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눈을 떴다.
천장이 하얬다.
낯설었다.
형광등 하나가 깜빡거리고 있었다. 규칙적으로. 켜졌다 꺼졌다, 그 리듬이 이상하게 신경을 긁었다.
왼쪽 눈꺼풀이 무거웠다. 오른쪽 팔에는 링거 줄이 꽂혀 있었다. 투명한 액체가 똑, 똑,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마저 낯설게 크게 들렸다.
나는 누구지.
질문이 너무 늦게 왔다.
보통은 이름부터 떠올라야 하는데, 아무것도 없었다. 이름도, 나이도, 여기가 어딘지도. 심지어 오늘이 며칠인지도 몰랐다.
머릿속이 텅 빈 방 같았다. 가구도 없고 창문도 없는.
그 방을 뒤졌다. 손을 뻗어 뭐라도 잡히길 바랐다. 이름, 얼굴, 목소리, 뭐든.
없었다.
정말로 아무것도 없었다.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갈비뼈가 아팠다. 팔뚝에도 멍이 번져 있었다. 종아리를 만져보니 거기도 뭔가 부어 있는 느낌이 들었다.
몸은 기억하고 있었다, 뭔가 큰일이 있었다는 걸.
다만 그게 뭔지는 몰랐다.
침대 옆 협탁에 물병이 있었다. 손을 뻗어 뚜껑을 열려 했는데 손목이 힘없이 꺾였다. 근육이 다 빠진 것처럼. 며칠은 누워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었다.
물을 한 모금 넘겼다. 목이 아팠다.
목.
손을 들어 목을 만졌다.
손끝에 뭔가 걸렸다.
상처였다.
선명하게 그어진 자국이었다. 귀 밑에서 시작해서 목젖 아래까지 비스듬히. 칼로 벤 것 같았다. 아니, 칼보다는 더 예리한 무언가로.
손가락을 대보니 딱딱하게 아문 흔적이 느껴졌다.
오래된 상처였다.
오늘 사고를 당했는데, 왜 목에는 오래된 상처가 있지.
말이 안 됐다.
나는 그 상처를 따라 손끝을 몇 번이나 다시 그어봤다. 마치 손가락으로 지도를 그리는 것처럼. 상처는 정확했다. 흔들림 없이, 한 번에 그어진 선.
사고로 생긴 상처는 이렇게 생기지 않는다.
그건, 이유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알았다.
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어지러웠다. 시야가 잠깐 하얗게 번졌다가 서서히 돌아왔다.
벽에 걸린 시계를 봤다. 오후 세 시였다.
창밖은 밝았다. 도로가 보였고 버스가 지나갔다.
버스 노선 번호가 눈에 들어왔다. 342번.
342번 버스는 여기서 강남 쪽으로 간다.
그 사실이 아무 맥락 없이 튀어나왔다.
이상했다. 내 이름도 모르는데 버스 노선은 안다. 개 품종도 구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도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나는, 나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다.
뭔가 하나 시험해봤다.
구구단.
칠 곱하기 팔은, 오십육.
바로 나왔다. 막힘없이.
내 생일은.
막혔다. 아무것도 안 나왔다.
이상한 패턴이었다. 세상에 대한 지식은 그대로인데, 나에 대한 지식만 텅 비었다.
지워진 게 아니라, 골라서 지워진 것 같았다.
간호사가 들어왔다.
"어, 일어나셨네요."
말투가 이상하게 가벼웠다. 서류를 넘기면서 곁눈질로 나를 보는 태도였다.
방금 목에 뭔가 그어진 채로 눈뜬 환자를 보는 사람의 말투가 아니었다.
"저... 여기가 어디예요?"
"서울병원이요."
"제가 왜 여기 있는 거죠?"
간호사는 잠깐 멈췄다가 말했다.
"교통사고였어요. 자세한 건 선생님이 설명해주실 거예요."
그러고는 서둘러 나갔다.
너무 서둘렀다. 마치 더 이상 대화하고 싶지 않다는 듯이.
나가는 뒷모습을 봤다. 걸음이 빨랐다. 슬리퍼 소리가 복도 끝까지 또각또각 울렸다가 사라졌다.
나는 다시 목을 만졌다.
교통사고로 이런 상처가 생기나.
사고라면 유리에 찢기거나 어딘가에 부딪혀서 생긴 상처여야 했다. 삐뚤빼뚤하거나, 여러 방향으로 찢어졌거나.
이건 아니었다. 이건 누가 의도적으로, 정확하게 그은 자국이었다.
칠판에 자를 대고 그은 선처럼.
나는 침대 옆에 걸린 환자복 소매를 걷어봤다. 팔뚝에 오래된 흉터가 몇 개 더 있었다. 작은 것들. 점처럼 박힌 것들.
이것도 오늘 생긴 게 아니었다.
몸 전체가 낯선 지도 같았다. 상처마다 뭔가를 말하고 있는데, 나는 그 언어를 모르는 사람처럼 읽지 못했다.
한 시간쯤 지나서 의사가 들어왔다.
오십대쯤 되어 보이는 남자였다. 안경을 쓰고 있었고, 표정이 시종일관 무표정했다. 걸음걸이가 느렸다. 서두르지 않는 사람 특유의 여유가 있었는데, 그 여유가 편안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환자분."
의사가 나를 불렀다. 이름이 아니라 그냥 환자분이라고.
"제 이름을 알고 계세요?"
의사는 차트를 내려다봤다.
"진태 씨. 이진태."
이름이 낯설었다. 내 이름인데도 남의 이름 같았다. 입안에서 발음해봤다. 이진태. 이진태. 몇 번을 되뇌어도 내 것 같은 느낌이 붙지 않았다.
"저... 기억이 안 나요. 아무것도."
"교통사고로 인한 일시적 기억상실입니다. 흔한 증상입니다."
의사의 대답은 준비된 것처럼 빨랐다. 마치 이미 이 질문을 예상하고 있었던 것처럼.
너무 빨랐다.
보통 사람이라면 질문을 듣고 최소한 잠깐 생각하는 척이라도 한다. 이 남자는 아니었다. 대답이 질문보다 먼저 준비돼 있는 것 같았다.
"목에 있는 상처는요."
의사의 손끝이 잠깐 멈췄다.
거의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짧았지만, 나는 봤다.
"사고 당시 생긴 열상입니다."
거짓말이라는 걸 알았다.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알았다.
의사의 눈이 잠깐 흔들렸고, 목소리 톤이 아주 조금 높아졌다. 안경 너머로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리는 걸, 나는 이상하게도 선명하게 읽어냈다.
"그런데 왜 벌써 아문 것처럼 보이죠? 팔뚝에도 오래된 흉터가 있는데요."
의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차트를 덮었다.
그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딱, 하는 소리가 병실 안에 퍼졌다.
"오늘 퇴원하시면 됩니다."
"네?"
"검사 결과 특별한 이상은 없습니다.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돌아올 수도, 안 돌아올 수도 있습니다."
너무 빨랐다.
목에 이상한 상처가 있고, 기억을 통째로 잃은 환자를 정밀검사도 없이 퇴원시킨다고.
이게 정상적인 절차인가.
머릿속에 없는 기억 속에서도, 이건 아니라는 감각만은 뚜렷하게 남아 있었다.
"검사를 좀 더 받고 싶은데요. MRI든 뭐든."
"필요 없습니다."
단호했다. 대화의 여지를 주지 않는 단호함이었다.
"저를 데리러 올 사람은요? 보호자는..."
의사가 잠깐 나를 봤다.
그 눈빛이 이상했다. 뭔가를 알면서 말하지 않는 사람의 눈빛. 마치 이 질문이 나올 걸 알고 있었고, 대답을 미리 준비해뒀지만 그 대답을 입 밖에 내기 싫어하는 눈빛.
"인수인 정보는... 확인 중입니다."
"확인 중이라뇨. 저희 아버지는요?"
아버지, 라는 단어가 저절로 나왔다.
기억에는 없는데 몸이, 아니 마음 어딘가가 그 단어를 알고 있었다. 입 밖으로 나온 순간, 가슴 한쪽이 뜨끔하게 저렸다. 이름도 모르는데 이 단어에는 반응한다는 게, 스스로도 이상했다.
의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냥 조용히 병실을 나갔다.
"저기요!"
소리쳤지만 문은 이미 닫혔다.
나는 침대 위에서 그 문을 한참 쳐다봤다. 손잡이가 아직도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졌는데, 사실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다시 침대에 앉았다.
텅 빈 머리, 낯선 이름, 오래된 상처, 그리고 대답하지 않는 의사.
뭔가 잘못됐다.
확실하게.
창밖으로 342번 버스가 다시 지나갔다.
나는 그 번호를 왜 아는지도 모르면서, 그 번호가 맞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이상한 확신이었다.
마치 어떤 지식은 삭제되지 않고, 어떤 지식만 골라서 지워진 것처럼.
누가 이런 짓을 했지.
왜.
그리고 이 목의 상처는, 대체 언제 생긴 거지.
교통사고였다면, 이 상처는 사고 전에 이미 있었어야 한다.
그럼 사고는, 어쩌면 이 상처와는 상관없는 다른 일이었을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머리가 복잡해졌다. 정리되지 않는 생각들이 서로 부딪혔다.
간호사가 다시 들어와서 퇴원 수속 서류를 내밀었다.
이번엔 눈도 잘 마주치지 않았다. 서류를 침대 위에 올려놓고는, 펜을 그 위에 얹었다.
"여기 서명하시면 돼요."
"저, 잠깐만요. 제가 지금 나가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몰라요."
"그건... 저도 잘 몰라서요."
또 저 대답이었다. 모른다는 말. 확인 중이라는 말.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 말들이 병실 안에 계속 떠다녔다.
손이 떨렸다.
이름을 쓰는데, 내 손이 낯설게 움직였다. 펜을 쥔 손가락 관절이 뻣뻣했다. 마치 오랜만에 글씨를 쓰는 사람처럼.
이진태, 라고 세 글자를 적었다.
적으면서도 이게 정말 내 이름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글씨체마저 낯설었다. 이게 내 필체인가, 아니면 이 몸이 예전에 익혀둔 습관인가. 구분할 수 없었다.
서류에는 보호자란이 비어 있었다.
비어 있는 칸을 한참 들여다봤다.
간호사는 그 옆에서 서류를 정리하며 기다렸다. 무심한 얼굴로. 이런 빈칸을 이미 여러 번 봐온 사람의 얼굴로.
"보호자란은... 그냥 비워두면 되나요?"
"네, 확인되면 나중에 연락 갈 거예요."
나중에.
그 말이 텅 비어 보였다. 아무 무게도 없는 말.
아무도 나를 데리러 오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나는 서류를 다시 한 번 내려다봤다. 이진태라는 세 글자와, 그 옆에 비어 있는 보호자 칸.
그리고 창밖으로 지나가는 342번 버스를 다시 봤다.
이름도 모르는 내가 아는 유일한 확실한 것은, 저 버스가 강남으로 간다는 사실 하나였다.
병실 밖으로 나가면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다만 하나는 확실했다.
이 병원에서, 누구도 나에게 진실을 말해주지 않을 거라는 것.