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저녁 식탁에는 오랜만에 아버지와 서연의 어머니, 그리고 나와 서연 넷이 모두 모여 앉아 있었다. 아버지가 재혼한 지 이제 몇 해가 지났지만 이렇게 온 가족이 저녁을 함께하는 일은 흔치 않았기에, 나는 오랜만에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젓가락을 움직이며 별생각 없이 낮에 있었던 일들을 떠들었다. 서연의 어머니는 국을 떠주며 내 이야기에 웃음을 터뜨렸고, 아버지는 그런 우리를 바라보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는데, 나는 그 순간만큼은 정말로 우리가 오래된 가족처럼 느껴져서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지는 걸 느꼈다.
그런데 문득 서연의 어머니가 서연을 향해 던진 한마디에 분위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서연아, 너 요즘 도윤이 볼 때마다 왜 그렇게 얼굴이 빨개지니?"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방금까지 웃음소리로 가득했던 식탁 위에 이상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서연의 손에 들려 있던 숟가락이 그대로 멈췄고, 국그릇 위로 잘게 떨리는 손끝이 눈에 들어왔다.
"뭐, 뭔 소리야, 안 그러는데." 서연이 다급하게 부정했지만 그 말끝이 눈에 띄게 흔들리고 있었고, 얼굴은 이미 귀까지 붉게 물들어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도 그냥 놀리는 게 부끄러워서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는데, 젓가락을 다시 집어 들며 별생각 없이 "왜, 내가 뭘 어쨌다고" 하며 웃어넘기려 했다. 그러나 아버지와 서연의 어머니는 서로 눈빛을 주고받으며 뭔가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그 눈빛 교환이 어딘가 미리 짜놓은 각본처럼 느껴져서 나는 순간 젓가락질을 멈추고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도대체 뭔데. 왜 다들 저런 표정을 짓는 거지.
"서연아." 이번엔 아버지가 나섰다. 목소리는 나긋했지만 그 안에 담긴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아버지는 젓가락을 상 위에 조용히 내려놓으며, 마치 오래전부터 준비해왔던 말을 꺼내는 사람처럼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혹시 오빠한테 이상한 감정 갖고 있는 거 아니지?"
식탁 위로 침묵이 내려앉았다. 시계 초침 소리가 유독 크게 들리는 것 같은 순간이었다. 벽에 걸린 시계의 초침이 한 칸씩 넘어갈 때마다 그 소리가 귓속을 파고드는 것처럼 선명하게 울렸고, 나는 그 정적 속에서 서연의 숨소리가 점점 얕아지는 걸 느꼈다.
서연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는데, 그 침묵이 오히려 무엇보다 확실한 대답이 되어버렸다는 걸 나조차 눈치챌 수 있을 정도였다. 식탁 아래로 감춘 서연의 손이 옷자락을 꽉 움켜쥐고 있는 게 보였고, 그 손끝이 하얗게 변해가는 걸 나는 못 본 척할 수가 없었다.
"아니… 그런 거 아니에요." 겨우 짜낸 목소리가 파르르 떨리며 흩어졌지만, 이미 붉어진 눈가와 떨리는 손끝이 그 말을 부정하고 있었다. 서연은 애써 고개를 들어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어 보이려 했지만, 입술 끝이 자꾸만 아래로 처지는 걸 감추지 못했다.
서연의 어머니가 조심스럽게, 그러나 단호하게 입을 열었다. "우리는 이제 가족이야. 그런 마음은… 안 돼, 서연아. 절대 안 돼."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서연의 표정이 완전히 무너지는 걸 나는 봤다. 눈물이 그대로 뚝 떨어졌지만 서연은 손등으로 재빨리 훔치며 아무렇지 않은 척 애를 썼는데, 그 모습이 오히려 더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나는 자리에서 반쯤 일어나 서연에게 뭐라 말을 건네려 했지만, 정작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그대로 다시 앉고 말았다. 손끝이 어색하게 허공에서 멈췄다가 천천히 무릎 위로 떨어졌다.
나는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로 그저 서연과 아버지, 어머니를 번갈아 쳐다보고만 있었다. 우리가 남매라서… 그런 마음을 가지면 안 된다는 게 대체 무슨 소리인 걸까.
그럴리가.
설마, 서연이 나를…
머릿속으로 떠오른 생각을 나는 곧바로 지워버렸다. 그런 건 말도 안 되는 오해일 거라고, 그저 어머니가 괜한 걱정을 하는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려 했지만, 방금 본 서연의 눈물과 떨리는 어깨가 자꾸만 눈앞에 어른거려서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오빠는 좀 나가 있어." 아버지가 낮게 말했고, 나는 얼떨결에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갔다. 문을 닫기 전 마지막으로 돌아본 서연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어깨를 작게 떨고 있었는데, 그 뒷모습이 어딘가 위태롭게 느껴져서 나는 차마 발걸음을 떼기가 힘들었다.
방으로 들어와 문을 닫고도 나는 한동안 문 앞에 서 있었다. 문 너머로 들려오는 대화의 파편들은 고스란히 내 귀에 박혔다. "…그동안 눈치는 채고 있었지만…" "…절대 발설하면 안 돼요, 애들 사이에서…" "그래도 이건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지, 나중에 더 커지면…" 그런 말들이 조각조각 이어지며 나는 방문에 등을 대고 선 채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손끝이 차갑게 식어가는 걸 느꼈다.
눈치는 채고 있었다니. 대체 언제부터.
내가 모르는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서연이 나를 볼 때마다 얼굴을 붉힌다는 게, 그게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다뤄져야 할 일인가. 나는 문에 귀를 바짝 대고 좀 더 자세히 들어보려 했지만, 목소리들은 점점 낮아져서 나중에는 무슨 말을 하는지조차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결국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두 손을 맞잡은 채 그저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날 밤, 늦게 방으로 돌아온 서연은 눈이 붉게 부어 있었다. 복도 불빛 아래 드러난 서연의 얼굴은 한참을 운 사람처럼 창백했고, 입술은 바짝 말라 있었다. 마주친 순간 서연은 황급히 시선을 피하며 방문을 닫으려 했는데, 나는 무심코 물었다.
"괜찮아?"
그러자 서연은 문틈으로 나를 잠깐 노려보듯 바라보며 낮게 내뱉었다.
"…신경 꺼."
그 말 한마디에 담긴 냉랭함과는 다르게, 문이 닫히기 직전 마지막으로 본 서연의 눈빛에는 뭔가 절박한 것이 서려 있었다는 걸 나는 오래도록 지우지 못했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유독 크게 울렸고, 그 뒤로 방 안에서 흐느끼는 듯한 숨소리가 아주 잠깐 들려왔다가 이내 조용해졌다.
나는 닫힌 문 앞에 서서 한참을 그대로 있었다. 손을 들어 문을 두드릴까 하다가도, 서연의 마지막 눈빛이 떠올라 차마 손을 뻗지 못했다. 결국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로 내 방으로 돌아왔지만,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천장을 바라보며 몇 번이나 뒤척이다가, 서연의 어머니가 했던 말이 귓가에 다시 맴돌았다.
우리는 이제 가족이야. 그런 마음은… 안 돼, 서연아. 절대 안 돼.
어째서 그런 마음을 가지면 절대 안 된다는 걸까. 그리고 서연은 대체 어떤 마음을 숨기고 있었던 걸까.
그날 이후로 서연은 눈을 마주치는 것조차 피하기 시작했다. 아침에 식탁에서 마주쳐도 고개를 숙인 채 인사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고, 내가 말을 걸어도 짧게 대답하고는 곧바로 자리를 피했다. 나는 그 서늘한 거리감을 느끼면서도 정확히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로 며칠을 흘려보내야 했다. 예전 같으면 별일 아니게 스쳐 지나갔을 순간들이 하나하나 마음에 걸려서, 나는 서연의 뒷모습을 볼 때마다 알 수 없는 불안이 목 안쪽에서 조여오는 걸 느꼈다.
도대체 무슨 마음이었길래, 그렇게까지 숨겨야만 했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