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쉬는 시간이 끝나갈 무렵, 강태오가 도현의 책상 옆으로 다가와 의자를 끌어당겨 앉았다. 의자 다리가 바닥을 긁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고, 그 소리에 반 아이들 몇몇이 슬쩍 고개를 돌려 그쪽을 살폈다. 태오는 그 시선들을 아는지 모르는지 신경 쓰지 않는 얼굴로, 팔꿈치를 책상 모서리에 걸치고 턱을 괴었다.
"둘이 잘 지내나 보네." 태오가 물었다. 목소리는 나른했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창문으로 들어온 오후 햇살이 그의 얼굴 절반을 가로질렀는데, 그 그늘 진 쪽 눈동자가 유독 짙어 보였다.
"그냥, 그런 거지." 도현은 시선을 책상 위 필기구 쪽으로 떨어뜨리며 애매하게 답했다. 손끝으로 샤프펜슬을 굴리는 동작이 부산스러웠다. 그의 목소리는 원래도 크지 않았는데, 태오 앞에서는 한층 더 작아졌다.
"그런 거라는 게 뭔데." 태오가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목소리를 낮췄다. 그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도현은 자신의 숨소리가 스스로에게 크게 들리는 걸 느꼈다. "벌칙 끝나면 자연스럽게 끝나는 거지?"
도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한 게 아니라, 대답을 강요받는 이 상황 자체가 그를 압박했다. 창밖에서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멀게 들렸다가 다시 가까워졌다. 침묵이 길어지자 태오가 짧게 혀를 찼다.
"길게 안 갈 거잖아, 애초에." 그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도현의 어깨를 툭 짚었다. 손바닥의 온도가 교복 셔츠 위로 그대로 전해졌다. "괜히 오래 끌지 마라."
그 손이 어깨에서 떨어지고 난 뒤에도, 도현은 그 무게가 그대로 남아 있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마치 손자국이 남은 것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데도 분명히 존재하는 감촉이었다.
***
방과 후, 도현은 교문을 나서며 습관처럼 뒤를 돌아봤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다만 요즘 며칠, 등 뒤에서 누군가의 시선이 따라붙는 듯한 감각이 자꾸 들었기 때문이었다. 목덜미를 스치는 바람에도 예민해질 정도였다.
버스 정류장 근처, 편의점 앞에서 낯익은 갈색 머리를 발견했을 때, 도현은 걸음을 멈췄다. 태오였다. 그는 스마트폰을 보는 척하며 서 있었지만, 시선의 방향은 명백히 도현 쪽을 향해 있었다. 화면의 불빛이 그의 손끝을 비추고 있었는데, 손가락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우연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다음 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비슷한 장면이 반복되면서, 우연이라는 단어는 점점 설득력을 잃어갔다. 어느 날은 학원 골목 어귀에서, 어느 날은 문구점 앞에서. 매번 장소는 달랐지만 서 있는 자세는 똑같았다. 벽에 등을 기댄 채, 시선만 이쪽으로 던져놓는 자세.
"요즘 태오가 좀 이상하지 않아?" 오상혁이 급식실에서 식판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각진 헤어스타일 아래로 진지한 표정이 스쳤다. 식판 위 국물이 살짝 흔들렸다.
"뭐가?" 도현이 시선을 피하며 되물었다.
"너 자꾸 힐끔거리잖아. 태오가." 상혁은 숟가락을 든 채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조심해. 그 자식 겉으로는 웃고 있어도, 속으로는 뭐 계산하는 스타일이야."
도현은 그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숟가락을 든 손이 밥알 몇 개를 뒤적이는 동안, 상혁의 시선이 여전히 자신에게 머물러 있다는 걸 알았지만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
그날 밤, 반 단체 톡방에 낯선 메시지가 하나 올라왔다.
[강태오] 야 근데 서린이랑 도현이 진짜 커플 맞냐? 손도 안 잡고 다니던데.
메시지 아래로 이모티콘 몇 개가 붙었고, 곧 다른 아이들의 장난스러운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도현은 화면을 보며 손끝이 차가워지는 걸 느꼈다. 방 안의 불은 꺼져 있었고, 오직 휴대폰 액정의 빛만이 그의 얼굴을 하얗게 비추고 있었다. 단순한 장난처럼 보였지만, 그 안에 깔린 의도는 분명했다. 서린과의 관계를 계속 시험하고, 흔들고, 결국은 끝내려는 것.
댓글이 하나씩 올라올 때마다 진동이 손바닥을 두드렸고, 도현은 그 진동이 마치 자신의 맥박처럼 느껴졌다.
[윤서린] 남 연애사에 관심 많네.
서린의 답장은 짧고 단호했다. 그 문장 하나에 톡방의 흐름이 잠시 멈췄다가, 다시 시시덕거리는 대화로 넘어갔다. 도현은 그 짧은 문장을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화면을 위로 올렸다가 다시 내려 처음부터 읽는 걸 반복했다. 그녀가 자신을 지켜준 건지, 아니면 그저 시끄러운 걸 싫어해서 한 말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휴대폰을 내려놓은 뒤에도 천장을 바라보며 한참을 뒤척였다. 태오의 메시지가 남긴 잔상이 눈을 감아도 사라지지 않았다.
다음 날 등굣길, 골목 어귀에서 태오가 도현을 기다리고 있었다. 손을 주머니에 꽂은 채, 표정은 여전히 웃고 있었지만 그 웃음이 어딘지 날카로웠다. 아침 공기는 차가웠고, 그의 입김이 하얗게 흩어졌다가 사라졌다.
"어제 톡방 봤지." 태오가 걸음을 나란히 하며 말했다. 목소리는 나른했지만 그 아래 깔린 냉기가 감춰지지 않았다. "장난이 아니라는 거, 너도 알잖아."
"뭘 원하는 거야." 도현이 처음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스스로도 놀랄 만큼 떨리는 목소리였다. 걸음이 자연스럽게 멈췄고,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팽팽해졌다.
태오는 걸음을 멈추고 도현을 정면으로 바라봤다. 그 눈빛에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무게가 담겨 있었다. 마치 이제까지의 웃음이 전부 위장이었다는 걸 스스로 벗어던지는 듯한 얼굴이었다.
"서린이랑 헤어져." 짧고 단정한 명령형이었다. "이번 주 안에."
도현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자신이 지금까지 느꼈던 불편함의 정체가 결국 이것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등 뒤를 따라오던 시선, 편의점 앞에서의 우연, 톡방에 올라온 짓궂은 질문. 그 모든 것이 하나의 선으로 이어졌다. 태오는 처음부터 이 관계를 끝내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싫으면?" 도현이 물었다. 자신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목소리 끝이 미세하게 떨렸지만, 그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태오는 잠시 침묵하다가, 짧게 웃었다. 그 웃음이 오히려 더 무섭게 느껴졌다. 웃음기가 사라진 눈과 웃고 있는 입술 사이의 간극이, 그 어떤 표정보다도 서늘했다.
"그럼 재미있어지겠지." 그가 어깨를 스치듯 지나쳐 갔다. 지나치는 순간 그의 팔이 도현의 팔에 닿았고, 옷감이 스치는 소리가 짧게 났다가 사라졌다. "두고 봐."
도현은 그 자리에 선 채로, 멀어지는 태오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골목 끝으로 사라지는 그림자가 유독 길게 늘어져 있었고, 그 그림자가 완전히 사라진 뒤에도 도현은 한동안 발을 떼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