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도윤이 한서대학교에서 퇴학당한 건, 정확히 삼 주 전의 일이었다.
사건의 시작은 사소했다. 전공 수업의 조모임. 조원은 다섯 명이었고, 그중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한서윤이었다. 학교 전체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소문난 여학생이었고, 동시에 지배욕이 강한 성격으로도 유명했다. 후배들은 그녀를 '여왕벌'이라고 불렀는데, 그야말로 별명이 아깝지 않은 성격이었다.
"강도윤 씨가 발표 자료 좀 정리해줘요." 한서윤이 웃으며 말했지만, 그 웃음 안엔 명령이 숨어 있었다.
도윤은 거절하는 법을 몰랐다. 아니, 정확히는 그런 부탁을 거절해본 적이 없었다. 결국 자료 정리부터 슬라이드 제작, 발표까지 전부 도윤의 몫이 됐다. 다른 조원들은 카페에서 수다를 떨고 있는데, 도윤 혼자 도서관에 앉아 새벽 두 시까지 자료를 뒤졌다.
'이러다 내가 조 대표로 발표까지 하게 되는 거 아니야?'
그 예감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발표 당일, 문제가 터졌다. 조원 중 한 명이 인터넷에서 그대로 베껴온 자료가 발표 자료에 섞여 들어갔고, 교수는 조 전체의 책임을 물었다. 표절 검사 프로그램의 결과지가 화면에 떠올랐을 때, 강의실 안의 시선이 일제히 도윤에게 쏠렸다.
그때 한서윤이 한 일은 단순했다.
"저는 몰랐어요. 도윤 씨가 자료 담당이었으니까요." 한서윤이 눈물까지 글썽이며 말했다. 놀랍도록 자연스러운 연기였다.
그 한마디로 모든 책임이 도윤에게 넘어갔다. 게다가 한서윤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조모임이 끝난 뒤 개인적으로 만나자며 불러낸 자리에서, 도윤이 목소리를 조금 높였다는 이유로 자신을 위협했다는 거짓 신고까지 얹었다. 학생처에는 대화 내용이 편집된 음성 파일이 제출되었다.
"제가 언제 위협을 했다는 거예요?" 도윤이 물었지만, 이미 늦은 질문이었다.
결과는 정학이 아니라 퇴학이었다.
***
학생처장 김미란과의 면담은 오 분도 걸리지 않았다.
금발로 염색한 머리, 날카로운 눈빛. 김미란은 서류를 훑어보는 내내 도윤의 얼굴을 한 번도 제대로 보지 않았다. 책상 위에는 그녀가 좋아하는 향수 냄새가 진하게 배어 있었는데, 도윤은 그 냄새마저 이 상황을 조롱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학생, 증거가 없어도 정황상 신뢰의 문제입니다." 그녀가 말했다. "장학금 규정에도 위배되고요."
"저는 억울합니다." 도윤이 목소리를 높였지만, 그 말은 방 안 어딘가에 흡수되듯 사라졌다.
"한서윤 학생 아버님이 이 학교 이사장님과 오랜 친분이 있다는 건, 학생도 알고 있죠?" 김미란이 서류 넘기는 손을 멈추지 않은 채 덧붙였다.
그 말이 사실상 결론이었다. 도윤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김미란은 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장학금이 끊겼고, 등록금 대출과 생활비 대출이 한꺼번에 상환 압박에 들어갔다. 총액 일억 삼천만 원. 은행에서 온 문자는 하루에도 몇 통씩 쌓였다. 어머니는 병원비를 감당하지 못해 다니던 일도 그만둔 상태였고, 도윤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다.
원룸 월세도 두 달째 밀려 있었다. 편의점 알바로는 이자조차 갚기 힘들었다. 밤마다 천장을 보며 계산기를 두드려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이 절망의 끝에서, 도윤은 우연히 스마트폰에 나타난 이상한 앱을 눌렀던 것이다.
***
라연의 상태가 조금 나아진 건 다음 날 아침이었다.
밤새 앓는 소리를 내던 라연은 새벽이 되어서야 겨우 잠이 든 것 같았다. 도윤은 그 옆에서 꼬박 밤을 새우며 사슬이 조금씩 조여드는 걸 지켜봤다.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라연이 힘겨워할 때마다 스스로 움직였다.
"괜찮아요?" 도윤이 물었다.
"괜찮을 리가 없지." 라연이 무릎을 짚고 일어나며 대답했다. 목소리에는 여전히 지친 기색이 남아 있었다. "이 사슬은 네 친밀도가 오를 때마다 조금씩 느슨해진다."
"친밀도요?"
라연이 화면을 가리켰다. 게이지 바가 조금씩 채워지고 있었다. 정확히는, 어제 도윤이 그녀를 걱정했던 순간부터.
도윤은 그 숫자를 몇 번이나 다시 확인했다. '이게 진짜라고?' 게임 속 스탯창처럼 생긴 그 화면은, 그러나 눈앞의 여자를 실제로 옭아매고 있는 물건이었다.
"그럼 제가 뭔가를 해야 그게 풀리는 거예요?"
"퀘스트라는 걸 수행해야 한다는군." 라연이 화면을 넘기며 말했다. 손가락 끝이 화면 위를 스치자, 파란 빛의 글씨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몇 명의 여자를 정복하라는 명령이 있다."
"정복이요?" 도윤의 목소리가 살짝 갈라졌다.
"마음을 얻으라는 뜻이겠지." 라연은 무심하게 덧붙였다. "불쾌하다면 안 해도 된다. 다만 나는 계속 이 사슬을 차고 있어야겠지만."
라연은 그 말을 하면서도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다. 마치 남의 일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담담한 어조였는데, 그 담담함이 오히려 도윤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도윤은 그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대신 어젯밤 라연이 고통스러워하던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사슬이 살을 파고들 때마다 이를 악물던 얼굴, 그리고 그 와중에도 신음 한 번 크게 내지 않으려 애쓰던 모습.
'저 여자, 나 때문에 저러는 거잖아.'
그 생각이, 부채감이라는 이름으로 자리 잡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할게요." 도윤이 말했다. "퀘스트, 할게요."
라연이 처음으로 옅게 웃었다. 그 웃음은 짧고 낮았지만, 분명 웃음이었다. "결정이 빠르군."
"어차피 잃을 것도 없으니까요."
도윤은 그렇게 대답하며 스스로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인생 최악의 날이라고 생각했던 하루였는데, 지금은 그보다 더 이상한 상황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중이었다.
그리고 이 말은, 앞으로 도윤이 겪을 모든 고생의 시발점이 되는 문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