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일단 밥부터 먹이겠습니다

2화

그날 저녁, 나는 결국 냄비 하나를 챙겨 들고 301호 문 앞에 섰다. 반찬통에 나물 무침과 계란말이, 그리고 따로 담은 된장국까지 담아 들고 있었는데, 손에 든 비닐봉지 안에서 국통이 흔들릴 때마다 뜨거운 국물 냄새가 훅 끼쳐와서 나는 그 냄새를 맡을 때마다 이상하게 마음이 급해졌다. 초인종을 누르기 직전 나는 스스로에게 몇 번이나 물었다. 이게 정말 오지랖이 아닌가, 하고. 옆집 여자한테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하고. 하지만 벨을 누르는 손가락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삑ㅡ 한참을 기다려도 안에서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나는 문 앞에 반찬통을 그냥 두고 갈까 고민하며 발끝으로 바닥 타일을 톡톡 두드리기도 하고, 손에 든 봉지를 이쪽 손에서 저쪽 손으로 옮겨보기도 했는데, 그러다 문이 아주 조금, 딱 사람 얼굴 하나가 보일 만큼만 열렸다. 문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실내 공기는 서늘했고, 불빛도 거의 없어 어두웠다. 그녀는 문틈으로 나를 보고는 미간을 살짝 좁혔다. "저기, 나물이랑 국 좀 남았는데... 혹시 필요하시면." 나는 반찬통을 내밀며 말끝을 흐렸는데, 그녀는 잠깐 나를, 그리고 반찬통을, 그리고 다시 나를 번갈아 보았다. 그 시선의 순서가 마치 뭔가를 계산하는 것처럼 보여서 나는 괜히 손끝이 저려왔다. 눈동자가 위아래로 움직이는 그 짧은 순간에도 나는 그녀가 나를 재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왜요." 그녀가 짧게 물었다. 감정이 실리지 않은, 그냥 사실을 확인하려는 듣기 드문 어조였다. "그냥요. 재료가 좀 남아서." 나는 거짓말을 했다. 사실 그녀를 위해 일부러 더 만든 거였지만, 그걸 그대로 말하면 그녀가 문을 닫아버릴 것 같았다. 302호 정도윤, 이 나이 먹도록 남 걱정하는 게 습관이 된 인간이라고 스스로를 속으로 비웃으면서도, 나는 반찬통을 든 손을 거두지 않았다. 그녀는 한참 나를 바라보다가 결국 문을 열고 반찬통을 받아 들었다. 그러고는 그 자리에서, 놀랍게도, 뚜껑을 열어 국냄새를 맡았다. 눈을 살짝 감고, 코로 숨을 깊게 들이마시는 그 동작이 너무 자연스럽고 정교해서 나는 순간 말을 잃었다. 그건 단순히 배가 고픈 사람의 반응이 아니었다. 마치 요리를 평가하는 사람의 태도, 재료의 산지와 숙성 정도까지 가늠하려는 듯한 태도였다. 콧날이 살짝 움직이고, 눈꺼풀 아래로 미세한 근육이 떨리는 것까지 내 눈에 다 들어왔는데, 그 순간만큼은 그녀가 마치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된장이... 직접 담근 건가요." 그녀가 눈을 뜨며 물었다. 나는 순간 우뚝, 멈춰 섰다. "...어떻게 아셨어요?" 시중에 파는 된장과 종가에서 담근 된장의 차이를 한 숟갈도 안 되는 냄새로 구분해내는 사람은, 내가 아는 한 요리를 업으로 하는 사람 아니면 그런 집안에서 나고 자란 사람뿐이었다. 어머니가 담근 된장을 알아보는 사람을 이 도시에서, 이 나이대의 여자에게서 만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반찬통을 품에 안듯이 끌어당기며 문을 조금씩 닫기 시작했고, 그 손짓이 마치 방금 흘린 말을 도로 주워 삼키려는 것처럼 조급해 보여서, 나는 그 틈에 얼른 물었다. "저기, 이름이... 저는 302호 정도윤이라고 하는데." "한서리." 그녀는 짧게 대답하고는, 탁ㅡ 문을 닫아버렸다. 나는 닫힌 문 앞에서 잠깐 멍하니 서 있다가 피식 웃음이 났다. '한서리라...' 이름조차 서늘한 느낌이었다. 성도 이름도 다 차가운 계절을 떠올리게 하는 데다, 발음하는 순간 입안에 서늘한 바람이 도는 것 같은 그런 이름이었다. 나는 복도에 서서 그 이름을 한 번 더 소리 없이 되뇌어 보다가, 괜히 부끄러워져서 집으로 들어갔다. 그날 이후 나는 매일 저녁 조금씩 여분의 반찬을 만들어 301호 문 앞에 놓아두는 게 일상이 되었다. 처음엔 그저 문 앞에 놓아두면 다음 날 빈 통만 돌아와 있는 정도였다가, 며칠이 지나자 서리는 문을 아예 열고 내가 서 있는 걸 확인한 후에야 반찬통을 받기 시작했다. 그 며칠 사이에 나는 나름대로 규칙 같은 것을 만들었는데, 벨을 두 번 짧게 누르고 삼십 초쯤 기다렸다가 문 앞에 반찬통을 내려놓는 식이었다. 서리는 그 삼십 초 안에 문을 열지 않은 적이 없었다. "오늘은 뭐예요." 그녀가 어느 날 처음으로 먼저 물었을 때, 나는 속으로 조금 놀랐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고추장찌개랑 콩나물무침이요." 서리는 젓가락으로 콩나물 한 줄기를 집어 올리더니, 씹기 전에 잠깐 향을 맡고 씹는 속도까지 일정하게 유지하며 아주 정확하게, 흐트러짐 없이 식사를 했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그녀가 어디선가 아주 엄격한 식사 예절을 배운 사람이라는 확신이 점점 굳어졌다. 평범한 대학생의 젓가락질이 아니었다. 손목의 각도, 국물을 뜰 때 그릇을 기울이는 방향, 마지막에 숟가락을 내려놓는 위치까지, 모든 동작이 마치 오래 훈련받은 사람의 습관처럼 정갈했다. 심지어 콩나물 줄기를 씹는 횟수도 매번 비슷해서, 나는 어느 날은 몰래 속으로 숫자를 세어보기도 했는데 정말로 열두 번, 열세 번 사이를 벗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며칠이 더 지나자, 서리는 아예 현관 안쪽에 작은 밥상을 펴놓고 그 자리에서 식사를 마치는 날도 있었다. 그럴 때면 나는 문지방 너머로 서서 그녀가 밥을 먹는 모습을 지켜보게 되었는데, 좁은 현관 안 백열등 불빛 아래에서 그녀의 옆얼굴은 유난히 하얗게 보였고, 마른 손목이 그릇을 들 때마다 파르르 떨리는 것도 눈에 들어왔다. 살이 좀 붙었으면 좋겠다고, 나는 그때 처음으로 생각했다. "맛있어요." 그녀가 어느 날 불쑥 말했을 때, 나는 하마터면 국그릇을 놓칠 뻔했다. 표정 하나 바뀌지 않은 채로 내뱉는 그 두 글자가 어쩐지 진심처럼 들려서, 나는 괜히 얼굴이 뜨거워지는 걸 감추려 헛기침을 했다. "그, 다행이네요." 서리는 그 말을 끝으로 다시 조용히 밥을 먹었고, 나는 그녀의 맞은편에 앉아 그 정갈한 식사 모습을 지켜보며 생각했다. 이 사람은 대체 누구인가. 왜 혼자 사는가. 왜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가. 우편함에는 늘 그녀의 이름이 적힌 우편물 한 장 없이 텅 비어 있었고, 택배 하나 받는 것도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왜, 이렇게 마른 몸으로도 밥 앞에서만은 그렇게 흔들림 없는 태도를 유지하는가. 마치 밥을 먹는 그 순간만큼은 누구에게도 흠잡히지 않으려는 사람처럼, 흐트러짐이라는 걸 스스로에게 허락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날 밤, 나는 서리가 반찬통을 돌려주며 문틈으로 골목 아래쪽을 한 번, 아주 짧게 살피는 걸 보았다. 시선이 스치듯 지나간 방향은 계단 쪽, 가로등이 유난히 어두운 그 구석이었는데, 그 눈빛이 방금까지의 무표정과는 전혀 다른, 경계하는 눈빛이었다는 걸 나는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저 조금 예민한 사람인가 보다, 하고. 반찬통을 건네고 문을 닫는 그 손끝이 아주 살짝, 평소보다 빠르게 움직였다는 것도, 그날은 그냥 그렇게 지나쳐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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