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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이서연의 결혼식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나는 예식 내내 정신이 반쯤 다른 곳에 가 있었다. 유치원 때부터 함께 자란 친구가, 그 말괄량이 서연이가 새하얀 드레스를 입고 눈물까지 글썽이며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뭔가 뭉클한 것이 목구멍을 타고 올라왔는데, 신부 입장 음악이 흐르는 그 짧은 순간에도 나는 어쩐지 딴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서연이가 몇 주 전부터 전화할 때마다 은근슬쩍 흘리던 말들이, 결혼식 때 소개해 줄 사람이 있다느니, 분명 마음에 들 거라느니 하던 그 말들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기 때문이다. 그럴리가. 서연이 안목을 믿긴 하지만, 소개팅이라는 게 다 그렇지 않나. 주례가 끝나고 신랑 신부가 퇴장하는 순간까지도 나는 그 생각을 완전히 떨쳐내지 못한 채로, 정작 그 감정을 제대로 음미할 새도 없이 곧바로 피로연장으로 밀려 들어가야 했다. 사람들 틈에 섞여 축의금을 내고, 아는 얼굴 몇몇과 눈인사를 나누고, 접시에 음식을 담다 보니 어느새 자리는 절반쯤 채워져 있었고, 나는 익숙하지 않은 정장 깃을 만지작거리며 구석 테이블로 향했다. 넥타이가 유독 목을 조이는 것 같아 손가락을 넣어 살짝 늘리면서,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이 넓은 홀에서 대체 어디에 앉아야 할지 두리번거리던 참이었다. 그 테이블에, 그녀가 있었다. 청순하다는 말이 무색할 만큼 단정한 이목구비를 가진 여자가, 이미 소주잔을 몇 잔은 비운 듯한 얼굴로 테이블에 턱을 괴고 앉아 있었는데, 눈빛만은 흐릿하기는커녕 오히려 지나치게 또렷해서 나는 순간 걸음을 멈칫했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머리카락이 조명 아래 부드럽게 흔들렸고, 손목에 걸린 얇은 팔찌가 잔을 들 때마다 잘그락거리는 소리를 냈는데, 그 사소한 소리조차 이상하게 귀에 걸렸다. 저 여자는 누구지, 하는 물음이 스치기도 전에 그녀가 먼저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봤다. "거기 서서 뭐 해요, 앉든가." 반말인지 존댓말인지 애매한 어투로 툭 던진 그 한마디에 나는 얼떨결에 맞은편 의자를 끌어당겨 앉았고, 그녀는 그런 내 반응이 웃긴다는 듯 피식 웃으며 잔을 채워 내 앞으로 밀어놨다. 결혼식 피로연에서 초면인 사람에게 술을 권하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지만, 그녀의 태도에는 뭔가 격식을 차리지 않는 편안함과 동시에 사람을 압도하는 기묘한 여유가 함께 배어 있어서, 나는 잔을 받아 들면서도 계속 그녀의 표정을 살필 수밖에 없었다. 손끝이 살짝 떨리는 게 느껴져 나는 애써 그 잔을 꽉 쥐었다. "신랑 쪽? 신부 쪽?" "신부 쪽입니다. 서연이 친구예요." "아…" 그녀가 짧게 탄식하며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럼 강도윤 씨네." 내 이름을 이미 알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어떻게 알았지, 하는 의문이 채 정리되기도 전에 그녀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잔을 비우며 시선을 돌렸는데, 그 무심한 태도가 오히려 더 나를 조바심 나게 만들었다. 심장이 괜히 한 박자 빠르게 뛰는 것 같아서, 나는 애꿎은 물컵만 만지작거렸다. "제 이름을 어떻게…" "서연이가 말해줬거든요. 오늘 만날 사람이라고." 만날 사람이라고?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채 곱씹기도 전에, 그녀가 손끝으로 테이블 위에 놓인 작은 카드 한 장을 슬쩍 밀어 보였다. 하얀 카드 위에, 서연이 특유의 동글동글한 글씨체로 적힌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두 사람은 천생연분이니까, 도망가지 말고 얘기 좀 나눠봐. 순간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이서연, 이 자식이 결국 일을 저질렀구나 싶어 헛웃음이 새어 나왔고, 동시에 맞은편 여자는 그 카드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며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 시선에 담긴 것이 호기심인지 짓궂음인지 도무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주변 테이블에서 웃음소리와 잔 부딪히는 소리가 왁자하게 들려왔지만, 이상하게도 우리 테이블만 딴 세상처럼 조용하게 느껴졌다. "뭐, 저는 나쁘지 않은데." 그녀가 술기운이 살짝 오른 목소리로 말끝을 늘어뜨렸다. "강도윤 씨는요?" 대답을 해야 하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름도 모르고, 직업도 모르고, 뭘 하는 사람인지도 모르는 여자 앞에서 나쁘지 않다는 말을 어떻게 받아쳐야 할지 몰라 나는 그저 애매하게 웃으며 잔을 들이켰고, 그녀는 그런 내 모습을 보며 낮게 소리 내어 웃었다. "뭐예요, 그 표정은. 뭐라도 말해봐요." "…아직 잘 모르겠어서요." "솔직하네." 그녀가 턱을 괸 손을 살짝 고쳐 앉으며 나를 다시 바라봤다. "그럼 좀 알아가면 되겠네." 그 말에 나는 뭐라 대꾸해야 할지 몰라 시선을 슬쩍 피했다가, 다시 그녀 쪽으로 돌렸다. 왜 자꾸 눈이 마주치는지, 그리고 마주칠 때마다 왜 이렇게 목이 타는지 스스로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 근데 저 이름 안 물어봐요?" 그 질문을 듣는 순간에서야 나는 정말로 그녀의 이름조차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름을 물어야 하는데, 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이상하게 목이 탔고, 그녀는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스스로 입을 열었다. "유채원이에요." 유채원.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이름이었지만,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자연스럽게 넘겼다. 그런데 그녀의 표정이 순간 미묘하게 굳는 게 보였는데, 마치 내 반응을 시험이라도 하듯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술잔을 쥔 그녀의 손끝이 테이블을 톡톡 두드리다가 멈췄고, 그 정적이 이상하게 길게 느껴졌다. "…진짜 몰라요?" 나는 그 물음에 어리둥절해져서 되물었다. "뭘요?" 그녀는 대답 대신 옅은 한숨을 내쉬더니, 술잔을 마저 비우고는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그 표정에 담긴 감정이 실망인지 허탈함인지, 혹은 다른 무엇인지 나로서는 도무지 짐작할 수 없었다. "…진짜 모르는구나." 그녀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그 한마디가, 그날 밤 내가 맞이하게 될 모든 소란의 시작이라는 걸 나는 그때까지도 전혀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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