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GYYYAAAARRRGH!
검은 물기둥 속에서 튀어나온 것은 짐승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형체였다.
뱀처럼 긴 몸통에 물고기 비늘이 덮여있고, 머리는 세 개가 달려 있었다.
각 머리마다 입이 쫙 벌어져 있는데, 이빨이 톱니처럼 생겨서 보기만 해도 소름이 돋았다.
솔직히 말하면 처음엔 이게 뭔지 파악이 안 됐다.
뱀장어인가, 아니면 무슨 축제 때 쓰는 용 인형이 폭주한 건가.
근데 저 인형은 아가리에서 검은 피를 뚝뚝 흘리지도 않고 사람을 물어뜯지도 않는다.
"...크라켄의 아종인가."
서은하가 검을 뽑으며 낮게 중얼거렸다.
크라켄이면 그거, 판타지 소설에서 배 통째로 삼키는 그 문어 괴물 아닌가.
근데 이건 문어가 아니라 뱀 형태인데, 이름은 왜 크라켄인지 모르겠다.
작명 센스 이상한 거 아까 그 여신님이 지으신 거 아닐까.
설마 신도 네이밍 센스는 못 배웠나.
그건 그것대로 좀 신박한 클리셰긴 하다.
"모두 대피시켜라!"
서은하의 명령에 나머지 기사들이 흩어졌다.
순식간에 마을 전체가 아수라장이 됐다.
"으아아아아!"
"살려줘요!"
마을 사람들이 사방으로 뛰어다녔다.
검은 괴물은 세 개의 머리로 마을 곳곳을 후려치듯 몸통을 휘둘렀고, 그때마다 초가지붕이 통째로 날아갔다.
쾅!
옆집 지붕이 무너지는 소리에 나는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퍼석, 하고 흙벽이 부서지는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마치 재개발 지역에서 철거반이 들어온 것 같은 광경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여긴 포크레인 대신 세 개 달린 괴물 머리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는 것뿐.
"엄마!"
다행히 엄마는 이미 다른 아주머니들과 함께 마을 뒤편 언덕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서야 나는 조금 안심했다.
엄마 옆에서 누군가 손을 잡아끄는 게 보였는데, 아무래도 이장님인 것 같았다.
저 와중에도 어른들끼리는 서로 챙기는구나 싶어서 괜히 코끝이 찡해졌다.
하지만 안심할 상황이 아니었다.
"살려줘!!"
비명 소리가 들린 쪽을 보니, 최준서였다.
최준서가 무너진 담벼락 잔해에 다리가 깔린 채 옴짝달싹 못 하고 있었다.
괴물의 머리 하나가 정확히 그쪽을 향해 다가가는 중이었다.
저 자식, 평소엔 나만 보면 시비 걸던 놈인데.
지금 저 상황을 보고 있자니 별생각이 다 든다.
그냥 놔둘까 하는 생각이 0.1초쯤 스쳤다는 건 비밀로 하겠다.
생각할 틈이 없었다.
[스킬: 응급처치의 기초 Lv.3]
이딴 낮은 레벨 스킬로 뭘 어쩌겠냐마는, 지금 내 몸을 움직이는 건 스킬이 아니라 그냥 반사 신경이었다.
나는 무작정 달려갔다.
발바닥에 흙먼지가 튀어 오르고,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머릿속에서는 이성이 "야, 그거 위험해"라고 외치고 있었지만 다리는 이미 뛰고 있었다.
이럴 때 보면 몸이 머리보다 빠른 것 같기도 하다.
촤아악!
괴물의 세 번째 머리가 입을 쫙 벌리며 최준서를 향해 내리꽂히려는 순간, 나는 옆에 있던 빨래 건조대를 통째로 뽑아 들어 그 입 사이에 쑤셔 박았다.
부러진 나무 기둥이 괴물의 이빨 사이에 끼면서 턱이 잠깐 멈췄다.
으드득, 하고 나무가 씹히는 소리가 들렸다.
저 이빨에 뭐가 씹히면 저런 소리가 나는구나, 하는 실없는 감상이 스쳤다.
지금 이런 거 감상할 때가 아닌데.
"뭐, 뭐 하는 거야 미친놈아!"
최준서가 나를 보며 소리쳤다.
죽을 뻔한 놈이 반말로 욕부터 하는 거 보니 살 만한가 보다.
나는 대답 대신 그를 잡아끌었다.
다리가 잔해에 껴서 잘 안 빠졌다.
"으아, 안 빠져!"
"조금만 참아, 지금 뺄 테니까!"
돌덩이 하나가 그의 정강이를 정확히 물고 있었다.
힘으로 밀어내려 했지만 꿈쩍도 안 했다.
이럴 때 지렛대 원리라도 써야 하나, 하고 순간 물리 시간이 스쳐 지나갔다.
역시 사람은 죽기 직전에 별 걸 다 기억해낸다.
[스킬: 응급처치의 기초 → 응급 구조 반응 특화 Lv.4로 성장했습니다.]
뭐야 이건 갑자기 왜 진화해.
포켓몬도 아니고 위기 상황에서 레벨업이라니, 이 시스템 설계자 진짜 게임 좋아하나 보다.
하지만 지금 그런 거 따질 시간 없었다.
나는 온 힘을 다해 잔해를 밀어냈고, 최준서의 다리가 겨우 빠졌다.
괴물이 다시 머리를 들었다.
나무 기둥을 뱉어내며 세 개의 눈이 동시에 나와 최준서를 노려봤다.
세 쌍의 눈알이 동시에 이쪽을 향하니 그 위압감이 상상 이상이었다.
마치 CCTV 세 대가 동시에 나만 노려보는 느낌이랄까.
근데 저건 과태료가 아니라 목숨이 걸린 문제였다.
그럴 리가, 이제 죽는구나.
순간 은빛 섬광이 내 시야를 가로질렀다.
서걱!
괴물의 두 번째 머리가 통째로 잘려나갔다.
검은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비릿하고 끈적한 냄새가 확 풍겼다.
생선 비린내와 쇳내가 섞인 것 같은, 뭐라 형용하기 힘든 악취였다.
저런 걸 매일 상대하는 기사들은 후각이 남아나긴 하는 걸까.
"두 사람 다, 뒤로 물러나라."
서은하였다.
그녀의 검이 달빛처럼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나와 최준서는 얼른 뒤로 기어갔다.
등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방금 전까지 내 코앞에 있던 아가리를 생각하면 아직도 심장이 벌렁거렸다.
서은하는 이제 남은 두 개의 머리를 상대로 검을 겨눴다.
동작 하나하나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마치 무술 시범 영상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저런 걸 보면 확실히 사람이 아니라 뭔가 다른 존재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실제로 이 세계에선 기사라는 게 거의 반쯤 초인이니까 틀린 말도 아니지만.
하지만 아무리 서은하가 강해도, 저 괴물은 한 명이 감당하기엔 너무 컸다.
다른 기사들은 마을 사람들 대피시키느라 정신이 없었고, 서은하 혼자 괴물을 상대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무너진 집들, 흩어진 세간살이, 그리고 겁에 질려 웅크리고 있는 사람들.
여기저기서 신음 소리가 들렸다.
팔을 부여잡은 아저씨, 이마에서 피가 흐르는 아이, 다리를 절뚝이며 걷는 할머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눈에 밟혔다.
그때 문득 스킬창이 떠올랐다.
[스킬: 정리정돈의 화신 Lv.6]
[스킬: 반찬의 정석 Lv.9]
[스킬: 빨래의 정석 Lv.7]
이딴 게 지금 뭔 도움이 되겠냐고 생각했는데, 그 순간 머릿속에 뭔가 번뜩였다.
생각해보니 정리정돈이야말로 이런 재난 상황에서 제일 필요한 스킬 아닌가.
사람 살리는 데 대단한 마법 검이 필요한 게 아니라 일단 누가 어디 다쳤는지부터 파악해야 하니까.
"전부 저한테 모여요!"
나는 소리쳤다.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은 이불이랑 천 조각 다 모아 오세요! 부상자 응급처치할 거예요!"
마을 사람들이 어리둥절한 눈으로 나를 봤지만, 지금은 그런 거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몇몇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스킬: 정리정돈의 화신이 발동합니다.]
순식간에 나는 흩어진 천 조각들을 분류하고, 부상자들을 상태별로 나눠 눕혔다.
마치 전생에서 봤던 재난 다큐멘터리의 응급 대피소 매뉴얼이 몸에 새겨진 것처럼 손이 자동으로 움직였다.
"거기 팔 다친 분, 이쪽으로! 다리 다친 분은 저쪽에!"
촤르르르륵!
찢은 천으로 지혈대를 만들어 상처를 감쌌다.
한 아주머니가 팔을 감싸 쥔 채 다가왔다.
"학생, 이거 이렇게 하면 되는 겨?"
"네, 어머니 그렇게 꽉 감아주세요! 너무 세게는 마시고요!"
사투리 섞인 말투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올 뻔했다.
이런 판국에도 사람 말투는 그대로구나.
괴물과 서은하의 싸움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고, 마을은 여전히 아비규환이었지만, 적어도 다친 사람들이 제대로 된 곳에 모이자 상황이 조금씩 정리되기 시작했다.
최준서가 다리를 절뚝이며 다가왔다.
"...너 지금 뭐 하는 건데."
"보면 몰라? 사람들 살리는 거지."
최준서는 뭔가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 표정이 평소의 비웃음과는 달랐다.
뭐랄까,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꼭 자기가 알던 세상이 흔들린 것 같은, 그런 얼굴.
"...도와줄까."
"뭐?"
"거들어준다고, 다리 아직 멀쩡한 팔은."
녀석이 시선을 피하며 중얼거렸다.
이 자식 뭐지, 갑자기 왜 착해져.
평소 같으면 절대 안 할 소리인데.
사람이 죽다 살아나면 다들 이렇게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은 일손 하나가 아쉬웠다.
"그럼 거기 천 좀 찢어서 줘."
"어, 어."
그렇게 최준서까지 합세해서 부상자들을 눕히고 천을 감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서로 이를 갈던 사이였는데, 지금은 나란히 앉아서 지혈대를 만들고 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사람 인연이라는 게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때, 괴물의 남은 머리 하나가 분노에 찬 울음소리를 내며 몸통 전체를 뒤틀었다.
GYAAAAARRRRGH!
그 울음소리에 땅이 진동했다.
발밑에서 흙먼지가 부스스 떨어졌다.
가까이 있던 부상자들 몇 명이 겁에 질려 몸을 웅크렸다.
그 반동으로 거대한 파도 같은 물기둥이 우물에서 재차 치솟았고, 그 여파가 마을 전체를 덮치려는 순간이었다.
우물에서 솟은 물기둥이 마치 거대한 손아귀처럼 마을 위로 그림자를 드리웠다.
저 물이 그대로 떨어지면 여긴 초가집이고 사람이고 남아나지 않을 것 같았다.
"모두 엎드려!!"
나는 반사적으로 소리치며 근처 부상자들 위로 몸을 던졌다.
뭐라도 막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등으로 그 물벼락을 받아낼 각오까지 했다.
하지만 그 물기둥이 마을을 덮치기 직전, 서은하의 검이 허공을 갈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