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매점 여신의 심야 정체

2화

청람대학교 학생회관 매점은 개강 첫 주부터 사람들로 붐볐다. 새 학기의 냄새랄까, 아직 손에 익지 않은 강의실 배치와 낯선 얼굴들 사이에서 다들 조금씩 들떠 있었고, 그 들뜬 공기가 매점 앞 줄까지 이어졌다. 나는 지아와 함께 강의가 끝난 오후, 커피 한 잔이라도 사 마시려고 그곳을 찾았다. 지아는 같은 학부 동기로, 단발머리에 늘 뭔가를 꿰뚫어 보는 듯한 눈빛을 가진 애였는데, 개강 첫날부터 나를 두고 "그 필름 카메라 목에 걸고 다니는 애"라고 소개해서 나는 아직도 그 말이 좀 서운했다. 필름 카메라를 목에 걸고 다니는 게 뭐 그렇게 특이한 취미도 아닌데, 지아는 마치 내가 진귀한 동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소개하곤 했다. "여기 계산대에 그 유명한 언니 있대." 지아가 줄을 서며 속삭였다. 목소리를 낮췄지만 눈은 이미 잔뜩 반짝이고 있었다. "유명한 언니?" "학생회관의 여신. 몰라? 경영학과 2학년, 서은채. SNS에 몰카처럼 찍힌 사진들 돌아다니는 거 못 봤어?" 나는 몰랐다. 정확히는 관심이 없었다. 그런 캠퍼스 화제는 내가 추구하는 세계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으니까. 나는 사람보다는 빛과 그림자, 순간의 표정을 필름에 담는 데 더 마음이 쓰이는 사람이었고, 누군가의 얼굴이 SNS에서 화제라는 사실은 내게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인데?" "뭐랄까, 완벽 그 자체? 성적도 좋고, 예쁘고, 성격도 되게 상냥하대. 여기서 알바하는데 손님들한테 진짜 친절하다고. 나도 저번에 봤는데 무슨 CF 찍는 줄 알았어." 지아가 손을 휘휘 저으며 설명하는 동안 줄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나는 그냥 흘려들으며 진열대 위의 삼각김밥들을 눈으로 훑고 있었다. 하지만 계산대 쪽으로 시선을 옮긴 순간, 나는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계산대에 서 있는 사람은, 어제 베란다에서 만난 그 여자였다. 심장이 순간적으로 덜컹 내려앉는 것 같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지금은 머리를 단정하게 넘겨 하나로 묶었고, 화장을 옅게 했으며, 유니폼처럼 정해진 매점 조끼를 입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표정마저도 전혀 달랐다. 손님이 다가올 때마다 살짝 올라가는 입꼬리, 정중하지만 따뜻한 눈인사, 카드를 건네받을 때의 정확하고 부드러운 손짓. 완벽했다. 지나치게 완벽해서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저 사람이... 서은채?" 나는 얼빠진 목소리로 물었다. 목소리가 나도 모르게 살짝 갈라졌다. "응, 왜, 관심 생겼어?" 지아가 장난스럽게 팔꿈치로 옆구리를 찔렀지만 나는 대답할 정신이 없었다. 머릿속에서는 어제 밤의 장면들이 빠르게 재생되고 있었다. 캔맥주를 홀짝이던 나른한 얼굴, 라이터가 안 켜진다고 욕설을 흘리던 목소리, 세상 모든 일에 무관심하던 눈빛. 그리고 그 옆에서 흩날리던 담배 연기와 차가운 밤바람 냄새. 그것과 지금 눈앞에서 손님들에게 웃어주는 저 완벽한 얼굴이 같은 사람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낮의 여신과 밤의 나태한 얼굴. 같은 사람인데 이렇게 다를 수 있나? 줄이 줄어드는 게 이렇게 아쉬운 적은 없었다. 앞사람이 커피를 받아 들고 자리를 뜨고, 다시 그 앞사람이, 또 그 앞사람이. 한 걸음씩 나는 그녀에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지아는 옆에서 뭐라고 계속 떠들었지만 그 말들이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나는 심장이 이상하게 뛰는 걸 느끼며 카드를 내밀었다. 손끝이 살짝 떨렸던 것 같다. 은채—이제는 이름을 알게 된—는 익숙한 손짓으로 카드를 긁으며 나를 잠깐 올려다보았다. 그 순간 나는 그녀의 눈빛에서 아주 짧은 균열을 보았다고 생각했다.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던가, 아니면 그저 내 착각이었을까. 나를 알아본 걸까. 아니면 그냥 손님을 보는 눈빛이었을까. 그 짧은 순간이 이상하게 길게 느껴졌다. 매점 안의 소음이, 사람들의 대화 소리와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가 전부 멀어지고 오직 그녀의 눈빛만 남는 것 같았다. "영수증 드릴까요?" 담백한 목소리였다. 어제와는 완전히 다른 톤. 어제 베란다에서 들었던, 나른하고 조금은 거친 그 목소리와는 전혀 다른 사람의 것 같았다. 나는 얼떨결에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요. 괜찮습니다." 그녀는 다시 다음 손님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에는 어떤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나를 향했던 그 균열조차 이미 지워진 듯, 완벽하게 다음 순서로 넘어가는 표정이었다. 나는 그 완벽한 전환에 압도된 채로 자리를 떠났고, 지아가 나를 계속 쳐다보고 있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뭐야, 왜 그렇게 얼어 있어?" "아니, 그냥... 사람이 진짜 예쁘구나 싶어서." 어설픈 변명이었지만 지아는 별로 캐묻지 않고 넘어갔다. 다행이었다. 만약 지아가 조금이라도 더 파고들었다면, 나는 분명 어제 베란다에서 있었던 일을 무심코 흘렸을 것이다. 그리고 그건 내가 절대로 원하는 상황이 아니었다. 나는 그날 하루 종일 강의 내용은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교수님의 목소리가 웅웅거리는 배경음처럼 흘러갔고, 노트에는 의미 없는 낙서만 늘어갔다. 머릿속엔 오직 하나의 생각만 맴돌았다. 그 사람은 낮에는 완벽한 여신이고, 밤에는 나태하고 무표정한 얼굴로 담배를 태우는 사람이다. 그 간극이 나를 뒤흔들었다. 누구도 모르는 진짜 얼굴을, 나는 우연히 봐버린 셈이었다. 그게 마치 나만 아는 비밀 같아서, 알아서는 안 될 걸 알아버린 것 같아서, 이상한 죄책감과 동시에 알 수 없는 흥분이 뒤섞였다. 수업이 끝나고 지아와 헤어진 뒤에도 나는 한참을 캠퍼스 벤치에 앉아 있었다. 목에 걸린 필름 카메라의 무게가 오늘따라 유난히 느껴졌다. 뭔가를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정작 무엇을 찍고 싶은지는 명확하지 않았다. 다만 낮의 완벽한 얼굴과 밤의 무너진 얼굴, 그 두 장의 사진을 나란히 놓고 보고 싶다는 이상한 욕망이 마음 한구석에서 자라나고 있었다. 저녁이 되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편의점에서 캔맥주를 하나 사서 손에 쥐고 걸었다. 편의점 유리문에 비친 내 얼굴이 낮보다 훨씬 지쳐 보였다. 오늘 밤에도 그녀가 베란다에 나올까. 나온다면 뭐라고 인사를 해야 할까. 어제처럼 무심하게 "안녕하세요" 하고 지나가야 할까, 아니면 낮에 본 걸 조금이라도 언급해야 할까. 혹시 언급했다가 그녀가 불편해하면 어쩌지. 낮의 얼굴과 밤의 얼굴이 다르다는 걸, 나 말고는 아무도 모르는 그 사실을 내가 안다는 걸 알면, 그녀는 나를 어떻게 볼까. 반가워할까, 아니면 경계할까. 답을 정하지 못한 채로 나는 오피스텔 앞에 도착했고, 계단을 오르는 발걸음이 이상하게 느려졌다. 한 층 한 층 올라갈 때마다 심장이 조금씩 더 빠르게 뛰는 것 같았다. 마치 그 계단 끝에 뭔가 대단한 게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내가 본 그 얼굴을, 그녀는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았을 것이다. 낮에는 그렇게 완벽하게 웃던 사람이, 밤에는 그렇게 무너져 있었다는 걸 아는 사람은 어쩌면 이 세상에 나 하나뿐일지도 몰랐다. 그런데 나는 왜 벌써 그 얼굴이 다시 보고 싶은 걸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미룬 채로, 나는 현관문을 열었다. 캔맥주를 냉장고에 넣지도 않고 그대로 손에 쥔 채, 나는 베란다로 이어지는 창문 쪽을 자꾸 흘겨보고 있었다. 아직 해가 완전히 지지 않은 하늘이 주황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었고, 그 빛이 스러지면 밤이 올 것이었다. 그리고 밤이 오면, 어제처럼 그녀가 그 자리에 다시 나타날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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