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다정한 밤의 살인기계

3화

격리 사흘째, 시간이 늘어지는 방식이 이상했다. 창문이 없는 방에서는 낮과 밤이 형광등 색으로만 구분됐다. 하얀 빛은 낮, 살짝 어두워지는 빛은 밤. 그 규칙마저 며칠 만에 지긋지긋해졌다. 누가 이 방을 설계했는지 몰라도, 인테리어 감각이 교도소 수준이었다. 아니, 교도소보다 더했다. 최소한 교도소엔 창문이 있으니까. 식사는 트레이에 담겨 문 아래 구멍으로 밀려 들어왔다. 덜그럭. 소리가 날 때마다 개처럼 반응하는 나 자신이 웃겼다. 파블로프가 이 상황을 봤으면 논문 하나 더 썼을 거다. 먹고, 자고, 벽을 노려보고. 반복. 먹고, 자고, 벽을 노려보고. 이게 자유를 향한 첫걸음이라니, 시작부터 이렇게 웃기게 꼬일 줄은 몰랐다. 벽지 무늬를 세는 것도 이제 지겨웠다. 같은 자리에 있는 얼룩, 같은 모양의 균열. 어제 세었을 때도 서른일곱 개였고 오늘도 서른일곱 개였다. 당연한 거지만, 그 당연함이 사람을 미치게 만들었다. 나흘째 되던 날, 참는 게 한계에 닿았다. 벽에 등을 대고 앉아 있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손바닥으로 문을 두드렸다. 쾅쾅. "나가야 돼요, 누구 없어요." 대답은 없었다. 스피커에서 치이익, 잡음만 돌아왔다. 쾅쾅쾅. "저기요, 사람 있어요?" 여전히 잡음. 마치 이 방 자체가 아무도 듣지 않는 극장 세트장 같았다. 환풍구가 눈에 들어왔다. 벽 위쪽, 세면대 위, 아주 좁은 격자. 저기로 나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 순간 이미 몸이 움직이고 있었다. 의자를 끌어다 세면대 옆에 놓고 올라섰다. 삐걱, 의자 다리가 흔들렸다. 손을 뻗어 격자를 잡아당기자 삐걱, 나사가 헐거워지는 소리가 났다. 조금만 더. 손끝이 저려왔다. 땀이 손바닥에서 미끈거렸다. 탈옥 영화에서는 이런 장면이 삼십 초면 끝나던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나사 하나가 도무지 빠질 생각을 안 했다. "거기서 뭐 하냐."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놀라서 균형을 잃고 바닥에 떨어졌다. 둔탁한 소리, 쿵. 엉덩이가 아팠다. 정말, 진심으로, 뼈까지 아팠다. 문가에 서아가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표정이 뭔가 재밌는 걸 봤다는 듯 살짝 올라가 있었다. "환풍구 크기 봤어? 고양이도 못 지나가." "시도는 해봐야죠." "멍청한 시도네." 그녀가 방으로 들어와 문을 닫았다. 발소리가 유독 또렷하게 들렸다. 탁, 탁, 탁. 정확하고 낭비 없는 걸음이었다. "오늘 대전 상대 정해졌어." 몸이 굳었다. 방금까지 손끝을 저리게 하던 통증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다른 종류의 얼어붙음이 왔다. "누구요." "최광일." 서아의 표정이 처음으로 흐려졌다. 그 표정 하나로 이미 뭔가 잘못됐다는 걸 알았다. 그녀가 저런 얼굴을 하는 걸 처음 봤으니까. "코드네임 그림자송곳니. 드로우 드루이드. 야수로 변해서 싸워. 지금까지 흑야에서 그 이름한테 죽은 사람만 셋이야." "세 명이나요." "죽인 게 아니라 죽었다는 거야. 규칙상 살인은 안 되는데, 최광일은 그 규칙을 아주 아슬아슬하게 지켜." "아슬아슬하다는 게 정확히 뭘 뜻하는 건데요." "항복하기 직전까지 몰아넣고, 항복 못 할 정도로 겁을 줘서 상대가 스스로 심장 멈추게 만드는 거." "그게 살인이 아니에요?" "규칙상은 아니야." 그녀가 어깨를 으쓱했는데, 그 몸짓이 지나치게 가벼워서 오히려 무서웠다. 식도가 조여드는 느낌이 들었다. "거절할 수 없는 거죠." "거절하면 밥이 안 나와. 진짜로." 서아가 어깨를 으쓱했다. "농담 아니고." "그러니까 굶어 죽거나 물려 죽거나, 선택지가 그거 두 개라는 거네요." "셋 중에 하나 골라. 굶어 죽거나, 물려 죽거나, 이기거나." "셋 중에 하나가 아니라 그냥 두 개인 것 같은데요."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게 대답이었다. 대전 준비실로 이동하는 동안 복도 벽이 점점 넓어졌다. 조명도 붉은색으로 바뀌었다. 관중석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벽을 타고 울렸다. 박수 소리, 야유 소리, 뒤섞여서 파도처럼 들렸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 소리가 가까워졌다. 심장이 그 소리에 맞춰 뛰는 것 같았다. 아니, 정확히는 심장이 먼저 뛰고 그 소리가 뒤따라오는 느낌이었다. 대기실에서 갑옷 비슷한 방어구를 건네받았다. 가볍고 딱딱한 소재였다. 플라스틱과 금속의 중간쯤 되는 질감, 만지면 서늘했다. 입으면서 손이 떨렸다. 덜덜. 버클을 채우는데 손가락이 자꾸 미끄러졌다. 서아가 옆에서 대신 채워줬다. "긴장 좀 풀어." "이게 풀리는 상황인가요." "안 풀리는 건 아는데, 그래도." 말을 끝맺지 않고 그녀는 뒤로 물러섰다. 첫 시합이라는 게 실감 났다. 곽 회장이 나타나 심드렁하게 규칙을 읊었다. "항복 선언하면 멈춰. 죽이면 벌금이 세다. 그 외엔 다 허용." "다 허용이라니, 그게 규칙이에요?" "규칙 없는 게 규칙이야." 곽 회장이 웃지도 않고 대답했다. "그럼 눈을 파도 되고요?" "돼." "손목을 부러뜨려도?" "돼." "그건 좀 너무한 것 같은데요." "너무하다는 기준은 네가 정하는 게 아니야." 곽 회장이 뒷짐을 지고 돌아섰다. 더는 대화할 마음이 없다는 뜻이었다. 철문이 위로 올라갔다. 끼이이익―. 빛이 쏟아졌다. 관중석이 원형으로 아래를 내려다보는 구조였다. 수백 개의 눈, 아니 그 이상. 조명이 뜨거웠다. 빛 아래 서 있으니 벌레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관찰당하는 벌레, 어느 손이 다가와 유리병에 넣어버릴지도 모르는 벌레. 건너편 문에서 무언가 걸어 나왔다. 처음엔 사슴이라고 생각했다. 네 발로 걷는 실루엣, 뾰족한 형태. 그러나 걸음을 옮길수록 그림자가 다르게 늘어졌다. 등이 굽고, 팔이 두 개 더 생겨났다가 사라졌다. 형체가 안정되지 않은 채로 계속 변형되고 있었다. 사슴이 아니었다. 사슴이라고 부를 수 있는 무엇도 아니었다. 관중석에서 함성이 커졌다. 누군가 이름을 연호했다. "광일! 광일! 광일!" 그 소리가 심장 박동보다 크게 귀를 때렸다. 마지막으로 얼굴이 드러났다. 검은 피부, 은빛 눈동자, 짐승의 이빨이 입 밖으로 삐져나와 있었다. 드로우. 최광일이었다. 그가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는 순간, 낮은 그르렁 소리가 났다. 으르르릉.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비유가 아니라 진짜로, 팔뚝에 소름이 돋았다. 목이 저절로 뒤로 젖혀졌다. 숨을 들이쉬는데 공기가 이상하게 무거웠다. 다리가 굳었다. 움직이라고, 뭐라도 하라고 머릿속에서 명령을 내리는데 발이 대답하지 않았다. 서아가 아까 한 말이 귓가에서 되풀이됐다. 굶어 죽거나, 물려 죽거나, 이기거나. 셋 중에 하나. 지금 이 순간, 그 셋 중에 어느 것도 가능해 보이지 않았다. 최광일의 은빛 눈동자가 나를 위아래로 훑었다. 먹잇감을 재는 눈이었다. 그 눈빛 아래에서 나는, 이길 방법을 찾기도 전에 이미 도망칠 방법부터 계산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계산조차, 완성되기 전에 그가 먼저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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