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동시접속자 0명의 여왕

5화

다음 날 오후, 준혁은 학과 도서관 컴퓨터실에서 도윤을 붙잡았다. 손에 든 노트에는 알아보기 힘든 필기가 가득했다. 줄 사이마다 화살표가 얽혀 있었고, 몇몇 단어는 두세 번 덧쓴 흔적이 남아 있었다. "내가 그동안 찾아본 거 말해줄게." 준혁이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의자를 바짝 당기는 소리가 조용한 컴퓨터실에 유난히 크게 울렸다. "동시접속자 0인 방송이라는 거, 그거 서버 구조상 불가능해. 어떤 스트리밍 플랫폼도 접속자가 0인데 방송을 켜는 걸 허용 안 해." "그럼?" "이건 그 플랫폼 자체가 다른 규칙으로 돌아간다는 거지." 준혁은 노트를 넘겼다. 페이지마다 캡처 화면을 손으로 스케치한 그림이 붙어 있었다. 등롱을 든 은설의 옆얼굴, 방 안의 기둥,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빛의 방향까지 세세하게 표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링크, 검색 기록에서 완전히 사라졌잖아. 캐시에도 없고. 이건 일반적인 웹페이지가 아니라는 뜻이야." 도윤은 팔짱을 꼈다. "그럼 뭔데." "모르지. 근데 확실한 건, 저쪽에서도 우리를 인지하고 있다는 거야. 은설이라는 애가 우리를 직접 봤잖아." 도윤은 어제 밤의 장면을 떠올렸다. 은설의 눈이 화면 이쪽을 정면으로 바라보던 순간. 단순한 연출이라면 그렇게 정확히 시선을 맞출 수 없었다. 그 눈빛은 카메라를 향한 게 아니었다. 사람을 향한 것이었다. "준혁아." 도윤이 낮게 말했다. "어제부터 계속 생각했는데, 그 방송, 우리가 보는 순서랑 저쪽에서 일어나는 순서가 같은 걸까." "무슨 소리야." "우리한텐 그냥 다음 날 밤이잖아. 근데 저쪽에서는 그 하루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지 몰라. 시간이 똑같이 흐르는 건지, 아니면 어긋나 있는 건지." 준혁은 잠시 말이 없었다. 노트 위에 펜을 톡톡 두드리는 소리만 이어졌다. "그건 오늘 밤에 확인해보면 알겠지." 컴퓨터실 창밖으로 오후의 햇살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화면 속 캡처들을 다시 훑어보았다. 소금기 어린 바람 냄새 같은 건 당연히 없었다. 그저 도서관 특유의 종이 냄새와 오래된 키보드 냄새뿐이었다. 그런데도 도윤은 이상하게 그 방, 등롱 냄새가 날 것 같은 방이 자꾸 떠올랐다. 그날 밤, 두 사람은 다시 도윤의 방에 모였다. 책상 위에는 라면 그릇 두 개가 아직 치워지지 않은 채 놓여 있었다. 자정이 가까워지자 화면이 켜졌다. 같은 방. 하지만 분위기가 달랐다. 은설이 서 있었다. 앉아 있지 않았다. 손에는 등롱을 들고 있었다. 치맛자락이 평소보다 흐트러져 있었다. 급하게 걸어온 흔적이었다. "오늘은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목소리가 낮고 다급했다. "궁 안에서 소란이 있었습니다." 도윤과 준혁은 동시에 화면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 의자 두 개가 거의 부딪힐 만큼 가까워졌다. "무슨 소란입니까." 도윤이 채팅창에 적었다. "군영 쪽에서 병사들이 이동하고 있습니다. 명령을 받지 않은 이동입니다." 은설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재무 대신이 사라졌습니다. 그자가 관리하던 창고도 봉쇄되었습니다." 준혁이 낮게 중얼거렸다. "저 위조범 새끼, 튀었네." "조용히 해." 도윤이 손으로 준혁의 어깨를 밀며 다급히 손을 움직였다. 지금 궁 안에 있는 병력 중 여왕님을 직접 호위하는 이가 누구입니까. "근위대장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도 지금 어디 있는지 확인이 안 됩니다." 은설의 손에서 등롱이 흔들렸다. 불빛이 벽에 어른거렸다. 불빛이 흔들릴 때마다 은설의 그림자가 벽 위에서 길게 늘어졌다가 다시 줄어들었다. 도윤은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대학 강의에서 배운 지식만으로는 부족했다. 정치학 개론에서 배운 권력 이동의 이론 같은 것이 지금 이 순간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은설이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화면 너머의 자신뿐이었다. 그 생각이 들자 손끝이 차가워졌다. 밖으로 나가지 마십시오. 문을 잠그고, 신뢰할 수 있는 시녀나 근처 병사를 통해 상황을 파악하십시오. 지금 움직이는 것이 가장 위험합니다. 은설이 그 문장을 읽었다. 손이 떨리고 있었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녀는 문 쪽으로 다가가 빗장을 걸었다. 쇠가 맞물리는 소리가 화면 너머로도 또렷하게 들렸다. 등롱을 내려놓고 벽에 등을 기댔다.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쉬었다가 천천히 내쉬었다. "연희." 낮은 목소리로 누군가를 불렀다. 방 한쪽 어둠 속에서 젊은 여자가 나타났다. 시녀복을 입고 있었지만 허리춤에는 작은 단검이 매달려 있었다. 움직임에 소리가 거의 없었다. 훈련된 사람의 걸음이었다. "부르셨습니까." "밖의 상황을 확인해줘." "위험합니다." 연희가 짧게 답했다. "그래도 확인이 필요해." 연희는 잠시 은설을 바라보다 고개를 숙였다. 눈빛에는 걱정과 순종이 동시에 담겨 있었다. 그리고 조용히 문틈으로 사라졌다. 준혁이 화면을 가리키며 작게 속삭였다. "저 시녀, 캐릭터 좋은데." "지금 그게 중요해?" "아니, 그냥. 야, 저 정도면 저쪽도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거잖아. 단검 차고 다니는 시녀라니." 도윤은 준혁을 흘겨보았지만 대꾸할 여유가 없었다. 화면 속 은설이 벽에 등을 붙인 채 숨을 죽이고 있었다. 등롱의 불빛이 그녀의 옆얼굴을 비출 때마다 표정이 조금씩 달라 보였다. 두려움과 억지로 눌러 삼킨 침착함이 번갈아 스쳤다. 시간이 흘렀다. 채팅창은 조용했다. 붉은눈과 서리검이라는 닉네임도 이번엔 나타나지 않았다. 도윤은 그 사실이 오히려 더 신경 쓰였다. 평소라면 어김없이 끼어들던 사람들이 하필 오늘 밤 조용하다는 것이. 준혁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낮게 물었다. "저 두 놈, 오늘은 왜 조용하지." "모르지. 아니면 뭔가 알고 있어서 숨죽이고 있는 걸지도." 두 사람은 서로를 잠깐 바라보았다. 그 말이 지닌 무게가 방 안의 공기를 무겁게 만들었다. 마침내 문이 다시 열리고 연희가 돌아왔다. 숨이 약간 가빴다. "병사들의 이동은 국경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창고를 봉쇄한 것도 재무 대신의 독단이 아니라, 상부의 지시였습니다." 은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상부라면." 연희는 잠시 말을 멈췄다. 단검 손잡이를 무의식적으로 만지던 손이 멈췄다. "확실치 않으나, 이웃한 강국 아하란의 사신단이 국경 근처에 도착했다는 소식이 있습니다." 도윤은 그 말을 듣고 손끝이 서늘해졌다. 국내 정치의 문제라 여겼던 것이, 갑자기 국가 간 문제로 확장되고 있었다. 노트북 화면의 불빛만이 방 안을 밝히고 있었는데도, 그 서늘함은 실제 온도와는 상관없는 것이었다. "아하란이라면..." 은설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선왕 때부터 국경을 두고 마찰이 있던 나라입니다." 준혁이 재빨리 노트를 뒤적였다. "아하란, 아하란... 이거 저번에 어디서 언급 안 됐어? 지도 얘기할 때." "지금 그거 찾을 시간 없어." 도윤은 채팅창에 손을 올렸다. 지금 상황에서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건 그 사신단의 목적입니다. 전쟁을 위한 것인지, 협상을 위한 것인지에 따라 대응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은설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그들을 직접 만나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짧은 침묵이 흘렀다. 촛불이 낮게 타올랐다. 등롱의 불빛도 조금씩 사그라드는 것처럼 보였다. "강도윤 님." 은설이 화면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부탁이 있습니다." 도윤은 자세를 고쳐 앉았다. 등에 힘이 들어갔다. "만약 이 일이 전쟁으로 이어진다면," 은설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저는 아무것도 모른 채 그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도와주시겠습니까." 도윤은 준혁을 돌아보았다. 준혁의 표정도 더는 장난스럽지 않았다. 평소라면 뭐라도 한마디 덧붙였을 텐데, 이번엔 그저 고개를 살짝 끄덕여 보였다. 그 침묵이 도윤에게는 어떤 대답보다 무겁게 느껴졌다. 도윤은 다시 화면을 바라보았다. 은설의 눈은 여전히 이쪽을 향해 있었다. 그 시선이 흔들리지 않았다. 마치 그 대답을 기다리는 것만이 지금 이 순간 그녀에게 남은 유일한 것처럼. 대답을 적으려는 순간, 화면 구석에서 동시접속자 숫자가 빠르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5, 12, 30. 숫자가 멈추지 않았다. 채팅창에는 처음 보는 낯선 언어들이 쏟아지듯 올라왔다. 한자도 아니고, 알파벳도 아니고, 도윤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문자들이었다. 점. 선. 물결. 탑. 그 사이사이 익숙한 문양들이 스치듯 지나갔다. 은설의 얼굴에 당혹감이 번졌다. "이게, 무슨..." 화면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촛불이 한꺼번에 꺼졌다. 준혁이 자리에서 반쯤 일어섰다. "야, 이거 뭐야, 갑자기 왜—" 말이 끝나기도 전에 화면 전체가 지지직거리며 흔들렸다. 어둠 속에서 은설의 목소리만 짧게 들려왔다. "누군가, 이 방송을 찾아냈습니다." 화면은 그대로 끊겼다. 방 안에는 노트북의 대기 화면만 창백하게 남았다. 도윤과 준혁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 텅 빈 화면을 바라보았다. 심장이 뛰는 소리만 유난히 크게 들렸다.
♡ 좋아요 0 · 로그인 후 좋아요/별점/댓글 참여 가능

댓글 0

  •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