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3초 고백, 평생 배신

2화

복도에는 이미 도윤이 알지 못하는 시선들이 가득했다.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지나가는 아이들이 그를 흘끔거리다가 곁눈질로 웃는 순간들이 조각조각 이어지면서, 도윤은 어제 옥상에서의 그 영상이 밤사이 어딘가로 흘러나갔다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신발장 앞에서부터 그랬다. 실내화로 갈아신으려 몸을 숙이는 순간, 등 뒤로 낮게 깔린 웃음소리가 지나갔고, 도윤이 고개를 들었을 때는 이미 그 소리의 주인이 누구였는지 알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얼굴들이 너무 많았다. 그중 누구도 그를 똑바로 쳐다보지는 않았지만, 그중 누구도 그를 완전히 외면하지도 않았다. 사물함 문을 열자 안쪽에 붙어 있던 낙서가 눈에 들어왔다. 굵은 매직펜으로 휘갈긴 글씨였는데, 정확히 무슨 뜻인지는 파악할 겨를도 없이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도윤은 손끝으로 그 글씨를 문질러보았다. 잉크는 이미 마른 지 오래였고, 지워지지 않았다. "저거 걔지, 옥상에서 고백했다가……." 뒷말은 흐려졌지만, 도윤은 그 흐려진 말의 끝을 완성할 필요가 없었다. 이미 어제 그 자리에서 완성된 문장이었으니까. 사물함 문을 닫는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철제 문이 부딪히며 내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복도를 울렸고, 그 소리에 몇몇이 다시 이쪽을 돌아보았다. 도윤은 시선을 바닥에 떨어뜨린 채 걸음을 옮겼다. 발끝만 보고 걸으면, 적어도 눈이 마주치는 일은 없을 테니까. 교실에 들어서자 몇몇이 휴대폰 화면을 보다가 급히 끄는 모습이 보였다. 담임의 눈을 피해 메신저로, 단체 채팅방으로, 그 영상이 이미 몇 번이나 전달되었는지, 도윤은 짐작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창가 자리에 앉은 누군가가 휴대폰을 옆자리로 슬쩍 밀어 보여주었고, 화면을 들여다본 아이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음을 참는 모습이 유리창에 반사되어 보였다. 도윤은 그 반사된 웃음을 보지 않으려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운동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수업 시간 내내 등 뒤에서 종이 구겨지는 소리가 들렸다. 무언가를 접고 다시 펴는 소리, 누군가가 낮게 속삭이는 소리. 도윤은 필기를 하는 손을 멈추지 않았지만, 노트에 적힌 글자들은 이미 줄을 벗어나 삐뚤어져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어도 식당으로 향하지 않았다. 대신 빈 교실 한켠에서 창밖만 바라보며 시간을 흘려보냈는데, 그마저도 오래가지 못했다. "이도윤." 점심시간이 끝나갈 무렵, 유하가 복도에서 그를 불러 세웠다. 나윤과 소희가 뒤따르며 낄낄거렸다. "어제 영상 봤어? 조회수 완전 대박이야." 도윤은 걸음을 멈추지 않으려 했으나, 유하가 앞을 막아서는 순간 어쩔 수 없이 발을 멈췄다. 유하의 목소리는 나른했다. 급할 것 하나 없다는 듯, 마치 오래전부터 이 순간을 기다려왔다는 투였다. "뭘 원해." 도윤의 목소리는 건조했다. 스스로도 놀랄 만큼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딱히 원하는 건 없는데." 소희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냥, 반응이 궁금해서." 나윤이 휴대폰을 다시 들어 올렸다. 렌즈가 도윤을 향하는 순간, 그는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는데, 그 동작 자체가 또 하나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야, 저거 봐, 부끄러워하는 거." 카메라 셔터음이 두어 번 울렸다. 도윤은 그 소리가 얼마나 많은 순간을 붙잡아두었을지 헤아리지 않기로 했다. 헤아려봐야 달라지는 것은 없었을 테니까. 도윤은 그들을 밀치듯 지나쳐 계단 쪽으로 향했다. 뒤에서 들리는 웃음소리가 등 뒤에 그대로 얹혔다. 계단 손잡이를 잡은 손바닥에 땀이 배어 있었다. 몇 번이나 손잡이를 놓쳤다가 다시 붙잡았는지 셀 수 없었다. 소라는 그 자리에 없었다. 어디선가 이 상황을 알면서도 나타나지 않는 것인지, 도윤은 알 수 없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옆자리에서 웃던 얼굴이었는데, 오늘은 그 얼굴을 마주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교실 어디에도, 복도 어디에도 소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며, 도윤은 문득 자신이 갈 곳이 이 학교 안에 더는 없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교실도, 복도도, 심지어 화장실 한 칸도 안전하지 않았다. 손끝에서 시작된 한기가 팔뚝을 지나 어깨까지 번지는 느낌이었다. 계단을 오르는 발걸음이 점점 느려졌다. 마지막 계단을 밟기 전, 도윤은 잠시 멈춰서 문 너머의 침묵을 가늠해보았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것이 오히려 더 불길하게 느껴졌다. 옥상 문을 열었을 때, 그곳에는 이미 유하와 나윤, 소희가 먼저 와 있었다. 도윤이 뒷걸음질 치려는 순간 등 뒤에서 문이 저절로 닫히는 소리가 났다. 철문이 부딪히는 소리는 유난히 무겁게 울렸고, 그 울림이 잦아들 때까지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어디 가." 나윤이 앞을 가로막았다. "우리 아직 얘기 안 끝났는데." "뭘 더 원해." 도윤이 다시 물었다. 목소리가 이번에는 미세하게 갈라졌다. "별거 아니야." 유하가 물병을 들어 올렸다. "그냥 좀 시원하게 해주려고." 도윤은 그 물병의 뚜껑이 열리는 소리를 들었다. 플라스틱이 돌아가는 마찰음이 유독 크게 귀에 박혔다. 도망칠 방향을 가늠하려 시선을 돌렸지만, 세 사람이 정확히 삼각으로 그를 둘러싼 채였고, 그의 등 뒤에는 다시 그 차가운 난간뿐이었다. 바람이 옥상을 한 차례 훑고 지나갔다. 머리카락이 이마 위로 흩날렸고, 도윤은 그 바람의 방향조차 도망칠 길이 되어주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늘은 어제와 다르지 않게 흐렸다. 물이 쏟아지기 직전, 옥상 문이 다시 거칠게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뭐 하는 거야, 지금." 낮고 서늘한 목소리가 그 자리의 공기를 단번에 갈랐다. 도윤은 그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아직 알지 못한 채, 고개를 돌릴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옥상의 정적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유하의 손에 들린 물병이 미세하게 흔들렸고, 그 흔들림이 흘러넘친 물방울 몇 개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누구도 먼저 움직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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