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결혼식 사진이 인터넷에 돌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순간, 채원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게 눈에 들어왔다. 카페 테이블 위에 놓인 그녀의 휴대폰 액정이 밝아지고, 화면 속 알림 문구를 읽어 내려가던 그녀의 눈동자가 빠르게 흔들리는 걸 보며 나는 순간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그녀는 서둘러 자신의 휴대폰으로 검색창을 열었고, 나는 그 화면을 함께 들여다보며 숨을 죽였다. 손가락이 화면 위를 미끄러지듯 움직이는데도 그 속도가 평소와는 다르게 조급해 보여서, 나까지 덩달아 심장이 조여드는 듯했다.
다행히도 사진 속의 나는 그저 흐릿한 배경 인물 정도로만 찍혀 있었다. 채원을 정면으로 담은 사진들 사이사이에,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내 옆모습이 얼핏 스쳐 지나가는 정도였는데, 그 사실을 확인하고 나서야 채원이 참았던 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 숨소리가 어찌나 깊던지, 그동안 그녀가 얼마나 긴장하고 있었는지가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했다.
"휴, 다행이다." 그녀가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안도했다. "얼굴 잘 안 나왔네."
"그러게요."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다행히 화질도 별로고."
하지만 그 안도도 잠시, 댓글 창을 훑어 내리던 채원의 표정이 다시 서서히 굳어갔다. 처음에는 무심코 스크롤을 내리던 손가락이 어느 순간부터 뚝뚝 끊기듯 멈추기 시작했는데, 그 리듬의 변화만으로도 뭔가 심상치 않은 걸 발견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그녀의 어깨너머로 화면을 살짝 들여다봤는데, 몇몇 댓글들이 눈에 띄었다.
유채원 옆에 앉은 남자 누구야, 분위기 심상치 않던데.
저 사람 계속 붙어 있던 사람 아님? 아는 사람 있으면 제보 좀.
설마 열애설? 유채원 표정 봐라, 완전 신경 쓰는 거 같은데.
댓글 몇 개가 전부였지만, 그 짧은 문장들이 만들어내는 파장은 결코 작지 않았다. 채원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는 걸 보며 나는 뭐라 위로해야 할지 몰라 그저 손을 뻗어 그녀의 손등을 살짝 감쌌는데, 그녀는 그 손길에 잠깐 움찔하더니 이내 힘없이 웃었다. 손등에 닿은 그녀의 피부가 차갑게 식어 있어서, 나는 순간 이 사람이 지금 얼마나 얼어붙어 있는지를 손끝으로 느낄 수 있었다.
"괜찮아요, 이 정도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그녀의 목소리에는 숨길 수 없는 불안이 배어 있었다. "이런 거 하루 이틀에 사그라들거든요."
"근데 표정은 안 괜찮아 보이는데요."
그 말에 채원이 잠시 나를 빤히 쳐다봤다. 그 시선이 어찌나 복잡한 감정을 담고 있던지, 나는 괜히 말을 잘못 꺼낸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조마조마해졌다. 그러다 결국 참았던 말이 터져 나오듯, 그녀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사실 좀 무서워요. 예전에 비슷한 일로 진짜 힘들었던 적이 있어서."
그 말을 하는 그녀의 눈빛에 순간 그림자가 스쳤다. 그녀의 입술이 살짝 떨리는 걸 보며, 나는 그 짧은 순간, 그녀가 지금까지 보여준 모든 여유와 당당함이 사실은 수많은 상처 위에 쌓아 올린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무거워졌다.
도대체 얼마나 힘든 일을 겪었기에, 이렇게 강해 보이는 사람이 이토록 떨고 있는 걸까.
"그때 소나기 활동하다가, 별거 아닌 오해로 기사 하나 났었는데." 그녀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거 하나로 몇 달을 시달렸어요. 지금 생각해도 좀…"
말끝을 흐리는 그녀를 보며 나는 굳이 캐묻지 않고 조용히 기다렸다. 채원이 그때 다니던 소속사에서 나눴을 법한 대화가 머릿속에 스치듯 지나갔는데, '이번 한 번만 참으면 돼, 채원아. 금방 잠잠해질 거야.' 하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상상 속에서 들려오는 듯했다. 그게 실제 기억인지 아니면 내가 만들어낸 장면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만큼 그녀의 표정에서 묻어나는 피로감이 생생했다.
그녀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애써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무튼, 그래서 조심하는 거예요. 이해해줘요."
"이해해요, 근데."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솔직하게 말했다. "저는 이렇게 몰래 만나야 하는 관계가 좀, 답답할 것 같긴 해요."
그 말에 채원이 눈을 크게 떴다. 예상치 못한 직설적인 반응에 당황한 듯했지만, 이내 그녀는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웃음이 어찌나 서글퍼 보이던지, 나는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말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잠깐 스쳤다.
"저도 답답해요. 근데 어쩔 수 없잖아요."
그녀의 목소리가 살짝 갈라지듯 흔들렸다. 나는 그 순간 그녀의 손을 조금 더 힘주어 잡았는데, 그녀는 그 손을 뿌리치지 않고 오히려 살짝 마주 잡아왔다. 손바닥과 손바닥이 맞닿는 그 짧은 접촉만으로도, 우리 사이에 흐르는 무언가가 단순한 호기심 이상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잠시 말없이 서로를 바라봤다. 카페 안의 소음이 멀어지고, 오직 서로의 숨소리만 들리는 듯한 그 정적 속에서, 창밖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소리와 옆 테이블에서 흘러나오는 낮은 대화 소리마저 아득하게 느껴졌다. 나는 이 관계가 이미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선 무언가로 변해가고 있음을 어렴풋이 직감했다.
이 여자를, 나는 도대체 어디까지 마음에 담아버린 걸까.
그때, 채원의 휴대폰이 또다시 울렸다. 진동 소리가 테이블 위에서 요란하게 울려 퍼지는데, 이번에는 전화였는데, 화면에 뜬 이름을 본 채원의 낯빛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방금 전까지 내 손을 마주 잡고 있던 그녀의 손가락에서 순간 힘이 쭉 빠지는 게 느껴졌다.
"소속사 대표님이에요." 그녀가 마른침을 삼키며 중얼거렸다. "이 시간에 갑자기 왜…"
목소리 끝이 파르르 떨리는 걸 들으며, 나는 그녀가 얼마나 이 전화를 두려워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평소라면 대수롭지 않게 받았을 전화일 텐데, 지금 이 상황에서는 그 이름 석 자만으로도 그녀를 얼어붙게 만들기 충분했던 모양이었다.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받는 그녀의 옆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이 작은 만남이 앞으로 얼마나 큰 파장을 몰고 올지 아직 알지 못한 채, 그저 불안하게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수화기 너머로 무슨 말이 오갈지, 그리고 그 말이 우리 두 사람 사이에 어떤 균열을 만들어낼지, 나는 그저 마른침만 삼키며 그녀의 입술이 열리기를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