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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학생처장실 앞에서 도윤은 세 번이나 심호흡을 했다. 문을 두드리기 전에 이렇게 긴장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복도는 텅 비어 있었다. 형광등 하나가 미세하게 깜박이며 지지직거리는 소리를 냈고, 그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문 옆에 걸린 명패에는 '학생처장 김미란'이라는 글자가 금색으로 새겨져 있었는데, 그 글자를 보는 것만으로도 도윤의 손끝이 차가워졌다. '그냥 규정을 다시 검토해달라고 부탁하는 거야. 그게 뭐 그렇게 어려운 일이라고.' 머릿속으로는 그렇게 되뇌었지만, 정작 문고리를 잡는 손은 조금 떨리고 있었다. "들어오세요." 김미란의 목소리가 무심하게 흘러나왔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금발로 염색한 머리의 여자가 책상 앞에 앉아 서류를 넘기고 있었다. 그녀는 도윤을 보고도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다. 마치 애초부터 이 만남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한 태도였다. 책상 위에는 서류철이 정확히 세 줄로 정렬되어 있었고, 그 정렬 자체가 이상하게 그녀의 성격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였다. "강도윤 학생." 그녀가 서류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퇴학 처리는 이미 이사회 결정으로 확정된 사안입니다." "증거가... 없었습니다." 도윤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조모임에서 있었던 일은, 제가 알기로는 조작된..." "학생." 김미란이 그의 말을 끊었다. 목소리는 여전히 낮고 무관심했지만, 그 무관심 자체가 위압적이었다. "규정상 재조사는 불가합니다." "하지만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도윤은 자신의 목소리가 갈라지는 걸 느꼈다. "적어도 제 말을 들어주실 수는 있는 거 아닙니까." 김미란은 그를 잠시 바라보았다. 그 시선이 사람을 보는 것 같지 않았다. 마치 서류 뭉치를 보는 듯한, 감정이 완전히 배제된 시선이었다. 도윤은 그 순간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방 안 온도가 갑자기 낮아진 것 같았고, 김미란의 눈빛이 형광등 불빛 아래서 순간적으로 다른 색으로 번뜩인 것처럼 보였다. 그는 눈을 깜박이며 고개를 저었다. '착각이겠지.' 책상 위의 펜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도윤은 그것도 착각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럼... 장학금 규정이라도 다시 검토해주실 수 없습니까." 그가 마지막 힘을 짜냈다. "불가합니다." 대답은 짧고 명확했다. "이유라도 말씀해주실 수 있습니까." "규정입니다." 김미란은 서류철을 다시 집어 들었다. 대화는 끝났다는 뜻이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도윤은 고개를 숙이고 방을 나왔다. 등 뒤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마치 관 뚜껑 닫히는 소리처럼 들렸다. 그는 문 앞에서 잠시 멈춰 서 있었다. 뭔가 더 할 수 있었을 텐데, 뭔가 더 말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런 후회가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이미 늦은 일이었다. *** 복도를 걸어 나오던 도윤은 익숙한 웃음소리에 걸음을 멈췄다. 한서윤이었다. 그녀는 금발로 염색한 미남 하나와 함께 나란히 걸어오고 있었는데, 그 남자가 바로 박준서였다. 재벌가의 아들이자 학교 안에서는 왕처럼 행세하는 인물이라는 소문이었다. 명품 시계가 그의 손목에서 번쩍였고, 걸음걸이에는 여유가 흘러넘쳤다. 세상 모든 게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걸음걸이였다. "어, 도윤 씨." 한서윤이 웃으며 인사했다. 명령을 숨긴 웃음이었다. "아직도 학교에 볼일이 있어요?" 도윤은 그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대답할 가치도 없는 질문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대답할 힘이 없었다. "쟤가 걔야?" 박준서가 도윤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물었다. 목소리에 대놓고 무례함이 묻어 있었다. "소문으로 들었는데, 진짜 별거 없네." "뭐가요?" 도윤이 자기도 모르게 되물었다. "아, 말 잘하네." 박준서가 피식 웃었다. "장학금 없어지면 등록금은 어떻게 낼 거야? 알바라도 뛰나?" 한서윤이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 웃음이 도윤에게는 어떤 대사보다도 잔인하게 느껴졌다. 마치 도윤의 처지 전체를 하나의 농담거리로 취급하는 웃음이었다. "신경 안 써주셔도 됩니다." 도윤이 짧게 말했다. "신경 안 쓰니까 걱정 마." 박준서가 어깨를 툭 치듯 지나가며 말했다. 그 손짓이 우연이 아니라는 걸 도윤은 알았다. 도윤은 아무 말 없이 그들을 지나쳐 걸어갔다. 뒤에서 두 사람의 낮은 웃음소리가 들렸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보면 뭔가 더 참지 못할 것 같았다. *** 반지하 방으로 돌아오는 길, 그는 몇 번이고 주먹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골목 어귀의 가로등이 깜박거리며 그의 그림자를 길게 늘였다 줄였다 했다. 정공법은 통하지 않았다. 학교도, 규정도, 그를 도와줄 생각이 없었다. 계단을 내려가는 발소리가 유난히 무겁게 울렸다. 문을 열자 익숙한 곰팡이 냄새와 함께 라연의 얼굴이 보였다. "이 방법으로는 안 되겠어." 라연에게 상황을 설명하며 그가 말했다. 학생처장실에서 있었던 일, 복도에서 마주친 두 사람, 그 모든 걸 하나씩 나열했다. 라연은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짧게 물었다. "그럼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네." "어떤 방법이요." "세상에는 공식적인 창구로는 절대 알 수 없는 정보들이 있어." 라연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그런 정보를 아는 사람들을 찾아야 해." "그런 사람들이 어디 있는데요?" "찾으면 나와." 라연은 마치 당연한 걸 묻는다는 듯 대답했다. "이 동네도 그런 사람들이 몇 명 있어. 다만 정상적인 방식으로는 절대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지." 도윤은 그 말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직 알지 못했다. '정상적인 방식으로 만날 수 없다'는 말이 어쩐지 불길하게 들렸지만, 지금 그에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믿을 만한 사람들이에요?" "믿을 만하냐고?" 라연이 피식 웃었다. 그 웃음에는 뭔가 도윤이 이해할 수 없는 종류의 여유가 있었다. "믿을 만한지는 만나보면 알겠지." 도윤은 그 대답이 전혀 안심이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곧 알게 될 것이었다. 그리고 그 앎은, 예상보다 훨씬 우스꽝스러운 방식으로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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