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청호함 3층 브리핑실의 조명은 늘 그렇듯 청백색이었다. 형광등도 아니고 LED도 아닌, 뭐라 설명하기 힘든 차가운 빛이 벽 전체에서 새어나왔다. 나는 12번 자리에 앉아 홀로그램 지도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청림 콜로니, 인구 3,200명, 변경 행성 헤스티아 3구역 소속. 화면 하단에는 마지막 보급선이 도착한 날짜가 떠 있었다. 47일 전이었다.
내 왼쪽 손목에는 임관 3주 차를 알리는 신입 배지가 아직 붙어 있었다. 다른 요원들은 그 배지를 떼는 데 보통 한 달이 걸린다고 했다. 나는 아직 뗄 자격이 없었다.
"강서은 특수요원." 한도영 함장이 내 이름을 불렀다. "이번 임무는 단순 보급이다. 의료 물자와 씨앗, 정수 필터. 왕복 6시간이면 끝나."
"단순 보급에 특수요원을 보내는 이유가 있습니까." 내가 물었다.
"청림은 3년째 연합 순찰이 뜸했던 지역이야. 최근 통신 로그에 이상 신호가 세 번 잡혔다." 함장이 화면을 넘기며 말했다. "확인만 하고 와."
"이상 신호라면 어떤 종류입니까." 나는 다시 물었다.
"암호화가 안 된 짧은 발신. 세 번 다 3초를 넘지 않았어." 함장이 말했다. "별거 아닐 수도 있지만, 확인은 해야지."
나는 임관 후 3주 만에 첫 인간 특수요원으로 발탁됐다. 훈련소 동기 중 절반은 아직 지구 궤도 방어선에서 순찰이나 돌고 있었다. 나만 이례적으로 변경 임무에 배정됐고, 아직 이 계급장의 무게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몰랐다. 셔틀 안에서 손끝으로 소총 슬링을 만지며 나는 그 사실을 되새겼다. '3주. 겨우 3주야.' 슬링의 나일론 재질이 손바닥에 닿는 감각이 유난히 낯설게 느껴졌다.
셔틀 창밖으로 헤스티아 3구역의 붉은 대기가 스쳐 지나갔다. 조종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나는 그 침묵이 오히려 편했다. 무언가 말을 걸어오면 내가 얼마나 긴장했는지 들킬 것 같았다.
콜로니는 낡은 조립식 패널로 이어붙인 건물들이 골목을 따라 늘어서 있었다. 벽마다 빗물 얼룩이 갈색으로 말라붙어 있었고, 간이 시장의 천막 절반은 방수포가 아니라 화물 컨테이너 포장지였다. 인구밀도에 비해 통신탑은 하나뿐이었고, 그 탑 아래 그늘에서 아이 셋이 낡은 홀로그램 카드를 돌려가며 놀고 있었다. 카드 표면은 이미 스크래치가 가득해서 홀로그램 영상이 절반쯤 깨져 보였다.
시장 좌판에는 말린 곡물과 재활용 부품들이 뒤섞여 진열돼 있었다. 정가표는 없었고, 상인들은 물물교환으로 거래하는 듯했다. 나는 그 광경을 보며 47일이라는 숫자의 무게를 다시 떠올렸다. 보급선 하나가 늦어지면 이런 식으로 경제 전체가 멈춰버리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나는 물자 인계 담당자를 찾아 시장을 지나갔다. 목록에는 이름이 하나 적혀 있었다. '창고 관리 - 도현.' 성은 없었다.
창고는 시장 끝, 녹슨 철제 셔터가 반쯤 열린 건물이었다. 셔터 아래쪽에는 누군가 발로 찬 듯한 움푹한 흠이 남아 있었다. 그 앞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키가 197센티는 되어 보였고, 검은색 투구가 얼굴 전체를 가리고 있었다. 투구 표면에는 흠집이 대여섯 군데 나 있었는데, 오래 써서 생긴 흠이라기엔 결이 너무 날카로웠다. 마치 누군가 일부러 긁어낸 자국 같았다.
"물자 인계 확인하러 왔습니다." 내가 말했다.
남자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투구 때문에 표정은 안 보였지만, 고개를 기울이는 각도에서 나는 그가 나를 재는 중이라는 걸 느꼈다.
"명찰도 없이 와서 뭘 확인해." 그가 짧게 말했다.
"강서은, 우주연합군 특수요원입니다." 내가 대답했다.
"특수요원이 여기서 뭐 하는데. 상자 세는 거 특수요원이 할 일이야?" 그가 팔짱을 낀 채 물었다.
나는 순간 말이 막혔다. 계급을 밝혔는데도 저런 반응이 나올 줄은 몰랐다. '이 사람, 연합군 계급 체계를 모르는 건가, 아니면 알면서 무시하는 건가.' 나는 속으로 계급장의 무게가 겨우 3주짜리라는 걸 다시 실감했다.
"보급 인계 절차는 규정입니다." 내가 침착하게 다시 말했다.
"규정, 규정." 남자가 혀를 차듯 말했다. "연합이 47일 동안 필터 하나 안 보내놓고 이제 와서 절차 얘기하네."
"저는 그 47일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내가 말했다.
"상관없다고?" 그가 투구를 살짝 기울이며 되물었다. "니가 입은 그 제복이 상관없다는 소리로는 안 들리는데."
나는 그 말에 반박할 거리가 없었다. 47일이라는 숫자가 그의 입에서 나온 순간, 브리핑실 화면에서 봤던 숫자가 실제 사람의 원망으로 바뀌어 내 앞에 서 있었다. 화면 속 숫자와 지금 이 남자의 목소리 사이의 거리가 얼마나 먼지, 나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그때 창고 안쪽에서 누군가 뛰어나왔다.
"도현아, 그만해!" 여자가 소리쳤다.
분홍색 장갑을 낀 손이 남자의 팔을 붙잡았다. 그 손목에는 연합군 부사관 계급 패치가 붙어 있었다. 패치는 새것이 아니었고, 가장자리가 살짝 해져 있었다.
"이분은 특수요원이야. 함부로 말하면 안 돼." 여자가 다급히 말했다.
남자는 잠시 멈췄다가, 투구 안에서 낮게 숨을 내뱉는 소리를 냈다.
"박은채, 넌 매번 이런 사람들 편이더라." 그가 말했다.
"편이 아니라 규정을 지키는 거지." 은채가 대답했다.
"규정, 규정." 도현이 다시 그 말을 되풀이했다. 이번엔 은채를 향해서였다.
나는 두 사람 사이에서 눈만 굴렸다. '이 남자, 규정보다 더 근본적인 걸 싫어하는구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인계는 제가 마무리할게요." 은채가 나를 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도현이가 요즘 예민해서요."
"괜찮습니다." 내가 대답했다.
나는 그렇게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괜찮지 않았다. '규정을 지키는 사람, 계급을 밝힌 사람. 그런데도 저 남자는 눈 하나 깜빡 안 했어.' 나는 그 사실이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신입 배지를 단 3주 차 요원 앞에서, 계급이란 게 얼마나 쉽게 무시당할 수 있는지 처음 알았다.
박은채는 창고 문을 열고 상자들을 하나씩 꺼내 목록과 대조했다. 상자마다 의료용 십자 마크와 씨앗 봉투 그림이 인쇄돼 있었다. 나는 그 옆에서 태블릿에 체크 표시를 하며, 시선을 자꾸 창고 안쪽 어둠에 서 있는 도현 쪽으로 돌렸다. 그는 나를 등지고 서서 벽에 걸린 낡은 사진 한 장을 만지고 있었다. 사진 속 인물은 흐릿했지만, 여자였다. 사진 액자 모서리는 깨져 있었고, 테이프로 얼기설기 고정돼 있었다.
"저 사람 원래 저래요?" 내가 은채에게 조용히 물었다.
은채는 상자를 든 채 멈췄다.
"원래는 안 저랬어요." 그녀가 낮게 말했다. "2년 전엔... 아니, 지금은 얘기할 때가 아니네요."
"무슨 일이 있었나요." 내가 다시 물었다.
은채는 대답 대신 상자를 내려놓고 목록을 다시 확인하는 척했다. 나는 더 묻지 않았다.
그 순간 통신탑 쪽에서 경보음이 울렸다.
짧고, 낮고, 규칙적인 세 번의 진동음이었다.
"이건 침입 경보야." 은채가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나는 태블릿을 떨어뜨릴 뻔했다. 손끝이 순간적으로 저려왔다. 창고 안, 도현은 이미 사진을 내려놓고 몸을 돌리고 있었다. 그의 움직임에는 조금 전까지의 신경질적인 태도가 사라져 있었다.
"셔터 내려." 그가 낮게 명령했다.
나는 그 순간, 이 남자가 방금까지 나를 조롱하던 사람과 같은 사람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투구 속 그의 눈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는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그 시선이 이미 나와 은채를 지나 창고 밖 어딘가를 겨누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