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딸랑, 하고 교문 위에 매달린 종이 흔들리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한빛고등학교 정문을 통과했다. 새로 산 교복 셔츠는 목덜미를 자꾸 긁어댔고, 아직 접힌 자국이 선명한 바지는 걸을 때마다 뻣뻣하게 부딪혔다. 신발장 앞에서 실내화로 갈아 신으면서도 몇 번이나 뒤꿈치가 걸려 넘어질 뻔했다. 부모님은 이미 회사에 가셨고, 서윤이는 나보다 먼저 등교했으니 나는 혼자 이 낯선 건물 안으로 걸어 들어가야 했다. 게임 채널 구독자 수는 어느새 십만을 넘겼지만, 그런 건 이 순간 아무 의미도 없었다. 카메라 앞에서는 누구보다 편하게 떠드는 내가, 정작 이렇게 사람 많은 복도에서는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도 몰라 괜히 휴대폰만 만지작거렸다. 그냥 평범하게, 조용히, 눈에 띄지 않게 1학년을 보내고 싶다는 게 내 유일한 목표였다.
입학식이 끝나고 배정받은 반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부터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앞서가는 애들이 휴대폰을 들고 낮게 소곤거리며 흘끔흘끔 뒤를 돌아봤고, 계단 난간에 매달려 있던 몇 명은 아예 걸음을 멈추고 두리번거리기까지 했다. 그 시선의 끝에는 늘씬한 실루엣의 여자애 둘이 있었다. 교실 문을 열자 이미 반은 아수라장이었다.
"저기 실물로 봤다니까, 클라우드나인 센터."
"진짜 눈부시다……"
"어떡해, 심장 떨려."
창가 쪽 자리에 하얀 장발을 어깨 뒤로 넘긴 여자애가 앉아 있었다. 사진에서 본 것보다 실제가 훨씬 압도적이었는데, 웃는 얼굴 하나로 교실 공기를 통째로 데우는 느낌이랄까. 설아라. 국민 아이돌 그룹의 센터라는 이름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그녀는 다가오는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웃으며 대답을 해주고 있었는데, 손을 흔들고, 고개를 끄덕이고, 가끔은 짧은 감탄사까지 섞어가며 반응해주는 그 예의 바른 태도가 오히려 사람들을 더 끌어당기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옆줄, 창밖을 향해 앉은 또 다른 여자애가 있었다. 시선을 두는 순간 심장이 이상하게 쿵, 내려앉았다.
울프컷으로 자른 흑발이 목덜미 아래로 흘러내렸고, 무심하게 창밖을 응시하는 옆얼굴의 눈동자가 어딘가 낯선 색을 띠고 있었다. 자주색. 조명 각도에 따라 붉은빛이 스치듯 어른거리는 그 눈동자를 나는 넋을 놓고 바라보다가, 뒤늦게 시선을 피했다. 손끝이 괜히 저릿거려서 나는 주먹을 살짝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반 아이들 몇몇도 그녀 쪽을 흘끔거렸지만, 아라와 달리 아무도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마치 투명한 벽이 그녀 주변에만 둘러쳐진 것 같았다. 누군가 다가가려다 말고 걸음을 돌리는 모습을 나는 두 번이나 목격했다.
나는 빈자리를 찾아 앉으며 담임의 자기소개 시간을 기다렸다. 담임은 젊은 여자 선생님이었는데, 출석부를 펼쳐 아이들 이름을 하나씩 부르며 인사를 시켰다. "한이슬." 이름이 불리자 그녀가 자리에서 짧게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목소리는 낮고 건조했으며, 그 이상의 말은 없었다. 다시 앉는 동작마저도 필요한 만큼만 움직이는 듯 조용했다. 의자를 끄는 소리조차 조심스러웠다.
하이틴 모델. 누군가 옆에서 속삭이는 소리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화보 몇 장 본 기억이 있었다. 하지만 실물로 마주하니 사진과는 다른 종류의 위압감이 있었다. 화려함보다는 서늘함. 다가가면 베일 것 같은 느낌. 옆에 앉은 애가 소곤소곤 "쟤 성격 진짜 세다더라"라고 말했지만,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쉬는 시간이 되자 아라의 주변으로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사진을 찍자는 아이, 팬이라며 편지를 내미는 아이, 사인을 받겠다고 노트를 들이대는 아이까지. 아라는 그 모든 걸 웃는 얼굴로 받아넘겼는데, 유독 이슬 쪽으로는 짧게 시선을 던지며 눈짓을 하는 게 보였다. 손가락으로 살짝 신호를 보내는 것 같기도 했다. 이슬은 그 시선을 피하듯 이어폰을 낀 채 창밖만 보고 있었다. 마치 아무것도 못 들은 사람처럼.
둘이 아는 사이인가. 뭐,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었다.
"강민준 맞지?" 뒤에서 누군가 어깨를 툭 쳤다. 돌아보니 낯익은 얼굴이었다. 진주색으로 염색한 단발머리, 밝은 미소. "오다인?" 유치원 때부터 알던 사이였는데, 신인 성우로 데뷔했다는 소식은 서윤이한테 들어 알고 있었다. "와, 진짜 같은 반이네. 대박." 그녀가 반갑게 웃으며 내 옆자리에 슬쩍 앉았다. 오랜만에 보는 익숙한 얼굴에 마음이 조금 놓였다. 긴장으로 뻣뻣했던 어깨가 조금은 풀리는 기분이었다.
"저기 저 둘, 유명하지?" 다인이 턱으로 아라와 이슬 쪽을 가리키며 낮게 물었다. "클라우드나인 센터랑 모델. 완전 화려한 반이네. 나 처음 들어왔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나는 대답 없이 그냥 어깨를 으쓱였다. 사실 나는 그 화려함보다, 이슬이라는 애가 신경 쓰였다. 다들 흥미롭게 쳐다보는 시선 속에서 유독 혼자 다른 세계에 있는 것 같은 그 표정이. 다인이 뭔가 더 말하려는데, 나는 자꾸 딴생각에 빠져 대답을 놓쳤다.
종이 울리고 다시 담임이 들어왔다. 자리 배치를 발표하는데, 하필 내 옆자리가 비어 있었다. "강민준 옆에……" 담임이 명단을 훑다가 짧게 말했다. "한이슬, 여기로."
순간 교실이 살짝 소란스러워졌다. 몇몇 남자애들이 부러운 눈으로 나를 쳐다봤고, 나는 괜히 어색해져 자리에서 몸을 조금 옮겼다. 다인이 옆에서 "야, 대박이다"라며 팔을 툭 치는 것도 제대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슬이 별다른 표정 없이 가방을 챙겨 내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가까이서 보니 향수 냄새인지 원래 체취인지 모를 서늘한 냄새가 스쳤다. 비 오기 전 공기 같은, 그런 냄새였다. 책상 위에 가방을 올리는 손짓 하나, 의자를 당겨 앉는 동작 하나까지도 낮은 소음 하나 없이 조용했다.
"……잘 부탁해." 그녀가 짧게 말했다. 딱 그 한마디뿐이었다. 나도 뭐라 대답을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어, 나도……잘 부탁해." 목소리가 이상하게 갈라져 나와서 나는 속으로 조금 민망해졌다. 그녀는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고, 나는 옆에 앉은 그 애의 옆얼굴을 힐끔 훔쳐봤다. 자주색 눈동자가 창문에 반사된 햇빛을 받아 옅게 빛났다.
이상하게 가슴이 뛰었다. 이유는 몰랐다.
수업이 끝나고 하교 준비를 하는 동안에도 이슬은 별다른 말을 섞지 않았다. 다인이 옆에서 계속 이런저런 얘기를 걸어왔지만, 나는 자꾸만 옆자리 쪽으로 시선이 쏠렸다. 이슬은 가방을 챙기면서도 휴대폰을 몇 번이나 확인했는데, 화면을 켰다가 다시 끄고, 또다시 켜서 들여다보는 동작을 반복했다. 그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는 게 눈에 보였다. 무슨 연락을 기다리는 걸까, 아니면 피하고 싶은 연락이 온 걸까. 손끝으로 액정을 톡톡 두드리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하교 종이 울리자 아이들이 우르르 교실을 빠져나갔다. 이슬은 가방을 어깨에 걸치고 누구보다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교실을 나섰는데, 그 뒷모습이 어딘가 서두르는 느낌이었다. 걸음이 평소보다 빠르고, 어깨는 살짝 굽어 있었다. 창밖을 보니 하늘이 어두운 회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비가 올 것 같았다.
"야, 강민준. 같이 가자." 다인이 부르는 소리에 나는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아, 어. 가자." 가방을 챙기며 짧게 인사를 나눈 뒤 교실을 나섰다. 복도를 걸으며 나는 몇 번이나 이슬이 사라진 방향을 돌아봤지만, 이미 그 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때는 몰랐다. 오늘 하교길에서 벌어질 일이, 앞으로의 모든 것을 바꿔놓을 거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