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윤서아의 완벽함은 그녀 혼자 만들어낸 무게였다.
선도부장으로서 매일 아침 정문에 서야 했고, 검도부 주장으로서 방과 후 훈련을 이끌어야 했다. 두 자리 모두,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면 안 되는 자리였다. 선도부장이 지각하거나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면 규율 자체가 무너진다. 검도부 주장이 약해 보이면 부원들의 동기가 무너진다. 그녀는 그 두 압박 사이에서 매일 자신을 깎아냈다.
아침 여섯 시 반,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을 떴다. 몸이 먼저 시간을 기억하고 있었다. 교복을 다리고, 머리를 단정히 묶고, 거울 앞에서 표정을 점검했다. 조금이라도 지친 낯빛이 보이면 안 됐다. 정문에 서면 후배들이 그녀를 본다. 검도장에 서면 부원들이 그녀를 본다. 누구도 그녀의 흔들림을 볼 자격이 없었다—그녀 자신조차도.
집에 돌아가면 아무도 없었다. 부모님은 지방에서 일했고, 그녀는 혼자 자취하며 학교를 다녔다. 텅 빈 냉장고, 텅 빈 방, 텅 빈 시간. 요리는 그녀가 가장 못하는 일 중 하나였다. 라면조차 태워 먹은 적이 있었다. 냄비 밑바닥이 새까맣게 눌어붙었을 때, 그녀는 그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그래서 대부분의 끼니는 대충 때우거나, 아예 거르는 날이 많았다. 편의점 삼각김밥이나, 그마저도 없으면 물로 배를 채웠다. 아무도 몰랐다. 알아서도 안 됐다.
그날 이후, 태민은 매일 아침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정확히는—기다린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의 발은 매일 그 벤치 쪽으로 향했다. 알람보다 먼저 몸을 일으켜, 도마 위에서 칼질을 하고, 프라이팬을 달구고, 도시락 통을 채웠다. 그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 또 왔어?
서아가 팔짱을 끼며 물었다. 목소리에는 여전히 날이 서 있었지만, 눈빛에는 어제와 다른 무언가가 섞여 있었다.
— 남아서요.
— 그 거짓말, 매일 하기 지겹지 않아?
— 지겨우면 안 오려고 했는데, 발이 자꾸 여기로 오네요.
서아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다. 태민은 대답 없이 도시락 통을 내밀었다. 서아는 못마땅한 척 입을 삐죽였지만, 손은 이미 도시락 통을 받고 있었다.
— 오늘은 뭐야.
— 열어보세요.
뚜껑을 열자 불고기와 잡곡밥, 계란찜이 담겨 있었다. 김이 살짝 올라왔다. 아직 온기가 남아 있었다. 서아는 한 숟갈 뜨며 물었다.
— 요리는 언제부터 한 거야.
— 오래됐습니다.
— 왜.
태민의 눈빛이 잠깐 가라앉았다. 대답하고 싶지 않은 질문이었다. 그의 손끝이 아주 짧게 움찔했다.
— 그냥, 필요해서요.
짧은 대답이었지만 서아는 그 안에 깔린 무게를 느꼈다. 더 캐묻지 않았다. 그녀도 자신의 무게를 남에게 설명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사람에게는 저마다 열지 않는 문이 있다는 걸, 서아는 이미 알고 있었다.
— 계란찜은 처음 먹어보는 맛인데.
— 맛없습니까.
— 아니. 좋다고.
말이 뭉텅 잘려 나왔다. 서아는 스스로도 낯설었다. 좋다는 말을, 이렇게 쉽게 한 게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 넌 운동도 해?
뜬금없는 질문에 태민이 그녀를 쳐다봤다.
— 갑자기요?
— 팔 봐서. 그냥 요리만 하는 손 같지가 않아서.
태민의 소매가 살짝 걸려 있었다. 팔뚝의 근육이 드러나 있었다. 오랜 시간 스스로를 몰아붙이며 만든 몸이었다—누구에게도 지지 않으려고, 다시는 무너지지 않으려고. 서아의 시선이 그 위에 잠시 머물렀다. 손목의 힘줄, 그 아래로 이어지는 단단한 선.
— 조금 합니다.
— 조금이 아닌 것 같은데.
서아의 시선이 잠깐 오래 머물렀다. 그녀 자신도 놀랄 정도로. 시선을 거두려 했지만, 거두는 속도가 평소보다 느렸다.
— 검도는 어때. 해본 적 있어?
— 없습니다.
— 그럼 한번 대련해볼래?
갑작스러운 제안이었다. 태민은 눈을 가늘게 떴다.
— 왜요.
— 그냥. 심심해서.
하지만 그 말이 거짓임을 태민은 알아챘다. 목소리의 끝이 아주 살짝 흔들렸다. 그녀는 시험하고 있었다. 이 낯선 1학년이, 자신에게 도시락을 주는 이 사람이, 어느 정도의 사람인지. 아니면 그저—좀 더 가까이서 보고 싶었던 걸지도.
— 좋습니다. 대신 봐주지는 마세요.
— 누가 누굴 봐줘.
서아가 피식 웃었다. 오랜만에 나온, 진짜 웃음이었다.
방과 후, 두 사람은 아무도 없는 체육관 뒤편에서 목검을 들었다. 해가 기울어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나무 바닥에서 올라오는 서늘한 냄새, 먼지와 땀이 섞인 공기. 서아의 움직임은 날카롭고 정확했다. 발을 내딛는 순간마다 절도가 있었고, 목검을 쥔 손목은 흔들림이 없었다. 하지만 태민은 그 움직임 속에서 미세한 흔들림을 봤다. 발끝이 조금씩 어긋났다. 체력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몸이었다.
— 준비됐어?
— 언제든지요.
서아의 목검이 빠르게 날아들었다.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짧게 울렸다. 태민은 몸을 낮춰 피했다. 예상보다 빠른 반사였다. 목검이 그의 머리 위를 스치고 지나갔다.
— 반응 속도가 왜 그렇게 좋아.
서아가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 이마에 땀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 그냥 몸이 기억하는 겁니다.
짧은 대답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과거가 느껴졌다. 서아는 더 묻지 않았다. 다만 그 순간, 그녀 안에서 어떤 감정이 조용히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다시 목검이 부딪쳤다. 나무와 나무가 맞닿는 소리가 체육관 벽에 부딪혀 울렸다. 서아의 공격이 조금씩 빨라졌다. 하지만 그만큼 호흡도 거칠어졌다.
— 더 안 옵니까.
— 방금까지 왔잖아.
목소리에 짜증이 섞였다. 하지만 그 짜증 뒤로 숨이 가빠진 게 태민의 눈에 들어왔다. 서아의 다리가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태민은 알아채고도 모른 척했다. 그녀가 원하지 않을 걸 알았으니까.
서아가 다시 자세를 잡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발을 내딛는 타이밍이 반 박자 늦었다. 목검을 쥔 손에서 아주 미세하게 힘이 빠졌다.
대련이 끝나고 서아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숨기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목검이 손에서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졌다. 딸깍, 하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태민이 그녀 옆에 무릎을 굽혔다.
— 며칠째 이런 겁니까.
— 신경 꺼.
— 신경 안 쓰려고 했는데, 자꾸 눈에 밟혀서요.
서아의 눈이 살짝 커졌다. 처음으로 듣는 종류의 말이었다. 그녀는 애써 시선을 피했다. 심장이 이상하게 빠르게 뛰었다. 대련 때문인지, 방금 들은 말 때문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 언제부터야. 밥을 제대로 안 먹은 게.
— …상관없잖아.
— 상관있어요. 지금 이렇게 무릎도 못 펴는데.
서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고개를 숙였다. 머리카락이 흘러내려 얼굴을 가렸다. 태민은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그녀의 팔을 잡았다. 부축하려는 손이었다. 서아는 순간 그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몸이 먼저 그 손에 의지했다.
—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 부탁이야.
부탁이라는 말이 그녀 입에서 나온 게, 아마 오랜만이었을 것이다. 목소리가 평소보다 작았다. 완벽해야 하는 사람이, 처음으로 자신의 틈을 보여준 순간이었다.
태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이미 결정을 내리고 있었다.
‘내일도 도시락을 싸야겠다.’
그리고 그 결정이, 이제는 하루짜리가 아니라는 것도, 그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서아의 팔을 부축한 손에서, 그녀의 체온이 그대로 전해졌다. 생각보다 차가웠다. 오래 굶은 사람의 체온이었다.
— 일어날 수 있어요?
— …아직.
작은 대답이었다. 태민은 그 옆에 그대로 앉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녀가 다시 일어설 힘을 모을 때까지 기다렸다. 체육관 뒤편으로 해가 완전히 넘어가고 있었다. 그 붉은 빛이 두 사람의 그림자를 길게 늘여놓았다. 서아는 그 그림자를 내려다보다가,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 옆에 있으면, 무너져도 괜찮을 것 같다는—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그녀에게는 낯설고 두려운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