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다음 날 아침, 강태민의 가방 속에는 도시락 통이 두 개 들어 있었다.
하나는 늘 그렇듯 자신의 것이었다. 두 번째는—그는 그것을 넣으면서도 스스로에게 몇 번이나 되물었다. 왜 이러고 있는지, 뭘 기대하는 건지. 답은 나오지 않았다. 다만 어제 본 그 창백한 얼굴이, 상한 도시락 냄새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을 뿐이었다.
새벽 다섯 시. 태민은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을 떴다. 부엌 불을 켜고, 계란을 꺼내고, 도마 위에 소고기를 올렸다. 손이 움직이는 동안에도 머릿속에서는 계속 같은 질문이 반복됐다.
‘이걸 왜 만들고 있지.’
칼질을 하면서도, 팬에 기름을 두르면서도 그 질문은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손은 이미 습관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간을 맞추고, 색을 살피고, 마지막으로 뚜껑을 닫을 때까지.
‘그냥 한 번. 이번 한 번만.’
그는 그렇게 자신을 설득했다.
도시락 통을 가방에 넣고 집을 나설 때까지도, 그는 자신이 왜 이 정도까지 하는 건지 명확한 답을 찾지 못했다. 그저 등굣길 내내 가방 속 도시락 통의 무게가 유난히 신경 쓰였다.
선도부 아침 조회가 끝난 뒤, 서아는 늘 그렇듯 검도부 연습실로 향했다. 태민은 일부러 그 시간에 맞춰 복도를 지나갔다. 우연을 가장한 걸음이었지만, 심장은 평소보다 조금 빠르게 뛰고 있었다.
복도는 아침 특유의 냄새로 가득했다. 청소용 세제 냄새, 어딘가에서 풍기는 급식실의 밥 짓는 냄새. 태민은 그 사이를 걸으며 몇 번이나 걸음을 멈출까 고민했다. 이대로 그냥 지나칠까. 도시락 통을 다시 가방 안으로 밀어 넣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교실로 돌아갈까.
하지만 발은 이미 연습실 앞에 도착해 있었다.
연습실 문 앞에 도착했을 때, 서아가 나오고 있었다. 눈이 마주쳤다.
— 뭐야.
서아의 목소리는 낮고 차가웠다. 처음 보는 1학년이 자신을 정면으로 쳐다보고 서 있으니 경계하는 게 당연했다. 그녀의 손에는 아직 죽도가 들려 있었고, 도복 소매는 살짝 젖어 있었다. 아침부터 벌써 한바탕 몸을 움직인 흔적이었다.
태민은 아무 말 없이 도시락 통을 내밀었다.
서아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 뭔데, 이거.
— 도시락입니다.
— 그건 아는데. 왜 나한테 주는데.
태민은 잠시 침묵했다.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 수 없었다. 사실 자기도 이유를 알지 못했으니까. 머릿속으로 몇 가지 변명을 떠올려봤지만, 어느 것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 남았습니다.
짧고 무뚝뚝한 대답이었다. 서아는 그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의심이 짙게 깔린 눈빛이었다. 낯선 1학년이, 아침부터 도시락을 들고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어색했다.
— 선도부장한테 잘 보이려고 이러는 거면, 헛수고야. 나 그런 거 안 받아.
— 그런 거 아닙니다.
— 그럼 뭔데.
태민의 시선이 잠깐 그녀의 손목으로 향했다. 소매 밑으로 살짝 드러난 손목이 유난히 가늘었다. 검도부 주장이라는 사람의 손목이, 이렇게 가늘어도 되는 걸까. 죽도를 쥐는 손인데도 힘줄 하나 제대로 잡히지 않는 그 가는 선이, 그의 눈에 계속 밟혔다.
— 어제 연습실에서, 상한 음식 드시려고 하셨잖아요.
서아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 봤어?
— 봤습니다.
짧은 정적이 흘렀다. 연습실 안쪽에서 죽도 부딪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서아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
명령에 가까운 어조였다. 하지만 태민은 그 말투 뒤에 숨은 미세한 떨림을 알아챘다. 그녀는 지금, 자신의 완벽함이 깨질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검도부 주장이라는 이름 뒤에서, 며칠씩 밥을 제대로 못 먹는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걸 견디지 못하는 것 같았다.
— 말할 생각 없습니다. 그럴 이유도 없고.
— 그럼 이건 왜 주는 건데.
태민은 도시락 통을 그녀의 손에 억지로 쥐여줬다.
— 밥은 드세요. 그거 하나는, 그냥 사람으로서 드리는 말입니다.
서아는 손에 쥐어진 도시락 통을 내려다봤다. 따뜻한 온기가 손끝으로 전해졌다. 낯선 감각이었다. 누군가 자신을 위해 뭔가를 준비했다는 사실 자체가, 그녀에게는 오랜만이었다. 손바닥을 타고 올라오는 그 온기가, 이상하게도 목 안쪽까지 뜨겁게 만들었다.
— ...이름이 뭐야.
— 강태민입니다.
— 1학년?
— 예.
서아는 한동안 그를 바라봤다. 평소라면 이런 상황에서 곧바로 거절하거나, 예의 있게 돌려줬을 것이다. 그게 그녀가 아는 방식이었다. 필요 없는 관계는 만들지 않는다. 빚지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은—배 속이 텅 비어 있는 상태로 며칠을 버텨온 지금은, 그 손에 쥐어진 온기를 놓기가 쉽지 않았다.
— 딱 한 번뿐이야.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돌아섰다. 걸음이 평소보다 조금 빨랐다. 마치 도망치듯이.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지도 않고 도시락 통을 가방에 넣지는 않았다. 대신 근처 벤치에 앉아, 아무도 보지 않는 걸 확인한 뒤 조심스럽게 뚜껑을 열었다.
계란말이, 소고기 장조림, 나물 반찬. 정갈하게 담긴 도시락이었다. 흔한 편의점 도시락과는 달랐다. 손이 많이 간 음식이었다. 김이 살짝 남아 있는 걸 보니, 아침에 갓 만든 게 분명했다.
‘이걸, 저 녀석이 직접 만들었다고?’
젓가락을 들었다. 손끝이 살짝 떨렸다. 며칠째 제대로 먹은 게 없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한 입 먹었다. 순간, 눈이 커졌다.
간이 완벽했다. 짜지도 싱겁지도 않은, 정확히 자신이 좋아할 만한 맛이었다. 소고기 장조림은 간장이 스며든 정도가 딱 알맞았고, 나물은 지나치게 익지도, 덜 익지도 않았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제대로 된 식사의 맛에, 눈시울이 살짝 뜨거워졌다.
그녀는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맛있다.’
한 입, 두 입, 계속 넘겼다. 배 속에 온기가 차오르는 게 느껴졌다. 그동안 억지로 참아왔던 허기가, 그 작은 도시락 하나로 채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조금 무서워졌다. 이 작은 온기 하나에 이렇게 흔들리는 자신이. 완벽해야 한다고, 흔들리면 안 된다고 스스로에게 늘 다짐해왔는데. 낯선 1학년 남자애가 건넨 도시락 하나에 이렇게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게, 낯설고 불편했다.
‘딱 한 번뿐이야. 이번만.’
그녀는 텅 빈 도시락 통을 손에 쥔 채, 한참을 벤치에 앉아 있었다.
한편 태민은 자기 반으로 돌아가며 스스로에게 말했다.
‘딱 한 번뿐이다. 다시는 안 해.’
교실로 걸어가는 내내, 그는 애써 그 생각만 되뇌었다. 서아의 표정, 도시락 통을 받아 들 때의 그 손끝, 그리고 돌아서던 뒷모습까지. 자꾸만 떠올랐다. 이건 그냥 한 번의 호의였을 뿐이다. 그렇게 정리해야 했다.
하지만 그날 밤, 그는 다시 도시락 재료를 준비하고 있었다.
계란을 꺼내는 손이, 어제와 똑같이 움직였다.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손놀림이었다. 냉장고 앞에 서서, 소고기 팩을 꺼내 들고서야 그는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또 만들고 있잖아.’
그는 잠시 멈춰서 냉장고 문을 응시했다. 딱 한 번이라고 했던 다짐이, 벌써 무너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무너짐이, 이상하게도 싫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