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그렇게 계절이 한 번 바뀌는 동안, 나와 서리 사이의 저녁 밥상은 어느새 하루도 거르지 않는 일상이 되어 있었다. 처음엔 문 앞에서 반찬통을 주고받는 정도였다. 내가 만든 밑반찬을 통에 담아 문고리에 걸어두면, 서리는 다음 날 그 통을 깨끗이 씻어 손잡이에 다시 걸어두는 식이었고, 그 사이엔 짧은 메모 한 장도 오가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서리가 아예 우리 집 부엌 식탁에 앉아 밥을 먹는 게 자연스러워졌고, 나는 그녀의 밥그릇을 챙기는 일이 하루 중 가장 신경 쓰이는 시간이 되어버렸다. 국을 끓일 때도 예전 같으면 대충 소금 간을 보고 끝냈을 텐데, 이제는 숟가락으로 국물을 떠서 몇 번이고 맛을 보는 버릇이 생겼고, 그러다 문득 내가 왜 이렇게까지 신경을 쓰는지 스스로에게 되묻는 순간이 늘어갔다.
"국이 좀 짜지 않아요?" 내가 물으면, 서리는 국물을 한 숟갈 더 떠먹고는 아주 나지막이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오히려... 이 정도가 딱 좋아요."
그녀의 그 짧은 평가는 이상하게도 내가 삼 년 넘게 종가 부엌에서 들은 어떤 평가보다도 정확했다. 할머니는 늘 "짜다", "싱겁다" 두 마디로 끝냈고, 큰어머니는 아예 맛을 보기도 전에 소금을 더 넣으라고 손이 먼저 나가는 사람이었는데, 서리는 매번 국물의 온도와 간과 재료의 배합까지 짚어내는 식이었다. 처음엔 그저 입맛이 예민한 사람인가 싶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정확함이 예민함을 넘어선 무언가로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토요일, 나는 갑작스러운 방문객을 맞이해야 했다. 아침부터 청소를 하다 말고 소파에 늘어져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고, 나가보니 큰어머니가 서울까지 반찬거리를 잔뜩 싸들고 올라와 있었다. 양손 가득 보따리를 든 채로, 등에는 배낭까지 하나 더 짊어진 모습이었다. 큰어머니는 종가에서 삼십 년 넘게 부엌을 지켜온 어른이었고, 목소리가 크고 정이 넘치는 만큼 잔소리도 그만큼 넘치는 사람이었다.
"아이고, 도윤아! 얼굴이 이게 뭐냐, 볼때기가 홀쭉해가지고!" 큰어머니는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신발도 제대로 벗지 않고 내 뺨을 두 손으로 감싸 쥐며 호들갑을 떨었고, 나는 민망함에 뒤로 슬쩍 물러섰다.
"저 밥 잘 먹고 다녀요."
"어련하시겠어요. 니 할무니가 매일 니 걱정에 잠도 못 잔다는디, 알기는 하냐?" 큰어머니는 전라도 사투리가 유독 짙게 섞인 말투로 그렇게 쏘아붙이고는, 보따리를 거실 바닥에 쿵 내려놓고 곧장 부엌으로 들어가 냉장고를 열어보았다. 안에 가득 채워진 밑반찬통을 보고는 눈이 동그래졌다.
"이거 니가 다 한 거여?"
나는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 어물어물했다. 사실 절반은 서리가 손댄 것들이었는데, 그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기 때문이었다. 마침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고, 서리가 저녁 밥때가 되어 찾아온 참이었다. 큰어머니는 낯선 손님을 발견하고는 눈을 크게 뜨며 서리를 위아래로 살폈다. 옷차림부터 신발까지, 마치 물건을 감정하듯 훑는 시선이었는데, 서리는 그 시선에도 표정 하나 바뀌지 않은 채 조용히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오메, 이 아가씨는 뉘여?" 큰어머니가 나를 향해 눈썹을 치켜올리며 묻는 통에, 나는 얼른 서리를 옆집 이웃이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큰어머니는 이미 뭔가 오해를 하기 시작한 눈치였다. "이웃이라……" 하고 한 번 되뇌더니,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는 걸 나는 놓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큰어머니는 이내 서리를 식탁에 앉히고는, 가져온 젓갈이며 김치를 잔뜩 꺼내 놓았다. 통마다 뚜껑을 열 때마다 짠 냄새와 삭은 냄새가 훅훅 풍겨왔고, 부엌 전체가 순식간에 종가 냄새로 채워지는 듯했다.
"아가씨, 이거 좀 먹어봐. 우리 도윤이가 만든 반찬은 뭐 그럭저럭 먹을 만하겠지만, 이건 우리 종가에서 담근 김치니까." 큰어머니는 은근한 자부심을 숨기지 않고 김치통 뚜껑을 열어 젓가락으로 한 조각을 집어 서리 앞에 놓아주었다.
서리는 김치 한 조각을 집어 천천히 씹다가, 잠깐 멈추었다. 씹던 턱의 움직임이 아주 잠깐 정지했다가 다시 이어지는, 그 짧은 순간을 나는 이상하게도 선명히 기억한다. 그러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젓갈이... 세 종류가 들어갔네요. 새우젓, 멸치액젓, 그리고... 황석어젓."
큰어머니의 눈이 순간 커졌다. "뭐? 그걸 어떻게 알아?"
서리는 대답 없이 그저 다시 김치를 씹었다. 젓가락을 놀리는 손끝이 어찌나 태연한지, 방금 던진 말이 얼마나 큰 파장을 일으켰는지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보였다. 나는 그 순간 큰어머니와 눈이 마주쳤는데, 큰어머니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 아가씨, 보통 사람이 아니구나.'
큰어머니가 입 모양으로 그렇게 말하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서리의 옆얼굴을 다시 살폈지만, 그녀는 여전히 아무 일 없다는 듯 태연하게 젓가락을 움직이고 있었다. 큰어머니는 한동안 서리를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이내 헛기침을 하며 화제를 돌렸다. "아, 아니, 뭐, 입맛이 좋은가 보네, 좋은 거지 뭐." 그러면서도 힐끔힐끔 서리를 살피는 눈빛은 저녁상이 끝날 때까지 사그라들지 않았다.
큰어머니가 돌아간 뒤, 나는 오랜만에 마음이 조금 가벼워지는 걸 느꼈다. 종가를 떠나온 게 마치 도망친 것처럼 느껴져 늘 죄책감이 있었는데, 큰어머니의 잔소리와 반찬을 받으며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던 걸 보면, 그 굴레가 완전히 싫었던 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현관문을 닫고 돌아서니 집 안엔 아직 젓갈 냄새와 김치 냄새가 옅게 남아 있었고, 나는 그 냄새를 맡으며 잠깐 눈을 감았다. 어릴 때 종가 부엌에서 할머니 치맛자락을 붙잡고 서 있던 기억이, 냄새 하나로 이렇게 선명하게 되살아날 줄은 몰랐다.
그날 밤, 나는 서리에게 넌지시 물었다.
"혹시... 요리 쪽 배우신 적 있어요?"
서리는 잠깐 젓가락질을 멈추었다. 아주 짧은 정지였지만, 나는 그걸 놓치지 않았다. 밥그릇 위에서 멈춘 젓가락 끝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것도, 그녀의 눈동자가 순간 초점을 잃고 어딘가 먼 곳을 향했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도.
"...아니요." 그녀가 다시 젓가락을 움직이며 말했다. "그냥, 어릴 때... 좀 먹어봤을 뿐이에요."
그 말끝이 미묘하게 흐려졌고, 나는 더 묻지 않았다. 묻고 싶은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왔지만, 그녀의 표정이 이미 문을 닫아버린 사람의 얼굴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그날도 평소처럼 밥을 다 먹고, 설거지를 나누어 하고, 몇 마디 안 되는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하지만 그날 밤 서리가 돌아간 뒤, 나는 재활용 쓰레기를 내놓으러 나갔다가 그녀의 방문 앞에 놓인 우편함을 우연히 지나치게 되었다.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을 텐데, 그날은 어쩐지 우편함 뚜껑이 살짝 열려 있어 시선이 절로 그쪽으로 향했다. 안을 들여다보니 쌓인 우편물들이 하나같이 '수취인 불명'으로 반송 도장이 찍혀 돌아온 것들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발신인 주소도 이름도 없는, 그저 하얀 봉투들이었다. 봉투마다 붉은 도장이 어지럽게 찍혀 있었고, 어떤 것은 두 번, 세 번씩 되돌아온 흔적이 겹쳐 찍혀 있기도 했다.
나는 그 봉투 하나를 손에 들고 한참을 서 있었다. 손끝에 닿는 종이의 감촉이 유난히 차가웠다. 누군가 그녀에게 계속 뭔가를 보내려 하고 있었고, 그녀는 그걸 받지 않으려 하고 있었다. 반송이 아니라, 어쩌면 처음부터 받을 수 없는 주소로 보내진 것들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나는 알 수 없는 불안이 조용히 스며드는 걸 느꼈다. 봉투를 다시 우편함 안에 조심스레 밀어 넣고 돌아서는 내 발걸음은, 평소보다 훨씬 무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