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딸랑, 교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쏠렸다가 이내 흩어졌다. 나는 그 시선들 사이를 걸어가며, 반년 전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이 무게감에 아직도 익숙해지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강도현. 이제는 완전히 내 것이 되어버린 이름을 부를 때마다, 누군가 내 등을 톡 건드리듯 심장이 살짝 뛰었다.
성형외과에서 몇 달을 보내며 코와 턱선을 다듬었고, 화술 강사에게 매일 세 시간씩 말투와 걸음걸이를 교정받았으며, 도현의 손버릇과 웃는 각도까지 흉내 내는 훈련을 거쳤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거울 속의 얼굴이 낯설지 않아졌다. 처음엔 거울을 볼 때마다 손끝이 떨렸는데,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넥타이를 고쳐 매고 머리를 쓸어 올릴 수 있었다. 그게 오히려 무서웠다. 마치 원래 내 얼굴이 아니었던 것처럼, 도현의 표정이 내 얼굴 위에 덧씌워진 듯이 자연스러워졌다는 사실이.
"강도현, 오늘도 지각이네." 담임이 출석부를 탁탁 두드리며 말했고, 나는 습관처럼 어깨를 으쓱하며 자리에 앉았다. 원래의 도현이라면 그랬을 거다. 나는 이제 그 경박함마저 연기해야 했다. 도현의 파일을 몇 번이고 되짚어 읽으며 외운 습관들, 다리를 떠는 각도, 펜을 돌리는 속도, 심지어 하품을 참을 때 손등으로 입을 가리는 방식까지도 몸에 새겨 넣었다.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다는 사실이 안심이 되는 동시에, 내가 점점 나 자신을 잃어가고 있다는 불안이 목덜미를 스쳤다.
창가 쪽, 두 줄 건너 자리에 서지아가 앉아 있었다. 아름다움과 품위를 동시에 지닌 그 애는 여전히 나를 경계하듯 짧게 눈길만 주고는 다시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몇 주 전, 급식실에서 식판을 놓칠 뻔한 그 애에게 슬쩍 손을 뻗어 잡아준 뒤로 조금은 데면데면함이 풀렸지만, 그뿐이었다. 그날 지아의 손끝이 내 손등에 스쳤을 때, 차가운 감촉과 함께 옅은 비누 향이 코끝을 스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했다. 그 순간 지아는 놀란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다가, 곧 "고마워"라는 짧은 한마디만 남기고 자리로 돌아갔었다.
나는 그 애의 시선이 스칠 때마다 볼이 화끈거리는 걸 애써 무시하며 창밖으로 눈을 돌렸다. 창밖으로는 운동장에서 축구공을 쫓는 아이들의 함성이 아득하게 들려왔고, 나는 그 소리를 배경음처럼 흘려들으며 손목시계도 아직 차지 않은 왼팔을 무의식적으로 매만졌다.
방과 후, 검은 세단이 학교 앞에 서 있었다. 나는 이제 그 차를 봐도 놀라지 않았다. 처음 저 차를 봤을 때는 심장이 목구멍까지 튀어 올라오는 것 같았는데, 이제는 그저 무겁고 익숙한 공기가 나를 감싸는 정도였다. 박 기사가 문을 열어주며 짧게 말했다. "회장님이 기다리십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어떤 감정도 묻어 있지 않았다. 그저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문장 같았다.
태산그룹 본사 최상층 집무실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나는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낯익은 낯섦. 그 이질감이 목구멍 안쪽에서 뭔가 걸리는 느낌으로 남아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층수를 하나씩 지날 때마다 숫자판의 불빛이 깜빡였고, 그 규칙적인 깜빡임을 세는 것으로 나는 겨우 마음을 다잡았다. 하나, 둘, 셋…… 스물일곱 층. 문이 열리는 순간까지도 나는 숨을 제대로 쉬지 못했다.
강태산은 창가에 서서 나를 등지고 있다가, 내가 들어서자 천천히 돌아섰다. 흰 머리를 단정히 넘긴 그 노신사는 오늘도 서늘한 눈빛으로 나를 훑었다. 그 눈빛은 마치 물건의 하자를 검사하는 것처럼 냉정했고, 나는 그 시선 아래에서 옴짝달싹 못한 채 서 있었다. "잘 지내나." 짧은 질문이었다. 나는 겸손하게 고개를 숙이며 그렇다고 답했다.
"학교생활은." 그가 덧붙였다. 나는 순간 말을 골라야 했다. 도현이라면 어떤 식으로 대답했을까, 머릿속으로 빠르게 계산하며 입을 열었다. "적응은 다 됐습니다. 친구들도…… 예전처럼 대해주고요." 강태산은 별다른 반응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책상 쪽으로 걸어갔다.
그는 책상 서랍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 내밀었다. 열어보니 은색 손목시계가 들어 있었는데, 묵직한 무게감과 차가운 금속 감촉이 손끝에 그대로 전해졌다. 시계 뒷면에는 작은 글씨로 날짜가 새겨져 있었고, 그 날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학교에서 뭐라 묻으면, 할아버지가 준 거라고 해." 그가 담담하게 말했다.
나는 그 시계를 손목에 채우는 순간, 이게 단순한 선물이 아니라는 걸 직감했다. 이건 인정이었고, 동시에 목줄이었다. 손목을 감싸는 시계의 무게가 마치 수갑처럼 느껴졌다. 이 순간부터 나는 완전히, 되돌릴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고맙습니다." 목소리가 떨렸다. 강태산은 별다른 대답 없이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뒷모습에서 어린 시절의 그가 겹쳐 보이는 것 같았다. 형제들 사이에서 가장 눈에 밟히지 않았던 막내. 나는 그 이야기를 언젠가 들은 적이 있었고, 그래서인지 이 사람의 서늘함 뒤에 숨은 결핍이 나와 닮아 있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어쩌면 그는 지금도 그 시절의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한 채, 자신이 받지 못했던 어떤 것을 나를 통해 대신 채우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생각을 입 밖으로 낼 수는 없었다.
집무실을 나서기 전,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어머니께 용돈을 좀 보내드리고 싶은데요." 목소리가 기어들어가듯 작아졌다. 강태산은 잠시 나를 응시하더니, 알겠다는 듯 고개만 끄덕였다. 그 승낙이 얼마나 큰 자비인지, 나는 그 순간 온몸으로 실감했다.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느낌과 동시에 안도감이 밀려왔다.
엄마는 이제 내가 왜 갑자기 학원비도 두 배씩 보내는지 궁금해하실 텐데,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아득했다. 며칠 전 통화에서 엄마는 "요즘 알바 많이 하니? 무리하지 마"라고 하셨는데, 나는 그 말에 그저 "괜찮아, 엄마"라고만 답할 수밖에 없었다. 진짜 이유를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이, 이 거짓말이 얼마나 깊게 뿌리내렸는지를 다시 한번 깨닫게 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복도 저편에서 낮게 깔린 언쟁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벽 쪽으로 몸을 붙였다. 심장이 갑자기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작은아버지, 이번 일은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낯선 남자의 목소리였다. 굵고 거친, 짐승처럼 위협적인 어조였다. 그 목소리에는 억누른 분노가 짙게 배어 있었다.
그 뒤로 강태산의 목소리가 낮게 이어졌다. "필호야, 넌 아직 멀었다." 그 말투는 무심했지만, 그 안에 담긴 냉기가 복도까지 전해지는 것 같았다.
필호. 그 이름이 뇌리에 박히는 순간,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지만, 심장은 갓 잡은 활어처럼 펄떡이고 있었다. 저 사람이 누구인지, 왜 강태산과 저렇게 날 선 대화를 나누는지,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이 거대한 저택 같은 회사 안에는, 내가 짐작조차 못 할 균열이 이미 자리 잡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직전, 복도 저편에서 걸어 나오는 그림자가 유리문에 스치듯 비쳤다. 크고 단단한 체격, 그리고 그 눈빛이 순간 나와 마주친 것 같았는데, 문이 닫히며 그 모습은 곧 사라졌다.
나는 그 짧은 잔상이 자꾸만 눈앞에 어른거리는 걸 떨쳐내지 못한 채,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손목에 채워진 시계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이 무게가, 이 균열이, 앞으로 나를 어디로 끌고 갈지 나는 전혀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