나는 그저 눈을 뜨고 있으려고 애썼다. 눈을 감으면 다시는 못 뜰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순간, 병실 문이 벌컥 열렸다. "서윤아!"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산소 부족한 뇌 속에서도 그게 누구인지 알아차렸다. 이도현이었다. 숨이 넘어가는 와중에도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평소의 그 여유로운, 조롱이 섞인 미소가 사라져 있었다. 완전히 다른 얼굴이었다. 창백하게 굳은, 뭔가에 놀란 표정. 그 표정이 낯설어서, 순간 이 사람이 정말 이도현인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늘 모든 상황을 손안에 쥐고 흔드는 것처럼 여유롭던 그가, 지금은 문턱을 넘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약이 뭐였는지 말해!" 의사가 그에게 소리쳤다. "성분 알아야 상쇄제를 쓸 수 있어요, 아니면 이대로 못 잡습니다!" 그 말이 병실 벽에 부딪혀 되돌아오는 것 같았다. 도현이 뭔가를 빠르게 말했다. 나는 정확히 알아들을 수 없었다. 화학 용어 같은 단어들이 스쳐 지나갔고, 의사가 그걸 받아 간호사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단어들은 마치 외운 것처럼 매끄러웠는데, 그 매끄러움이 오히려 더 소름 끼쳤다. 저 사람은, 저 성분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알고 있어야만 저렇게 정확하게 말할 수 있었다. 간호사가 바쁘게 움직였다. 유리병이 부딪히는 소리, 주사기 포장을 뜯는 소리, 낮은 숫자를 읊는 목소리. 그 모든 소음 속에서 나는 그저 눈으로 도현을 좇고 있었다. 주사기가 팔에 꽂혔다. 따가움이 온몸으로 번져나갔다가, 몇 초 후 이상하게도 조금씩 편해지는 감각이 뒤따라왔다. 조여왔던 목구멍이 아주 천천히, 마치 누군가 그 밧줄을 한 마디씩 풀어주는 것처럼 느슨해졌다. 숨이 조금씩 트였다. 산소가 폐 속으로 들어오는 그 낯선 안도감을 느끼며, 나는 눈을 돌려 도현을 바라보았다. 그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병실 문 앞에서, 움직이지 않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발이 바닥에 붙어버린 사람처럼, 한 걸음도 다가오지 못하는 채로. 그 눈빛에는 조롱도, 계산도 없었다. 그냥, 두려움이 있었다. 그 두려움이 너무 생생해서, 나는 순간 내가 지금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보다 저 사람의 표정이 더 신경 쓰였다. 이상한 일이었다. 이 남자가 나를 이렇게 만든 것 같다는 의심이 드는 그 순간에도, 나는 그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괜찮아……." 내가 마스크 밑으로 겨우 내뱉은 말에, 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대신 손으로 자신의 입을 가리고 뒤로 반쯤 물러섰다. 마치 방금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스스로도 감당이 안 되는 것처럼. 그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는 게 보였다. 늘 완벽하게 정돈되어 있던 그 손이었다. 엄마가 그를 향해 소리쳤다. "당신이 그런 거지! 우리 애한테 뭘 먹인 거야!" 엄마의 목소리에는 울음과 분노가 뒤섞여 있었다. 그 목소리가 병실 벽을 때리고 되돌아왔다. "제가……." 도현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흔들렸다. 나는 그 흔들림을 놓치지 않았다. 이 남자도 이렇게 흔들릴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이 상황과는 별개로 이상하게 낯설었다. 마치 늘 매끈하게 다듬어놓았던 대리석 표면에, 갑자기 균열이 하나 생긴 걸 보는 기분이었다. "제 실수였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니. 이 남자가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나. 나는 그 말을 몇 번이나 속으로 되짚었다. 실수였다는 그 말이, 진심인지 아니면 또 다른 계산의 시작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다만 그 목소리에 담긴 떨림만큼은, 연기라고 하기엔 너무 정교하지 못했다. 의사가 상태를 확인하고 나서야, 병실 안의 긴장이 조금 풀렸다. "위험한 순간은 넘겼습니다. 하지만 하루 이틀은 경과를 지켜봐야 해요." 그 말에 엄마가 눈물을 훔치며 자리에 앉았다. 어깨가 들썩이는 게 보였다. 아버지는 어느새 들어와 있었는지, 도현을 향해 낮게 말했다. "자네 나가서 얘기 좀 하지." 그 목소리에는 노기가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절제된 노기였다. 아버지는 늘 그랬다. 화가 나도 소리치지 않았다. 그게 오히려 더 무서웠다. 두 사람이 병실 밖으로 나가는 걸 지켜보며 나는 산소 마스크 속에서 눈을 감았다. 몸은 여전히 무거웠지만, 조금씩 정상적인 감각이 돌아오고 있었다. 손끝의 저림이 가라앉고, 심장의 리듬도 원래대로 돌아오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이상하게도 그 남자가 병실 문 앞에서 지었던 그 표정을 계속 떠올리고 있었다. 조롱도 계산도 없이, 순수하게 겁에 질린 얼굴. 그 얼굴을 몇 번이고 되새기다가, 결국 잠이 든 건지 정신을 놓은 건지 모를 상태로 시간이 흘러갔다. 밤이 깊어지고, 병실에 나 혼자 남았을 때 문이 조용히 열렸다. 복도의 불빛이 문틈으로 길게 스며들었다가, 다시 어둠에 잘려나갔다. 도현이었다. 발소리도 없이 들어온 그는, 침대 옆까지 다가와서야 존재감을 드러냈다. 나는 눈을 감고 있었지만, 그 특유의 향, 서늘하고 건조한 그 향기로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자." 그가 침대 옆 협탁에 작은 유리병을 내려놓았다. 유리병이 협탁 표면에 닿으며 낮은 소리를 냈다. "상쇄제. 만약을 위해서." 나는 눈을 떴다. 병실의 조명은 낮게 조절되어 있었고, 그의 얼굴은 절반쯤 어둠에 잠겨 있었다. "당신이 왜 그렇게 놀란 표정을 지었어." 내가 물었다. 목소리가 아직 갈라져 있었지만, 그 질문만큼은 또렷하게 던지고 싶었다. 도현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이 협탁 위 유리병으로, 그다음엔 내 얼굴로 옮겨왔다. 그러다가 낮게 대답했다. "놀란 게 아니야." "놀란 거였어. 봤어." 또 침묵이 흘렀다. 나는 그 침묵 속에서 뭔가 미세한 균열을 느꼈다. 이 남자는, 늘 자신이 통제하는 상황에서만 말을 하던 사람이었다. 매 순간 계산된 대사를 미리 준비해두고 있는 것처럼, 그가 하는 말은 언제나 정확하고 흔들림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자기 자신조차 통제하지 못하는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약속했던 조건." 그가 말을 돌렸다. "아직 유효해." "이 상황에서도 그 얘기가 나와?" 나는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올 뻔했다. 웃을 힘도 없었지만, 그 뻔뻔함이 새삼 놀라웠다. 방금까지 병실 문 앞에서 그렇게 흔들리던 사람이, 이제 다시 원래의 그로 돌아와 있었다. "넌 살았어. 그게 우선이야." "그래서 그 대가로 당신 여자가 되라고?" 그의 눈이 나를 똑바로 향했다. 그 시선에는 조금 전 병실 문 앞에서 봤던 그 두려움의 잔재가 남아 있는 것 같았는데, 확신할 수는 없었다. "내 정혼자가 되라고 했어. 여자가 되라는 게 아니라." "똑같은 말이잖아." "아니." 그가 짧게 반박했다. "전혀 다른 말이야."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정확히 짚어내지 못했다. 다만, 그 순간 그의 목소리에 담긴 무언가가, 조금 전 병실 문 앞에서 지었던 표정과 이어져 있다는 것만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정혼자와 여자, 그 두 단어 사이에 그가 그어놓은 선이 무엇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싫어. 대답은 여전히 싫다야." 내가 단호하게 말했다. 목소리에 힘이 실리지 않았지만, 그 뜻만큼은 분명히 전달되길 바랐다. 그러자 그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다시 처음의 그 미소를 걸었다. 냉소적인, 아무것도 흔들리지 않는 그 미소. 마치 아까의 그 흔들림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완벽하게 복원된 표정이었다. "그럼 생각할 시간을 좀 더 줄게." 그가 병실 문을 향해 걸어가다가, 문 앞에서 멈춰 섰다. 그 자리, 아까 그가 겁에 질린 얼굴로 서 있던 바로 그 자리였다. "다음번엔 이런 실수 없을 거야."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나는 물어볼 틈도 없이, 그는 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병실 안에 오래도록 남았다. 나는 협탁 위의 유리병을 바라보았다. 조명 아래 그 유리병은 아무 죄도 없는 것처럼 투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저 안에 든 게 정말로 나를 살릴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함정의 시작인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아주 이상한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조금 전, 이도현이 나를 향해 뛰어들어오던 그 순간— 그는 성분을 정확히 말했다. 정확히 말할 수 있었다는 건, 그가 그 약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걸 의사에게 알려주는 순간, 그는 자신이 그 약과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드러내버린 것이었다. 그는 나를 살리기 위해서, 자신이 준비했던 그 모든 계획을 스스로 폭로해버린 것이었다.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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