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일단 밥부터 먹이겠습니다

5화

그날 이후로 서리는 며칠 동안 문을 열지 않았다. 저녁마다 반찬통을 들고 301호 앞에 서면 늘 같은 자세로, 문에 가만히 이마를 대듯 몸을 기울인 채 안쪽의 기척을 살피는 게 습관처럼 되어버렸는데, 그 안에서는 텔레비전 소리도, 발소리도, 심지어 물 흐르는 소리조차 들려오지 않았다. 처음 하루는 그럴 수도 있다고 넘겼고, 둘째 날은 조금 이상하다 여겼고, 셋째 날에는 문 앞에서 반찬통을 내려놓는 손끝이 자꾸 머뭇거렸다. 나는 그 문 앞에 반찬통을 두고 돌아서는 일을 반복해야 했는데, 다음 날 저녁 다시 가보면 전날 놓아둔 반찬통이 그대로 그 자리에 있는 걸 확인하는 일도 함께 반복되었다. 먹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걱정이 앞섰지만, 그녀가 원치 않는 걸 강요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나는 애써 태연한 척 지냈다. 과제를 붙잡고 있어도 눈은 자꾸 벽 쪽을, 정확히는 301호와 맞닿은 그 얇은 벽을 향했고, 귀는 습관처럼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가도 문득 정신을 차리면 나는 스스로에게 묻곤 했다. 대체 왜 이렇게까지 신경이 쓰이는 걸까, 며칠 안 본 것뿐인데... 그 물음에 제대로 답을 못 한 채로 나는 다시 노트북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다 나흘째 되던 날 밤이었다. 늦게까지 과제를 하다 목이 말라 잠깐 부엌에 물을 마시러 나왔을 때, 시계는 새벽 한 시를 조금 넘긴 시각을 가리키고 있었다. 냉장고 문을 열고 물병을 꺼내는 그 짧은 순간에, 벽 너머 301호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뭔가 무거운 것이 쓰러지는 듯한, 둔탁한 소리였다. 쿵ㅡ 나는 순간 숨을 멈추고 벽에 귀를 기울였다. 물병을 쥔 손이 그대로 허공에 멈춰 있었다. 이어서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사람이 넘어졌다면 곧바로 뭔가 부스럭거리는 기척이나 앓는 소리 같은 게 따라와야 할 텐데, 그런 것 하나 없이 정적만이 이어졌다. 그 정적이 오히려 더 불안했다. 소리가 계속됐다면 다친 정도라고 생각했을 텐데, 이렇게 뚝 끊기는 침묵은 오히려 더 나쁜 상상을 불러왔다. 나는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한 채 밖으로 뛰어나가 301호 문을 두드렸다. 손등이 문에 닿는 소리가 텅, 텅 하고 복도 전체에 울려 퍼지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서리 씨! 서리 씨, 괜찮아요?" 아무 대답이 없었다. 심장이 점점 더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문을 두드리며 손잡이를 돌려보았는데, 뜻밖에도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손잡이가 예상보다 쉽게 돌아가는 그 감각에 오히려 소름이 끼쳤다. 저 사람이, 그렇게 문단속에 예민하던 사람이 문을 잠그지 않았다는 건, 그럴 정신조차 없었다는 뜻일 테니까. 문이 스르륵 열리는 순간, 차가운 실내 공기가 먼저 밀려나왔다. 불도 켜지지 않은 어두운 방 안에서, 나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서리를 발견했다. "서리 씨!" 나는 그녀에게 달려가 몸을 흔들었다. 어둠 속에서도 서리의 낯빛은 평소보다 더 창백했고, 입술마저 색이 바래 있어서 마치 핏기라는 게 원래부터 없었던 사람처럼 보였다. 숨은 쉬고 있었지만 아주 얕고 불규칙했다. 가슴이 오르내리는 폭이 너무 작아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숨을 쉬는지조차 알기 어려울 정도였다. "정신 좀 차려봐요, 서리 씨!" 손끝이 떨려오는 걸 느끼며 나는 그녀를 안아 올렸는데, 몸이 놀랄 만큼 가벼워서 다시 한번 숨이 턱 막혔다. 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제대로 못 먹은 건지, 그 무게가 마치 어린아이 하나를 안은 것 같았다. 팔에 걸리는 무게가 너무 가벼워서, 오히려 그 가벼움이 더 무겁게 마음을 짓눌렀다. 그녀를 눕히려 방 안을 살피던 순간, 나는 방 한쪽 구석에 놓인 낡은 캐리어를 보았다. 지퍼가 반쯤 열린 채로 옷가지 몇 개가 삐죽 튀어나와 있는 그 캐리어는, 언제라도 다시 짐을 챙겨 떠날 수 있게 준비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옆에 흐트러진 옷가지들 사이로, 낡은 액자 하나가 뒤집혀 떨어져 있었다. 나는 그걸 주워 세우려다가, 액자 속 사진을 보고 손이 멈췄다. 우뚝ㅡ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어느 대저택 같은 곳에서 정장을 입고 나란히 서 있는 사진이었다. 뒤로는 커다란 대리석 기둥과 정원이 보였고, 두 사람 모두 어딘가 어색하게 굳은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그 여자의 얼굴이 지금 내 품에 안긴 서리와 완전히 같았다. 조금 더 어리고, 조금 더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지만, 눈매만은 틀림없이 서리였다. 그리고 사진 아래 작은 글씨로 적힌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한서리 양, 스무 살 생일 기념 — ○○그룹] ○○그룹. 나는 그 글자를 몇 번이나 다시 읊었다. 서리가 대학생 자취방에서 밥도 제대로 못 먹으며 숨어 지내는 사람이 아니라, 어느 대기업과 관련된 이름을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이 그 짧은 문구 하나로 갑작스럽게 확정되어버린 셈이었다. 머릿속이 순간 새하얘졌다. 그동안 그녀가 흘리듯 지나가듯 던지던 말들, 갑자기 말을 멈추던 순간들, 누군가를 피하듯 창밖을 살피던 습관들이 한꺼번에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설마... 그럼 그날 낮에 봤던 그 정장 차림의 남자도. "...하아." 나는 짧게 숨을 내뱉고는 액자를 다시 내려놓고 서리를 향해 돌아섰다. 그녀는 여전히 의식이 없었고, 나는 더 지체할 수 없다는 생각에 얼른 그녀를 업고 문밖으로 나섰다. 신발을 신는 것도 잊고 나온 게 그제야 생각났지만, 다시 들어가 신발을 찾을 여유는 없었다.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등 뒤로 느껴지는 그녀의 체온이 이상하게 낮았고, 나는 그 서늘한 감각에 자꾸만 걸음이 급해졌다. 삼 층에서 이 층으로, 이 층에서 일 층으로 내려가는 그 짧은 계단이 그날은 유난히 길게 느껴졌고, 발바닥에 닿는 차가운 시멘트 바닥의 감촉조차 제대로 느껴지지 않을 만큼 머릿속은 온통 다른 생각들로 가득 차 있었다. 골목을 빠져나와 큰길로 나서는데, 저 멀리 어두운 골목 어귀에 검은색 세단 한 대가 서 있는 게 보였다. 낮에 본 그 정장 차림의 남자가 차 옆에 서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순간 걸음을 멈췄다. 우뚝! 그 남자와 눈이 마주친 것 같았다.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이쪽을, 정확히는 내 품에 안긴 서리를 응시하고 있었는데, 그 시선이 너무나 집요해서 등줄기에 서늘한 소름이 돋았다. 표정 하나 변하지 않는 그 얼굴이, 오히려 어떤 감정보다 더 무섭게 느껴졌다. 마치 이 순간을 이미 예상하고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나는 서리를 더 단단히 붙잡고 반대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병원으로 가는 길은 그쪽이 아니었지만, 지금 저 남자와 마주치는 것보다는 조금 돌아가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등에 업힌 서리의 무게가 다시 한번 팔을 짓눌렀지만, 나는 그 무게를 오히려 붙잡을 근거로 삼으며 걸음을 재촉했다. 등 뒤에서 서리의 숨소리가 아주 조금씩 안정되어가는 걸 느끼며,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이 사람은 대체 누구인가. ○○그룹과는 무슨 관계인가. 그리고 저 남자는, 대체 얼마나 오래전부터 그녀를 찾아다니고 있었던 것인가. 왜 하필 지금, 이 순간에 저 자리에 서 있는 것인가. 골목 끝에서 자동차 시동 거는 소리가 들려왔다. 부드럭ㅡ 그 소리가 마치 뒤를 밟아오겠다는 예고처럼 들려서,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발걸음을 더 서둘렀다. 등 뒤로 다가오는 헤드라이트 불빛이 아스팔트 위에 길게 그림자를 늘어뜨리는 게 느껴졌지만, 나는 끝내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로 그저 앞만 보고 걸었다. 저 차가 정말로 우리를 뒤따라오고 있는 건지, 아니면 단순히 어디론가 향하는 것뿐인지조차 알 수 없는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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