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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어둠은 무게가 없었다. 위도 아래도 없었다. 그냥 어둠이었다. 강윤은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트럭의 전조등. 브레이크 소리. 그리고 아무것도 없었다. 정확히는 그 순서를 몇 번이고 되짚어볼 수 있었다. 편의점 앞 신호등이 초록으로 바뀌던 순간. 횡단보도 저편에서 걸어오던 사람의 우산. 비가 오고 있었다. 우산 아래로 보이던 신발 끝. 그리고 헤드라이트 두 개가 시야를 하얗게 채웠다. 그 다음은 기억나지 않았다. 소리만 남았다. 타이어가 아스팔트를 긁는 소리, 그리고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 그 소리가 자신의 몸이 부서지는 소리였다는 걸 강윤은 나중에야, 지금에야 알았다. 몸이 없었다. 손끝을 움직이려 했다. 손끝이 없었다. 숨을 쉬려 했다. 숨이 없었다. 그런데도 의식은 또렷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살아있을 때는 늘 생각했다. 죽으면 그냥 꺼지는 스위치 같은 거라고. 불이 나가듯, 화면이 꺼지듯, 그렇게 끝날 거라고. 그런데 지금 강윤은 꺼지지 않은 채로 어둠 속에 남아 있었다. 생각이, 기억이, 자기라는 감각이 그대로였다. 생각이 남아 있다는 것 자체가 이상했다. 죽으면 끝이라고 배웠다. 사람은 그렇게 알고 살았다. 그런데 이건 끝이 아니었다. 몸이 없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강윤은 설명할 수 없었다. 팔이 있어야 할 자리에 팔이 없었고, 다리가 있어야 할 자리에 다리가 없었다. 그런데도 팔과 다리가 있었던 감각의 잔상만은 남아 있었다. 마치 절단된 부위에 남는 환지통 같은 것. 다만 여기엔 통증도 없었다. 그저 없음, 그 자체였다. 어둠 속에서 낮은 진동이 울렸다. 웅— 소리라기보다는 감촉이었다. 온몸으로 느껴졌다. 몸이 없는데도 그랬다. 마치 물속에서 저 멀리 지나가는 배의 엔진 소리를 피부로 느끼는 것과 비슷했다. 강윤은 살아있을 때 바다에서 그런 걸 느낀 적이 있었다. 스노클링을 하다가, 저 멀리서 모터보트가 지나갈 때. 지금 이 진동은 그것과 닮았지만 훨씬 크고, 훨씬 무거웠다. 그리고 글자가 떠올랐다. [시스템 각성 신호 감지.] [영혼 개체 확인 중...] [오류. 오류. 신체 정보 없음.] 강윤은 그 글자들을 눈이 아니라 무언가 다른 감각으로 읽었다. 시신경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머릿속에 박히는 느낌이었다. 낯설었다. 그런데 동시에 낯설지가 않았다. 게임 창 같았다. 살아 있을 때 수천 시간을 쏟아부었던 그 화면과 똑같은 폰트였다. 각진 고딕체, 회색 배경, 모서리가 살짝 둥근 사각형 틀. 몇 년을 매일같이 들여다봤던 인터페이스였다. 새벽까지 파티원을 구하고, 던전을 돌고, 아이템 창을 열어 확인하던 그 화면. 이런 순간에까지 그 폰트를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웃음이 나왔다. 웃을 입도 없는데 웃음이 나왔다. "이거 진짜냐." 대답은 없었다. 강윤은 조금 더 기다렸다. 혹시 반응 속도가 느린 시스템인가 싶었다. 접속 초기에 렉이 걸리는 게임들처럼. 하지만 몇 초가 지나도, 몇십 초가 지나도 침묵은 이어졌다. [개체명: 강윤] [접속 좌표: 미확정] [신체 데이터: 삭제됨] 삭제됨. 그 단어가 유독 선명했다. 몸이 사라졌다는 뜻이었다. 죽은 순간에 사라진 게 아니라, 어딘가로 오는 과정에서 지워졌다는 뜻처럼 읽혔다. 강윤은 그 문장을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읽었다. 신체 데이터. 삭제됨. 마치 서버에서 캐릭터 정보를 지우는 것처럼, 누군가 어딘가에서 자신의 몸을 지운 것 같았다. 육체라는 파일 자체를 삭제하고, 영혼이라는 데이터만 남긴 것처럼. 그렇다면 이 데이터는 어디로 가는 걸까. 웅— 진동이 다시 울렸다. 이번엔 더 컸다. 어둠 어딘가에서 냄새가 났다. 흙냄새. 비 냄새. 오래된 나무 냄새. 몸이 없는데도 냄새를 맡을 수 있다는 게 이상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상한 것투성이였다. 하나 더 이상하다고 놀랄 여유가 없었다. 강윤은 그 냄새들을 하나씩 되짚어 보았다. 흙냄새는 비 온 뒤의 젖은 화단 같았다. 비 냄새는 방금 전, 사고가 나기 직전에 맡았던 그 냄새와 비슷했다. 오래된 나무 냄새는 낯설었다. 시골 할머니 집의 마루 냄새 같기도 했고, 오래된 사찰의 기둥 냄새 같기도 했다. 이 셋이 한꺼번에 섞여 있다는 게 이상했다. 마치 어딘가의 숲, 비가 그친 직후의 오래된 숲의 냄새 같았다. [직업 선택 창을 준비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강윤은 기다렸다. 1초, 2초, 10초. 창은 열리지 않았다. 살아있을 때 게임을 하며 로딩 화면을 수천 번 봤다. 로딩 바가 멈추면 대개 서버 문제거나, 클라이언트 오류였다. 강윤은 저도 모르게 그때의 습관대로 초를 셌다. 하나, 둘, 셋. 열을 넘기고, 스물을 넘겼다. 창은 여전히 열리지 않았다. 웅— 웅— 진동의 리듬이 흐트러졌다. 규칙적이던 파형이 갈라졌다. 처음에는 일정한 박자로 울리던 진동이 이제는 들쭉날쭉했다. 마치 심장이 부정맥을 일으키는 것처럼, 리듬이 끊기고 다시 이어지고, 다시 끊겼다. 글자들이 깜빡였다. [오류 발생.] [좌표 재확인 중...] […] […] 말줄임표만 늘어놓은 채로 화면이 멈췄다. 강윤은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걸 느꼈다. 정확히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어둠의 밀도가 달라지고 있었다. 짙어졌다. 무거워졌다. 마치 물속으로 점점 깊이 끌려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압력이 있을 리 없는데도, 압력이 느껴졌다. 있어야 할 귀가 없는데도 귀가 먹먹해지는 감각이 들었다. 어릴 때 물에 빠졌던 기억이 떠올랐다. 발이 닿지 않는 물속에서 위아래를 잃어버렸던 그 순간. 여덟 살이었나, 아홉 살이었나. 여름 캠프에서 계곡에 놀러 갔다가 물살에 휩쓸려 깊은 곳으로 빠졌던 적이 있었다. 그때도 이랬다. 위가 어딘지, 아래가 어딘지 알 수 없었다. 숨을 쉬어야 하는데 어느 쪽으로 올라가야 할지 몰랐다. 팔다리를 허우적댔지만 그건 오히려 더 깊이 빠지게 만들었을 뿐이었다. 결국 누군가의 손이 강윤을 끌어올렸다. 캠프 지도교사였던 걸로 기억한다. 지금이 그것과 닮아 있었다. 다만 지금은 끌어올려 줄 손이 없었다. "어이." 말을 걸어봤다. 입이 없어도 소리는 났다. 정확히는 소리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무언가가 났다. 진동과 비슷한 방식으로, 어둠 속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파동 같은 것이었다. 대답은 없었다. 강윤은 조금 더 크게, 마음속으로 소리를 질러보려 했다. "거기 누구 없어?" 역시 대답은 없었다. [시스템 재기동 시도.] [실패.] [재기동 시도.] [실패.] 실패라는 단어가 세 번, 네 번 반복해서 떴다. 다섯 번째, 여섯 번째. 강윤은 그 숫자를 세다가 그만두었다. 이건 좋은 신호가 아니었다. 아무리 게임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이 정도 반복되는 오류 메시지가 뭘 의미하는지는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다 화면 전체가 지지직 흔들렸다. 텔레비전 잡음 같았다. 화면이 깨지듯 조각났다. 글자들이 서로 겹쳐지고, 뒤섞이고, 알아볼 수 없는 형태로 뭉개졌다. 마치 오래된 브라운관 텔레비전의 채널을 잘못 맞췄을 때처럼, 화면 가득 눈발 같은 잡음이 튀었다. 강윤은 무언가를 붙잡으려 했다. 손이 없으니 붙잡을 수 없었다. 그래도 붙잡으려는 그 동작, 그 의지만은 분명했다. 잡을 것이 없는데도 손가락을 오므리는 감각이 들었다. 있지도 않은 손가락으로, 있지도 않은 무언가를 움켜쥐려는 헛된 시도였다. 그저 떠 있을 뿐이었다. 어둠 속에서, 몸도 없이, 이름도 흐릿해지는 채로. 강윤이라는 이름조차 이제는 낯설게 느껴졌다. 그 이름을 가지고 살았던 서른 몇 해의 시간이 아주 먼 옛날처럼 느껴졌다. 부모님의 얼굴, 친구들의 얼굴, 마지막으로 통화했던 사람의 목소리. 그런 것들이 하나씩 흐려지고 있었다. 마치 물에 젖은 종이 위의 글씨가 번지는 것처럼. 마지막으로 보인 문장은 이거였다. [시스템…이…을…] 그리고 완전히 꺼졌다. 소리도 없었다. 냄새도 사라졌다. 진동도 멈췄다. 남은 것은 어둠뿐이었다. 아까보다 더 짙은, 바닥이 없는 어둠. 이번의 어둠은 조금 전과는 달랐다. 조금 전까지는 무언가가 있다는 느낌이 있었다. 진동이 있었고, 냄새가 있었고, 글자가 있었다. 그것들이 사라진 지금, 어둠은 완전히 텅 비어 있었다. 마치 우주의 끝, 아무 별도 없는 공간에 홀로 떠 있는 것 같았다. 강윤은 그 속에서 생각했다. 죽은 것보다 더 무서운 게 있다면, 그건 아무것도 아닌 채로 영원히 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살았을 때는 죽음이 가장 두려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강윤은 다르게 생각하게 되었다. 죽음은 적어도 끝이었다. 그런데 이건 끝도 아니고 시작도 아닌, 그 사이 어딘가에 갇혀버린 상태였다. 완전한 무(無). 존재하지도 않고, 존재하지 않지도 않는 상태.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1초일 수도 있었고, 백 년일 수도 있었다. 강윤은 시간을 셀 방법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심장이 뛰지 않으니 심장 박동으로 시간을 잴 수도 없었고, 숨을 쉬지 않으니 호흡으로 잴 수도 없었다. 생각의 흐름만이 유일한 척도였는데, 그마저도 어둠 속에서는 뒤엉키고 늘어져서 얼마나 지났는지 가늠할 수 없었다. 한 가지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만약 이 상태가 영원히 지속된다면 어떨까. 몸도 없이, 시스템도 없이, 그저 의식만 남아서 무한한 어둠 속을 떠다니는 것. 그 상상만으로도 강윤은 손끝이 있었다면 분명 차가워졌을 거라고 생각했다. 겁이 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의 감각은 분명 그것과 닮아 있었다. 그러다 아주 희미하게, 저 멀리서 다시 진동이 시작되었다. 웅— 한 번. 두 번. 세 번. 강윤은 그 소리를 향해 정신을 집중했다.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몸도 없고, 손도 없고, 시간을 셀 방법도 없는 지금, 그저 저 먼 진동에 온 의식을 쏟는 것만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이 저 위로 새어 드는 한 줄기 빛을 향해 필사적으로 시선을 고정하는 것처럼.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처음엔 아주 희미했던 그 울림이, 조금씩, 조금씩 선명해지고 있었다. 강윤은 그것이 좋은 신호인지 나쁜 신호인지 알 수 없었다. 시스템이 재기동되는 소리일 수도 있었고, 전혀 다른 무언가가 다가오는 소리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시스템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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